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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자성어

오매일여(寤寐一如) 자나 깨나 한결같다

작성자백우.|작성시간26.06.12|조회수41 목록 댓글 0

                           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오매일여(寤寐一如)
 
   자나 깨나 한결같다 
   

    
   오매(寤寐)는 '자나 깨나'를 뜻하고, 일여(一如)는 '한결같다'는 뜻이다. '화두 삼매', '화두 몰입', '화두 일념'
   을 가리키는 말로, '자나 깨나 한결같이(寤寐一如) 화두를 참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직 화두만 생각하
   면 갖가지 번뇌 망상이 가라앉고 마음이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오매일여는 중국 《시경(詩經)》 관저장(關雎章)에 나오는 오매불망(寤寐不忘, 자나 깨나 잊지 못함)과 같
   은 말이다. '불망(不忘)'은 '잊지 못한다'는 뜻이고, '일여(一如)'는 '한결같음'을 뜻하는데, 글자는 달라도
   그 뜻은 같은 말이다.  수도(首都)나 서울이나 같은 말인 것과 같다.


   화두 삼매는 알음알이(분별심), 욕망, 불안 등 번뇌망상등을 퇴치시켜서 마음의 평온[安心]을 얻고자 하는
   데 있다.  그것이 화두 삼매의 기능이다. 또 깨달음의 정의 역시 번뇌망상을 소멸시키고, 니르바나(열반)
   를 이루어 걸림 없는 존재가 되자는 데 있다.


   그런데 이 말을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여 실제 깊은 숙면(熟眠) 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야(화두가 참구
   되어야) 깨닫게 되고, 또 그런 오매일여가 되어야 깨달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화두의 역할과 기능,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정의를 오판한 데서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육신은 극도로 피곤해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자고 있어도 정신은 초롱
   초롱하게 잠들지 말고 화두를 참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선(神仙), 장생불사(長生不死) 등 도교적,
   또는 육체적 신비주의로 불교와는 거리가 멀고 깨달음도 아니다.  불교의 깨달음은 탐진치 번뇌 제거,
   사성제 · 무아 · 공의 이치를 확실하게 아는 데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의학적으로도 잠은 뇌가 활동하지 않아야 잠을 이룰 수가 있다.  화두에 집중하고 있고, 뇌가 활동하고
   있는 한 뇌는 잠에 들 수 없다.  적어도 잠이 드는 순간(1~2분)에는 뇌가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열심히 화두를 참구 하다 보면 밤에 화두를 참구 하는 꿈을 꾸는 경우는 있다.  굳이 말한다면 이런
   것이 오매일여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은 화두에 몰입하다 보면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 어떤 일이
   라도 몰입하면 밤에 그와 관련된 꿈을 꾸게 된다.

   필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어머니의 영혼을 꼭 만나보고 싶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정말 어느 날 밤에 시골집 벽장에서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랐
   지만 이때다 싶어 어머니를 꼭 붙잡고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말을 하려고 하는데,
   깨고 보니 꿈이었다.

   낮에 어떤 주제에 대하여 열띠게 토론하고 나면 그날 밤 꿈에 또 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꿈을 꾸게
   된다.  이런 것을 '오매일여'라고 한다면 그건 틀린 것이 아니다.  화두 삼매가 깊어지면 밤에 화두를 들고
   있는 꿈을 꿀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실제 숙면 속에서도 화두가 참구 되어야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면, 그는 일평생
   화두를 들어도 절대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단언적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많은 수행자들이 허송세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화두를 들었는데, 두세 시간, 혹은 하루 저녁이 금방 지나간 느낌이었다고 하면서, 마치
   깨달음을 체험한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삼매, 몰입의 특성은 시간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화두뿐만이 아니고 어떤 일이든 그 일에 몰입하면 마찬가지로 시간이 빨리 간다.  바둑이나 장기,
   고스톱을 치면 시간이 금방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바둑 기사들은 시합을 하면 각자 2시간 정도를 사용하게 된다.  합하면 4시간이 되는데, 초읽기까지 합하
   면 5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시합이 끝나고 나면 모두들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갔느냐고 묻
   는다고 한다.

