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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설교

2026/6/14 '다윗과 아비가일과 나발'

작성자mari|작성시간26.06.23|조회수34 목록 댓글 0

삼상25:1-13

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2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4 다윗이 나발이 자기 양 털을 깎는다 함을 광야에서 들은지라
5 다윗이 이에 소년 열 명을 보내며 그 소년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갈멜로 올라가 나발에게 이르러 내 이름으로 그에게 문안하고
6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7 네게 양 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8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9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12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매
13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
14 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전령들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15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16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17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18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스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19 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20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 곳을 따라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나니라
21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3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24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25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26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7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34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
35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서양 사람들은 기독교 문화권이라서 자녀들의 이름을 지을 때 성경 속 인물을 따라 많이 짓는데 아비가일도 상당히 인기 있는 이름 중 하나다. 아비가일은 성경에서 상당히 지혜로운 여인이다. 오늘 제목이 '다윗과 아비가일과 나발'이라서 본문 내용을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다윗이 중심인물이고 아비가일과 나발은 부수적인 인물이다.
1절을 보자. 이 말씀은 그냥 지나치면 이런 말을 왜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자세히 보면 본문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사무엘이 죽었다. 그는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람, 선지자 시대의 첫번째 선지자로 존경받는데 사울과 다윗 두 왕을 세운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하나다. 기도하는 사람으로도 유명해서 내가 어렸을 때는 버스를 타면 항상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와 함께 기도하는 사무엘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걸려있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죽었고 온 이스라엘이 슬퍼했다. 사무엘이 죽은 상황 속에서 다윗은 뭘했나? 바란 광야로 내려갔다. 다윗 당시 사무엘만 아니라 갓 선지자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그 시대 영적 지도자의 대표였고 다윗도 상당히 그를 영적으로 의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이제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응답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황을 성경은 '광야로 내려갔다'고 비유했다. 사무엘을 잃은 다윗의 신앙적, 영적 상태와 삶의 피폐함 같은 것을 보여주는 장소라고 할 수 있는데(물론 성경에서 광야는 육신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곳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어려운만큼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볼 수도 있는 곳이 되기도 했다. 광야의 이중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배경 속에서 사건이 하나 벌어지는게 나발 사건이다. 이게 왜 연결되는지 2절을 보자.
'마온'이라는 말은 기름지다는 뜻이다. '갈멜'은 포도원이다. 두 단어만 봐도 이 지역이 농사가 잘 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나발은 매우 부요한 사람이었다. 양이 3천, 염소가 1천마리나 되었다. 이 당시는 농업이 발달하지 않고 목초지도 발달하지 않아서 양을 이렇게 많이 키우기는 어려웠다. 양털 깎을 날은 가을 추수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목축을 하는 사람에게 제일 부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3절을 보자.
나발은 완고하고 행실은 악한데 부자다. 그런데 부인은 이쁘고 심지어 지혜롭다. 나발만 나쁘고 다른건 다 좋다. 외적으로 보면 나발은 별로 질이 안좋은데도 복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4절을 보면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다윗이 들었다. 광야는 척박하고 400~600명에 이르는 사람을 인솔하려면 군량미가 많이 드는 상황이다. 5,6절을 보자. 다윗이 소년 10명을 보냈다. 10명 정도가 얻을 수 있는 식량을 요구한 것 같다. 다윗은 나발을 부하게 사는 자로 표현하며 소년들로 하여금 그에게 평강의 인사를 하게 했다. 7-8절을 보자. 자기 것도 아니고 양털 깎는데 가서 뭔가 달라고 하면 다윗이 함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당시는 치안이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 일단 뺏으면 임자였다. 그런데 다윗이 나발의 양들을 지켜 빼앗는 자들로부터 돌봐주었고 다윗도 나발의 것을 뺏지 않았으며 이것은 재산을 지켜주었다는 것이고 그에 대한 당연한 사례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의 문화 배경을 안고 있다. 다윗이 무리하게 갈취하러 간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이 당시는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9절과 10절을 보자. 