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丹陽 禹氏 집성촌을 찾아서(25)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내리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
문희공 (봉상정공파)
경기도 화성시 지역에 오래전 부터 내려오는 뚜렷한 집성촌은 4개 마을이 있다.
문희공 집안은 대부분 경상남북도에 집성촌이 있는데, 집성촌 공부를 하면서 경기도에도
집성촌이 있음을 알고, 몹시 궁금하던 차에 매송면과 이웃한 정남면 내리부터 먼저 찾아 보았다.
이번 화성시에 흩어져 있는 집성촌 취재에는 매송면 정평공파 집안의 우광성 종인님의 배려로
화성시에 있는 집성촌을 함께 같이 둘러 보자는 제안과 함께 하룻만에 방문이 완료되었다.
이곳 화성시 집성촌 일대는 인근 안산 공단과 더불어 농촌지역에 많은 공장지대가 형성 되어 있었다.
정남면 내리 집성촌 마을 도착과 함께 동네 첫 방문 가구에서 마을 문장 어른을 물어보니 우호빈
어른을 찾아 뵈라고 알려주어 찾아가니, 대문에 6,25 참전용사와 성함이 함께한 문패가 보인다.
어른께 방문한 목적을 말씀드리고, 이웃 면에서 함께 찾은 매송면 우광성 정평공파 집안의
종손임을 알고 더욱 반겨주신다. 우광성 종인은 이곳 출신분과 아는분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25Km 떨어진 장안면 사랑리에 입향조 산소가 있으며, 그쪽이 큰집이라고 알려준다.
화성 정안면 사랑리는 같은 화성시에 위치해 있지만, 이곳 정남면 내리와 교통이 불편하여
과거 대중교통을 이용시에 시제를 지내러 갈려면 하룻밤 1박을하고 다녀와야 했었다고 한다.
집성촌 내리에 과거에 재실이 있었지만 관리 부족으로 현재는 허물어지고 없다고 한다.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장안면 사랑리에 도착하니, 마을 어귀 토마토 재배농가 비닐하우스 앞에
같은 일가 부인들께서 모여 정담을 나누시다, 바로 옆 양지바른 언덕에 위치한 선산 묘역을
알려 준다. 사랑리는 넓은 들녘 지형으로 주택들이 분산 흩어져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마을에는 조선말기 우리 집안에 보기드문 대지주가 계셨는데, 그분이 우성현 선조님이다.
일제하에 단양시중공 묘역 일대의 넓은 임야와 종답을 구입하여 집안을 빛내었으나 작고 후
아들이 구입한 종답을 되팔아 단양우씨 전체 문중에 많은 문제가 야기 되었다고 한다.
매각하는 것을 알고 10개파 일부 운영진에서 돈을 거출, 시중공 묘역 일대를 다시 구입하게 된다.
화성시 매송면을 출발하여 정암면소재지를 통과하여 내리로 향한다.
매송면과 정암면 내리, 장안면 사랑리는 각각 25Km 거리를 두고 형성되어 있었다.
정암면 내리 집성촌에 도착, 마을 문장 어른이 계시는냐고 여쭈어 보고 있다.
내리 마을 집성촌 주변에는 많은 공장들이 보인다.
야산능선을 끼고 형성된 정암면 내리 집성촌 마을 과거 40호에서 20호로 줄어든다.
옛 집성촌 마을 분위기를 알수있는 대문간 건물
문패의 주인은 돌아가시고 아들은 캐나다로 이민 가끔씩 국내로 왕래한다고 한다.
바로 옆 이웃에 위치한 문장 어른댁을 문패를 보고 찾아 뵙는다.
매송면 정평공파 우광성 종인이 먼저 문장 어른댁을 방문하고 있다.
먼 일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집안 이야기로 점점 친숙을 더해가는 모습
근래에 발간한 문희공 집안의 족보를 찾아와 보여 주신다.
우호빈 문장어른은 27세로 학렬이 높은 편이었다.
경기 화성지역 문히공 집안 입향조는 16세 덕종(德宗) 선조님이시다.
