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道峰山) 망월사(望月寺) 순례(巡禮)
눈 덮인 영산전이 보입니다.
포대능선에서 약 500m 정도 내려오니 망월사가 보입니다. 이 대는 벌써 해가 저 산 너머로 넘어가는 중이어서 시계가 좀 흐립니다. 그래서 사진이 좀 어둡습니다. 이해 바랍니다.
금강문(金剛門)
망월사(望月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 말사입니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8년(639) 해호(海浩) 조사(祖師)가 여왕의 명에 의해 창건하여 서라벌 월성(月城)을 향하여 기원하는 뜻에서 망월사(望月寺)라 이름하였다 합니다. 혹은 망월사 대웅전격인 낙가보전의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으로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망월사라 했다고도 합니다.
그후 고려 제11대 문종(文宗) 20년(1066)에 혜거(慧炬) 국사가 재창(再創)하고 이후 열네 차례의 중수(重修)를 거쳐 오다가 조선 제22대 정조(正祖) 4년(1780) 삼창(三創)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후 1969년 주지 춘성(春城)이 퇴락한 선실(禪室)을 철거하고 2층의 석조 대웅전을 지었으며, 1972년에는 주지 도관(道觀) 스님이 본래 있던 염불당과 낙가암(洛迦庵)을 헐고 현대식 건물의 낙가암을 새로 지었습니다.
1986년부터는 주지 능엄(楞嚴) 스님이 대웅전을 헐고 선방, 관음전, 영산전, 요사채를 신축하였습니다. 이 절은 고려조의 혜거(慧炬), 영소(靈沼) 두 국사와 조선의 천종(天峰), 영월(映月) 도암(道庵) 3선사(三禪師)를 배출하였으며, 근대의 도인으로 숭앙받는 만공(滿空), 한암(寒岩), 오성월(吳性月), 춘성(春城)스님이 주석했던 곳입니다.
1층은 낙가보전(洛迦寶殿) 2층은 적광전(寂光殿)
2층 건물로 보이지만 속은 하나입니다. 안에는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을 비롯한 사십이수(四十二手) 관세음보살 등이 목각탱(木刻幀)으로 조성되어 있으나 마침 스님들이 기도 중이어서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주련은 찍었으니 주련방에 올리겠습니다. 사실은 주련을 담아서 올리고 싶어서 망월사(望月寺)를 다시 찾은 것입니다.
낙가보전(洛迦寶殿)은 관세음보살을 주존(主尊)으로 하는 전각을 말합니다. 낙가(洛迦)는 관세음보살의 주처(住處)인 보타락가(補陀洛迦山)에서 온 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은 낙가보전(洛迦寶殿) 외에도 보타전(寶陀殿), 관음전(觀音殿), 원통전(圓通殿), 대비전(大悲殿) 등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기와불사하는 모습
기와불사를 받는 분도 없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고...
여기서 스님 한 분을 만났는데 아이젠을 벗은 모습을 보시고선 한 말씀하시네요.
"아이고, 이 불자님들은 지혜가 있으시네. 다른 사람들은 아이젠도 안 벗고 다니던데... 몹시 불편할 텐데... 아이젠 잠깐이면 벗는데도 벗을 줄을 몰라. 안 그래요? ㅎㅎㅎ " "경내에 들어오면 당연히 벗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ㅎㅎㅎ"
절에 와서도 아이젠을 벗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가 봅니다. 아이젠을 신고 다니면 다니기도 불편하지만 자칫 시설물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으니 벗어야겠지요. 당연하것인데도 아닌 모양이네요. ㅎㅎㅎ
낙가보전에서 바라본 금강문 밖의 종각
낙가보전에서 천중선원으로 가는 문인데 출입금지입니다.
무위당(無爲堂)
인연에 의해서 작위(作爲)되는 것이 아닌 생멸변화를 여읜 상주절대(常住絶對)의 법을 무위법(無爲法이라고 합니다.
