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다. 마가 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마태 복음과 누가 복음의 탄생 기사를 당시의 역사적 정황에 따라 구축해 보면 마치 두 복음서의 기록에 차이(충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많은 비평학자들은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historical reliability)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두 복음서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일치하며 따라서 성경의 무오성이 잘 유지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1. ‘주후’(AD)의 기원
지금 우리의 햇수 계산 방식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해를 원년으로 한다. 즉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을 ‘주전’(Before Christ(BC): 영어로 ‘그리스도 이전’이라는 뜻)이라 하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를 ‘주후’(Anno Domini(AD): 라틴어로 '주님의 해'라는 뜻)라고 하여 햇수를 계산한다. 이러한 연대 기술 방식은 주후 6세기 초 로마에서 활동했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만든 것이다. 그는 신학, 수학, 천문학 등에 뛰어난 학문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데, 주후 525년에 교황 요한 1세(523-526년 재위)가 그에게 부활절의 정확한 연대를 계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연대기를 도입하였다.
사실 고대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왕의 연호(무슨 왕 몇 년)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로마 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주후 284-305년 재위)의 즉위 연대를 기원으로 하는 마르티르(Martry)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를 매우 심하게 박해했던 왕이었기에 교황은 그러한 왕의 연호를 부활절 연대 계산에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여 당시의 대학자였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로 하여금 진정한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의 연호를 사용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로마제국의 기원 연도와 예수님의 생애를 비교 연구하였고 이렇게 툴바 더보기산출된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로마제국 건국으로부터 754년 후였음을 발견하였다(로마제국은 주전 753년 4월 21일에 건국되었음). 그리하여 그는 A.U.C.(ab urbe condita[도시(로마) 건설 이후]) 754년을 주후 1년으로 계산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학자들은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잘못 계산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성경과 고대 문헌을 연구한 후에 예수님이 적어도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났음을 알았다. 즉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해는 A.U.C. 754년이 아니라 적어도 A.U.C. 750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A.U.C. 750년을 주후 1년으로 계산했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중대한 계산상의 착오를 일으킨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해도 후대의 사람들이 이 연대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주후’(AD) 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고 이제 와서 그것을 고친다는 것은 너무 어려웠던 까닭에 오늘날까지 그냥 일반화되어 사용하고 있다.
2. 성경의 기록
그렇다면 예수님은 언제 태어나셨는가? 예수님이 태어나신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근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이다. 마 2:1에 따르면 예수님은 헤롯대왕(Herod the Great)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나셨다. 헤롯대왕은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하다가 주전 4년에 죽었다. 이는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Antiquities, 17.6.4). 특히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헤롯이 죽던 해에 월식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주전 4년 3월 12일에 실제로 월식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헤롯의 사망 연대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예수님은 적어도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나신 것이 된다. 게다가 마 2:16에 보면 동방에서 박사들이 헤롯 대왕에게 와서 이스라엘에 왕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전하자 헤롯 대왕이 듣고 베들레헴에 사는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는 헤롯 대왕이 동방박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의 나이를 두 살 이하로 보았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적어도 그때로부터 약 1-2년 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전 6-4년에 태어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마 2:22은 이때 예수님께서 부모와 함께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셨다가 헤롯의 아들로서 주후 6년까지 사마리아와 유다를 통치한 헤롯 아켈라오 왕 때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셨다고 기록한다.
한편, 눅 2:1에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배경을 설명하면서 로마 황제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31-AD 14년 재임)가 로마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린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에 로마 황제가 이러한 호적등록령을 내린 것은 세금을 걷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서 눅 2:2은 이 호적등록령이 구레뇨(Quirinius)가 수리아(Syria)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런데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된 것은 주후 6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주후 6년 이후에 태어나신 것이 되어 마태복음의 기록(헤롯 대왕의 죽음 이전)과 맞지 않게 된다. 단지 몇 년의 차이라면 모르겠지만 거의 10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3. 해결책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 대하여 마태복음의 기록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누가복음의 기록이 옳은 것인가? 이러한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 연도에 있어서 마태복음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비평학자들의 공격 표적이 되어 왔다. 그들은 누가가 마태의 기록(예수님이 헤롯 대왕 때 태어난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눅 1:5을 볼 때 누가는 예수님께서 헤롯대왕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나셨음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역사가로서 주의 깊게 모든 자료들을 검토한 후에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한 누가가(눅 1:1-4) 당시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역사를 모를 리가 없다.