정남면 내리 입향조는 19세 성준 선조님 두분은 장안면 사랑리에 막내분이 내리에 정착
오래 전 단양우씨 10개파를 메모해 두셨다가, 오늘 다른 집안 자손들을 만나서
족보와 함께 귀중하게 보관 했던 메모지를 찾아 확인하는 반가운 자리가 되었다.
화성지역 문희공 봉상정공파 집안의 많은 내력을 들려주신 우호빈 어르신
양지 바른 집안 마당에 다양한 채소들이 보인다.
할머니와 함께 잘 가꾸신 마당 텃밭 어른께서는 1932년생 향년 83세
장년기부터 농사를 함께한 愛馬 JOON DEERE 트랙타 앞에선 문장어른
40 여년전 젊은 시절 직접 짠 멍석을 아직도 보관하고 계셨다.
바로 아래에 위치한 또다른 집안분께 잠시 인사를 드렸다.
마을 앞에는 농토와 함께한 공장지대가 보인다.
다시 정남면에서 25Km 떨어진 장안면 사랑리로 향하여
장안면 사랑리 마을 입구, 길가 간이 직판장에 마을 일가분 부인들이 담소를 즐기시다
낯선 탐방객을 보고, 환히 웃으시면서 선산 묘역의 위치와 마을 소개를 해 주신다.
독립가구가 많은 사랑리 집성촌 부락 첫 인상
과거 집안 시제 행사와 많은 어른들께서 별세하시면서 이어진 마을 분위기를 들려주고 있다.
길가 토담 담장집이 궁금하여 찾아 보았다. 아드님 한분이 대충아는 집안 소개를 해 준다.
문패 주인은 세상을 뜨시고, 일가분 母子가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뚜꺼운 토담 담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집안에 보물급 농기구가 뒷간에 잘 보관되어 있다.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부엌에 안방을 별도로 차려 가족 사진이 걸려 있었다
신문지에 싸서 깊숙히 잘 보관한 족보를 꺼내 보이고 있다.
몇겹으로 싼 신문지를 동행한 우광성종인께서 포장을 대신 벗기고 있다.
8권으로 구성된1968년도 문희공 집안에서 영주에서 인쇄한 대동보
문희공 집안에서 별도 제작 배포한 대동보 족보
한옥 대청마루에 오래 모운 소중한 소품들이 보인다.
도로변 길가 양지 바른 언덕에 위치한 사랑리 선산 묘역
선산 묘역 입구에 세워져 있는 교관 우성현 시은부망비 대정4년 (1915년)
조선 말과 일제하에 대지주로써 수원.화성 일대에 가뭄을 해소하는 수리시설에 공헌 함
3개의 비석을 동시에 제작하여, 수원시내 공원에 세울려고 했던것이 고향마을에 세워짐
새롭게 잘 조성된 사랑리 묘역
경기도 화성 입향조 16세 德宗 선조님 묘역
사랑리 선산묘역 아래에 넓은 농경지대가 한눈에 보인다.
묘역 좌판석이 보기드문 형상이다.
재실이 있다하여 안내 받아 찾아가고 있다.
5~60년대에 지어진 재각 관리부족으로 허물어 지고 있었다.
교관 우성현 선조님을 모시기 위한 별도의 재각, 시제때 제기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보인다.
문희공 둘째집안을 나타내는 원명 현판
우성현 선조 묘역 일제하에 단양 시중공 묘역 일대의 넓은 임야와 종답을 구입 했던분
일제하에 수원 일대 극심한 가뭄을 해소 하기 위한 노력의 공으로 후대에 부망비가 세워짐
조선말에 무관 교관과 일제하에서는 백작 칭호도 받았다 함
사사랑리 집성촌에서 유일하게 조선말기 관직 통정대부장 오르신 우기한 선조님
안동에서 16세 선조님께서 정남면 일대로 건너와 입향하여, 정도전의 우리성씨
배척으로 2대를 숨어 살았다고 한다. 사랑리 출신 우제혁 종인이 증언
우제혁 011 728 5728 (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