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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무고집멸도 無苦集滅道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1) 사성제(四聖諦)란
이제 십이연기(十二緣起)에 이어 사성제(四聖諦)를 공부할 차례입니다. 우리는 앞서 십이연기에서 유전연기(流轉緣起)는 중생들의 번뇌가 연기되어 마침내 고통으로 나타남을 살펴보았고, 환멸연기(還滅緣起)는 그 고통을 소멸해가는 방법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십이연기에 뒤이어 나온 사성제 말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나서 녹야원(鹿野苑)에서 처음 법륜(法輪)을 굴리실 때 교진여(憍陳如) 등 오비구(五比丘)에게 처음 설하신 법문(法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합니다. 십이연기와 사성제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무명(無明)에서 비롯되어 마침내 고(苦)로 드러나는 십이연기법... 사성제는 이 연기법을 설하시면서 등장하게 되는 가르침입니다. 사성제(四聖諦)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란 뜻입니다.
제(諦)란 무슨 뜻인지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제(諦)란 범어 Satya의 한역어입니다. 그 뜻은 진실하여 착오가 없는 것,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을 말합니다. 즉 진리(眞理)란 뜻입니다. 諦는 '살필 체'이지만 진리를 뜻할 때 불교에서는 '제'로 읽기 때문에 '진리 제(諦)'로 알아 두시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래서 사성제(四聖諦)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말합니다. 사성제를 줄여서 사제(四諦)라고도 합니다.
2) 사성제(四聖諦)의 내용
사성제(四聖諦)란 고ㆍ집ㆍ멸ㆍ도(苦集滅道)를 말합니다. 이는 바로 십이연기에서 살펴본 유전연기와 환멸연기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고의 생성과 소멸을 하는 방법을 설하신 부처님의 인간의 괴로움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말한다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하에서 깨달음을 얻으실 때는 십이연기를 관찰하셨고, 녹야원에서 처음 법륜을 굴리실 때는 사제ㆍ팔정도를 설하셨습니다. 이는 십이연기의 내용이 방대하여 그 내용을 쉽게 실천하는 방법으로 설하셨다 할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미혹(迷惑)하여 그로 인해 업(業)을 짓고 고통의 바다를 헤매고 있습니다. 이 혹ㆍ업ㆍ고(惑業苦)는 돌고 돌아 그칠 새가 없습니다. 사성제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직시한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즉, '미혹 속의 범부의 생존은 괴로움이다'라고 현실을 진단한 고성제(苦聖諦), '그것은 바로 갈애(渴愛)에서 비롯된다'하는 괴로움의 원인을 밝힌 집성제(集聖諦), '갈애를 소멸하여 괴로움을 소멸한 열반의 세계가 있다'는 멸성제(滅聖諦),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밝힌 도성제(道聖諦)를 말합니다.
① 고성제(苦聖諦)
불교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때 삼법인(三法印)을 설하시면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마음작용으로 드러난 모든 것은 항상함이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모든 현상은 자성이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그리고 '모든 법은 괴로움이다.' 하는 일체개고(一切皆苦), 이 셋을 삼법인(三法印)이라고 합니다. 혹은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빼고 '열반은 고요하다.'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어 삼법인(三法印)이라고도 합니다. 또는 이 넷을 사법인(四法印)이라고도 합니다. 법인(法印)이란 '이것은 진리다' 라는 부처님의 싸인입니다. 이 삼법인 중 일체개고인(一切皆苦印)은 현실의 진단입니다. 즉, '미혹의 세계에 사는 범부의 삶은 괴로움이다.' 라고 진단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일까요? 괴로움 중 가장 큰 괴로움은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괴로움입니다. 생(生)이 괴로움이다 하는 것은 미혹(迷惑)으로 인하여 윤회(輪廻)하면서 계속해서 태어나는 괴로움입니다. 노병사(老病死)는 글자 그대로 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 괴로움입니다. 이 네 가지를 사고(四苦)라고 합니다.