나발의 응답이다. 나발이 갈멜에서 양떼를 먹이다가 돌아왔는데 양떼에 피해가 하나도 없었다고 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을 것이고 다윗의 소년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 상황을 다 알고있었을텐데 막상 이들이 양털 깎는 날 와서 도와달라 하니까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하며 알면서 모르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다.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다'는 말은 사울에게 쫓기는 다윗을 조롱하는 조로 말하는 것이다. 11절은 더 비참하다. 나발이 자기 중심적으로 물질관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것이다. '양털을  깎지도 않고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너에게 내가 왜 주냐'는 것은 그의 양들을 돌봐준 소년들의 노력을 깎아내리고 깔아뭉개는 것이다.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다.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느꼈을 수도 있다.
12,13절을 보자.
가난한 사람은 교만할 수 있나? 비굴하기는 쉬워도 교만하기 어렵다. 돈이 많은 사람은 교만하기 쉬워도 겸손하기는 어렵다. 권력을 잡은 사람은 교만할까, 겸손할까? 교만하기 쉽다. 그리고 높이 올라간 사람은 낮은 곳의 사람들이 시시해 보이고 답답해 보이고, '그러니까 가난하게 살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나발이 왜 다윗의 보호에 대해 이런 태도로 나왔을까? 그것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에 고마운줄 모르고 교만한 것이다. 이게 무섭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가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고 한 것이다(잠언30:8). 우리가 높아지려 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해야 되고 그리고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받아야 한다. 권력을 받는것도, 명예를 받는 것도 하나님께 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해가 될 수 있다. 나발이 가난했다면, 소작농이었다면 이렇게 교만했을까? 그렇지 않다. 그의 운명은 부자가 되면서, 또 부자이기에 망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다윗이 나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했나? 칼을 차라고 했다(12-13절). 그 당시 고대 근동 문화를 생각하면 나발은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상대를 화나게 한다. 혼 내도 된다. 그러나 다윗도 이 상황을 하나님 앞에서 풀었어야 한다. 전에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 신하들과 도망가는데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베냐민 지파인 우리 조상에게서 왕권을 빼앗은 자라며 잘됐다고 조롱했을 때 다윗은 그를 놔두라고 했다. 그가 하는 일 조차도 하나님이 시킨거라고 했다. 이거다. 여기서도 나발이 그랬으면 '하나님이 시킨 것이다. 어떻게든 먹을 길을 주시겠지' 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분노한게 왜일까? 군대가 있어서다. 군대가 있었기에 다윗이 분노하게 되고 교만하게 되고 묻지않고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행동하는 거다. 아주 무서운 상황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나발 욕하고 하느라 다윗이 어떤 마음을 갖게 되는지 주목하지 못 하는데 나발의 마음도, 다윗의 마음도 같이 읽는게 중요하다.
14-16절을 보자.
나발의 종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하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다. 위기구나 느꼈다. 그 사람이 나발에게 간게 아니라 그 아내를 찾아갔다.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하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다윗이 문안하러 전령들을 보냈는데 주인이 그들을 모욕했다고 전했다. 종도 모욕했다고 느낀 것이다. 그렇게 안 느낀 사람도 있을 수 있긴하다. 그리고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라고 했다. 그는 다윗이 움직이는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나발은 불량한 사람이라서 말이 안 통할꺼라 생각했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자기 생각에 빠져서 남 이야기를 못 듣는다. 교만하면 남 이야기를 안 듣는다. 겸손하면 듣는다. 아비가일은 하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18절의 '급히'라는 말에 주목했다. 상황 판단이 빨랐고 미루지 않고 행동에 옮겼다. 떡 200덩이는 대략 600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상당한 양인 것 같다. 그리고 소년들로 하여금 앞서가게 했다. 분노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가 가라앉기도 하지만 더 커지기도 하기에 빨리 수습하려는 것이다. '나를 앞서가라'한 것도 상당히 중요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하인들로 하여금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게 했다. 말했다면 주는게 아까우니 가지마라 했을 것이고 그 사이에 다윗의 군대가 쳐들어왔을 수도 있다. 나발이 가장임에도 말하지 않는게 좋을 때도 있었다는 거다. 상당히 중요한 얘기다. 20-22절을 보자. 아비가일이 호젓한 길로 갔다는 것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지름길로 빨리 가려고 한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다윗과 사람들이 마주 오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다윗의 이야기를 삽입했는데 다윗의 상황을 얘기해야 아비가일의 행동이 이해되니까 다윗의 상황을 설명한 것 같다.
23, 24절을 보자.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댔다. 화난 다윗에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죄를 자신에게 돌린다. 그리고 자기 말을 들으라고 한다. 나발의 얘기를 하면서 같이 욕하면 죽이러 가자 할테니 자기가 떠안고 있다. 아비가일이 겸손히 무릎 꿇고 이 사람의 죄를 고합니다. 내가 다윗의 소년들이 온 걸 알았으면 안 보냈을텐데 몰랐었습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나발은 개의치 말라한다. 나발이라는 이름 자체가 어리석은 자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나 접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6-28절까지 읽어보자.
