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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좋은시

묘비명(墓碑銘) /김광규

작성자이서윤|작성시간18.04.11|조회수65 목록 댓글 0

묘비명(墓碑銘)

 

   김광규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詩人)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 시선집 안개의 나라( 2018. 1 )에서



김광규 / 1941년 서울 출생. 서울대 및 동대학원 독문과 졸업. 1975년 계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에서 최근 오른손이 아픈 날까지 11권의 시집을 펴냄. 시선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누군가를 위하여.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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