여기에 다시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괴로움'인 애별리고(愛別離苦)가 있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이와 만나는 괴로움'인 원증회고(怨憎會苦)가 있고,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괴로움'인 구부득고(求不得苦)가 있고, '오음(五陰)이 치성(熾盛)하여 이루어진 괴로움'인 오음성고(五陰盛苦)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고(四苦)를 더하여 팔고(八苦)라고 합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큰 괴로움도 괴로움이지만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도 큰 괴로움입니다. 애지중지 하는 물건을 잃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싫어하고 미워하는 대상과 만나는 것도 큰 괴로움입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도 있듯이 말입니다.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괴로움도 큽니다. 기대했던 것에 대한 실망도 괴로움입니다. 하고자 하는 것이 좌절되었을 때도 괴로움이 큽니다. 오음성고(五陰盛苦)란 심신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망상이 치성한 것이 다 괴로움이다 라는 뜻입니다. 오음(五陰)이 오온(五蘊)을 뜻하는 것은 아시죠? 그래서 오음성고(五陰盛苦)를 오취온고(五取蘊苦)라고도 합니다.
이 사고팔고(四苦八苦), 108번뇌, 8만 4천 번뇌가 다 괴로움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현실은 고(苦)입니다. 이것은 현실의 냉철한 판단이지 결코 허무주의(虛無主義)나 염세주의(厭世主義)를 표방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라는 현실의 진단은 현재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래서 고성제는 현재의 결과를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현재의 고라는 결과가 나타났는가에 대한 원인 규명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다음의 집성제(集聖諦)가 원인입니다. 집성제로 넘어갑니다.
② 집성제(集聖諦)
집성제(集聖諦)는 괴로움의 원인을 밝히는 진리입니다. 집(集)이란 모여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이 모여서 일어나 괴로움을 만들까요? 그 원인은 숱하게 많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무명(無明)으로부터 비롯된 갈애(渴愛)입니다. 갈애란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집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한없는 욕망으로 인하여 탐욕(貪欲)이 일어나 온갖 괴로움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온갖 번뇌망상을 만들어 냅니다. 불교에서는 근본 번뇌 세 가지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손상시키는 독(毒)이라 해서 탐 ㆍ진ㆍ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 말합니다. 이는 모두 무명(無明)으로부터 비롯된 번뇌(煩惱)로 괴로움을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성제(集聖諦)는 괴로움을 만드는 원인을 규명한 진리입니다.
③ 멸성제(滅聖諦)
괴로움의 원인인 번뇌를 끊은 상태가 멸성제(滅聖諦)입니다. 이는 일체의 갈애(渴愛)를 멸하고 괴로움을 멸한 해탈(解脫)이자 열반(涅槃)의 경지를 말합니다. 멸(滅)이란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멸이란 열반(涅槃)을 말합니다. 열반(涅槃)이란 범어 nirvāna의 음역으로 니원(泥洹)이라고도 하며 이를 한역하여 멸(滅)ㆍ적멸(寂滅)ㆍ멸도(滅度)ㆍ적(寂)이라고 의역합니다. 열반의 뜻은 원래 '불어 끈다', '불어 끈 상태' 란 뜻으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완전히 멸진(滅盡)하여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합니다. 불자는 이것에 도달하기 위해 목표로 삼고 정진합니다. 그러면 이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네 번째 진리인 도성제(道聖諦)입니다.
④ 도성제(道聖諦)
도성제(道聖諦)는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밝힌 진리입니다. 이는 괴로움을 없애고 고요한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그 길은 바로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입니다. 팔정도는 중도(中道)의 길입니다. 이 팔정도야말로 열반에 이르는 가장 훌륭한 실천덕목입니다.