아비가일이 지혜로웠다고 했는데 여태까지는 행동만 봤고 이제 그의 지혜로운 입술이 돋보인다. 다윗이 자기 손으로 피 흘리고 보복하러 왔는데 여호와께서 막으셨다고 표현한다.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이 나발같이 되길 원하는데 당신은 나발같은 사람이 아니지않느냐라고 하면서 뒤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고'라고 했다. 당신이 비록 양식을 빌러 왔지만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집'이라는 단어는 다윗이 '왕'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기에 아비가일이 혜안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다윗을 높이 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의 싸움을 싸워야지 분노를 표출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도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해 분노를 표출한다. 하나님마음에서,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는게 필요하다. 그게 지혜다.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당신은 그런 사람이고 내 주의 일생에 악한 일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다윗 당신은 여태 악한 일을 한적도 없고, 이유 없이 피를 묻힌 적도 없는데 왜 그러냐. 지금 이것은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29절에, '내 주의 생명이 생명싸개에 싸여있다'는 말은 기도하면서 많이 인용한다. 재현이처럼 군 생활을 할때 보통 생명싸개 속에 보호해달라 기도하는데 이게 아비가일의 기도다. 30절을 보면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라는 것은 다윗이 왕이 되실 분이라고 하는 것이다. 무서운 말이다. 왕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31절을 보자.
당신은 왕이 되실 분이기에 무죄한 피를 흘린들 무슨 허물이 될것이며 친히 보복한다고 무슨 슬퍼할 일이 되겠냐마는 왕이 되실 분이기에 내 주의 마음에 깨름찍한 것이나 걸리는 것이 없으면 좋겠다. 그리고 왕이 되실때 여종을 생각해달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윗이 아비가일의 행동과 특히 이 말을 유념했던 것같다. 나발이 죽고나서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시집오라고 한다. 아비가일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지혜로운 아름다움을 본 것 같다. 분노한 다윗의 분을 식히고 스스로를 의롭게 보는 태도를 하나님 앞에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이렇게 큰 일 할 분이 이런 사소한 일에 거리끼는 과거를 남겨야 되겠냐. 이런 충고를 해주는 아비가일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이게 어디서 왔나? 여호와를 경외함에서 온 것이다. 다윗이 하는 일을 조목조목 판단했다면 다윗이 아비가일의 말을 들었을까? 그러지 않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해석해 주니까 다윗도 그것을 들은 것이다.
32절을 보자.
32절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사무엘이 죽어서 영적 인도자가 없고 광야로 나간 것 같은 다윗이 분노에 의해 오판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아비가일이 들려줬다. 그리고 다윗의 위대함은 아비가일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은 것이다. 아 나를 아비가일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이 구렁텅이에서 건지시고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시는구나. 아비가일도 대단하고 다윗도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게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
34절을 보면,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않았으면'이라는 부분에서 아비가일의 행동으로 다윗에게도 아비가일에게도 복인 된 것이다.
35-38절을 보자.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돌아와보니 나발은 아무것도 몰랐다. 자기가 죽는 것도 몰랐고 심지어 왕 같은 잔치를 배설하고 즐기고 있었다. 아비가일이 아무말도 하지않다가 그가 술 깬 후 전말을 이야기했는데 나발이 그 말에 충격을 먹고 몸이 굳었다. 그리고 열흘 후에 죽었다. 하나님이 치신 것이다. 다윗의 손으로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내가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생각하고 기다리는게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을 내게 맡기고 너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죄하고 판단하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느끼게 만들지 않으셨고 사랑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하고 하면서 판단하고 잘못한 사람을 과도하게 깎아내리면서 나는 우월하다 느끼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그건 지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나발의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윗의 이야기를 하려는건데 본문 배경이 사무엘이 죽었을 때였다. 다윗이 자기 군사력과 힘을 하나님께서 맡기신게 아니라 내가 이 군사들을 동원해 얼마든지 나발같은 놈을 죽일 수 있다고 교만하는 위기상황이 된 것이다. 그랬다면 그는 왕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너의 인물됨은 그만큼이다 하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비가일을 통해 말씀해 주시고 다윗은 그 말을 들으면서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는 왕으로 발돋움하는 또 한번의 기회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일이 안된다고 불평하지 말고 놔둬라. 내가 좋아하는 목사님 중에 박동찬이라는 목사님이 있는데 이분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 뜻이 아니면 안된다'는 말씀을 그렇게 좋아한다. 그런데 이걸 어디에 써먹냐면, 원하는 대로 일이 안 되고 불평할 일이 생길 때, 어려움에 처하든지 할 때마다 다 하나님 뜻이라 생각하니까, 뭐 화낼 것도 없고, 하나님 뜻이라는데, 참새 두 마리도 하나님이 돌보시는데 이 일은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는다면 말이 안되지 않느냐. 이 일도 하나님이 돌보셨으면 하나님 뜻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 말하겠느냐. 받아들여라. 이래서 이 분은 상당히 지도자로 발돋움 했다. 다른 분과 대화를 할 때와 이 분과 대화를 할 때 차이가 많이 느껴진다. 그 목사님과 나와는 사실 한 살 차이다. 많은 일들이 있는데 이것도 하나님 뜻이다라는 것으로 그 사람은 지도자의 소양을 키웠다. 아비가일의 이야기, 다윗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말고 우리 삶에 적용하자. 오늘 하나님은 아비가일과 다윗을 통해 신앙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신다.

