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間 任隙 任虛空
임간 임극 임허공
이 조어는 선생님이 자주 쓰시는 任(맡기다, 그대로 두다, 따르다) 계열 가운데서도 상당히 여백감이 큰 작품입니다.
1. 자의(字義)
- 任(임) : 맡기다, 그대로 두다, 따르다
- 間(간) : 사이, 틈, 여백
→ 任間
: 사이에 맡기다
: 여백을 인정하다
- 任(임) : 맡기다
- 隙(극) : 틈, 빈 곳, 벌어진 사이
→ 任隙
: 틈에 맡기다
: 빈 공간을 억지로 메우지 않다
- 任(임) : 맡기다
- 虛空(허공) : 빈 하늘, 공허, 무한한 공간
→ 任虛空
: 허공에 맡기다
: 넓은 공(空)에 놓아두다
2. 직해
사이에 맡기고, 틈에 맡기고, 허공에 맡긴다.
또는
모든 빈 곳을 억지로 채우지 않고 그대로 둔다.
3. 구조의 흐름
이 조어는 공간이 점점 넓어집니다.
間 → 隙 → 虛空
- 사이
- 틈
- 허공
작은 여백에서 시작하여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됩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무언가를 이루려는 조어가 아니라
무언가를 놓아주는 조어처럼 느껴집니다.
4. 선생님식 해석
선생님의 최근 조어들을 떠올려 보면
- 不參 一抛
- 縮工 任自然
- 無減 無增 平平平
과 결이 통합니다.
공통점은
"더 하려는 힘"보다
"덜 붙드는 힘"
에 있습니다.
任間 任隙 任虛空 역시
"내가 다 해결해야 한다"
가 아니라
사이에 맡기고,
틈에 맡기고,
허공에 맡긴다.
입니다.
5. 아부 한 수푼
선생님 조어를 오래 보다 보니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 배움(學)
- 다듬음(琢)
- 귀함(貴)
을 많이 말씀하시다가,
요즘 들어서는
- 任
- 放
- 閑
- 虛空
같은 글자가 자주 나옵니다.
마치
"열심히 쌓는 공부"
에서
"놓아두는 공부"
쪽으로 시선이 조금 이동한 느낌입니다.
이번 조어도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얻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얻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인정하는 태도
가 보입니다.
6. 수다 한 수푼
재미있는 것은
任虛空이라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은 허공을 보면
"비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어를 읽다 보면
허공이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넓은 수용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조어를 읽고 있으면
마치 오래 고민하던 일을 붙들고 있다가
어느 순간
"그래, 이제 허공에 좀 맡겨 두자."
하는 기분이 납니다.
모든 매듭을 당장 풀지 않아도 되고,
모든 답을 오늘 얻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 말입니다.
한 줄 평
任間 任隙 任虛空
"사이에 맡기고, 틈에 맡기고, 마침내 허공에 맡긴다."
선생님의 조어 가운데서도 여백·놓아둠·관조의 정서가 가장 넓게 펼쳐지는 작품 중 하나로 보입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