빌립보서 4장 10~12절
사도 바울이 감옥 안에서 겪었던 마음의 고충과 이를 어떻게 신앙적으로 해결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을 통해 바울에게 필요한 돈(헌금)과 선물을 보냈습니다. 감옥에서 큰 위로를 받은 바울은 성도들의 정성과 사랑에 깊은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이 편지(빌립보서)를 썼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고마운 선물을 받으면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끝내면 되지만, 사도 바울에게는 한 가지 큰 고민(과제)이 있었습니다.
바로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게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인의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친절에 내가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솔직하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감사를 너무 과하게 표현하다 보면, 마치 바울이 '돈이나 선물이 부족해서 쩔쩔맸던 사람' 처럼 보이거나,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도움만 기다렸던 사람' 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혹시라도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 성도들이 상처받거나 오해할까 봐 적당한 말을 찾느라 깊이 고심했습니다.
고충을 해결한 열쇠: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립보서 4:11)
자족(自足)이란? 스스로 넉넉함을 안다는 뜻으로,
내 주변 환경이나 물질적인 조건에 내 행복과 평안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울의 진짜 속마음은 "여러분이 선물을 보내주셔서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세요.
내가 가난하고 힘들어서 징징거리려고 이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배가 부르든 배가 고프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비밀(자족)을 이미 배웠습니다. 그러니 내가 감사해하는 것은 물질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이 보여준 그 따뜻한 사랑과 정성 때문입니다."
'자족(만족)'의 진짜 뜻과 바울의 실제 경험
성경에서 말하는 '만족하다', '자족한다'는 말은 헬라어 원어의 뜻으로 보면 **"내가 처한 환경이나 조건,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내 삶에 일어나는 복잡한 일들에 내 마음이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상태를 말합니다.
바울이 과거 실라와 함께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사건을 예로 듭니다. 당시 그들은 매를 맞고 발에 쇠사슬(차꼬)이 묶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므로 육체적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처참한 환경도 바울의 마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한밤쯤 되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환경을 초월한 '진짜 자족'의 역사적인 증거입니다.
바울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 영적 아들인 젊은 디모데에게도 편지를 보내 **"지족(자족)하는 마음이 있는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고 가르쳤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갈 젊은이에게 가장 먼저 배워야 할 필수 원칙으로 '자족'을 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34절에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과도 똑같이 연결됩니다.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지나치게 걱정하며 근심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만족을 누리는 것이 **"완전한 의미에서의 자족"**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짜 자족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를 향해 "민중의 마취제"라 부르며, 아무리 불평등하고 부당한 상황이라도 무조건 참고 살라고 가르치는 종교라고 오해합니다. "하나님이 가난한 신분과 부자의 신분을 정하셨으니 영원히 그대로 살라"는 식으로 성경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결코 가난에 그냥 머물러 있어야 한다거나,
더 나은 상태를 위해 노력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봅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환경에 대한 단순한 무관심이나 포기가 아닙니다.
만약 정당하고 합법적인 수단이 있다면 내 힘으로 환경을 더 좋게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곤궁한 처지에 머물러야 한다면,
결코 그 환경에 마음을 지배당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는 그 상황의 주인이다.
내 생명과 행복과 기쁨은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바울은 비천함(가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함(부유)에 처할 줄도 안다고 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할 때 원망하지 않고,
직장에서 낭패를 당하거나 사람들에게 무시와 욕을 먹을 때도 마음에 상처나 불평 없이 영적인 평안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반대로 돈이 많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될 때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보다 "내 힘으로 다 가졌다"고 착각하며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매우 쉽습니다.
바울은 이 상반되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원망이나 교만 없이 중심을 잡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일에" 자족하기: 바울은 단순히 큰 사건에서만 자족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아주 작고 사소한 **"모든 일 하나하나"**에 대해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내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내 행복과 기쁨은 그 일들에 의해 흔들리거나 조종당하지 않는다는 당당한 태도입니다.
현대인들이 왜 자족하기 힘든지, 어려운 이유: "세상에 대한 과도한 의존" 우리는 라디오, TV, 영화, 신문, 오락 등 세상이 짜놓은 시스템에 너무 깊이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자극들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전쟁 초기에 등화관제(불을 끄는 명령)로 인해 갑자기 오락거리가 끊기자, 사람들은 집에서 며칠 밤을 보내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고 지루해했습니다. 스스로 평안을 만드는 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교회 안에서도 나타납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적인 분위기나 집회, 사람들과의 교제에만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사를 가거나 모임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갑자기 신앙의 흥미를 잃고 탈락해 버리는 '누수 현상'이 발생합니다.
예배나 전도, 모임조차도 내 자족의 절대적인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는 환경에 초연한 '진짜 자족'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대단해서 자족했던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삶의 '체험'을 통해 이 비법을 전수받았습니다.
육체의 가시(질병): 바울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몸의 질병(육체의 가시)이 있었습니다. 고쳐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때 바울은 "내가 약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위대한 진리를 몸소 체험하며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신앙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확실한 논리를 세웠습니다.
환경은 언제나 변하므로 거기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영혼과 하나님의 관계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나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나의 궁극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다.
삶의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조건이나 환경을 나를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내 조건이 어떠하든 그것은 잠깐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일 뿐, 내 기쁨과 영광을 빼앗을 수 없다.
바울이 자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십자가의 고통과 부끄러움을 참아내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늘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잠깐의 환경에 연연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좇은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세상의 모든 조건과 심지어 죽음이 찾아와 내가 홀로 남겨질 때조차,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와의 깊은 친밀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