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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부르심을 받은 교회 ✝️ 2026년 6월 21일 주일예배

작성자정성욱 선교사|작성시간26.06.21|조회수82 목록 댓글 0

https://youtu.be/EZkEcM0OyUs?si=-QfByegRn5meMgsh



✝️ 부르심을 받은 교회 ✝️
2026년 6월 21일 주일예배
( 인도,설교: 정성욱 선교사 )

🙏 주일 예배 시작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을 허락하시고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의 전에 나와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도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오직 주님께 향하게 하시고, 세상의 염려와 분주함을 내려놓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입술의 찬양을 기쁘게 받아 주시고, 드리는 기도와 예배 가운데 성령님께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주여,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모습이 있었다면 긍휼히 용서하여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채워 주시옵소서.

오늘 드려지는 예배의 모든 순서를 주님께서 친히 주장하여 주시고,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의 평안과 기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연약한 자들에게는 위로를, 낙심한 자들에게는 소망을, 병든 자들에게는 회복의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시고, 우리 모두가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믿음 안에서 굳게 서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교독문

시편 116편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9.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10.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11. 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 찬송가

하나님의 나팔 소리 (180장)

1절 -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타시고
천사들을 세계 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받은 성도들을 모으리

2절 - 무덤속에 잠자는 자 그 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부활 승리얻으리
주가 택한 모든 성도 구름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주의 얼굴뵈오리

3절- 주님 다시오실 날을 우리 알 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서도록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후렴 -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 성경 봉독

빌립보서 3장

1.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2.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3.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4.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5.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 설교 제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아주 중요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이 말씀은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거나
높이기 위해 한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부족한 죄인이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고 있었기에
담대하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이 말하는 것은 자신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따라가는 예수님을
함께 따라가자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사람들을 주십니다. 부모의 기도를 보며 자녀가 신앙을 배우고, 신실한 성도의 모습을 보며 초신자가 성장합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기도에 힘쓰며
전도하고 선교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길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유명한 사람, 성공한 사람, 돈이 많은 사람, 영향력이 큰 사람들을 따라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보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보라는
것입니다.
구제하고 전도하고 선교를 하는 사람들을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사람을 보라는 것입니다.
환경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더욱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점점 하나님을 떠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공과 쾌락을 따라가고, 자기 만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넓은 길이 아닙니다. 때로는 좁은 길이고, 희생의 길이며,
순종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 끝에는 영생과 하나님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를 바라보며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를 본받고 있는가?"
"나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믿음의 본이
되고 있는가?"

우리는 단지 믿음의 본을 받는 사람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가족들이, 교회 성도들이 우리를 보며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완전해서가 아니라, 진실하게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세워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본받지 마십시오.
유행을 본받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을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우리 자신도 누군가에게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의 선한 본을 따라가고 또한 본이 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리겠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사도
바울의 눈물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자유로운 몸이 아닙니다.
편안한 환경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고난 때문에 울지
않습니다.
자신의 억울함 때문에 울지 않습니다.
교회를 생각하며 웁니다.
영혼들을 생각하며 웁니다.
복음을 떠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웁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성도 여러분, 눈물에는 종류가 있습니다.
사업이 망해서 우는 눈물이 있습니다.
자녀 때문에 우는 눈물이 있습니다.
건강 때문에 우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눈물은 영혼을 위한
눈물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많아졌습니다.
예배당은 커졌습니다.
지식은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눈물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 때문에 울어본 적이
언제입니까?
예수 믿지 않는 가족 때문에 밤새
기도해 본 적이 언제입니까?
주님 오실 날을 생각하며 눈물 흘려본
적이 언제입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을 흔들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매우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놀라운 것은 바울이 말한 대상이 단순히 불신자들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하지만 십자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자기부인입니다.
십자가는 회개입니다.
십자가는 순종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활의 영광은 원하면서 십자가는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원하지만 거룩함은 원하지
않습니다.

축복은 원하지만 헌신은 원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원하지만 회개는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십자가를 내려놓고 자기 욕망을 들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울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바울은 이 문제를 과거에도 여러 차례
경고했습니다.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화를 내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길로 가는 이들을 향한 진심 어린 안타까움과 목회자로서의 깊은 사랑을 보여줍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이 말씀은
입술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의 방식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복음의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바울이 경고한 '십자가의 원수'는 크게
두 부류로 해석됩니다.
방종주의자 (도덕 폐기론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모든 죄를 사하셨으니, 이제 내 마음대로 죄를 지으며 살아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육체의 쾌락과 세상의 욕심을
따르며, 십자가가 준 참된 자유를
'방종'으로 타락시켰습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고백(말)과 삶의 실천(행동)이 분리된 삶을 경고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신앙인처럼 행동하지만, 세상에서는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의 정신(십자가)을 버리고 자기 유익과 욕망만을 쫓아 산다면,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과 같다는 뼈아픈 성찰입니다.

