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18:5-16, 29-30
[삼상18:5-16]
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15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삼상18:29-30]
29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30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싸우러 나오면 그들이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
* [삼상18:6-14]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무엘상 16장에서는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 중 왕이 될 자를 찾는 내용, 그 핵심 구절이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17장에 넘어와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나온다. 힘이 약한 다윗이 힘이 센 골리앗을 이기는 게 아니라 사람과 외모를 보는 가치관과, 중심과 하나님을 보는 가치관의 싸움 또는 충돌로 해석하고 생각해봤다. 외모를 보는 사람에게 골리앗은 넘사벽이지만 중심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에게 그것은 넘사벽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도전이 있었는데 오늘은 18장으로 넘어왔다.
18장에서는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서 국가적인 인물로 대두하게 된다. 그런데 국가적인 인물로 데뷔할 때 참 중요한 구절이 몇 개 있는데 우선 삼상16장 6절을 보자(상단 요절 참조). 여인들이 전쟁에서 돌아오는 이들을 환영하는 노래를 하는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사실 왕인 사울을 환영하는 노래다. 가사를 생각하면 반대로 얘기해야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백성들은 '사울이여 당신은 정말 위대한 장수를 두셨습니다. 그가 만만을 이겨도 그는 왕의 신하입니다'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이해하면 얼마나 큰 이득인가 하는건데 사울왕은 오히려 화내고 질투하면서 '나에게는 천천을 돌리고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니 그가 얻을 것이 나라밖에 얻을 것이 무엇이냐'고 생각했다. 그는 쓸데없는 상상, 있지도 않은 상상을 키워 오히려 그 함정 속으로 자기가 걸어 들어가고 있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10절을 보자. 하나님과 중심을 맞추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않으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사람은 지혜로운 것 같으나 어리석다. 속에서 질투하는 사람이 지혜로울 수 있나? 질투 자체가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그 자체가 우리를 지혜롭게 만들어준다. 사울왕이 여호와께서 부리는 악신이 들어가 정신 없이 떠드는 장면도 그런 점에서 보면 이해가 더 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2절을 보자. 하나님의 계획이 그런 사울에게 더 이상 함께 하지 않는다. 다윗에게 넘어간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한다. 다윗같은 장수가 얼마나 중요한데 죽이려하다니? 미친거다. 다윗을 듬직하게 믿어줬다면 그가 얼마나 충성했겠나. 그런데 두려워했다. 왜 두려웠을까? 다윗은 사울을 죽일 생각이 없다. 백성도 왕을 환영한거지 다윗을 환영한게 아닌데 왜 그랬을까?
13절을 보자. 사람들은 다윗을 사랑했다. 그가 그들앞에 출입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관용구다. 책임감 있게 일한다는 뜻이다. 출입한다는 관용구는 성경에 많다. 그러니까, 다윗은 역성혁명의 의지가 있는게 아니고 충성되게 하나님 앞에서, 왕 앞에서 그렇게 살았다. 백성들도 그를 좋아했다. 장수로서 좋아한거다. 29-30절을 보자.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 두려워하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을 관리하지 못했고 평생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블레셋이 처들어오면 그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했다. 다윗은 지혜로웠다. 사울의 심정은 두려움으로 표현되었고 다윗은 지혜로움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니까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주보를 보자.
(삼상 18:1-30) 사울의 길, 다윗의 길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40년을 통치하였으나 비운의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베들레헴의 목동으로 살았으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사울과 다윗은 동시대의 사람이다. 사울은 왕이었기에 다윗보다 앞서가고 있었다. 앞서 가던 사울은 몰락하고, 존재감이 없던 다윗은 점점 존귀해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삶은 어떤 상태인가? 점점 존귀해지나, 몰락하고 있나? 나는 나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가르칠 것인가? 말은 다윗처럼 살라고 하는데 내용은 사울처럼 살게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골리앗 사건 이후'이다. 골리앗 사건은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남지 않고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골리앗 같았던 사울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어린 소년 다윗은 점점 높아졌다. 사울은 이 상황 속에서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한 채 질투에 이끌려 스스로 판 함정에 빠졌다. 어떻게 된 것인가?
다윗은 높아질 의도가 없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했다. 그는 겸손하였으나 그의 삶은 점점 더 높아졌다. 하나님도 사람도 사울에게서 사랑을 거두었고, 다윗에게는 사랑을 주었다. 사울은 다윗이 점점 더 두려워졌으나, 다윗은 지혜롭게 행동하며 책임을 다하였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높아지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떼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복은 점점 더 멀어진다. 대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책임있게 살아가라. 그러면 복은 따라온다.
