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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단

작성자단양우씨™|작성시간11.11.08|조회수232 목록 댓글 1

대한광복단의 활동과 친일파 처단


1. 독립운동단체의 성격

대한광복단은 1913년 영주의 풍기에서 우리가 일제에 강점된 초기에 국내에서 독립을 위하여 결성된 비밀결사조직이었다.

2. 결성 주도자

대한광복단은 상주 출신 소몽 채기중(1873.7.7(음) 고종10년) 선생이 1906년 풍기로 거처를 옮긴 후 결성을 주도했다. 채기중 선생은 상주와 풍기에서 개항(1876년) 이후 농민전쟁, 의병항쟁 등 무력항쟁의 역사적 영향을 받으면서 무장항쟁의 독립운동 방법에 관한 전망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3. 주요 구성원

대한광복단의 주요 구성원은 참여 범위에 차이가 있으나 의병계열의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천안의 유창순(庾昌淳- 민종식 의병진의 의병), 유장열(柳璋烈), 청양의 한훈(韓焄-민종식 의병진의 의병), 봉화의 강순필(姜順必 또는 상주 출신이라고도 함- 이강년 의병진의 의병), 김병렬(金炳烈), 김상오(金相五), 괴산의 정운홍(鄭雲洪), 예천의 정진화(鄭鎭華), 정만교(鄭萬敎) 등이 었으며 장두환, 강병수, 황상규, 이각 등이 더 참여한 것으로 기록에 나와 있다. 이들은 의병전쟁에 직접참여 했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풍기 출신이 아니면서도 독립운동에 관한 전망을 갖고 풍기를 찾아 들어온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즉 소백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풍기에서 “비밀혁명기관‘을 만들어 국권회복을 이루고자 하였던 것이다.

대한광복단은 후에 양제안 선생의 알선으로 대구 출신의 박상진(朴尙鎭) 선생을 만나면서 확대 발전하고, 김상옥은 삼남으로 조직을 확대한다. 이때부터 대한광복회로 명명되게 된다. 대한광복회는 1910년 대 국내비밀결사의 대표적 단체이기에 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연구가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재룡 선생의 백산실기에 그 조직과 주요구성원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사령관 : 박상진(朴尙鎭)

지휘장 : 우재룡(禹在龍), 권영만(權寧萬)

지부장 : 채기중(경상도), 김한종(충청도), 이병찬(전라도), 김선호(경기도), 최봉주(함경도), 조현균(평안도), 김동호(강원도)

본부회장 : 박상진, 최준(崔浚 - 경주부호), 이복우 등

만주사령관 : 이석대(李奭大)

국외 : 만주 안동여관 손회당(孫晦堂), 봉천 삼달양행(정미소) 정순영(鄭舜永)

4. 국권회복 노선과 투쟁방법

󰁰사상 - 공화정을 택한다.(왕정복고 사상주의자도 있었으나 공화정을 택한 점에 주목한다)

󰁰성격 - 혁명단체이며 전국적인 규모에 근대국가 이념을 갖추고 대종교적 민족주의 자주성을 지녔다.

󰁰노선 -독립군자금을 모집하여 독립군을 양성한다.

이의 투쟁방법은 무기구입과 친일부호 처단 등 의협투쟁을 당면과제로 제시

󰁰노선 - 국내외 독립운동세력간 유기적 결합을 도모한다.

이의 투쟁방법은 대구, 만주, 경기도, 황해도, 전남지역에도 지부를 설치하여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하였고 서간도 독립군 기지의 건설을 추진함으로써 국외로까지 확대해 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5. 친일파 처단

1)대구 권총사건 - 1915년 7월, 박상진, 정운일, 최병규, 김진우 등이 대구 부호 정재학, 이장우, 서우순 등을 독립자금으로 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절, 서우순의 집에 권총을 들고 들어갔으나 실패, 체포되어 김진우 12년, 김진만, 정운일, 최병규 10년, 권국필, 최준명 2년, 박상진, 김재열 6월, 홍주일 5월, 이시영 4월을 선고받았다. 이중 정운일은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7년간 수감생활을 하였다.

2) 채기중의 독립운동 자금 모금활동과 장승원(전 국무총리 장택상의 부친) 습격사건

1917년 음력 7월 말, 채기중과 박상진은 대한광복단 이름으로 칠곡의 친일부호 장승원(장택상의 부친)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박상진은 장승원에게 광복단에 대한 원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일제관헌에 밀고할 듯한 태도를 취하자 “원래 그자가 이왕과 소송을 벌이고 소작인을 괴롭힌 경북의 유력자임으로 그를 살해함으로써 그 소문이 모든 도에 전파되면 광복회의 사업을 추진하는데 편리하기 때문”이었다고 친일부호 장승원 처단이유를 규정하였다.