이어서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외에, 인간의 노력이나 할례 같은 율법의 행위를 더해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불완전한 것'으로 만드는 행위이기에 십자가의
원수가 됩니다.

사실 현대 교회 안에도 행위 구원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세상의 유혹이나 잘못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고,
진리 안에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낮아짐, 희생, 순종)을 온전히 따르기를 눈물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마지막 때를 맞아서는 18절
말씀처럼 교회 안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종교통합과
백신 접종을 성도들에게 강요함으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들의 신은 배요"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원래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대신 배가 주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배는 단순히 음식이 아닙니다.
욕망입니다.
정욕입니다.
탐심입니다.
세상 사랑입니다.
자기중심성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자기 감정에 순종합니다.
말씀보다 기분을 따라갑니다.
성령보다 욕망을 따라갑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세상을 움직이는 신은 돈입니다.
성공입니다.
쾌락입니다.
자기만족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즐기고 죄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세상은 죄를 자랑거리로 만들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부끄러움이라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은 왜 울었을까요?
멸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하나님은 시작보다 끝을 보십니다.
세상은 현재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을 보십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도 먹고 마셨습니다.
장가가고 시집갔습니다.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불이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오늘날 세상은 점점 노아의 시대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동성애가 만연한 세상의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거룩함을 조롱합니다.
음란과 탐욕이 넘쳐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심판은 반드시 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울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바울은 지금 단순히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신분이 무엇인지, 성도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 성도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행자와 시민권과 영주권의
차이입니다.

특히 ESTA 여행 비자로 미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90일 안에 미국을 반드시
떠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 체류자가 되어
다음에 미국에 다시 들어오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가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만
체류가 허가된 방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주권과 시민권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둘 다 미국에 살 수 있습니다.
둘 다 직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 다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영주권자는 미국에 오래 살 수는 있지만 완전한 시민은 아닙니다.
6개월 이상 해외에 체류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면 추방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권자는 다릅니다.
미국이 그 사람을 책임집니다.
어디에 있든 보호를 받습니다.
국가의 권리를 누립니다.
나이가 들면 연금 혜택도 받고,
의료비도 무상이며 여러
사회보장 제도의 보호를 받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민권자는 그 나라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권자다."
아멘.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을 방문하려면 반드시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비자는 그 나라에 잠시 머물 수 있는
허가증입니다.
그러나 비자를 받았다고 해서 그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떠나야 하고, 누릴 수 있는 권리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천국에 들어갈 방문
비자를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잠시 체류 허가를 받은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의 나라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손님으로 맞아주신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방문객이 아니라 천국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는 나그네처럼 살지만,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곳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우리의 집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을 따라가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도 안 됩니다.

하늘 시민답게 살아야 합니다.
천국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 시민권자는 보호를 받는 사람입니다
미국 시민이 세계 어느 곳에 있든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듯이,
하늘 시민권자는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도
보호하셨습니다.
불가마에 들어간 세 친구도
보호하셨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도 보호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불안합니다.
전쟁이 있습니다.
재난이 있습니다.
경제가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늘 시민권자는 왕의 보호를 받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또한
하늘 시민권자는 본향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시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 시민권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빌립보에 살고 있었지만
마음은 로마에 있었습니다.
로마의 법을 따랐고,
로마의 문화를 따랐고,
로마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왜입니까?
자신들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기 전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갑니다.
세상은 미워하라고 말하지만 천국은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높아지라고 말하지만 천국은
낮아지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섬김받으라고 말하지만 천국은
섬기라고 말합니다.
하늘 시민은 하늘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하늘 시민권자는 왕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시민권의 가장 큰 축복은 왕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왕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트럼프도 이재명도 아닙니다.
우리의 왕은 세상의 권력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 왕이 다시 오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늘 이 소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초대교회 성도들과
믿음의 선조들은
핍박을 받아도,
재산을 빼앗겨도,
감옥에 갇혀도,
"주님이 오신다."
"왕이 오신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이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천국은 믿지만
주님의 재림은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하늘 시민권자는 왕의 귀환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핵심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놀라운 것은 바울이
"주님을 알지 못하면"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성경을 모르면"
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말합니다.
왜입니까?
신앙의 핵심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셨을 때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지식보다 사랑을 원하십니다.
직분보다 사랑을 원하십니다.
봉사보다 사랑을 원하십니다.
사랑이 없는 신앙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봉사는 하지만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직분은 있지만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I LOVES YOU 옷을
입고 전도하는 이유도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바울은 매우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원어로는 "아나테마"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아 심판에 이른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왜곡했습니다.
교회를 분열시켰습니다.
사도 바울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신앙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보다 돈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보다 세상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보다 자기 욕심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께 있습니까?
세상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라나타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신앙입니다