   삼매는 오늘날 언어로 말하면 '몰입', '집중' '올인(all in)'이다.  일념으로 화두를 참구 하면 일체 다른 생각
   (번뇌 망상)이 끼어들 틈이 없게 되고 기분도 아주 좋다.  그렇게 하여 장기간 지속되면 번뇌(잡생각)가
   영영 일어나지 않게 되겠지만, 사실 인간으로서 어떻게 번뇌가 전혀 없을 수 있겠는가?  죽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다만 번뇌가 있지만 그 번뇌에 끌려다니지 않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번뇌가 있지만 번뇌
   에 전혀 속박되지 않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

   사람이 잠을 적절하게 자지 않고는 맑은 정신으로 화두를 들 수 없다.  혼침, 혼미한 상태에서 화두를 참
   구 하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화두를 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비합리적인 수행방법, 불가능한 것을
   제시해 놓고서 이것을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가르침이 아니다.



   사람은 7시간 정도를 자지 않으면 삶의 질이 나빠진다.  중국 당송시대 선종사원에서 저녁 9시에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계산해 보면 딱 7시간이다.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데, 정신의학에서도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171%라는 발표도 있었다.

   선에서는 화두 참구 방법을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닭이 알을 품듯이 하라."라고 한다.  여기서 '고양이
   가 쥐를 잡듯이'란 집중을 뜻하고, '닭이 알을 품듯이'란 지속을 뜻한다.  지속적인 집중(몰입, 삼매)을
   통해서 번뇌를 소멸, 퇴치, 잠재우는 것을 말한다.

   또 화두 참구에서 '일념만년(一念萬年, 화두 일념이 만년 가도록 함)'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이 역시
   화두 일념이 지속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런데 이것을 실제 상황, 실제로 만년이라고 이해하면 큰 착각이다.  인간은 많이 살아야 80년~100년을
   사는데, 실제 만년으로 이해한다면 금생에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1,000 생(生)이나 1,200 생은 살
   아야 가능하다는 말이 되는데, 말이나 되는 말인가?  글자 이면의 뜻을 알아야 한다.



   ☆ 오매일여(寤寐ㅡ如)


   寤  깰 오.  잠에서 깨어나다.
   寐  잠잘 매.  잠을 자다.

   一  한 일.  하나.
   如  같을 여.


   출처 : 윤창화 <불교의 사자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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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저는 선에 대하여 문외한입니다.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자성어를  통해 오매일여
   나왔기에 오매일여에 대해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에 대하여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아 함께 생각해
   보고자 예전에 읽어봤던 성철 큰스님의 《선문정로평석(禪門正路評釋)》이 생각나서 찾아보게 된 것입니
   다.

   오매일여(寤寐一如)는 선문에서 아주 중요시하는 것이어서 성철 큰스님께서 펴낸 《선문정로평석(禪門正
   路評釋)》에는 어떤 언급이 있었나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본문의 오매일여에 대한 비판은 이에 대한 비판
   은 전혀 아닙니다.  선생은 오매일여에 대한 선 수행계에 널리 퍼져 있는 일부 해석과 수행 풍토를 비판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선문정로평석(禪門正路評釋)》에는 오매일여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보기 위해 일부를 소개해 봅
   니다.

   "아무리 크게 깨달아 지견이 높고 훌륭한 것 같아도 실지 경계에 있어서 깊은 잠에 들어서 여전히 캄캄
   하면, 이는 망식(忘識)의 움직임이지 실제로 깨달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수도자는 반드시 자나 깨나
   한결같은[寤寐一如] 실지 경계를 뚫고 지나가야만 바로 깨닫게 된다."

   "오매일여(寤寐一如)에는 뭉중위(夢中位)와 숙면위(熟眠位) 두 가지가 있다.  꿈속에서도 여여한 몽중위는
   제6의식의 영역으로서 교가(敎家)의 7지(七地)에 해당하고, 꿈도 없는 깊은 잠에서도 일여(一如)한 숙면위
   는 제8아뢰야식의 미세한 망상에 머물러 있는 8지(八地) 이상의 자재보살들과 아뢰야식의 미세망상을
   영원히 여읜, 진여(眞如)가 항상한 부처지위[佛地]를 말한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윤창화 선생의 비판과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평석》은 깨달음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수행자와 지식인의 차이"라고만 보기에는 부족하고, 보다 정확
   히는 선종 수행론과 현대 불교학적 해석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윤창화 선생이 비판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윤창화 선생의 글을 보면 핵심 논리는 이렇습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화두가 계속 들려야 한다는 것은 생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수면 중에는 의식활동이 멈춘다.  뇌가 쉬어야 잠이 든다.  따라서 숙면 중에도 화두가 계속 참구 된
   다는 것은 성립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입니다.