저 주련을 가까이서 찍고 있는데 스님께서 다가오시더니 주련을 찍느냐며 묻으시고는 빙긋이 웃으시며,
"소지백운비(笑指白雲飛)"
하시며 지나가시네요. 저도 따라서 웃으며 "소지백운비" ^^
무위당을 배경으로
천봉당(天峰堂) 태흘선사(泰屹禪師)의 부도(浮屠)와 탑비(塔碑)
망월사 천봉당 태흘탑 (望月寺 天峰堂 泰屹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 66 호
조선시대의 승려 천봉당 태흘(天峰堂 泰屹 1710~1793) 팔각원당형부도입니다. 팔각원당형부도는 기단ㆍ탑신ㆍ지붕이 모두 팔각형이고 단층인 부도로 지붕과 기왓골 등 세부는 목조건물 양식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천봉당 태흘 스님은 조선시대 스님으로 호는 천봉(天峰)이요, 자는 무등(无等)이고, 속성은 김씨요, 서흥(瑞興) 사람으로 16세에 유적사 명탁 스님에게 출가하고, 도원(道圓) 스님에게서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20세 때 은월우점(隱月雨霑)에게 학업을 배우고, 널리 다니면서 선지식을 찾았습니다. 배천의 호국사에 돌아가 참선에 힘쓰고, 풍계해숙(楓溪海淑)의 법을 받았습니다. 정조 17년 84세로 입적했습니다.
망월사 천봉선사 탑비 (望月寺 天峰禪師 塔碑) 경기도문화재자료 제 67 호
옆에 있는 천봉선사 태흘의 부도 탑비입니다. 탑비는 어떤 사적이나 글을 새겨 후세에 오랫동안 전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불교(佛敎)에서는 선종(禪宗)이 유행하면서 승려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서 부도와 함께 건립합니다. 이 탑비는 지대석 위에 비몸(碑身)과 개석(蓋石)을 올린 간단한 형식입니다.
문수굴(文殊屈)
바윗굴로 된 굴법당으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모시고 있습니다. 사진이 잘 안 나와서...
통천문(通天門) 천중선원(天中禪院)과 영산전을 가려면 이 문을 통해야 합니다.
통천문(通天門) 앞에서
천중선원(天中禪院) 여기는 출입금지입니다.
저 유명한 천중선원(天中禪院)입니다. 1981년 문경 봉암사와 더불어 조계종립 특별선원 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선원은 용성(龍城) 스님과 인연이 깊었다고 하는데 스님은 네 번씩이나 확철대오하여 도인들과 법거량을 나누는 등 조선 최고의 고승으로 이름을 떨치셨는데 1905년 서울에 상경한 뒤 다음해 망월사에서 법문을 했다 합니다.
그것을 계기로 망월사에 처음으로 선원이 개설되었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3ㆍ1만세 운동을 주도한 이유로 옥고를 치르자 제자인 동산(東山) 스님은 이곳과 종로 대각사에 머물며 은사 스님의 옥바라지를 했다 합니다. 1920년대에 들어 일제의 한국불교 말살 정책이 더욱 노골 화 되어 참선을 수행방법으로 삼는 청정비구승단의 고유 가풍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음을 걱정하여 62세의 노구를 이끌고 스님은 전통불교를 지키기 위해 참선납자들을 중심으로 망월사에서 ‘만일참선결사회’를 조직했다고 합니다.
‘정수별전선종활구참선결사’(精修別傳禪宗活句參禪結社). 이 긴 이름의 결사를 조직한 이유는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한국불교의 계율이 파괴되고 선이 몰락하는 것을 활구 참선을 통해 견성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자는 뜻이랍니다.
결사대중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오후불식, 묵언, 동구불출(洞口不出) 등 7항목의 청규를 만들었습니다. 만일결사라 하니 27년이 넘는 세월입니다. 당시 조실은 백학명스님이었으며 석우ㆍ고송ㆍ운봉ㆍ설봉ㆍ동산ㆍ경운ㆍ고암ㆍ상월ㆍ 춘성스님 등 이후 한국선종을 일으킨 걸출한 선승들이 대거 참여했다 합니다.
천중선원 위에는 고불원(古佛院)이 있는데 한 번도 못 가봤네요.
용성스님의 아홉 제자 중 고암스님과 인곡스님이 이곳에서 스승을 친견하고, 동산스님은 참선정진하며 스승을 옥바라지 하는 인연을 맺었으니 망월사가 한국선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다 할 것입니다.
만일결사가 통도사 내원암으로 옮겨 간 뒤 또 다른 도인이 이곳을 지켰으니 그 분이 바로 1930년대 말 망월사 조실로 후학을 제접한 금오스님이라 합니다. 스님이 조실로 있을 당시 10여명의 납자와 30여명의 청신녀들이 망월선회의 가풍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으로 망월사는 또다시 참화를 겪지만 간화선풍의 맥은 도도히 이어갔는데 치열한 전투 현장으로 변한 사찰을 버리지 않고 홀로 지켜낸 분이 저 유명한 춘성(春城) 스님입니다. 만해(萬海) 스님의 유일한 제자인 춘성스님은 ‘욕쟁이 스님’이라는 별호로 더 유명합니다.
