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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자성어

실유불성(悉有佛性) 모든 인간은 부처가 될 수 있다

작성자백우.|작성시간26.06.19|조회수19 목록 댓글 0

                           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실유불성(悉有佛性)
 
   모든 인간은 부처가 될 수 있다 
   

    
   실유불성(佛)은 중생(인간)은 누구나 다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불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승 《대반열반경》에 있는 사자성어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다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  또는 "부처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을 불성(佛性. 부처의 성품)이라고 하는데, 곧 성불할 수 있는 자질, 바탕, 가능성을 말한다.

   사실 이 말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훌륭한 고승이 그런 불성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평범
   한 자기 자신에게도 그런 위대한 불성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비유를 들어보고자 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누구나 다
   똑같은 주권, 기본권(즉 불성)을 갖고 있다.  누구나 다 국회의원이 될 수 있고,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또 인간은 동등하므로 누구나 다 자유를 누릴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 말은 곧 일체중생은 누구나 다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은 말이
   다.  그러나 전제 조건은 선거에서 당선(수행해야 한다)되어야 한다.  누구나 다 기본권(불성)을 갖고 있지
   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유를 하나 더 든다면, 금광에 금(불성)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지만 발굴해서 제련(수행)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건 하나의 돌멩이(중생)에 불과하다.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부처와 동등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       다.  다만 깨달아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수행해야 깨달을 수 있고, 또 깨달음이란 어떤 것을 가지고 말하
   는 것인가?


   불교에서 깨달음은 고집멸도의 사성제의 이치, 무아 · 공 · 중도 · 연기법의 이치 · 반야지혜의 이치를 체득
   하여 고(苦)에서 해탈하는 것을 말한다.  번뇌를 다스리는 것, 탐진치를 제거하는 것, 고집멸도 사성제 등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 수행이다.


   그런데 전생을 훤히 내다본다느니, 또는 육체적인 신비주의나 신통술 등 도교적인 것을 가지고 불교 수행
   으로 착각, 호도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


   물론 전생을 훤히 본다고 하면 도통한 것 같고 깨달은 것 같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
   음과는 거리가 먼 사(邪)이므로,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다 불성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깨달을 수가 있다.  깨닫고 나면 괴로움이 없는 니르바
   나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그 불성을 개발(수행)하지 않으면 미혹한 중생이나 마찬가지다.  광석을
   가공하지 않으면 하나의 돌멩이에 불과하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바로 불성을 발현시킨 자(부처)와 발현시키지 못한 자(중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 실유불성(悉有佛性)


   悉  다 실.  모두, 다.
   有  있을 유.  존재하다.
   佛  부처 불.
   性  성품 성.



   출처 : 윤창화 <불교의 사자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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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유불성(悉有佛性)의 출처인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이르기를

   "삼보의 불성에는 차별상이 없으니, 사중죄(四重罪)를 범하거나 방등경(方等經)을 비방하거나
   오역죄(五逆罪)를 짓거나 일천제(一闡提)라도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
   (三寶佛性 無差別相 犯四重罪 謗方等經 作五逆罪 及一闡提 悉有佛性)

   사중죄(四重罪)는 살도음망(殺盜婬妄)의 중죄를 지으면 바라이죄를 짓는 것이며, 방등경(方等經)을 비방
   하고 오역죄(五逆罪)를 지으면 삼악도나 무간지옥에 떨어질 중죄입니다.  그래도 참회를 하면 불성이 발
   현될 수 있다 하여도 일천제(一闡提)는 선근이 끊어져 깨달음을 구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중생인데 그래
   도 불성이 있다 하였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대반열반경》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인 실유불성(實有佛性), 곧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실제로 존재한
   다"는 가르침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사중죄를 범한 자, 방등경을 비방한 자, 오역죄를 지은 자, 일천제' 이들은
   불교에서 가장 무거운 죄업을 지은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구제불능의 존재로 여겨질 정도이지만 그런데도 경전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모두 불성이 있다(悉有佛性)."

   이것이 바로 《대반열반경》의 위대한 선언입니다.

   불성(佛性)과 죄업(罪業)은 다른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죄가 많으면 불성
   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반경은 말합니다. 

   "죄업은 번뇌의 문제이고, 불성은 본성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햇빛이 가득한 하늘이 있습니다.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고 해서 하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구름은 구름이고, 하늘은 하늘입니다.

   마찬가지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 살생, 도둑질, 거짓말 등의 죄업은 불성을 가린 구름일 뿐입니다.  불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열반경은 "중생에게 불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덮고 있을 뿐이다."라고 설합니다.

   일천제도 왜 불성이 있는가?  여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초기에는 일천제를 "모든 선근(善根)이 끊어져 깨달음을 구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중생"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반열반경》은 이를 뛰어넘습니다.

   일천제란 선근을 끊고 불법을 믿지 않으며 해탈을 구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불법을 믿
   지 않는다고 해서 영원히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은 돌덩이처럼 굳어 있어도 무량한 세월 속
   에서는 언젠가 인연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열반경 "일천제도 결국 성불한다."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대자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구제되지 못할 중생"이라는 존재를 끝내 인정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실유불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실유불성은 "누구나 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리 타락한 중생이라도 궁극적으로는 부처가 될 가능성을 잃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열반경은 사중죄인도, 오역죄인도, 일천제도, 현재 모습만 보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눈에는 그들 역시 미래의 부처인 것입니다.



   실유불성이 수행자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이 가르침은 남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하고 허물을 짓습니다.  때로는 "나는 안 된다.", "나는 죄가 많다.", "나는 수행이 부족하다." 하며 스스로
   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유불성은 말합니다.

   "허물은 있어도 불성은 없다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회하고, 다시 일어나고, 다시 선을 닦고, 다시 부처님을 향해 나아가면 됩니다.  불성은 본래
   잃어버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반열반경》의 실유불성 사상은 사람을 안일하게 만드는 가르침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과 정진을 일으
   키는 가르침입니다.

   만약 어떤 중생은 본래부터 불성이 없고 영원히 성불할 수 없다면, 그 사람에게 수행은 무의미할 것입니
   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일천제마저도 불성을 지닌다고 밝히심으로써 누구에게도 성불의 문이 닫혀 있
   지 않음을 선언하셨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회하고 개과천선하여 자신을 혁신하는 것"입니다.  보석이 흙 속에 묻혀 있다
   고 해서 보석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흙을 걷어내야 광채가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불성은 본래 갖추어져 있으나, 탐욕을 줄이고, 성냄을 다스리고, 어리석음을 밝히고, 선업을
   쌓고, 보리심을 일으키고, 꾸준히 수행할 때, 비로소 그 불성이 삶 속에서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
   바라이죄 지은 자,
   경전비방 사악한 자,

   극악한 오역죄,
   선근 없는 일천제들,

   번뇌의 먹구름 속에
   빛 모르고 지내고 있네.


   중생은 미혹하여
   온갖 죄를 다 지어도

   본래로 불성은
   누구나 갖고 있네.

   참회해 먹구름 걷히면
   불성은 빛나리라.


   잘못하여 허물을 지었어도 참회하고 개과천선하여 새롭게 자신을 혁신하면 불성이 빛나리라 생각합니
   다.  일천제도 불성이 있기에 성불할 수 있다면, 하물며 지금 부처님 법을 믿고 인과를 믿으며 선을 행하
   려 애쓰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우리도 크게 분발하여 보리심을 발해야 하겠습
   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실유불성의 큰 뜻 헤아려 보리심 발하며 맑고 향기로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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