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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자료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작성자정엘리야|작성시간20.08.22|조회수566 목록 댓글 0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작 사 : 챨스 프레드릭 웨이글(Charles Frederik Weigele, 1871-1966)

작 곡 : 上同



이 찬송가는 순회 전도자요 올갠 독주자이며 복음성가 작곡자인 웨이글 목사의 작사 작곡으로 原題는 <예수를 위해 살리라(Living for Jesus)>이다.

웨이글 목사는 1871년 11월 20일, 미국 인디아나주 라파예트(La Fayette)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독일에서 건너온 이민 가족들로서 웨이글은 5남7녀의 12남매 중에 일곱째로 소년 시절을 대단한 개구장이로 보냈다. 웨이글의 장난이 너무 심해 그의 어머니는 웨이글을 위해 는 기도했는데 1883년 웨이글이 12세 되던 해, 라파예트 감리교회에서 부흥집회가 있어 거기에 참석했다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18세에 신시내티 음악학교에서 2년간 음악을 공부했는데 이 때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요 전하는 사명자로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있다는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앞에 이익이 되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하고 노래(찬양)부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순회전도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웨이글 목사는 캘리포니아주 파사데나(Pasadena)에서 형제 회중교회(Friends Congregation)에서 목회를 한 후 1833년 플로리다주의 시브링(Sebring)의 침례교회와 관련을 갖고 순회전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순회 전도사역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자신에게 천부(天賦)의 찬송시 작가로서의 소양이 있음을 알게 된 웨이글 목사는 <집으로 돌아오니 기쁘다(I am glad I came home)>를 써서 발표한 후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그 후에 쉬지않고 찬송시를 짓고 곡을 붙였다.

1958년에 이르러 그의 시력은 점점 떨어졌다. 백내장 때문이었다. 86세의 고령임에도 발달된 현대의학은 그의 눈을 수술로서 다시 원상태로 회복시켰다. 그는 설교를 계속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찬송을 불렀다. 1966년 그의 나이 94세 때 플로리다의 시브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 찬송가는 그의 불행한 첫 결혼생활 이후에 만들어졌다. 웨이글 목사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여인과 오래동안 사귀다가 결혼했다. 그런 깊은 사랑 후에 결합된 이 부부는 특히 부인은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것을 대단히 싫어했다. 그런데 결혼 얼마 후 웨이글은 순회전도자가 되어 몇달씩 집을 비우게 되는 일이 잦자 부인은 그만 못 견디게 되었다. 결국 부인은 남편의 순회 전도사역 자체를 저주하게 되었고 별거 아닌 억지 별거에 진저리를 친 부인은 결국 웨이글 목사와 이혼을 단행해 떠나버리고 말았다.

웨이글 목사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하나뿐인 딸을 매우 사랑했다. 딸과 아내를 동시에 잃은 웨이글 목사는 깊은 좌절속에 자살을 꾀하게 되었다. 그는 투신자살하려고 비스케인만(Biscayne Bay)의 해변 바위 위에 올라섰다. 몸을 날리려는 순간 웨이글 목사의 심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지금까지 너를 돌본 내가 너의 앞날을 돌보지 않겠느냐?"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예수님같이 날 돌보신 분이 없네(No one ever cared for me like Jesus)>라는 찬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예수가 함께 계시니>는 이런 곡절 끝에 탄생된 것이다.

**회중교회(조합교회)에 대해서는 188장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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