지금까지 이에 대하여 여러 해결책들이 제시되어 왔다. 그러한 제안들 중에서 가장 만족스런 것은 성경의 역사적 신빙성(historical reliability)을 주장하는 많은 보수적인 학자들에 제시된 것으로, 눅 2:2에서 ‘처음’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프로토스’가 잘못 번역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이 구절에서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first) 한 것이라’는 말은 원래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기 전에(before) 한 것이라’는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헬라어 ‘프로토스’는 ‘처음’이라는 뜻과 ‘전에’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전에’로 번역되어야 하며 그렇게 볼 경우에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고 실제로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주전 4년경에 인구조사를 한 적이 있었으며(누가는 이때의 인구조사를 잘 알고 있었다. 행 5:37) 이때는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되기 전이었다.
게다가 주후 6년경에는 갈릴리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등록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때는 헤롯 대왕이 이미 죽고 헤롯의 세 아들들이 나라를 나누어서 다스리고 있었던 때였다. 당시에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렸고 유대는 헤롯 아켈라오가 다스렸다. 그런데 호적등록령의 목적은 세금을 걷는 것이었고 따라서 각 지역은 별도의 세금을 걷었던 상황이었으므로 갈릴리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가 유대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을 등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후 6년 이후에 태어나셨다고 보는 것은 정황상으로도 옳지 않다. 결국 우리는 마태와 누가의 기록에 차이가 없으며, 우리는 이들의 기록과 요세푸스의 자료로부터 예수님의 탄생이 주전 6-4년 사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그 밖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정확한 날짜를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 날짜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알려져 있듯이 이 날은 고대 로마제국에서 임의로 정한 날짜일 뿐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정황을 통해서 살펴 볼 때 예수님은 봄이나 여름에 태어나셨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목자들이 날씨가 따뜻한 늦봄이나 여름에만 들판에서 밤을 지새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찾아 온 것은 성탄 당일이나 그 직전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헤롯이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음을 고려할 때 동방박사들이 방문한 때는 예수님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아마 몇 개월 후)라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방박사가 세 명이라는 증거도 없다. 그들이 세 개의 선물을 바쳤다고 해서 세 명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물론 가능성은 있지만) 맞지 않다.
성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태어나심이 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이신 메시아가 오신 것이다. 이제 인류는 예수님의 오심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맛보게 된다(롬 14:17
세계의 역사를 구분할 때 우리는 기원전, 기원후 그리고 BC와 AD라는 말을 쓰곤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약자에서 유래 되었으며 무슨 뜻을 가지고 있을까?
기원전과 기원후 BC AD의 뜻과 유래
기원(紀元)이라는 뜻을 가진 그 어원에서도 찾을 수 있듯이 '기록을 하기 시작한 기준이 되는 해'라고 생각하면 쉽다. 즉 자연스럽게 기원전이라는 뜻은 기준이 되는 해의 이전이라는 뜻이고 기원후의 뜻은 기준이 되는 해의 이후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원전과 기원후가 말하는 기준이 되는 해에서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같은 뜻을 가진 영어 단어 BC와 AD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원전이라는 뜻을 가진 BC는 ‘before Christ’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결국 BC와 AD를 나누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기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BC가 ‘before Christ’ 라면 기원후를 가리키는 단어는 AD가 아니라 AC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AD는 영어가 아닌 라틴어‘anno Domini’에서 줄여진 말로 이는 '주님의 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용어를 처음 쓴 것은 AD 500년 무렵 로마의 수도원장이었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로 이후 세월이 흘러 11세기 무렵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세상의 역사를 가른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이전에는 A.U.C라는 연대표시를 사용했는데 이는 로마가 탄생할 때의 원년을 잡은 것으로 기원전 753년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보는 기원전 3761년의 A.M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유대교 책력에 따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단군 기원 단기를 1950년대까지 사용했고 개천절마다 쉽게 볼 수 있으며 일본에서도 메이지 같은 연호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역사의 흐름이 서양을 중심으로 돌아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전 세계 공통의 연대 표시는 기원전, 후, BC, AD이며 그것을 가르는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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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역사는 예수이전과 이후로 나뉘는가?’
