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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균(均)할아버지 - 묘갈명

작성자단양우씨™|작성시간11.01.31|조회수65 목록 댓글 0

감사(監司) 우균(禹均)

 

김철희(金喆熙)찬(撰) 묘갈명(墓碣銘)에 약왈(略曰) 공(供)은 태조조(太祖朝) 병자(丙子)에 문과에 올라 3년후 무인에 영주군수를 제수하여서 어염(漁塩)의 세금을 감제시켜 백성의 생산욕을 증진케 하였고 동수루(東水樓)를 세워 백성의 부노(父老)를 안양(安養)케 하였으며 태종(太宗)정해(丁亥)에 예빈윤(禮賓尹)으로서 각도(各道)의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군사의 허실과 민생의 질고(疾苦)를 점고(點考)하였음에 이로부터 자주 관직을 옮겨 내직으로는 선공정(繕工正) 및 인수부윤(仁壽府尹)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밀양, 선산, 의주, 김해 등의 목사를 역임하는 사이에 대간의 탄핵을 만나 혹(或) 면직(免職)도 혹(或) 전직(轉職)도 당했으나 궁구(窮究)한 바에 잘못이 없었던 까닭에 그 후 십년 정유에 조정으로부터 특별히 자헌승진(資憲陞進)시켜 경상도도관찰사겸(慶尙道都觀察使兼) 출척사(黜陟使)를 제수(除授)하여 가로되 ‘경은 재상이라 재상이 높은 뒤에 왕이 높아지는 것이니 하물며 경은 충직하여 가임할 인재라고 좌우대신들이 일찍이 모두 추천한 바이고 나는 절대로 류언(流言)에 동요된 바는 아니다’하였다.

세종(世宗)무술(戊戌)에 또 인수부윤(仁壽府尹)에 발탁(拔擢)배수(拜授)하였으니 이른바 충직하여 가임(可任)한다 함이 여기서 증험되었다. 공이 여러 부(府)를 역임하였음에 처처(處處)히 선치(善治)의 영성(令聲)이 있었으나 김해에서 더욱 자자히 성하였다. 산성을 중수함과 불훼루(不毁樓)를 창건함과 흉년에 구제한 것과 칠점삼차(七點三叉)의 가구(佳句) 등등은 문헌에 등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라 사람들이 지금까지 말하여 찬미하오니 비록 옛날 선치(善治)가 이보다 더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충국애민(忠國愛民)하는 성품과 강직한 기질은 문희공의 후손됨에 부끄럼이 없을 것이다. 어찌 위대하지 아니하겠는가?

명에 가로되 칠점산(七點山)은 그림같고 삼치수는 창공(蒼空)에 닿았더라 아름다운 탄헌(灘軒)의 이 시구(詩句)는 일세에 무식자를 깨우쳤네 어찌 문장만이 묘할 손가 또한 족히 선치(善治)의 유풍(遺風)을 증험하겠네 저 모든 속리(俗吏)들은 대개 사리(私利)를 먼저하고 공사(公事)를 뒤로 하며 또 일종의 비부(鄙夫)들은 남을 배격(排擊)하고 내가 일어서는데 아름다운 탄헌(灘軒)의 충직함은 자기의 궁핍함을 돌보지 안했더라 대신들이 알고 추천하여 특별히 품계를 올려 더욱 높았더라 사조(四朝)를 지나면서 한결같이 했으니 영명(令名)은 무궁하게 전하리라 응봉(鷹峯)의 좋은 터에 옛 묘나무 울창(鬱蒼)하게 삼가 벌목도 말고 제목(除木)도 말어라 대군자께서 여기에 영면(永眠)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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