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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3-16절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가(Being)"

작성자우승호|작성시간26.06.16|조회수47 목록 댓글 0

마태복음 513-16절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가(Being)"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가 그들이 특별하거나 우월해서라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신명기 77절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기 때문에 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가장 결정적인 목적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연결하는 중보자'입니다.

,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샘플로 삼아,

온 세상 열방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주님께 돌아오게 만드는 통로로 삼으시려고 택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받았던 사명이

신약에 와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라는 말씀으로 계승된 것입니다.

 

너희는 소금과 빛이다"라는 부르심의 진짜 목적은 한마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을 부끄럽게 만들고,

오직 내 뒤에 계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영광)만을 드러내는 것"

 

하나님은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이미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이사야 49: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감으로써,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주변 이방 민족들에게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이렇게 복되다"는 것을 보여주는 빛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교회를 향해,

그리고 예수 믿는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의 건물이 얼마나 웅장한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지,

우리가 얼마나 세련된 문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지에는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던지는 진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릅니까?"

"당신들이 믿는 예수는 정말 살아있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거나 어떤 위대한 업적을 쌓으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단지 "너희는 이미 소금과 빛이다(You are)"라고 그들의 존재를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그 '빛의 사명'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제자들이 이어받았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아무에게나 "너희는 소금과 빛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미 소금과 빛'이다(Are)'라고 선언하셨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거듭나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기독교는 새로운 존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변화된 영적 성품을 세상 속에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라는 '존재 자체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존재'할 때, 소금과 빛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가 본질입니다.

 

로마서 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수님 당시의 소금은 오늘날처럼 조미료의 기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음식물의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이 핵심이었습니다.

소금은 부패해가는 고기 덩어리 '속으로' 흩어지고 섞여 들어가 살 속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즉 주님의 부르심은 세상과 구별되되(거룩함),

동시에 세상 한복판으로 깊숙이 들어가는(침투) 부르심입니다.

썩어가는 직장, 어두운 가정, 상처 입은 사회 속으로 들어가 그곳의 부패를 막고 어둠을 밝히라는 소명입니다.

 

세상의 본질은 부패입니다

세상은 그대로 두면 스스로 도덕적, 영적으로 썩어 들어가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의 문화, 철학, 유행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합니다.

세상이 도덕적, 영적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며, 방치하면 끊임없이 부패하는 성향을 가졌음. 하나님 없는 세상이 얼마나 어둡고(빛의 부재),

얼마나 도덕적으로 부패해 있는지(소금의 부재) 삶의 구별됨을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거대한 이방 제국인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철저히 세상 한복판에 스며들었습니다.

7년의 대기근이라는 국가적·전 세계적 재앙 앞에서, 요셉은 뛰어난 지혜와 정직함으로 대안을 제시하여 이집트와 주변국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보존'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도덕적으로 부패한 이집트 문화 속에서 요셉은 세상과 전혀 다른 '거룩함의 맛'을 유지했고,

결국 바로 왕으로부터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라는 찬사를 받아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핵심은 '구별됨(거룩)'이었습니다.

주변 가나안 민족들의 음란하고 부패한 우상숭배 문화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부패를 방지하는 제동장치입니다:

소금이 고기 속에 스며들어 썩는 것을 막듯이,

그리스도인은 세상 한복판에 들어가 세상의 죄악과 부패를 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부패한 세상(직장, 가정, 사회)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썩어가는 속도를 늦추고 죄악을 억제하는 제동장치가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부패를 막을 수 있는 이유는 고기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시기하고,

탐욕을 부리고, 타락한다면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삶의 방식 자체가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의 역할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즐기고, 똑같이 타락한다면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은 길가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조롱받고 짓밟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과 구별되는 '(성도다운 거룩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어둠을 밝히는 적극적 증거

소금이 죄를 억제하는 '소극적' 역할이라면,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진리를 드러내는 '적극적' 역할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Sun)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에겐 세상을 변화시킬 힘도, 어둠을 밝힐 의도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인 이유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분의 빛을 우리를 통해 투사(Reflect)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달을 보십시오. 우리는 달을 보며 '참 밝다'고 말하지만, 사실 달 자체는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는 거대하고 차가운 돌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달이 밤하늘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그 빛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밝힐 도덕성도, 의로움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어두운 돌덩어리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과 연합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빛을 보게 됩니다. 빛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르심은 나 자신의 의로움이나 도덕성을 자랑하라는 부르심이 아닙니다.

