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이 지은 제문과 장계로 정운장군에 대한 마음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거 같아요.
이순신장군께서 겉으로 우시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속으로 많이 우셨을거예요.
어허! 인생이란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죽고 삶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나니 사람으로서 한번 죽는 것은 진실로 아까움이 없건마는 오직 그대 죽음에 이렇게 마음이 아픈 까닭은, 나라가 불행하여 섬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영남의 여러 성은 바람 앞에 무너지고 몰아치는 그들 앞에 어디고 거침이 없어, 우리의 서울은 하루 저녁에 적의 소굴이 되었도다. 님의 수레는 천리 관서로 옮기시고, 북쪽 하늘을 바라볼 때에는 간담이 찢어지건만, 슬프다! 둔한 재주로 적을 칠 길 없을 때에, 그대와 함께 의논하자 해를 보듯 밝았었노라! ..........
..........다시 싸워 원수를 갚자고 맹세하더니, 날은 어둡고 바람조차 고르잖아 소원을 못 이루니 평생에 통분함이 이 위에 더할 수가 있으랴?
믿느니 그대였는데 이제는 어찌할꼬, 진중의 모든 장졸이 원통히 여기나니, 늙으신 저 어버이 그 누가 모시리요. 황천까지 미친 원한, 그대여 언제나 눈을 감으려는가? 어허! 슬프다. 어허 슬프다.
그 재주 다 못 펴고 덕은 높되 지위는 낮고, 나라가 불행하여 군사와 백성은 복이 없구나, 그대와 같은 충의야말로 고금에 드물거니, 나라 위해 던진 그 몸 죽어도 살았노라. 슬프다. 이 세상에 뉘가 내 마음을 알아주리. 극진한 정성으로 한잔 술을 바치노라.
어허 슬프다.
이순신 장군은 정운에 관해 별도의 장계를 올려 그의 죽음을 애도했어요.(9월 11일)
"정운은 몸을 가벼이 여겨 죽음을 잊고 먼저 적의 소굴에 돌격하여 하루 종일 힘써 싸웠습니다. 그날 돛을 올릴 때 정운은 적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늠름한 기운과 맑은 기상이 아주 없어져서 뒷세상에 알려지지 못하면 절통한 일입니다."
"이대원과 정운이 서로 전후하여 녹도만호를 지내었고 이대원 사당이 아직 이 포구에 있으니 정운을 이대원사당에 같이 모시기를 청하나이다."
<녹도만호 정운이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날은 현재 부산 시민의 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