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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봉운(鳳雲)할머니 - '적나라한 남성의 정체' 인터뷰 제1회장

작성자단양우씨™|작성시간11.01.28|조회수45 목록 댓글 0

1920년대 소위 맑스 걸, 엥겔스 레이디라 불린 여성들이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해방운동의 물꼬를 튼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들이다. 1930년대 들어와 사회 전반의 운동 세력이 약화되면서 숨죽이고 있던 그들의 처지와 심경을 엿본다.
인터뷰를 한 7인은 유영준, 우봉운, 정칠성, 허정숙, 김원주, 최은희, 황신덕, 나혜석이다. 그중 우선 유영준, 우봉운, 정칠성, 허정숙과 만난다.
일제시대의 사회주의 여성 운동가...
그들은 화려한 나방들이었다. 이전의 여성운동은 주로 구국을 위한 민족운동, 봉건적 질서로서의 억압을 극복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주의 이념의 불꽃속에 뛰어들었다. 최초의 횃불은 1924년에 창립된 <조선여성동우회>,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적 여성해방론을 주장한 여성단체다. 사실 이 단체는 조금 앞서 창립된 조선청년총동맹(김사국과 박헌영이 손잡은 사회주의운동단체)의 사주(?)를 받았다.
창립 당시 반응은 썰렁했다. 발회식에 참석한 사람은 80명 가량, 그중 50명이 축하나 방청을 위해 참석한 남자, 약 10명은 감시 경찰관, 여자는 발기인이자 간부들 13,4명밖에 없었다. 여자동우회가 아니라 남자동우회 같았다. 창립 당시 회원수는 불과 18명, 발기인이 그중 14명이니 '조선'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다른 여성들의 반응은 약했다. 2년 후 70명으로 늘어났지만 정말 약소한 단체였다. 그렇지만 회원은 학생,의사, 간호부, 교원, 기자, 직공 등 대체로 사회 최고의 엘리트라 할 전문직 여성들이 주축을 이룬 정예부대였다.
35년 무렵 이들은 표면운동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조선여성동우회는 분파되었다가(전체 운동판에서 국
내의 김사국 계열과 해외유학생 중심의 박헌영 계열의 대립과 흡사하게), 1927년 전국 단일노선의 <신간회>가 창립된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해에 <근우회>를 만든다. 그러나 1931년 신간회 해소와 발맞춰 근우회도 해체된다. 여러 사정이 있었지만, 외적으로 일제의 사상탄압과, 내적으로 근우회 활동이 노동계급운동에 도움이 못된다는 비판때문이었다.
이 여성들은 근우회 해소 이후 조직활동을 중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근우회> 시절 유영준, 우봉운, 정칠성, 허정숙 등은 각각 정치연구부, 재무부, 선전조직부, 교양부의 임원이었다. 박헌영계열에 가까웠던 이들은 <조선여성동우회>가 분파되었을 때 '경성여자청년동맹'을 만들었는데, 첫 사업으로 국제부인데이 기념간친회를 열 만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정통성을 따르고자 했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페미니스트들이랄 수 있는 이들에게 기자는 집요하게 남성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
를 요구한다. '적나라한 남성의 정체'란 게 뭔가. 막연하기 짝이 없으면서 교묘하게 남성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려는 질문이다. 원하는 대답을 준다. 남성의 저열하고 추악한 면을 폭로하기는 가엽지만 한마디로'저항력이 약하고 미련한 것'이라고 말이다. 이 강한 여성들이 볼 때 남성은 고통을 참지 못하는 나약한 것이고, 정치적으로 지조없고, 경제적으로 무능하다. 생리적으로도 이성의 유혹에 약하다. 조선의 일반적 남성을 인텔리 여성의 시각에서 하등동물(?)쯤으로 여기는 것이 역력하다. 성차에 대한 냉철한 인식에서 나온 대답이라기보다는 자기 체험에서 우러났다고나 할까. 당시 남성들이 보면 '무서운 여자'들이라고 할 만하다.