서양의 역사는 곧 ‘기독교의 역사’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의 역사는 크게 주전과 주후로 구분한다. 주전을 나타내는 ‘B.C’는 잘 알려진 대로 ‘Before Christ’의 약자이며, ‘A.D’는 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다. ‘Anno Domini’란, '그리스도의 해' 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예수 그리스도(왕)의 새 역사가 시작되는 출발점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서구의 역사를 '예수 이전'과 '예수 이후'로 구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시대적 구분이 아니다.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앞서 살펴 본대로 예수 이전의 세상을 다스리던 고대 열강들은 하나같이 황금(돈)과 군대(힘)와 권력으로 세상을 통치했다. 이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왕)의 탄생으로 시작된 세상은 폭력과 야만이 통치하던 세상과 구별되는 사랑과 평화가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한다. 누가복음은 두 아이의 탄생을 통해서 ‘B.C’와 ‘A.D’가 단순한 역사의 구분점이 아니라, 이전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또 다른 세상의 열리게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주전(예수 이전)과 주후(예수 이후)는 바로 폭력과 물질이 다스리던 역사가 종결되고, 사랑과 평화가 다스리는 예수 그리스도(왕)가 통치하는 새세상의 시작을 선포하는 구분인 것이다.
| 주후의 기원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다. 1. ‘주후’(AD)의 기원 지금 우리의 햇수 계산 방식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해를 원년으로 한다. 즉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을 ‘주전’(Before Christ: 영어로 ‘그리스도 이전’이라는 뜻)이라 하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를 ‘주후’(Anno Domini: 라틴어로 '주님의 해'라는 뜻)라고 하여 햇수를 계산한다. 이러한 연대 기술 방식은 주후 6세기 초 로마에서 활동했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만든 것이다. 그는 신학, 수학, 천문학 등에 뛰어난 학문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데, 주후 525년에 교황 요한 1세(523-526년 재위)가 그에게 부활절의 정확한 연대를 계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연대기를 도입하였다. 사실 고대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왕의 연호(무슨 왕 몇 년)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로마 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주후 284-305년 재위)의 즉위 연대를 기원으로 하는 마르티르(Martry)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를 매우 심하게 박해했던 왕이었기에 교황은 그러한 왕의 연호를 부활절 연대 계산에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여 당시의 대학자였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로 하여금 진정한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의 연호를 사용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로마제국의 기원 연도와 예수님의 생애를 비교 연구하였고 이렇게 툴바 더보기산출된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로마제국 건국으로부터 754년 후였음을 발견하였다(로마제국은 주전 753년 4월 21일에 건국되었음). 그리하여 그는 A.U.C.(ab urbe condita[도시(로마) 건설 이후]) 754년을 주후 1년으로 계산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학자들은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잘못 계산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성경과 고대 문헌을 연구한 후에 예수님이 적어도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났음을 알았다. 즉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해는 A.U.C. 754년이 아니라 적어도 A.U.C. 750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A.U.C. 750년을 주후 1년으로 계산했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중대한 계산상의 착오를 일으킨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해도 후대의 사람들이 이 연대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주후’(AD) 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고 이제 와서 그것을 고친다는 것은 너무 어려웠던 까닭에 오늘날까지 그냥 일반화되어 사용하고 있다. 2. 성경의 기록 그렇다면 예수님은 언제 태어나셨는가? 예수님이 태어나신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근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이다. 마 2:1에 따르면 예수님은 헤롯대왕(Herod the Great)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나셨다. 헤롯대왕은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하다가 주전 4년에 죽었다. 이는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Antiquities, 17.6.4). 특히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헤롯이 죽던 해에 월식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주전 4년 3월 12일에 실제로 월식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헤롯의 사망 연대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예수님은 적어도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나신 것이 된다. 게다가 마 2:16에 보면 동방에서 박사들이 헤롯 대왕에게 와서 이스라엘에 왕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전하자 헤롯 대왕이 듣고 베들레헴에 사는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는 헤롯 대왕이 동방박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의 나이를 두 살 이하로 보았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적어도 그때로부터 약 1-2년 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전 6-4년에 태어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마 2:22은 이때 예수님께서 부모와 함께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셨다가 헤롯의 아들로서 주후 6년까지 사마리아와 유다를 통치한 헤롯 아켈라오 왕 때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셨다고 기록한다. 