팔정도(八正道)란 여덟 가지의 중도 실천 덕목으로, 바른 견해를 가지라는 정견(正見), 바른 생각을 가지라는 정사유(正思惟), 바른 말을 하라는 정어(正語), 바른 행위를 하라는 정업(正業), 바른 생활을 하라는 정명(正命), 바른 노력을 하라는 정정진(正精進), 바르게 마음 집중하라는 정념(正念), 바른 선정을 하라는 정정(正定)을 말합니다. 그러면 팔정도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3) 팔정도(八正道)의 가르침
① 정견(正見) - 바른 견해 -
정견(正見)이란 바른 견해를 말합니다. 이는 불교(佛敎)의 바른 세계관(世界觀)과 인생관(人生觀)으로서 연기(緣起)와 사제(四諦)에 관한 지혜를 말합니다. 실상(實相)을 바로 보는 눈을 말합니다.
<대염처경(大念處經)>에서 부처님께서 정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올바른 견해란 고에 관해서 확실히 알고, 고의 원인에 관해서 확실히 알고, 고의 멸에 관해서 확실히 알고, 고의 멸에 이르는 길에 관해서 확실히 아는 것을 정견이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사견(邪見)이란 무엇일까요? <중아함 삼도경(中阿含 三度經)>에 사견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요약해 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그릇된 견해를 가진 외도(外道)가 있는데 대략 세 가지 견해를 가졌다고 합니다.
첫째는 '사람이 세상에 경험하는 것은 괴롭든 즐겁든 모두 전생(前生)의 업에 의한 것이다.'라는 견해로 숙명론(宿命論)을 말합니다.
둘째는 '모든 것은 절대자 자재천(自在天)의 뜻에 의한 것이다'라는 견해로 존우론(尊祐論)을 말합니다.
셋째는 '사람이 하는 바는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라는 견해로 우연론(遇然論)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 가지 견해는 삿된 견해로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부정되고 마침내는 커다란 혼란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라며 "슬기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그릇된 의견을 잘 가려내어 버리고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정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② 정사유(正思惟) - 바른 생각 -
정사유(正思惟)는 바른 생각을 말합니다. 이는 말이나 행동에 앞서 바른 의사(意思) 또는 결의(決意)를 나타냅니다. 이는 탐진치(貪瞋癡)의 번뇌 작용을 벗어난 바른 사유(思惟), 의사(意思)의 작용입니다.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바른 행동이 나올 수 없습니다. 바른 생각을 가지면 자연히 바른 행동이 나오고 바른 말이 나오게 됩니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청정하려면 먼저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③ 정어(正語) - 바른 말 -
정어(正語)는 정사유(正思惟) 뒤에 생기는 바른 언어적 행위입니다. 망어(妄語 거짓말)ㆍ악구(惡口 욕설)ㆍ양설(兩舌 이간질)ㆍ기어(綺語 꾸밈말)를 하지 않고 진실하고 남을 사랑하며 융화시키는 유익한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 속에 삿된 견해를 가지고 악한 생각을 가지면 말도 바르게 나오지 못합니다.
입으로 짓는 구업(口業)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망어(妄語)입니다. 거짓말을 말합니다. 이는 남을 속이는 일이지만 자기 양심을 속이는 비열한 짓입니다.
둘째는 악구(惡口)입니다. 이는 거친 말로 욕설을 말합니다. 악담, 상스러운 말은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일입니다.
셋째는 양설(兩舌)입니다. 이간질을 말합니다. 한 입 가지고 두 말하는 것은 신용을 손상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이쪽에서 이 말하고 저쪽에서 저 말하여 두 사람의 관계를 벌어지게 하고 화합을 깨는 역할을 합니다.
넷째는 기어(綺語)입니다. 비단결 같은 말로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밀복검(口蜜腹劍)이란 말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달콤하게 말하면서도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사기꾼의 전형입니다.
이와 같은 구업은 삿된 생각에서 나옵니다. 이와 같은 언어생활로는 늘 남을 속이고 화합을 깨뜨려 사회를 혼탁하게 하니 도와는 십만 팔천리입니다.
언어생활에 있어서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위화감을 주는 말을 삼가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 진실하고 다정한 말, 공손하고 위하는 말은 세상을 따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도에 합당한 말입니다.