인생은 지혜로운 것 같으나 어리석다. 이렇게 자명한 진리 앞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사울의 길을 간다. 어떤 사람은 몰라서 가고, 어떤 사람은 알면서도 간다. 질투와 욕망을 제어하고,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에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사울처럼 된다. 사울처럼 살면서 다윗같이 될 수는 없다. 다윗처럼 살면 저절로 다윗처럼 된다.
나의 삶은 내가 가는 길이 인도한다. 틀린 길을 가면서 목적지에 도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오늘 말씀의 교훈은 단순명료하다. 그러나 실천은 복잡하다. 실천이 복잡한 이유는 내 마음 속에 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 남을 탓하지 말라. 하나님과 동행하면 모든 환경과 여건은 배경이 된다.
하나님께서 올해 우리 교회에 정말 좋은 기회를 주셨다. 건축과 부흥이라는 과제 앞에서 우리는 사울처럼 반응할 것인가, 다윗처럼 반응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당연히 다윗처럼 반응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극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두려움이다.
사울은 다윗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중심을 드리는 모습을 보고도 따라 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다윗을 두려워했다. 다윗이 자신보다 높아지고 자신의 왕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사울은 다윗을 질투했다. 그는 마음 속의 질투를 제어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의 왕권을 이용하여 다윗을 제거하려 했다. 그는 그것을 절묘한 수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어리석은 자충수였다. 두려움과 질투에서 절묘한 수가 나오는 법은 없다.
두려움을 제어하라.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 사탄의 속삭임이다. 모든 것을 혼자 하려고 하니 두려워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라. 그리고 서로 돕는 공동체가 되라. 그러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두 번째로 지켜야 할 것은 지혜로워지는 것이다. 지혜로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람은 지혜를 갈망하지만 늘 어리석은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었을까? 그는 한 번이 아니라 매번 지혜롭게 행동했다. 그 비결은 중심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윗을 지혜롭게 만들었다.
중심으로 성경을 읽어라. 중심으로 기도하라. 중심으로 찬양하라. 중심으로 예배하라. 중심으로 예물을 드려라. 중심으로 헌신하라. 중심으로 하면 지혜로워진다.
잠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께 중심을 드리는 것이다. 모양만 갖춘 신앙을 버리자. 빨리 버리자. 당장 버리자.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중심을 드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삶은 훨씬 쉬워진다.
세 번째로 감당해야 할 것은 책임감이다. 본문 13절과 16절에는 “출입”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다윗은 천부장이 된 후 백성들 앞에서 출입하였다. 백성들은 다윗이 자기들 앞에서 출입하는 것을 보고 다윗을 사랑하였다.
여기서 '출입'은 관용구이다. 이는 책임을 충실히 감당한다는 뜻이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신뢰를 얻는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사랑을 얻는다. 책임을 지는 사람은 더 큰 일을 맡게 된다. 반면 책임지지 않고 뒤에서 관망하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부러움과 질투뿐이다.
요즘은 선거철이다. 선거의 묘미는 골든 크로스에 있다. 후발 주자가 선두를 제치고 상승하는 모습은 상쾌하다. 우리는 다윗의 삶에서 이러한 상쾌함을 본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윗의 길로 초청하신다. 두려움에 흔들지지 말자.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다. 지혜로워지자. 내가 스스로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드리면 지혜로워진다. 책임을 다하자.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그것을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해서 하자. 변명은 사탄의 속삭임이다. 하나님이 내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게 하자. 이제 내가 응답할 차례다. 망설이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여호와를 앙망하자. 외모를 보지 말고 중심을 보자.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자.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자.
목사님 기도 :
나는 지혜로워지고 싶었지만 내가 지혜로워지는 길을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윗의 길을 가고싶은데 사울의 길로 가고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나를 다윗의 길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가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영원하신 기업은 오직 하나님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녀들을 다윗의 길로 인도해주시기 기도합니다. 내 발자국이 자녀들이 따를 수 있는 발자국이 되게 하여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을 보게하시고 성도의 모습에서 예수의 모습을 보게 하여주시옵소서. 어리석어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건축과 부흥 앞에서 우리가 계산하지 않게 사람처럼 되지않게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내가 하려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강 같이 흐르고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