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vzm6xSE6zU?si=5ubLWhsFGboGxJNN
✝️ 부르심을 받은 교회✝️
2026년 6월 7일 주일예배
( 인도,설교: 정성욱 선교사 )
🙏 주일 예배 시작 기도문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거룩한 주일을 허락하시고
온라인으로 주님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도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며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세상의 염려와
걱정에서 떠나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뜻을 주장하여
주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특별히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모든
성도들과 사역자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연약한 자에게는 힘을 주시고, 병든 자에게는 치유를 허락하시며, 낙심한 자에게는 위로와 소망을 주옵소서.
오늘 드려지는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맡겨드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교독문
시편 119편
1.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1.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2.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 찬송가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1절)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후렴)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들이여)
(2절)
선한 사역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 하시겠네
주의 크신 사랑을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3절)
주님 부탁하신 말 순종하여
이 진리 전파하라
산을 넘고 물 건너 힘을 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4절)
동서남북 어디나 땅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눈 어두워 못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 성경 봉독
마태복음 5장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2.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3.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4.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주일 설교 제목: 세상의 소금과 빛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셨는지요?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님들
위에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으시기를 축원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 LA에서 복음을 전한 후에 라스베가스 선교를 위해 이동하는 가운데 한 선교센터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 선교를 떠나는 영상에서도 잠시
말씀을 드렸지만, 제가 국내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복음 메시지의 녹음
시간은 2분 54초입니다.
이 녹음은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에
녹음한 메시지입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메시지의 내용이 성경적이고
녹음 상태도 좋아서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랫동안 이 복음 녹음 시간을 보면서도
왜 하필 2분 54초인지, 그리고 254라는 숫자에 어떤 영적인 의미가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연히 그렇게 녹음된 것이라
생각하며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말씀을 묵상하던 중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놀라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바로 254라는 숫자가 사도행전 2장과
이사야서 54장에 해당하는 말씀의
의미를 연결하여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성령이 임하신 장입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셨고, 그 결과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복음은 성령의 능력으로 전해질 때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또한 숫자 54를 생각하며 저는 이사야
54장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54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넓게 펴되 네 줄을 길게 하며
네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장막을 넓히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입니다.
더 많은 영혼들을 품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미국에 와서 이 말씀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복음은 한 나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국경을 넘어야 합니다.
복음은 민족을 넘어야 합니다.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13년 전에 녹음된 2분 54초의 짧은
복음 메시지가 오늘도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미국 선교와 열방 선교를 준비하게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계획을 즉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가장 선하게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제가 미국 땅에서 복음을 전하며
다시 한번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복음을 통해 영혼들을 부르고
계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장막을 넓히고
복음의 지경을 넓혀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잠시
머무는 이곳은 LA 지역에서 오랫동안
노숙인 사역을 감당해 오시는 한
목사님께서 운영하시는 선교센터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숙소가 아닙니다.
미국을 찾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에게 쉼과 안식을 제공하는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달려가는 사역자들이 잠시
쉬어가며 다시 힘을 얻고, 하나님의 사명을 붙들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귀한
장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곳을 둘러보며 저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선교센터를 운영하시는 목사님은
오랜 세월 동안 도네이션을 받아
노숙인들을 섬겨 오셨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자신의 삶을 아끼지
않고 거리의 영혼들을 찾아다니며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기도하고
말씀으로 양육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런 대가도
보장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 1차 선교 기간에 제가
처음 이곳을 방문했던 2019년을
떠올려 봅니다.
그 당시 목사님은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작은 2층 건물에서 사역하고 계셨습니다.
공간은 비좁았고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갈 곳 없는 노숙자 수십 명이 그곳에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들을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기 위해
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건물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어 쫓겨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만나면 낙심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께 충성했는데 왜 길이 막히는가?"
"왜 수고한 만큼 결과가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크고 깊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혔지만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도망자 생활을 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수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가 전한 복음은 로마와 전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눈앞에 있는
작은 문을 닫으시지만 더 크고 놀라운
문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목사님의 사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9년에는 작은 건물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현재는 빅토빌 지역에 약 12,000평의
땅을 기증받아 LA 노숙자 쉼터
처럼 선교센터와 노숙자 쉼터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뉴베리 스프링스에는 축구장 45배
규모에 해당하는 약 10만 평의 넓은
땅을 기증받아 선교센터와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목사님은 노숙자 사역으로
이곳에 신문과 기독교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 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광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 분이신지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축복은 단순히 유명세와
땅의 크기가 커졌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린 종을 기억하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충성을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름 없이 섬긴 헌신을 잊지
않으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목사님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유명해지기 위해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큰 재산을 얻기 위해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불쌍한 영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역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헌신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한 번, 우리가 흘리는 눈물
한 방울, 우리가 감당하는 작은 봉사 하나, 우리가 전하는 복음 한 마디도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성으로
드리는 헌금과 전도와 선교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결과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기억하시고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일 예배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254 숫자에
영적 의미를 좀 더 알아보길 원합니다.
성경에서 숫자는 종종 단순한 수치를
넘어 영적이고 예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복음 녹음 시간인
숫자 254의 성경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숫자를 구성하는 개별 숫자(2, 5, 4)의 의미와, 이를 합산한 숫자(2+5+4 = 11), 그리고 성경 구절과의
연관성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2는 신실한 증인(두 증인),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또는 하나님과
교회의 연합을 뜻합니다.
동시에 빛과 어둠의 분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숫자 5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Grace) 와 친절을
상징합니다.
예로 모세오경과 다윗이 고른 다섯 자갈과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있습니다.