그 뒤 스님의 뒤를 이어 정영스님이 선원장으로 주석하며 또 한 번 선풍을 드날렸으며, 1981년 망월사 선원은 조계종립 특별선원으로 지정되어 수많은 납자들의 정진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주지 능엄스님이 선원을 외호하며 오늘의 모습으로 탈바꿈 시켰습니다. 능엄스님은 선원 이름을 천중선원으로 바꾸고 선원 큰방과 요사채인 심검당을 신축했습니 다.
1994년 종단이 혼란한 와중에 종립선원의 지위를 잃었지만 오늘도 납자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합니다.
영산전(靈山殿) 부처님과 성문제자들을 모신 전각
석가삼존불. 내부를 찍었으나 모두 잘 나오지 않아서 참고로 가져온 사진임.
영산전에서 100m 떨어진 곳에 모셔진 혜거국사(慧炬國師) 부도탑(浮屠塔)
이 부도탑은 영산전 앞을 지나 옆으로 난 비탈길을 내려가면 보이기에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있습니다. 망월사에 몇 번 왔어도 미처 살피지 못한 곳입니다.
혜거국사(慧炬國師) 부도탑(浮屠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22 호
안내문에 있는 전문을 옮겨 봅니다.
고려 초기의 승려인 혜거(慧炬)의 부도(浮屠)로 높이가 1. 8m 이며, 탑신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팔각원당형 구조이다. 팔각원당형 부도는 기단ㆍ탑신ㆍ지붕이 모두 팔각형이고 단층인 부도로 지붕과 기왓골 등 세부는 목조건물의 양식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옆에서 본 모습
지대석은 삼단의 괴임으로 되어 있으며 자연 암반과 같은 종류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기단부는 팔각형이며 탑신부는 둥근 공모양으로 기단에 홈을 파서 올려놓아 안정감을 준다. 부도의 앞에 배례석으로 놓인 돌의 한 면에 "혜거탑(慧炬塔)"이라고 새겨져 있어 부도의 주인공을 알 수 있게 한다.
전체적인 조형감각 및 세부수법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산전에서 내려오다가
혜거국사의 부도탑을 찾아 참배하고 나오니 산사의 짧은 해가 져가고 있고 경내에는 사찰을 찾은 이들도 모두 다 돌아가서 사위가 조용합니다.
자꾸 혼자만 찍으라고 해서
그러고 보니 천중선원 뒷편에 있는 고불원이나 칠성각은 한 번도 찾질 못했네요. 다음 기회가 되면 반드시 찾아 보려 합니다.
해탈문(解脫門)
조용한 산사에 있으니 심신이 탈락하여 해탈을 얻은 듯 착각에 빠져듭니다. ㅎㅎㅎ
조선말기의 스님인 월조당(月照堂) 계총선사(桂叢禪師) 사리부도탑
이 부도탑은 축대 아래에 모셔진 부도탑인데 아무런 설명도 없어서 행적을 알 수 없습니다.
이를 끝으로 망월사 순례는 끝이 났고 발걸음 가벼이 하산하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우리 향불교 법우님들과 사찰순례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백우 합장 _()_
|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1.21 아, 주련이 아른거려서... 우선 내일 낙가보전 주련 하나 올리고... 망월사에 큰스님들의 발자취가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욕쟁이 스님이라는 춘성 스님 소설이 나왔던데 구입해 봐야겠어요. ^-^ _()_
-
작성자묘법 작성시간 10.01.21 천중선원 오늘도 동안거 용맹정진 하시는 스님들 모습이 선 합니다. 좋은데 다녀 오셨내요....나무묘법연화경()()()
-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1.22 지난번 함께한 생각도 나고... 겨울 산사의 모습은 또 다른 묘미가 있네요. ^-^ _()_
-
작성자무소유 작성시간 10.01.22 킹왕짱 백우님 사진 찍는 기술이 무척 좋아지셨네요~ 쵝오네요~ ㅎㅎ
-
답댓글 작성자백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1.22 감사합니다. 나중에 모델 좀 되어 주세요. ㅎㅎㅎ ^-^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