이제 바울은 외칩니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이 말이 바로 아람어로
"마라나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장 사랑했던
신앙고백입니다.
그들은 서로 만나면
"마라나타"
라고 인사했습니다.
핍박 가운데서도
"마라나타"
감옥에서도
"마라나타"
순교를 앞두고도
"마라나타" 라고 고백했습니다.
왜입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재림을 현실로
믿었습니다.
주님이 언제든지 오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깨어 기도했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

멀리 떠난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가
있습니다.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신부는 신랑을 기다립니다.
왜 기다립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
주님이 오신다는 소식이 두렵지 않습니다.
기쁩니다.
설렙입니다.
주님을 만날 날이 기다려집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재림이
부담스럽습니다.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림 신앙은 사랑의 척도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마라나타" 신앙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집을 더 크게 짓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돈을 더 모으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오십니다.
반드시 오십니다.
갑자기 오십니다.
도적같이 오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라나타는 절망의 외침이 아니라
소망의 외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소망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눈물이 끝납니다.
고통이 끝납니다.
질병이 끝납니다.
죽음이 끝납니다.
전쟁이 끝납니다.
죄가 끝납니다.
주님이 친히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그래서 요한도 외쳤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바울도 외쳤습니다.
"마라나타."
초대교회도 외쳤습니다.
"마라나타."
우리도 외쳐야 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합니다.
주님의 복음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입술에서 이 고백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세상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립니다."
"마라나타!"
"우리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이라고 고백하는
저와 성도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지금 미국에서 복음을 전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잠잘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와 같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정한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나그네요,
외국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잠시 머무는 여행자가 영원히 그곳에 살 것처럼 집착하지 않듯이, 우리도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집은 천국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것에만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돈도 지나갑니다.
명예도 지나갑니다.
건강도 지나갑니다.
권력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늘 시민권은 영원합니다.
미국 시민권도 언젠가는 끝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도 이 세상까지만 유효합니다.
그러나 하늘 시민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까지 이어집니다.
그 시민권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공로로 얻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시민으로만 살지
말고 하늘 시민답게 살아야 합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천국의 가치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 시민은 하늘 문화를 전하는 사라입니다.
로마 식민지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로마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언어,
로마의 문화,
로마의 법,
로마의 가치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시민권자의 사명은 천국 문화를
전하는 것입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분열이 있는 곳에 화평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둠이 있는 곳에 복음의 빛을 전하는
것입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 대사입니다.
천국 홍보대사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안내자입니다.
천국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마지막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당시 로마 황제는 자신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황제를 "구원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선포합니다.
"진짜 주인은 예수님이다."
"진짜 구원자는 예수님이다."
"진짜 왕은 예수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왕의 귀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초대교회는 이 재림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핍박 가운데서도
순교 앞에서도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외쳤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것 중 하나가
재림 신앙입니다.
주님이 오늘 밤 오신다면 어떻겠습니까?
준비되어 있습니까?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처럼 깨어
있습니까?

이어지는 21절 말씀입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것이 성도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아픕니다.
늙어갑니다.
눈물이 있습니다.
질병이 있습니다.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는 날!
모든 것이 끝납니다.
암도 끝납니다.
고통도 끝납니다.
눈물도 끝납니다.
사망도 끝납니다.
영광의 몸을 입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체와 같은 몸을 입게
됩니다.

아멘!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은 두 길을 보여줍니다.
십자가의 원수의 길.
그리고 하늘 시민권자의 길.
여러분은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세상은 지나갑니다.
돈도 지나갑니다.
명예도 지나갑니다.
권력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늘 시민권은 영원합니다.
주님이 곧 오십니다.
잠들지 마십시오.
세상에 취하지 마십시오.
영적으로 깨어 있으십시오.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복음을 붙드십시오.
하늘 시민답게 사십시오.
왕이신 예수님이 곧 오십니다.
그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리겠습니다.

🙏 주일 예배 마침 기도문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거룩한 주일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고, 하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배 가운데 받은 은혜와 감동이 예배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 열매 맺게 하옵소서.

한 주간 살아가는 동안에도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지켜 주시고,
성도들과 동역자들의 삶과 생업 위에
주님의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병든 자들을 치유하여 주시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며, 어디에서나 주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한국 교회와 미국 교회가 더욱 깨어 기도하며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종을 붙들어 주시고, 복음이 온 세상
땅끝까지 전파되게 하옵소서.

주여, 특별히 저희들의 가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제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파송되어 나아갑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고,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며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으로
주일 예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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