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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자료

[스크랩] 밧모섬 (사도요한의 발자취를 따라)

작성자정성욱|작성시간14.02.27|조회수911 목록 댓글 0

 

사도요한과 밧모섬 (PATMOS)

 

1세기는 사도들과 기독교 인들에게 대단히 어려운 고난의 시기였다.

스데반과 야고보가 돌에 맞아 순교하고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칼에 맞아 순교 하고 배드로와 바울도 로마에 가서 사형을 당해 순교 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틴을 떠나 은신처를 찾아야 할 때 였다.

이때 사도 요한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로 온 것으로 본다.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 때 A.D.95년경에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약 70km 떨어진 밧모섬에 유배 된 것도 그가 에베소에 있었다는 것을 더욱더 확신케 한다.

A.D.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사도요한과 함께 에베소에서 지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은 마리아와 함께 언제 에베소에 왔던가 하는 것이 의문으로 남는다.

 

(사진: 예베소 입구: 맨 끝 건물은 두란노 사원이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 오기전에 에베소에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 아볼로가 회당에서 가르쳤으며 에베소 교인들은 바울이 3차 여행중 에베소에 올 때 (A.D.53년) 까지 요한의 물 세례만 알았을 뿐 성령 세례를 알지 못하고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한 상태 였기 때문에 사도요한이 에베소에 있었다고는 볼수 없다. (행18:24-19:2)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 동안 가르칠 때도 요한은 에베소에 오지 않았다.

요한이 에베소에 온것은 A.D.67년경으로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할 무렵 또는 그 뒤인 것으로 사료된다.

요한이 에베소에 왔을 때 에베소 교회는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에베소교회의 터 )

 

당시 팔레스틴 땅 에서는 유대인들이 로마의 통치에 반대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음으로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을 좋지 않게 생각했을 때 였다.

요한이 에베소에 왔을 때 에베소에는 바울의 전도로 이미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이교도들의 의식과 타협하고 있었다.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간 이유에 대해 요한 계시록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계1:9)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다는 요한 자신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를 믿고 증거 하는 일 때문에 유배 되었다.

사도요한이 에베소에 왔을 때 에베소에는 로마 황제 숭배의식이 강요되었고 이에 타협해서 참여하는 기독교인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사도요한은 황제숭배에 참여하기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참여하지 못하도록 설교했던 것으로 쉽게 짐작된다.

비올비올산(mt.coresus)계곡에 있는 에베소 유적지의 헐큐레스(hercules )문 옆에는 도미티안 황제의 신전과 광장이 있다.

도미티안은 A.D.81년에 황제가 되었으며 처음에는 정직한 정치가라는 평을 받았으나 후에는 폭군이 되어 자신을 신이면서 주 (God and Lord Dominset Deus)라고 했으나 결국 그는 살해되고 말았다.

황제숭배는 도미티안 황제 때 강하게 요구 되었으며 도미티안은 네로황제가 부활한 것으로 인식될 정도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심했다.

하나님이면서 주라는 말(God and Lord )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예수에게만 바칠수 있는 신앙이기 때문에 요한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요한은 도미티안(Domitian) 황제 때(A.D.95년) 밧모섬으로 유배 되었으며 도미티안 황제가 죽은 (A.D.96년 9월) 뒤에야 밧모섬에서 풀려났다.

당시 밧모섬은 가시와 엉겅퀴로 뒤덮인 불모지였으며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 될 때에 사도행전에 나오는 7집사 중의 한 사람인 브로고로 (행6:5)도 함께 간 것으로 전해진다.

유배기간에 대해서는 1년 반정도 후에 도미티안 황제가 피살된 후 요한은 유배지 인 밧모섬에서 나와 에베소로 돌아와서 죽을 때 까지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을 돌보며 목회를 했다.

모든 공민권과 재산을 박탈하고 외딴 섬으로 유배를 보내는 것은 사형 다음으로 중한 벌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유배지인 밧모섬에서 비교적 자유스러운 몸으로 손과 발이 쇠사슬에 매어 있지는 않았으며 섬안에서는 가고 싶은 곳은 갈수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거기서도 전도 활동을 했으며 동굴 속에서 기도하다가 주의 날에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다.

 

밧모섬

 

 

사도요한이 “ 새 하늘과 새 땅”의 계시를 받았던 에게해의 외딴 작은 섬 밧모섬이다.

밧모섬은 에게해 (바다 이름) 에 산재한 3,000여 섬 가운데 하나로 터키에서는 약 60km, 그리스 아테네로 부터는 250km 떨어저 있고, 지리적으로는 터키에 훨씬 가까우나 현재는 그리스령에 속해 있다.

 

섬의 면적 “우리나라 울릉도 절반정도의 면적 약 34km 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길이가 16km 에 이르나 동서의 폭은 들쭉 날쭉해 섬의 중간부분은 1km 정도로 잘룩하다.

밧모섬을 가려면 선박을 타고 가야 하는데 단체일 경우에는 터키의 구사다시 항에서 전세 편을 이용하여 4시간 (약12not)를 타고 스카라 항구(scala)에 도착하고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에서 배를 타면 약 9시간 정도 소요된다

또한 아테네에서 비행기를 타고 사모스로 가서 다시 배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사진: 계시 동굴)

 

사도요한이 유배 당시에는 사람이 살수 없는 황량한 돌섬으로 여름에는 물이 없고 무더위에 시달려야 했고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로 땔감나무도 없이 혹독한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그야말로 중형 죄수들만 유배시켜 죽음을 자초케 하는 최악 생활의 여건의 섬이었으리라.

이 밧모섬의 언덕 중턱에 있는 사도요한이 유배되어 살았다고 전해지는 사도요한 계시동굴이 있다.

동굴 입구 위에 사도요한이 받았던 계시를 그의 제자 프로코러스가 받아쓰고 있는 성화를 보면서 계시를 받았다는 동굴 안쪽으로 돌 계단을 내려가면 동굴의 제일 안쪽의 바위 벽면 약 1m 높고 일어 날 때 마다 그 벽면의 손잡이를 잡고 일어날 수 있도록 홈이 파져 있다

사도요한은 이 동굴에서 항상 엎드려 기도했기 때문에 그의 이마에는 굳은 살이 생겼다고 하며 이곳 밧모섬의 모든 사도요한의 성화에는 이마에 굳은 살이 혹같이 그려져 있다.

(사진 : 산위에서 내려다 본 밧모섬= 에게해와 어우러진 풍경이 넘 아름답다)

 

 그때 당시 사도 요한을 잡아다가 사약을 내렸단다. 그러나 사도요한은  사약그릇을 들고 음료수 마시듯 꿀컥 꿀컥 들이켰는데도 사도요한이 죽지를 않했다고 한다 . 도미티안 황제가 이 사약이 가짜가 아닌가 ? 라고 하자 사도요한은 다른 죄수를 불러와서 먹여보라 라고 하여 그가 다른 죄수를 데려다가 그 사약을 먹였더니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고 말았단다.

사도요한은 그 죄수를 안수하여 살렸다고 하는 역사적이 이야기를 들었으나 저로서는 확인할수가 없었고

성지순례 때 만난 가이드에게 왜! 사도요한을 밧모섬으로 보냈느냐고 내가 묻자 그의 대답이 약을 먹여도 죽지를 않으니까 할수 없이 유배를 보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종합해 봐도 그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생각도 해본다.

그러한 일들로 인하여 황제 도미티안 역시 유배를 보내기는 했지만 사도요한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인것 같다 

(나의 추측일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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