한편, 눅 2:1에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배경을 설명하면서 로마 황제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31-AD 14년 재임)가 로마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린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에 로마 황제가 이러한 호적등록령을 내린 것은 세금을 걷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서 눅 2:2은 이 호적등록령이 구레뇨(Quirinius)가 수리아(Syria)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런데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된 것은 주후 6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주후 6년 이후에 태어나신 것이 되어 마태복음의 기록(헤롯 대왕의 죽음 이전)과 맞지 않게 된다. 단지 몇 년의 차이라면 모르겠지만 거의 10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3. 해결책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 대하여 마태복음의 기록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누가복음의 기록이 옳은 것인가? 이러한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 연도에 있어서 마태복음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비평학자들의 공격 표적이 되어 왔다. 그들은 누가가 마태의 기록(예수님이 헤롯 대왕 때 태어난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눅 1:5을 볼 때 누가는 예수님께서 헤롯대왕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나셨음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역사가로서 주의 깊게 모든 자료들을 검토한 후에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한 누가가(눅 1:1-4) 당시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역사를 모를 리가 없다. 지금까지 이에 대하여 여러 해결책들이 제시되어 왔다. 그러한 제안들 중에서 가장 만족스런 것은 성경의 역사적 신빙성(historical reliability)을 주장하는 많은 보수적인 학자들에 제시된 것으로, 눅 2:2에서 ‘처음’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프로토스’가 잘못 번역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이 구절에서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first) 한 것이라’는 말은 원래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기 전에(before) 한 것이라’는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헬라어 ‘프로토스’는 ‘처음’이라는 뜻과 ‘전에’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전에’로 번역되어야 하며 그렇게 볼 경우에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고 실제로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주전 4년경에 인구조사를 한 적이 있었으며(누가는 이때의 인구조사를 잘 알고 있었다. 행 5:37) 이때는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되기 전이었다. 게다가 주후 6년경에는 갈릴리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등록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때는 헤롯 대왕이 이미 죽고 헤롯의 세 아들들이 나라를 나누어서 다스리고 있었던 때였다. 당시에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렸고 유대는 헤롯 아켈라오가 다스렸다. 그런데 호적등록령의 목적은 세금을 걷는 것이었고 따라서 각 지역은 별도의 세금을 걷었던 상황이었으므로 갈릴리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가 유대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을 등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후 6년 이후에 태어나셨다고 보는 것은 정황상으로도 옳지 않다. 결국 우리는 마태와 누가의 기록에 차이가 없으며, 우리는 이들의 기록과 요세푸스의 자료로부터 예수님의 탄생이 주전 6-4년 사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그 밖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정확한 날짜를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 날짜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알려져 있듯이 이 날은 고대 로마제국에서 임의로 정한 날짜일 뿐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정황을 통해서 살펴 볼 때 예수님은 봄이나 여름에 태어나셨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목자들이 날씨가 따뜻한 늦봄이나 여름에만 들판에서 밤을 지새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찾아 온 것은 성탄 당일이나 그 직전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헤롯이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음을 고려할 때 동방박사들이 방문한 때는 예수님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아마 몇 개월 후)라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방박사가 세 명이라는 증거도 없다. 그들이 세 개의 선물을 바쳤다고 해서 세 명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물론 가능성은 있지만) 맞지 않다. 성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태어나심이 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이신 메시아가 오신 것이다. 이제 인류는 예수님의 오심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맛보게 된다(롬 14:17). B.C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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