철저히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분과 친밀히 교제함으로써,

그분의 빛이 나라는 인생을 통과해 세상에 드러나게 하라는 부르심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문화적 어둠 속에 던져졌습니다. 바벨론 왕은 그들의 이름과 사상, 종교를 모두 바벨론식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거절하며 뜻을 정했고,

사자굴에 던져질 위기 속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삶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의 전형이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풀무불과 사자굴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빛을 발했을 때,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느부갓네살 왕과 다리오 왕은 조서를 내려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6:26).

성도의 착한 행실과 믿음을 보고 이방의 왕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건입니다.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와 죄수로, 다니엘은 포로로, 그들이 처한 세상은 지독하게 어둡고 썩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이 왜 이리 어둡냐"고 불평하는 대신,

자신이 처한 바로 그 자리에서 소금으로 녹아지고 빛으로 타오르는 '존재의 증거'를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것은

"너희가 세상과 완전히 다른 하늘의 시민임을 삶으로 입증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세상과의 '철저한 구별됨'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 적당히 타협해라.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융통성을 가져라"라며 세상의 틀에 우리를 맞추라고 압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유행과 가치관에 물들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려져 짓밟히듯,

성도가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무능한 존재가 됩니다.

 

주님은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속에서 숨겨질 수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참된 신앙은 개인의 골방에만 갇혀 있을 수 없으며,

반드시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시는 부르심은,

내가 세상에서 빛나기 위한 부르심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변화된 나의 존재(거룩함)를 가지고, 부패하고 어두운 세상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라"** 전인격적인 소명입니다.

 

세상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세상은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하며, 영적인 소경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반사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빛인 이유는 우리 안에 본질적인 빛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빛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해 있기 때문에,

그분의 빛이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빛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위를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나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산 위의 동네가 숨겨질 수 없듯이,

진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속에서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16절의 '착한 행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거룩함, 겸손함, 온유함, 그리고 핍박 속에서도 잃지 않는 기쁨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그 독특하고 구별된 삶을 볼 때, 그들은 기이함을 느끼게 됩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지?'

'저 사람은 왜 손해를 보면서도 정직하지?'

 

그리고 마침내 그 삶의 원동력이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깨닫고, 우리 뒤에 계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6절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나의 겸손과 희생을 통해 내 뒤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구나" 고백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세상이 어둡다고, 세상이 썩었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어두운 것은 세상의 책임이 아니라,

빛이 희미해진 우리의 책임이며 소금이 맛을 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묻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릅니까? 당신들이 믿는 예수는 정말 살아있습니까?“

 

참된 그리스도인은 나의 철저한 겸손과 희생,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통해 내 뒤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구나"라고 고백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소금과 빛으로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입니다.

 

내가 손해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할 때 소금의 맛이 드러납니다.

내가 억울하더라도 온유함으로 용서할 때 참 빛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세상과 '가장 강력한 이질감'["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영적 체질과 삶의 방식을 가짐으로써 풍기는 거룩한 낯설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탐욕, 시기, 음란, 성공주의라는 가치관에 절대로 물들지 않고 도리어 그 흐름을 거스르는 영적 독립성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러한 삶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질감을 줍니다.

'저 사람은 대체 무엇 때문에 저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지?',

'저 사람의 평안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라는 영적인 호기심과 충격을 던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즐기고, 똑같이 타락하자"고 압박합니다. 적당히 타협해서 섞여 살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요한복음 1715-16(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여러분은 이미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입니다.

그 존재의 맛과 빛을 당당히 드러내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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