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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연비에 대하여 질문드립니다. / 연비(燃臂)에 대하여

작성자백우|작성시간13.01.02|조회수265 목록 댓글 8

연비(燃臂)에 대하여

 

일타(日陀) 스님의 기도를 읽고 계시는군요. 일타 스님의 구도의 신심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거룩합니다. 손가락 네 개 열두 마디를 소지공양(燒指供養)올린 것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신심과 구도의 지극한 발원이었습니다. 그런 결의로 구도하셨으니 해탈을 이루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연비(燃臂)는 글자 그대로 팔을 태운다는 뜻입니다. 왜 팔을 태울까요?

 

수계를 받은 불자는 누구나 연비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연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도를 구하고자 출가한 사람은 우선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이때 자신을 인도할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데 스승을 잘 만나야 공부길이 열립니다.  자기를 인도할 스승을 은사스님이라 합니다.

 

은사스님을 만나면 행자시절을 거쳐 정식 스님이 되는 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것을 득도식(得度式)이라 합니다.  세속을 떠나 출세간으로 떠난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 삭발과 함께 계를 받게 됩니다.  이때 연비를 하게 됩니다.

 

머리는 무명초(無明草)라 하여 무명(無明)을 없앤다는 의미로 머리를 삭발합니다.  

 

연비는 무명에 덮혀 번뇌로 점철된 수많은 생의 잘못을 참회하고 새로운 발심으로 그릇된 상(相)을 부수고 불퇴전의 신심을 보이고 스스로를 경책하며,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남도 제도(濟度)할 것과 불법을 수행정진하여 불도를 이룰 것을 맹서(盟誓)하는 의미에서 팔뚝에 초심지를 올려 놓고 살갗을 태우는 의식을 말합니다.

 

재가불자도 오계(五戒)나 십선계(十善戒)를 받을 때 연비를 합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팔뚝에 연비자국이 훈장처럼 남아 있습니다. 예전엔 팔뚝에 초심지를 올려 놓고 연비를 행하였지만 지금은 향불로 살짝 대었다 떼는 정도여서 찰나간에 따끔한 정도입니다. 이 찰나간의 따끔함에 정신이 번쩍 들어 지나간 허물이 돈탕진(頓蕩盡)하는 것이죠. 순간적으로 싹 없어진다는 이야깁니다. 이리하여 계체(戒體)가 서고 새로운 불자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자라면 누구나 계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예전에 처음 수계를 받았을 때 심지를 올려 놓고 불을 붙여 연비를 경험했는데 그 뜨거움을 모른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수계식은 향불로 받았지요.

 

수도정진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육신의 고통은 말도 못합니다. 연비는 이러한 육신의 고통도 감내할 만큼 불퇴전의 신심을 보이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참스승을 만나 얼마나 도를 구하려는 마음이 간절했던지 달마스님을 찾아 구도하던 신광(神光)스님은 설중단비(雪中斷臂)의 신심을 보여 달마대사의 뒤를 이은 혜가(慧可)스님이 되었고, 신라의 혜통(慧通) 스님은 당에서 법을 펴는 선무외(善無畏) 삼장을 찾아가 법을 구했는데 만나 주지 않자 불화로를 이고 가 머리가 익어 터지는 신심을 보여 제자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설화가 유래 되어 연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연비는 이와 같이 법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치겠다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지극한 신심을 고취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식입니다.

 

연비와 함께 소신공양(燒身供養)과 소지(燒指供養)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소신공양은 <법화경> 「약왕보살 본사품」에 희견보살이 소신공양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상식방에 소신공양편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소신공양으로 유명한 이야기는 김동리 선생 소설의 <등신불>이 회자 되기도 했고, 베트남의 꽝뚝(光德) 스님은 정부의 불교탄압에 저항하는 결연한 의지로 소신공양을 올린 바 있습니다. 최근에 문수스님께서 4대강 반대의지를 천명하며 스스로 몸을 불살라 공양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몸을 오롯이 바치는 소신공양이 불교적인 것이냐 하는 비평도 있습니다. 불교가 자비구현을 위하여 몸을 온전히 던져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보살심의 극치를 보이는 것이지만 스스로 자기 몸을 불살라 부처님께 공양한다는 것이 과연 불법에 온당하는냐 하는 것에 대하여 이것은 어느 틈엔가 들어온 외도의 가르침이 침투한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손가락을 태우며 공양을 올렸다는 이야기는 많이 나옵니다. 소지공양을 올릴 때 동반하는 고통은 말도 못합니다. 조금만 불에 데어도 얼마나 뜨겁습니다까?  자칫 잘못하면 뇌암에 걸려 죽는다고 이 시대의 신의(神醫)라 일컬어졌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熏) 선생은 연지(燃指)에 대하여 말했던 글이 생각납니다.  일타 스님을 비롯 혜국(慧國)의 소지공양이 유명하지만 많은 비구ㆍ비구니 스님들이 지극한 구도심의 발로로 소지공양을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분명 구도심이 지극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여 그 뜻을 성취하셨을 뿐만 아니라 세인의 존경을 받을 훌륭한 선지식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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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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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06 재미있지요? 일타스님의 부친의 신심이 너무 훌륭해서 탄복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가끔 해드리곤 했지요. ^-^ _()_
  • 작성자소국화 | 작성시간 13.01.03 성현님들께 저절로 고개숙여집니다.
    저도 덕분에 공부했습니다._()_
  •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06 감사합니다. 소국화님은 연비 경험이 많으시지요? 연비, 소지, 소신도 있지만 중국영화를 보면
    스님들 머리에 머리를 태운 흔적이 보이는데 이를 연정(燃頂)이라 합니다. 중국 특유의 방법이죠. ^-^ _()_
  • 작성자염화 | 작성시간 13.01.04 송년선물 '기도' 잘 봤습니다. 연비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0^ _()_
  •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06 감사합니다. 연비는 찰나간에 따끔하고 말지요. 마치 쓱뜸 뜨듯... 그러나 소지는 어떻게 하며,
    소신공양을 함에 있어 자세를 흐뜨리지 않는 정신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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