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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의 향기

경북 예천 소백산 용문사 보광명전 주련

작성자백우|작성시간16.02.16|조회수346 목록 댓글 6

                    경북 예천 소백산 용문사 보광명전 주련

                    慶北 醴川 小白山 龍門寺 普光明殿 柱聯

  

보광명전(普光明殿)

 

보광명전(普光明殿) 편액       -송월(淞月) 스님 글씨-

 

   용문사는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번지(용문사길 285-30) 소백산(小白山) 줄기인 용문산 남단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입니다.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景文王) 10년인 870년 두운(杜雲)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두운 선사는 풍기 희방사(喜方寺)를 창건한 신라 말기의 스님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치 못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하여 용문사(龍門寺)라 불렀다고 합니다.

 

   고려 명종(明宗) 때 절의 왼쪽에 있는 봉우리에 세자(世子)의 태(胎)를 묻고 사액(寺額)을 '용문산 창기사(龍門山 昌期寺)'로 개명했으나, 조선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산 용문사(成佛山 龍門寺)'로 다시 고쳤고, 정조 때 문효세자(文孝世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소백산 용문사(小白山 龍門寺)'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헌종(憲宗) 1년(1835)에 역파(坡) 대사와 상민(尙敏)ㆍ부열(富悅) 스님 등이 소실된 보광명전과 해운루를 중건하였습니다.

 

   용문사는 고려시대에 수백 명의 승려가 상주하였다고 하는데, 여러 차례 외침을 당할 때마다 '일만승제(一萬勝祭) 삼만승제(三萬勝祭)'를 올려서 국란 극복을 위해 기도하였던 곳입니다. 또, 임진왜란 시 승병들의 지휘소로 이용되었던 자운루가 용문사에 아직도 남아 있어 호국불교의 기풍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대부분 건물은 고려 의종(毅宗) 때 자엄대사(資嚴大師)가 초창한 건물이며 그 뒤 중건과 중수 기록이 뚜렷이 남아 있었으나, 1984년의 대화재로 인해 보광명전과 해운루ㆍ응향각ㆍ영남제일강원ㆍ요사ㆍ종무소 등이 소실된 바 있습니다.

 

 

                                    

 

 

               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변시방중

               三世如來一切同             삼세여래일체동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汪洋覺海渺難窮             왕양각해묘난궁

 

               부처님 몸    두루하여     시방세계     충만한데

               삼세의        여래 또한    모두가        한 몸일세.

               넓고 크신    자비원력     항상하여     다함없고

               넓고 넓은    깨침바다     헤아리기     어렵다네.

 

 

   【解說】

 

   용문사의 본전인 보광명전(普光明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입니다.  4개의 기둥에는 불신게(佛身偈)가 걸려 있습니다.

 

   이 불신게는 대웅전이나 보광명전에 늘 등장하는 주련입니다.  그래서 익숙한 주련인데, 이 게송은 《석문의범(釋門儀範)》『삼보통청(三寶通請)』「가영(歌詠)」

에 나옵니다.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변시방중)

   부처님 몸 두루하여 시방세계 충만한데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은 부처님의 몸이 시방(十方)에 두루하다는 말입니다.  불신(佛身)을 말할 때 삼신(三身)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법신(法身)ㆍ보신(報身)ㆍ화신(化身)을 말합니다.

   법신(法身)에 대하여 간단말씀드리면, 진리를 몸으로 하고 있다는 뜻으로 진리 그 자체, 영원의 이법(理法)으로의 부처님을 말합니다.  본체(本體)로서의 신체, 그것은 순수하여 차별상이 없으며, 것은 공(空)과 같은 것입니다.

 

   보신(報身)은 과보와 수행으로 이루어진 불신(佛身)으로 이는 오랜 수행의 과정을 겪어 무궁무진한 공덕이 갖추어진 몸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공덕을 갖춘 전형적인 예가 바로 불신(佛身)의 특징인 32상(相) 80종호(種好)로 나타납니다.  과거 법장비구(法藏比丘)가 수행하여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되셨으며, 과거 호명보살(護明菩薩)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되셨는데 이렇게 이루어진 몸을 보신(報身)이라 합니다.이는 법신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신(化身)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을 합니다.  이것은 보신(報身)처럼 시방삼세(十方三世)에 걸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완전ㆍ원만한 이상적인 불신(佛身)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와 지역과 상대에 따라 그것들의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있어서의 정한 사람들을 구제 하기 위해 출현하는 부처님을 말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화신입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가지가지 모습으로 나투시기 때문에 천백억 화신 석가모니불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불신(佛身)은 삼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삼신은 곧 하나입니다.  불신이 온 우주에 두루하다는 것은 법신은 온 우주를 체(體)로 삼고 있음을 말합니다.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삼세의 여래 또한 모두가 한 몸일세