④ 정업(正業) - 바른 행위 -
정업(正業)이란 바른 행위를 말합니다. 모든 행위는 업(業)이 됩니다. 좋은 행위는 선업(善業)이 되고 나쁜 행위는 악업(惡業)이 됩니다. 정사유(正思 惟)에서 살펴보았듯이 생각이 어떠냐에 따라서 행위가 나옵니다.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악업이 뒤따릅니다.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악업은 살생(殺生)ㆍ투도(偸盜 도둑질)ㆍ사음(邪淫)을 말합니다. 또한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선업은 위의 세 가지 악업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살생 대신에 죽을 목숨을 살려 주는 방생(放生)을 행하고, 도둑질 대신에 보시(布施)를 행하고, 또한 사음을 떠나 성도덕(性道德)을 지키는 일입니다.
얼마 전 시골에 갔을 때 처남과 조카 등과 더불어 못자리 일을 끝내고 산골짜기에 있는 밭에 고추모를 심으로 갔는데 밭에 짐승들이 못들어 오게 철그물망을 밭가에 둘러 쳐 놓았는데 꿩들이 그 곁에서 놀다가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려다가 엉성한 그물망에 걸려 푸드덕 푸드덕 도망하려 하더군요. 모두 좋아라 하고 있는데 제가 제일 선두였지요. 꼼짝 없이 잡히게 되었는데 필사적으로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쓰더군요. 안타까운 마음에 다가가서 구출해 주려고 했는데 그 순간 활로를 찾고 달아나더군요. 뒤따라 오던 사람들이 크게 안타까워 했습니다. 꿩고기 맛있는데 하며... ㅎㅎㅎ
⑤ 정명(正命) - 바른 생활 -
정명(正命)은 바른 생활을 말합니다. 이것은 바른 직업에 의해 바르게 생활하는 것을 말하는데 삿된 생활[邪命]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출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행위로 살아가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첫째는 하구식(下口食)이라고 해서 입을 밑으로 향하게 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논밭을 경작한다든지 탕약을 만들어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앙구식(仰口食)이라고 해서 입을 위로 향하게 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데, 하늘을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이라든가 하는 방식에 의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방구식(方口식)인데 입을 사방으로 향해서 살아가는 것인데, 왕의 사신이 되어 타국에 간다든지 결혼 중매 등으로 업을 삼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넷째는 유구식(維口食)으로 입을 사유(四維 사방의 중간)로 향하여 살아가는 것인데 관상(觀相)이나 수상(手相) 등으로 점을 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네 가지를 사사식(四邪食)이라 하여 삿된 생활로 규정하고 금하였습니다. 수행자는 걸식으로 살아가라 했습니다만 현재를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재가자들이라면 도박이나 살생을 업으로 하는 것, 정신을 흐리게 하는 술장사, 마약 같은 류의 거래 행위, 성매매 행위 등이 삿된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의식주를 해결함에 있어서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⑥ 정정진(正精進) - 바른 노력 -
정정진(正精進)이란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노력하는 것입니다. 정진이란 선(善)한 것을 바르게 키워나가며 목표인 해탈(解脫)ㆍ열반(涅槃)을 향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곧 사정근(四精勤)을 말합니다.
사정근(四精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불교상식방에 자세히 올려 놓은 바 있으니 여기서는 대략만 기술해 보겠습니다. (상식방 번 참조)
사정근(四精勤)이란 네가지 바른 노력을 말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이미 일어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은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들은 일어나도록 노력하고,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은 더욱 증장(增長)하도록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종교적ㆍ윤리적ㆍ정치적ㆍ경제적ㆍ육체 건강상의 모든 면에서 이상으로서의 선을 낳고 증대시키되, 이에 어긋나는 악을 줄이고 제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⑦ 정념(正念) - 바른 마음집중-
정념(正念)이란 바른 의식을 가지고 이상과 목적을 잊지 않는 일입니다. 이를 올바른 통찰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른 마음집중을 말합니다. 마음챙김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곧 사념처(四念處) 수행을 말합니다.