숫자 4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지상의
질서를 뜻합니다. 동서남북 사방, 사계절,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네 강 등 세상과 피조물을 상징합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숫자 254는 "이 땅(4)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5)에 대한 신실한 증거(2)"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254를 합산한 숫자 11은
불완전, 심판, 영적 변화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11은 완전함 숫자인(12)에서
하나가 부족한 숫자로, 혼돈, 불완전, 시험, 그리고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부정적인 결말이 아니라, "완전함으로 나아가기 위해 깨어져야 하는 영적 전환기" 를 암시합니다.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이 고난을 통해 가족을 구원한 것처럼, 혼돈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어 감을 뜻합니다.
성경 원어 사전인 스트롱 넘버(Strong's Concordance) 에서 254번 단어를 살펴보면
더 깊은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254 (ach-ah) "아크 아"는
"아아!", "슬프다!"라는 뜻의 감탄사입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부르짖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날마다 애통해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됩니다.
어느 이단들처럼 회개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가복음 18장
1.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헬라어 254 (halus) "할라스"는
소금(Salt)"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5장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님의 가장 유명한 설교인 ‘산상수훈’ 중 일부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소금’이라는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소금이 "되라"고 노력할 것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소금이다"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태생적으로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소금은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부제였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도덕적·영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해가는 세상 속에서 죄악을 막아서는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살 가치를 잃어버린 차가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 삶의 참된 의미(맛)를 더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이 말씀은
사명의 상실에 대한 경고입니다.
지난 이스라엘 선교중에 갔었던
이스라엘 당시 (사해 근처)에서 채취한 소금은 순수한 염화나트륨이 아니라 다양한 광물이 섞인 ‘암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암염이 비바람에 노출되어 소금 성분인(짠맛)만 씻겨 내려가면, 겉보기에는 소금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석회 가루 껍데기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의 영적 의미는 교회를 다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껍데기)은 가지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이기적이고 타락하여 그리스도인 본연의 선한 영향력(짠맛)을 잃어버린 상태를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 말씀은 세상에서의 수치와 무가치함을
의미합니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석회 가루는 밭에 뿌리면 땅을 망치기 때문에, 잡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길가나 지붕 위에 뿌려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이 구절의 영적 의미는 선한 행실과 사랑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 세상 사람들에게도 비난을 받고 조롱거리로(발에 밟히는 신세)가 된다는 뼈아픈 엄중한 경고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질과 선한 영향력을 잃지 말라" 는 메시지입니다.
세상과 똑같이 동화되어 맛을 잃어버린
삶을 살지 말고, 소금이 녹아내려 음식에 스며들 듯 우리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여 세상의 부패를 막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254의 영적 메시지는
인간의 슬픔과 애통해하는
부르짖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들고 맛을 내는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메시지로 연결됩니다.
이처럼 성경적 관점에서 254는
이 세상(4)에서 우리가 겪는 혼돈과 부족함(11)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5)는 여전히 신실하게 역사하고 계신다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은혜를 삶으로 증명하는 증인(2) 이자,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금(헬라어 254) 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254라는 숫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교훈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보았고, 이사야
54장을 통해 장막을 넓혀 더 많은 영혼을 품으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또한 숫자 254가 담고 있는 영적 의미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인이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트롱 넘버 254를 통해 인간의 탄식과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소금으로 부르셨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소금으로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를 향해
또 다른 선언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주님은 "너희는 빛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빛이 될 것이다"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음식 속에 녹아들어 부패를 막고 맛을
냅니다.
그러나 빛은 드러나는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냅니다.
빛은 길을 보여줍니다.
빛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숨겨진
존재가 아니라 드러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밤이 되면
멀리서도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말에서 나타나고, 행동에서 나타나고,
삶의 태도에서 나타나고, 가정에서
나타나고, 직장에서 나타나고, 교회와
세상 속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5절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등불을 켜는 이유는 밝히기 위함입니다.
등불을 켜 놓고 덮어 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과 은혜를 숨겨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추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우리가 전하는 복음,
우리가 감당하는 선교,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과 섬김이 세상 속에서 빛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특별히 제가 이번 미국 선교를 하며
깨닫는 것은 복음은 결코 감추어
둘 수 없는 빛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밝게
보입니다.
죄악이 많아질수록 복음의 능력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절망이 깊을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은 더욱 빛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도, 우리가
선교하는 이유도, 우리가 헌금하는 이유도, 우리가 봉사하는 이유도, 우리가 영혼을 사랑하는 이유도,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43장
1.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마태복음 6장
1.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린도전서 15장
1.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며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헛된 삶을 살지
않습니다.
기도도 헛되지 않습니다.
눈물도 헛되지 않습니다.
헌금도 헛되지 않습니다.
전도도 헛되지 않습니다.
선교도 헛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섬긴 모든 수고도 주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열매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소금처럼 썩어지는 세상을 막고, 빛처럼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54의 영적 메시지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고, 장막을 넓혀
더 많은 영혼을 품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리겠습니다.
🙏 주일 예배 마침 기도문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귀한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마음에만 간직하는
자가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게 하시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가 헛되지 않음을 믿게 하시고,
눈물의 헌신과 전도와 선교와 봉사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수고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끝까지 충성하며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저희들을 지켜
주시고,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드린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시고,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아갈 때에도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셔서 어디에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옵소서.
주여, 특별히 저희들의 가족들을
구원하여 주옵시고 어디에 있든지
항상 지켜보호하여 주옵소서.
믿고 감사를 드리오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으로
주일 예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