 

   삼세여래(三世如來)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말합니다.  이 삼세의 부처님이 일체동(一切同)이라 했습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같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일체동(一切同)이라 했지만 다른 사찰에서는 대부분 일체동(一體同)이라 하고 있습니다.  삼세여래는 한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뜻은 똑같습니다.

 

   삼세여래(三世如來)는 보통 연등불(燃燈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미륵불(彌勒佛)을 이르지만, 또 삼천불(三千佛)을 이르기도 합니다.  즉, 과거 장엄겁(莊嚴劫)의 천불(千佛), 현재 현겁(賢劫)의 천불, 미래세 성수겁(星宿劫)의 천불을 말합니다.  그래서 불경을 보면 수많은 부처님의 명호가 나옵니다.  연등불ㆍ아미타불ㆍ약사여래불ㆍ보광불ㆍ보명불ㆍ보정불ㆍ석가모니불ㆍ미륵불....등등.

 

   그런데 이런 모든 부처님이 명호(名號)만 다를 뿐 그 본체(本體)는 법신(法身)이므로 모두 같은 한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넓고 크신 자비원력 항상하여 다함 없고

 

   광대(廣大)란 덕(德)이 크고 넓음을 말하고, 원운(願雲)이란 자비원력(慈悲願力)이 구름 같이 많음을 비유한 말입니다.  항부진(恒不盡)은 항상 다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지혜와 덕상을 갖추신 부처님께서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어 세운 원력은 참으로 존엄하고 장엄합니다.  중생을 위하시는 자비스런 마음은 마치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구름과 같아서 원운(願雲)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이와 같은 마음은 중생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묘난궁)

   넓고 넓은 깨침바다 헤아리기 어렵다네.

 

   왕양(汪洋)이란 넓고 큰 바다를 뜻합니다.  각해(覺海)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바다에 비유한 말입니다.  깨달음의 성품이 깊고 깊어 바다와 같이 깊고 넓음으로 각해라 합니다.  《수능엄경(首楞嚴經)》권6에 "각해의 성품은 맑고 원만하며, 원만하고 맑은 깨달음은 원래 묘하다. (覺海性澄圓 圓澄覺元妙)라 하였습니다.

 

   묘난궁(渺難窮)은 아득하여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찰에 따라 묘난궁(妙難窮)이라 한 곳도 많습니다.  미묘하여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불교의식집인 《석문의범(釋門儀範)》을 찾아보면 같은 책에서도 '묘(渺)'라 되어 있는 곳도 있고, '묘(妙)'라 되어 있는 곳도 있습니다. '묘(渺)'는 '아득할 묘'자로 물이 끝없이 넓다는 뜻입니다.  왕양각해(汪洋覺海)라 했으니 '묘(渺)'가 마땅하지만 넓고 넓은 깨달음의 바다는 또한 묘(妙)하니 또한 헤아리기 어렵다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바다는 헤아리기 어려워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입니다.래서 넓고 넓은 바다에 비유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 같이 한량없는 무진법문(無盡法門)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신다는 내용입니다.

 

   부처님의 지혜와 방편, 중생을 구제하시려는 대자대비의 은혜는 한량없어 그 은혜를 헤아리기 어렵고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우리의 귀의처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은 곧 진리이며 삶의 최고 가치임을 확신하고 불세계에 도달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부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늘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경하면서 부처님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불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일러 주신 계정혜 삼학을 언제나 마음 깊이 간직하여, 몸과 마음을 맑히고 고요히 명상하며 자신의 실상을 가다듬는 불자로, 보다 마음을 넉넉하게 가지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 온화한 미소를 띠고 정심정행(正心正行)며 살아가기를 합장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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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19 감사합니다. ^-^ _()_ _(())_
  • 작성자묘법 | 작성시간 16.02.16 ....나무묘법연화경()()()
  •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19 감사합니다. ^-^ _()_ _(())_
  • 작성자비니초 | 작성시간 16.02.17 나무석가모니불 _()()()_
  •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2.19 감사합니다. ^-^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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