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斷想) [경전 이야기] ♡ 신명을 아끼지 않는 시비왕(尸毘王)의 보시 보살의 보시는 신명을 아끼지 않는다. 그것은 옛날의 시비왕(尸毘王)이 자기 몸을 비둘기에게 준 것과 같다. 제석천왕이 가서 시험해 보고 보살의 뜻이 있는 줄을 알고는 비수갈마천(毘首羯磨天)에게 말하였다. "너는 비둘기가 되어라. 나는 매가 되어 너를 쫓아가리니, 너는 거짓으로 떨면서 왕의 겨드랑 밑으로 들어가라." 조금 뒤에 비수는 몸을 바꿔 비둘기가 되고 제석천왕은 몸을 바꿔 매가 되어 급히 날아 비둘기를 쫓아갔 다. 비둘기는 곧 왕의 겨드랑 밑으로 들어가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때 매는 나무 위에 앉아 왕에게 말하였다. "그 비둘기를 내게 돌려주십시오. 그것은 내 밥이요, 대왕의 소유가 아닙니다." 왕은 말하였다. "내가 발심한 것은 일체중생을 구제하여 괴로움에서 건지려고 한 것이다." 매는 말하였다. "대왕이 일체중생을 제도하시려 한다면 나도 일체중생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나는 가엾이 여기지 않고 내 밥을 빼앗습니까?" "너는 무엇을 먹는가?" "나는 갓 죽인 고기를 먹습니다." 보살(왕)은 말하였다. "나도 맹세코, 내게 돌아온 일체중생을 일심으로 수호하여 화를 당하지 않게 하려 한다. 너는 무엇이 먹고 싶으냐? 내가 대어 주리라." 매는 말하였다. "내가 먹을 것은 갓 죽인 고기입니다." 왕은 생각하였다. '이것도 어찌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살생하지 않으면 얻을 길이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를 죽여 다른 하나에 주겠는가?' 이렇게 생각하여 마음으로 결정하고 곧 사람을 불러 칼을 가져오게 하고, 자기 다리살을 베어 매에게 주었다. 매는 말하였다. "살을 내게 주려면 마땅히 그 살과 비둘기의 무게를 같이하여 나를 속이지 마십시오." 왕은 말하였다. "저울을 가져와 살과 비둘기의 무게를 달아보아라." 그러나 비둘기의 몸은 더욱 무겁고 왕의 살은 더욱 가벼웠다. 왕은 두 다리 살을 모두 베게 하였으나 그래도 가벼워 모자랐다. 다음에는 두 장딴지와 두 젖과 가슴과 등살 등, 온몸의 살을 모두 베어도 비둘 기가 더 무거웠다. 그때 왕은 온몸을 저울에 올려놓자 비로소 비둘기와 무게가 같았다. 매는 왕에게 말하였다. "대왕님, 이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그 비둘기를 내게 돌려주십시오." 왕은 말하였다. "비둘기가 내게 와서 의지하였으니 나는 끝내 그것을 너에게 줄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적지 않게 내 몸을 잃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법을 위하지 않고, 아까워하였으나 지금은 부처가 되려고 저울에 올라앉았으니, 마음으로 결정하여 후회가 없다." 그때 여러 하늘과 용과 신과 사람들은 모두 찬탄하였다. "한 마리 비둘기를 위하여 저처럼 고통한다." 그리고 그 일은 세상에 드문 일이라, 땅덩이는 크게 진동하였다. 비수도 찬양하였다. "보살은 진실이요, 거짓이 없다. 이야말로 일체중생의 복밭이다." 제석천왕과 비수갈마천은 하늘 몸으로 돌아가서 곧 왕의 몸을 본래와 같이 회복시켰다. 도를 구하기 이와 같아야 비로소 부처가 되는 것이다. 《중경찬잡비유경(衆經撰雜譬喩經)》 上 ---------------------------------------------------------------------------------------------------------------- 이 이야기는 불교에서 매우 유명한 시비왕(尸毘王)의 보시행을 통해 보살의 자비와 서원의 깊이를 보여 주는 비유입니다. 이야기의 요지는 시비왕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보살의 서원을 세운 왕이었습니다. 제석천왕은 왕의 서원이 진실한지 시험하기 위해 비둘기와 매로 변신하여 왕 앞에 나타납니다. 비둘기는 살려 달라고 왕에게 의지합니다. 매는 자신의 먹이를 빼앗지 말라고 주장합니다. 양쪽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왕은 비둘기를 보호하면서도 매를 굶길 수 없다는 딜레마에 놓입니다. 결국 왕은 다른 생명을 죽여 줄 수 없으므로 자신의 살을 베어 매에게 주기로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살을 베어도 비둘기의 무게를 맞출 수 없었고, 마침내 왕은 자신의 몸 전체를 저울에 올려놓습니다. 그 순간 왕의 보시심이 완전해졌고, 제석천왕은 시험이 끝났음을 밝히며 왕의 몸을 원래대로 회복시켜 줍니다. 이 이야기에는 몇 가지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참된 자비는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왕은 비둘기만 불쌍히 여긴 것이 아닙니다. 매 또한 굶주린 중생임을 인정합니다. 보살의 자비는 좋아 하는 사람만 돕는 자비도 아니고, 약한 자만 돕는 자비도 아니며,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함께 살피는 자비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 편만 가엾게 여기지만, 보살은 양쪽의 고통을 모두 봅니다. 