이에 음력 9월 26일 채기중은 장승원의 집에 들어가 채기중과 강순필이 저녁 8시 경 각자 휴대한 권총으로 장승원에게 발사하여 총알이 장승원의 후두돌기와 왼쪽 무릎 상부에 적중하였고, 장승원은 대구 자혜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음력 9월 28일 숨졌다.

채기중, 강순필이 친일부호 장승원을 처단하던 날, 유창순은 장승원의 집에 불을 지르려 하였으나 자신이 들고 있던 석유가 든 맥주병이 깨어질 때 손에 부상을 입어 불을 지피지 못하여 실패하였다.

3)채기중의 경북지역 독립운동 자금 모집활동

채기중은 김한종에게 경북 안동 풍서면 가곡리 권현준을 찾아가 독립운동자금을 받아 올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김한종은 권현준에게 “우리는 광복단원이다. 미리 통고한 금원을 교부하는 것을 불응하면 장승원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 하여 300백원을 교부받았다. 이후 채기중은 임세규에게 지시하여 안동군 와룡면 안승국에게 백원을 받게 하고, 안동군 임동면 유승호에게 군수금 200백원을 제공하라고 경고문을 보내고 95원을 제공받았다.

(일제시대 1원은 지금의 4만원 정도이니 300원은 지금의 1200만원 가량임)

4)채기중의 호남, 충청지역 독립운동 자금 모집활동

채기중은 1918년 호남의 부호들에게 독립군자금 5천원 - 5만원까지 기입한 포고문을 보내고 전남 보성군에 도착하였으나 자금모집 대상자들의 집 주변 경계가 심하여 뜻을 펴지 못하였다. 또 채기중은 독립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최면식으로부터 권총과 탄환을 기증받고 광복단원으로 가입시켰으며 충청도 지역에 대해서도 회원확보를 위하여 활동하였다.

5)임세규의 독립운동 자금 모금활동

임세규는 영주 봉현 노좌 사람이다. 봉주 또는 동근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17년 광복단에 가입 후 채기중으로부터 친일부호 장승원 암살 계획을 지시받았다. 임세규의 임무는 장승원의 동태파악이었으며 이를 수행하였다.

1917년 음12월 임세규는 인천으로 이동, 그것의 김한종, 장두환, 김재창 등을 만나 독립군자금 모금 계획을 세우고 김한종으로부터 부호들에게 보낼 포고문을 받아 우편으로 송달하였다. 이때 김한종과 장두환은 대한광복단원들이 장승원을 암살한 것과 같은 이유로 충남 아산군 도고면 신유리 도고면장 박용하를 살해하기로 결의하고 12월 12일 박용하의 집으로 들어가 광복회 명의의 사형선고문을 내보이고 권총을 발사하여 좌측 흉부에 맞추어 사살하였다.

6)채기중, 임세규 이외 대한광복단원의 활동

1916년 5월 한훈, 김상옥, 유장렬, 곽경택 등의 단원들이 보성, 벌교의 친일부호 양재학, 서도현을 처단하고 헌병분견소를 습격하여 무기를 수합하였다. 한훈은 1917년 1월 벌교 부호 서인선을 납치하여 군자금을 수령하는 활동을 벌였다.


4. 내부 밀고와 순국

도고면장 박용하 처단사건 이후 대한광복단원인 이종국(李鐘國)이 일제관헌에 밀고함으로써 조직이 탄로나 상당수 구성원이 체포되었다. 이 사건에 무려 400여 명이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1918년부터 3년동안 공주지방법원, 경성복심법원, 대구복심법원에 이르기까지 재판이 벌어졌다. 검거당한 단원 중 20여 명이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재판과정에서 형이 줄거나 일본 소화(昭和)왕의 즉위 특별사면으로 감형되고 6명이 사형집행되었다. 1921년 8월 박상진, 김한종이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고, 채기중, 김경태, 임세규, 강순필은 서울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참고 영주독립운동사. 2008년. 영주시, (사)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간행)

# 대한광복단은 직접 친일파를 처단하는 투쟁노선을 실천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한 우리나라 최초의 무장투쟁방식의 항일운동단체입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대한광복단이 처단한 친일파를 포함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전문적인 연구, 실천활동을 함과 아울러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며 민족사와 민족문화의 정립에 기여하고 역사정의를 실현하며, 민족동질성 회복과 민족정체성을 확립하여 민족의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따라서 대일항쟁기에 광복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며 국권을 되찾고자 청춘을 바치신 민족문제연구소 경북북부지회 박태서 지회장님께서 친일파를 직접 처단한 대한광복단을 기념하는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회장에 선출되신 것은 이 시대의 올바른 정신을 실천하는 뜻 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회장님 건강만하십시오. 그러시면 나머지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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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자연맨 | 작성시간 11.11.09 우리문강공 자랑 애국지사 백산 할아버지 널리알려 후손에게 귀감이 되도록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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