그러면 간략히 사념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는 신념처(身念處)로 부모로부터 받은 이 몸을 보고 우리가 깨끗하다고 여기지만 이 몸이 실은 부정(不淨)하다고 관(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관신부정(觀身不淨)이라 합니다.
둘째는 수념처(受念處)로 우리의 마음에 낙(樂)이라고 하는 음행(淫行), 자녀(子女), 재물(財物) 등을 보고 낙(樂)이라고 하는 것은 참 낙(樂)이 아니고, 모두 고통이라고 관(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관수시고(觀受是苦)라 합니다.
셋째는 심념처(心念處)로 우리의 마음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화생멸(變化生滅)하는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관(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관심무상(觀心無常)이라 합니다.
넷째는 법념처(法念處)로 위의 셋을 제하고 모든 현상에 대하여 실로 자아인 실체가 없으며 또 나에게 속한 모든 물건을 나의 소유물이라고 하는데 대해서도 모두 일정한 소유자가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관법무아(觀法無我)라 합니다.
이상 정념(正念)은 부정(不淨)ㆍ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 등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잊지 않는 일입니다. 즉 바르게 마음 챙김을 하는 것입니다.
⑧ 정정(正定) - 바른 선정 -
정정(正定)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번뇌망상을 고요히 가라앉혀 정신통일(精神統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마음을 고요히 하여 선정(禪定)을 통하여 삼매(三昧)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어지러운 상태에서는 안정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아야 지혜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상 팔정도에 대하여 알아 보았는데 여기서 정견(正見)은 나머지 일곱이 달성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팔정도를 크게 삼분(三分)하면 계(戒)ㆍ정(定)ㆍ혜(慧) 삼학(三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은 계분(戒分)이고,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은 정분(定分)이며,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두 가지는 혜분(慧分)입니다. 팔정도(八正道)는 이렇게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 사성제(四聖諦)의 구조
이상 사성제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사성제 중 고성제(苦聖諦)는 중생의 현상황이 괴로움의 세계임을 밝혔으니 현재의 결과입니다. 집성제(集聖諦)는 이 현재의 결과를 만든 원인은 과거의 집착임을 밝혔습니다. 멸성제(滅聖諦)는 현재의 괴로움을 벗어나 해탈세계가 있음을 밝혔는데 이는 미래의 결과입니다. 도성제(道聖諦)는 그 해탈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현재에서 열심히 팔정도를 비롯한 37조도품(助道品)을 수행하고 육바라밀 등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현재의 인(因)으로 미래의 해탈(解脫)ㆍ열반(涅槃)을 증득(證得)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성제는 결과와 원인, 결과와 원인으로 되어 있고, 이는 삼세(三世)로 인과(因果)가 중첩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 합니다. 삼세 중 과거(過去)라 해서 태어나기 이전의 과거생(過去生) 뿐 아니라 지금 바로 전이 과거요, 지금 바로 후가 미래입니다. 그러니까 사성제는 현 상황을 인식하고, 현 상황이 있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현 상황을 타개한 상황을 생각하고, 그 상황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 가는 구조라 할 것입니다.
5)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공(空)의 세계에는 고집멸도(苦集滅道)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성문(聲聞) 제자들을 위해 설하셨습니다. 이 사성제야말로 도를 이루는 성스러운 진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성제가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틀림없이 사성제는 도를 이루는 성스러운 진리에는 틀림없으나 도를 이룬 세계, 모든 염상이 사라진 청정한 공의 세계에는 사성제라는 법에 집착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마치 뗏목을 타고 물을 건너면 뗏목을 버림과 같이 사성제도 버려야 하지만 버릴 것도 없습니다.
공의 세계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깨달음의 세상이며 열반의 세계요 실상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무엇이 끼일 여지가 있겠습니까? _(())_ 감사합니다. 백우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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