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적(帳籍)
보통 적(籍)이라고 표현됨. 전근대사회에서 국가가 백성들을 파악하고 조세를 부과하기 위해 조사, 작성되던 모든 종류의 문서를 지칭함. 대표적인 것으로는, 흔히 좁은 의미에서 장적(帳籍)이라고 불리는 호구 장적(戶口帳籍), 호구 장적을 근간으로 작성되던 군적(軍籍), 흔히 양안(量案)이라고 불리는 전적(田籍)을 들 수 있음. 이러한 장적들을 바탕으로 조•용•조(租庸調) 부과 등의 국가의 대민(對民)지배가 이루어짐.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장적은 신라 장적(新羅帳籍)임. 신라 장적은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서원경(西原京) 부근의 4개 촌락에 관한 기록임. 매 식년마다 촌역(村域), 연수(烟數), 인구수, 우마수(牛馬數), 토지의 면적, 뽕나무와 잣나무•호도나무의 본수(本數), 그리고 호구(戶口)의 감소와 뽕나무 등의 감소 등을 기록하였음. 고려 시대에는 호적이나 양안 등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성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조선 시대에는 일정한 형식이 법으로 규정되었음. 호구 장적은 흔히 호적(戶籍)이라고 불리는데, 조선 시대에는 3년에 한 번씩 작성되었음. 각각의 호(戶)는 그 구성 내용을 기록한 호구 단자(戶口單子)를 관에 제출하고 관에서는 이 호구 단자를 참고하여 호적을 작성하였는데, 서울은 한성부(漢城府)와 호조(戶曹)에, 지방은 각각의 읍(邑)•도(道)와 호조에 한 부씩 보관하도록 하였음. 양안은 전적(田籍)•전안(田案)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20년마다 한 번씩 작성되는 것이 원칙이며 각 지방 수령의 책임 아래 유향 품관(留鄕品官)들이 위관(委官)이 되고 서원(書員) 등의 이서(吏胥)들이 실무자로 차출되어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중앙에서 경차관(敬差官)을 파견하기도 하였음. 양안에는 논밭의 소재지, 자호(字號), 위치, 등급, 모양, 면적, 사표(四標), 소유주 등을 기록하였음. 군적은 호적을 바탕으로 작성되는데, 6년마다 한 번씩 작성되었음. 군적에 의해 해당인의 병조(兵種)과 정군(正軍)•봉족(奉足) 여부를 파악할 수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