   이 논리는 현대 심리학이나 뇌과학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또한 윤창화 선생은 "깨달
   음이란 사성제 · 무아 · 공을 바르게 아는 것이지, 잠자는 동안 화두가 계속되는 신비한 상태가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즉 깨달음을 인식의 전환, 진리의 통찰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말합니다.  성철 큰스님이 말씀하시는 오매일여는 사실 "잠자는
   동안에도 화두 생각을 계속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선문정로평석》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철 스님은 화두가 숙면 중에도 계속 돌아간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숙면 중에도 끊어지지 않는 '본래의 각성(覺性)'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화두 자체보다 더 깊은 
   문제입니다.

   선종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잠잘 때는 누구인가?"
   "꿈도 없는 깊은 잠에서 주인공은 완전히 사라지는가?"

   선문에서는 깊은 잠 속에서도 진여성, 불성, 본래면목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따라서 오매일여 "제6의식이 화두를 계속 생각하는 상태"가 아니라 "의식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숙면에서도 본래각이 끊어지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말합니다.  윤창화 선생은 "숙면 중에도 화두를 생각한다."라고 이해합
   니다.  그러므로 "그건 불가능하다."라고 비판합니다.

   반면 성철 스님은 "누가 화두를 생각하느냐?  생각 이전의 본래면목을 보라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윤창화 선생은 심리학적 의식을 말하고 있고, 성철 큰스님은 선종의 본각(本覺)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논의의 층위가 다릅니다.



   성철 스님이 왜 숙면위(熟眠位)를 중요하게 보는가요?  성철 스님은 선종의 전통 입장을 따릅니다.  
   선가에서는 흔히 "잠들면 죽는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육체적 수면을 금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잠들면 분별도 사라지고, 화두도 사라지고, 경계도
   사라집니다.  그때도 본래의 주인공이 분명한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몽중일여보다 숙면일여를 더 높은 경계로 봅니다.

   그러나 윤창화 선생의 비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윤창화 선생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됩
   니다.  왜냐하면 실제 수행 현장에서는 오매일여를 잘못 이해하여, 잠을 줄이고, 억지로 깨어 있으려 하
   고, 신비 체험을 추구하고, 꿈속 체험을 깨달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한 경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잠을 안 자야 깨닫는다.", "숙면 중에도 의식이 계속 유지되
   어야 한다."라고 이해한다면 그것은 선종의 본래 뜻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옳은가요?

   선종의 전통 입장에서 보면, 성철 스님이 말하는 오매일여는 중국 선종의 정통 수행론과 일치합니다.  
   임제종 · 조동종 · 간화선 전통에서도 오매일여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반면 윤창화 선생은 이를 현대 불교학 ·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종 수행론
   안에서는 성철 스님의 설명이 정통에 가깝고, 현대 학술적 해석에서는 윤창화 선생의 비판도 충분한 의
   미가 있습니다.



   성철 큰스님이 말한 숙면위를 "깊은 잠 속에서도 화두 문장을 계속 생각하는 상태"로 이해하면 윤창화
   선생의 비판이 맞습니다.  그러나 "숙면 중에도 끊어지지 않는 본래의 각성, 즉 불성의 현현"으로 이해하
   면 윤창화 선생의 비판은 선문정로가 말하는 본래 뜻을 충분히 겨냥한 비판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사들은 오매일여를 설명할 때 "화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알아차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수행 경계로 설명합니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누가 맞고 틀리다기보다 깨달음을 의식의 현상으로 보느냐, 의식 이전의 본성으
   로 보느냐의 차이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자나 깨나 한결같이
   사제 · 팔도 · 공 · 무아,
 

   중도 정견 생각하고 
   참답게 실천하면

   잠자는 꿈속에서도
   바른 행동 나온다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자나 깨나 한결같이 중도 정견으로 맑고 향기로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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