근우회 해소 이후 여성운동이 다시 미비한 대로 일어나고 있지만, 이들의 의식 수준에서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 수위보다 더 나아가 활약하고 싶지만 활동의 두려움도 컸던 듯하다. 동지들의 규합도 어려웠고
형사의 눈초리도 매서웠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서운 여자들이라도 경찰의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남녀 문제에 대해서 대답은 의외다. 사회주의적 여성해방론자이지만, 남녀의 애정, 결혼, 부부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물론 개인적 문제가 바로 사회적 모순 해결을 통해 바로 해결될 수는 없다고 해도 양성문제를 극히 개인적 차원으로 한정시키는 것이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국제적 연대 정도로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에 대해 프라이버시를 주장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옛날 인터뷰 원문 -
<중앙> 1935.1


그뒤에 이야기하는「제여성(諸女性)의 이동좌담회(移動座談會)」
프롤로그
기자독백 : 그 전날 사회제일선상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던 제여사들의 최근심경은? 생활은? 어떠
하며 현재에 느끼는 감상은 여하한가를 들어서 이를 궁금히 여기시는 독자제위께 전하려는 것이
이 이동좌담회를 개최하는 본의올시다.
제 여사 중에는 말씀하기를 회피하는 분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만나기까지를 꺼리는 분까지 있
어 아무리 이동좌담이라고는 하지만 그 진행이 상당히 순조롭지 못했던 것을 미리 헤아려주심과
동시에 허덕지덕 이 고개를 넘고 저 골목을 돌면서 삼동설한에 땀을 흘리며 돌아다닌 기자의 고
심을 또한 거들떠 주신다면 다행하겠습니다.
화제의 진행은 이동좌담인 만큼 레뷰-형식을 택하였고 그러면서 읽으시기에 지루하지 않게 '커
트'와 '클로즈업'을 적의히 하였음을 미리 말씀해두고 또 한가지 기자가 이번 좌담에 만난 분과는
전부가 초면이라 각 양면마다 초면 대담의 항렬적 인사가 왕래하고 그리고 좌담은 시작되었으나
그러나 그 진행에 관한 장면은 일체 말소하고 간혹 기자 소회있는 때는 '독백'으로써 울부지젓사
오니 혜독하야주시기 바랍니다.

제1회장
유영준(劉英俊), 우봉운(禹鳳雲) 양씨에게서 「적나라한 남성의 정체」를 듣는다.
장소 : 수송동 유영준씨 자택
시일 : 초동 어느날 오후 2시
인물 : 유, 우 양씨와 기자 모두 삼인

기자(유에게) : 표면운동에서 들어앉으신 지 퍽 오래시지요.