둘째는 보시는 물건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살을 베어 주면서도 어느 정도 아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몸 전체를 저울에 올려놓을 때는 후회가 사라졌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의 양이 아니라 집착을 놓아버린 마음입니다. 보시의 공덕은 물건의 크기에 있지 않고 탐욕을 내려놓는 마음에 있습니다. 셋째는 생명의 목숨의 무게는 같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살을 베어 낼 때 비둘기만큼의 양만 주면 되겠다 생각하고 베어 냈는데 비둘기 쪽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비둘기보다 많은 살을 베어내었습니다. 그래도 달아보니 어림도 없었 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래서 몸 전체를 저울에 올려놓으니 평형을 이루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의 양이 아니라 목숨의 무게는 같다는 것입니다. 목숨은 누구나 동등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자비 보시는 가장 귀한 목숨조차도 기꺼이 내놓는 것입니다. 넷째는 수행의 핵심은 아상(我相)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비둘기보다 무거운 것은 사실 왕의 몸이 아닙니다. 상징적으로 보면 비둘기보다 무거웠던 것은 "내 몸", "내 것", "나"에 대한 집착입니다. 몸의 살을 아무리 베어도 부족했던 이유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아상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몸 전체를 저울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나 자신까지도 중생과 법을 위해 내놓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때 비로소 무게가 같아진 것입니다. 다섯째는 서원은 시험을 통해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제석천왕이 시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말로는 누구나 자비를 말할 수 있고, 희생을 말할 수 있고, 수행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에도 그 마음을 지킬 수 있는가가 중요합 니다. 서원은 입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이 이야기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몸을 희생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조금 내려놓고 남을 배려하는 순간들이 바로 시비왕의 보시 정신을 배우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시비왕 이야기는 "중생을 위하겠다는 서원은 자기 이익과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실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보살행의 상징적 가르침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는 단순히 무언가를 주는 행위가 아니라, '나'라는 집착을 비워 가는 수행임을 일깨 워 주는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 모든 중생 구제하겠다 서원 세운 시비왕 매에 쫓긴 비둘기를 구하고자 나섰더니 뒤쫓던 매가 날아와 내어 달라 하는구나. 내어 주면 죽을 판 안 주면 굶을 판 자비로운 시비왕 온몸 주고 구했나니 목숨은 가장 귀하나 상 없이 내주었네. 거대한 자비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자비가 무수히 쌓여 이루어지는 것입니 다. 그래서 수행자는 시비왕의 행을 흉내 내려고 하기보다, 그 정신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누고, 내가 누리는 것을 조금 양보하며, 내가 옳다고 여기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는 것." 이 또한 시비왕의 보시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아상이 많고 부족함도 많지만, 힘닿는 대로 보시를 생활화해서 살아가야 하리라 생각해 봅 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나눔과 보시를 행하며 맑고 향기로운 만행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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