목사님 기도 : 다윗이 위대해 진것은 다윗이 믿은 신앙이 그를 위대하게 한것임을 믿습니다. 아비가일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상황을 보니 지혜로워졌다고 믿습니다. 하나님,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롭게하시고 하나님 뜻을 읽어내는 마음을 주옵소서.


푸른초장 맑은 물가 “다윗과 아비가일과 나발"

오늘은 아비가일이라는 지혜로운 여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칼에 의한 멸문지화에서 가문을 건져 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잠 14:1). 이런 말씀을 대하면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 은혜가 되기보다는 부담스러운 말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추궁하거나 책망하기 위한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은 지혜로운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잠언 9:10; 시편 111:10). 아비가일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지혜로워질 수 있다는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말씀이다. 결국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본문은 사무엘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사무엘의 죽음은 영적 지도자의 상실을 의미한다. 다윗은 이제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나님을 만나 지혜로운 길을 가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그가 바란광야로 갔다는 것도 같은 의미를 보여 준다. 다윗은 사무엘의 죽음으로 인하여 신앙적으로, 그리고 인생의 여정에서 광야와 같은 상태가 된 것이다. 이때 나발의 양털 사건이 벌어졌다.

나발은 큰 부자였다.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나 되었다. 당시에는 치안이 안정된 시대가 아니어서 언제든지 도적 떼의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다윗의 사람들이 나발의 양 떼를 돌봐 주어 공격을 받지 않게 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었다. 따라서 양털을 깎는 날 다윗이 나발에게 사람을 보낸 것이다. 양털을 깎는 날은 추수하는 날과 같아서 풍요롭고 넉넉한 날이었다.

그런데 나발은 다윗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다윗을 모욕했다. 이것은 나발의 어리석음이요 교만이었다. 이에 다윗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발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나발의 일꾼들이 아비가일을 찾아가 상황을 보고했다. 첫째, 다윗의 부하들이 베푼 도움을 보고했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상하지 아니하였고 ...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아무것도 잃지 아니하였나이다” (삼상 25:15-16). 둘째, 주인이 다윗의 전령들을 모독하였고, 다윗은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보고했다(17절). 일꾼들이 생각하기에 나발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사람이었기에 지혜로운 아비가일에게 보고한 것이다.

아비가일은 상황 파악이 빨랐다. 그녀는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라고 했다. 아비가일은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만일 말했다면 타이밍도 놓쳤을 것이고 반대에 부딪혔을 것이다.

아비가일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마주 내려오는 것을 만났다.아비가일은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말했다. 첫째, 이 죄악은 나의 허물이니 용서해 달라. 둘째, 나발의 행동은 어리석었다. 셋째,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으로 피 흘려 보복하는 일을 막으셨다. 넷째,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 친히 보복했다는 것은 허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사람됨을 알고 있었고, 다윗을 높였으며, 분노에 의해 행동하는 지도자가 되지 말 것을 요청했다. 아비가일은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31절). 이 말 때문인지 후에 다윗은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한다.

아비가일의 말을 들은 다윗은 그녀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다. 그리고 복수하지 않았다. 다윗은 아비가일이 피의 복수를 막아 나발의 집이 멸망하지 않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노도 다스리게 하였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무엘이 죽은 후에 아비가일을 통해 말씀하셨고, 다윗은 그녀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분노하면 자제력을 상실하고, 생각이 좁아지며, 자신은 의롭게 여기고 상대는 악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흐름을 제어한 다윗도 위대하고, 이 흐름에 맞서 다윗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를 설득한 아비가일도 위대하다.

다윗과 아비가일의 지혜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윗은 자신의 정당성에 함몰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사태를 보았다. 아비가일은 성군이 되실 분에게 분노에 의한 피의 보복은 허물이 될 것임을 말함으로써 다윗을 더 큰 인물로 세워 주었다. 반대로 나발은 열흘 만에 죽었다. 그는 재산도 잃고, 명예도 잃고, 하나님의 마음도 잃어버렸다. 결국 나발의 부와 권력은 허상이었다. 그것은 진정 그의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지혜의 근원이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오늘 본문은 아비가일과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때 지혜로워지고, 가문을 구하고, 나라를 구한 것을 보여 준다. 동시에 물질에 마음을 빼앗겨 교만해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린 나발의 어리석음과 몰락도 보여 준다. 아비가일은 진주보다 값진 여인이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잠언 31:10). 아비가일의 지혜와 현숙함은 여호와를 경외함에서 시작되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언 31:30).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받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느니라” (잠언 19:14). 지혜로움은 가문도 세우고, 나라도 세우며, 교회도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도 세운다.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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