유 : 글쎄요. 한 7, 8년 되지요.
우 : 그러나 뒤에 앉어서 우리 여성들의 운동을 퍽 많이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었지요. 표면에 나선이 못하지 않게 활동한 셈이지요
기자 : 우선생은 지금 댁이 어디십니까?
우 : 가회동 78번지외다.
기자 : 혼자 계신가요?
우 : 그럼요. 단신으로 철두철미 자활을 하려고 갈팡질팡입니다. 이때까지 남성에게 도움을 받았다거나 부모의 덕을 입었다거나 하지를 못했습니다. 다만 친구의 덕은 종종 입습니다만은 그것도 내 본시의 요구에서는 아닙니다.
기자 : 그런데 오늘 찾아온 것은 두 분 선생에게서 「적나라라한 남성의 정체」 다시 말씀하면 두분이 보신 「남성관」을 들으려고 하였는데요, 바쁘지않으시면 기탄없이 말씀을 하여주시면 감
사하겠습니다.
유 : 글세요. 퍽 막연하잖아요. 남성관이라 하면 그 관점에 따라서 다 다를 것인데 그걸 별안간 앉아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구 생각하는데요.
기자 : 그렇겠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만 떼어서라도 어느 점으로 보아서는 이렇다 하고 말씀을 하시지요.
우 : 하여간 부분부분으로 남성의 장단을 들춰가지고 논평을 하자면은 참 거창하게 할 말이 많으니까 차라리 덮어두고 보는 것이 당분간은 좋겠지요.
기자 : 그렇니까 남성관의 공개를 기피하시는 것인가요?
우 : 그렇지는 않지요. 너무 저열하고 추악한 데가 폭로된다면 가엽지 않아요. 그렇니까 이렇다저렇다 하지말고 덮어두자는 것이지요.
기자 : 그렇지만 그 결론만은 말씀하셔도 좋지 않으십니까?
우 : 글쎄요. 요약하고 요약해서 말한다면 남자란 「저항력이 약하고 미련한 것」이라고 할까요.여자에게는 남자의 이 배 삼 배의 고통을 갖고 있으나 그것을 「참어내는 무기」가 있지만 남자의 정체를 본다면 「가여운 것」 그 하나뿐입듸다.
기자 : 유선생도 말씀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유 : 그 말이 그 말이지요만은 대강 말씀을 한다면 남성을 세 가지 관점에 비추어 봅니다. 첫째 정치적 방면에서 볼 때 남성의 절조없는 것이 너무 역력하게 드러나드군요. 이즘만해도 누구누구할 것없이 그 행동이 무엇입니까.
둘째 경제적 방면에서 볼 때 남성의 추악스러운 것이 그리고 하잘것없는 무능한 것임을 볼 수 있드군요. 요약해 말하면 현하 조선남성들은 하나도 줏대가 없이 갈팡질팡합니다. 당면만 자기 개인문제를 해결못하면서 사회요 민족이요 하는 것은 말하자면 골자(骨子)없는 인간이라는 관념을 줍듸다. 더욱이 경제문제 앞에 그렇게 쉽게 자기의 「씨」까지 바쳐가면서 아첨하는 양은 도리어 가엽습듸다.
셋째 생리적 방면에서 볼 때 남자들은 이성앞에 너무나 약합듸다. 여성은 이성에게 애정을 주게되기까지에 상당히 신중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만 남성은 순간적입듸다. 그리해서 그들은 그 순간적 유혹을 못이기고는 심각한 비극의 주인공들이 됩듸다.
하여튼 결론에 가서는 우봉운씨말대로 강한 체하면서 약하고 영리(冷悧)한 체하면서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자 : 그런데 지금 여성운동만이 아닙니다만은 하여간 여성운동이 침체를 지나 정돈(停頓)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해 어떤 소감을 갖고 계십니까?
우 : 적막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자기 의식의 수준을 내려가지고 합법비합법간에 무슨 운동을 하고싶지는 않고 전날 근우회의 수위보담도 한 걸음 더 나아간 단체를 조직하야 용맹스럽게 활약해보았으면 개인으로도 긴장되고 사회적으로 의의가 크겠으나 그것은 나 개인의 생각뿐이외다.

기자 : 그러면 전날의 동지 여러분과 모일 때에는 혹시 그런 말씀을 해보십니까?
우 : 성산없는 이야기를 꺼내서 소득도 없고 공연히 형사들에게 비밀결사하였다는 혐의만 받게요.
기자 : 그렇겠습니다. 여담입니다만은 앞날에 양성문제가 해결될 날이 있을까요?
유 : 나의 이즘 생각은 양성문제 즉 애정문제라거나 결혼문제 부부관계 같은 것은 모두 그 개인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모이여 사회가 되였다고 하여 연쇄적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는 그 개인과 개인, 당자와 당자간에서 해결되는 것으로 그 해결이라 할 것이지 더 다른 것이 있지 않을 줄 압니다.
남편과 아내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사람이 없습니다. 남편된 이가 사회적으로는 명망이 있다 하더라도 가정에 돌아가 안해 앞에서도 그렇겠느냐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다른 제 3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간섭할 수 없는 관계가 양자간에는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애정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고 결혼문제에 있어서도 그럽니다. 제3자가 자 막대기로 잴 수없는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될 날은 없을 것이지요.
기자 : 바쁘실텐데 이처럼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제 또 다른 분을 맞나야 하겠어서 이만실례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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