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풍경.주제별 시

어버이날 시 모음

작성자리차드|작성시간14.05.06|조회수434 목록 댓글 1

 

 

<어버이날 시 모음> 박경리의 '히말라야의 노새' 외

 

+ 히말라야의 노새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박경리·소설가, 1926-2008)

 

+ 어머니, 나의 어머니 

                                 시. 고정희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고정희·시인, 1948-1991)  

 

 

어머니

-거룩한 깃발-

-               시. 유청 이윤정 시인

 

헌칠한 체격에 당당하시더니

칠순 잔치 치룬 뒤부터

빈 봉지처럼 마른 모습으로

내 눈물샘을 자꾸 열으시네 

 

 

안개처럼 피어나는 내 그리움의 고향같이

'엄마 '

하고 물렀는데도

눈물샘은 어느새 활짝 열리고야 말아  

 

온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던 파수꾼

온 가족의 평화가 살아 숨쉬던 곳,

그래서 내 눈물샘에 항상 붙어 사는 엄마

 

내일이라도 거친 바람이 불어오면

훅 ~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어머니

왔던 길 따라 다시 돌아가려

숨을 달싹거리며 주무시는 내 어머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나를 응원하던 거륵한 깃발 하나가

천지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지 .

 

아비 /시. 김충규

 

밥 대신 소금을 넘기고 싶을 때가 있다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에게 다그치며

굵은 소금 한 숟갈

입 속에 털어넣고 싶을 때가 있다

쓴맛 좀 봐야 한다고

내가 나를 손보지 않으면 누가 손보냐고

찌그러진 빈 그릇같이

시퍼렇게 녹슬어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내가 나를 질책하는 소리,

내 속으로 쩌렁쩌렁 울린다

이승이 가혹한가,

소금을 꾸역꾸역 넘길지라도

그러나 아비는 울면 안 된다

(김충규·시인, 1965-)

 

 

+ 아버지의 등을 밀며 /시.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손택수·시인, 1970-)

 

+ 아버지의 밥그릇  /안 효희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안효희·시인, 1958-)

 

+ 한 벌의 양복 /손순미

 

한 벌의 그가 지나간다

그는 늘 지나가는 사람  

늘 죄송한 그가

늘 최소한의 그가  

목이 없는 한 벌의 양복이

허공에 꼬치 꿰인 듯

케이블카처럼 정확한 구간을 지키듯

신호등을 지나 빵집을 지나

장미연립을 지나

가끔 양복 속의 목을 꺼내    

카악- 가래를 뱉기도 하며

한 벌의 양복으로 지나간다

대주 연립 206호 앞에서 양복이 멈췄다

길게 초인종을 눌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양복이 열쇠를 비틀어 철문 한 짝을 떼어내자

철문 속에 안전하게 보관된 가족들이

TV를 켜놓고 웃고 있었다

가족들이 양복을 향해 엉덩이를 조금 떼더니

이내 TV 속으로 빠져들었다  

양복이 조용히 구두를 벗었다

한 벌의 그가 양복을 벗었다

모든 것을 걸어두고 나니

그저 그런 늙은 토르소에 지나지 않았다

한 벌도 아닌 양복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그가

어두운 식탁에서 최대한의 정적을 식사한다

(손순미·시인, 1964-)

 

 

+ 저녁식사 풍경/ 윤의섭 시인

 

어금니 반쯤은 빠지고

남은 이도 흔들리기 때문에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와드득

깨물어 먹지 못하는 아버지

맛있는데 맛있는 건데

허탈하게 말하며, 그 총각무같이

씁쓸한 웃음을

흐흐흐 흐흐흐

며느리는 총각김치를 맛있게 먹다가

잠시 입맛을 잃었고

아버지는 왜 안 먹냐며

자꾸 권했다

맛있어, 먹어봐 먹어

흐흐흐 흐흐흐

 

우린 간신히 밥숟가락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음식의 氣만 빨아먹는 귀신같이

헛것을 먹고 있는 아버지의 웃음

어느새 그에게도 죽음의 힘이 스몄구나

오싹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아무도 우겨넣은 밥을 넘기지 못했다

(윤의섭·시인, 1968-)

 

 

+ 아버지와 숫돌/백영호

 

아버지는 날마다

소먹이는 꼴을 베어내는

낫을 숫돌에 가셨다

아버지가 낫을 가실 때는

수도승처럼 보였다

 

울 아버지는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하게

얼굴에 땀방울 쏟으시며

정성 다해 힘을 들여 낫을 가시는 것을

어째서 그리도 반복하시는 것일까

 

가끔은 빼먹어도 되고

며칠은 아니 갈아도 되실 텐데

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낫을 가셔서 푸른 날을 세우셨다

 

이제

저 멀리 북간도보다도 머나먼

피안의 세계에서 안식하시는 아버지

그리워 할 적마다

내 눈가에 숫돌이 보인다

 

숫돌은 스스로 자기 몸을 헐어서

낫의 푸른 날을 살렸고

아버지는 스스로 당신 몸을 갈아서

튼튼한 울타리를 치신 뒤

 

숫돌에 낫을 매일 가시듯

하루도 빠짐없이 자식들 향해

지금도 사랑스런 웃음 띄어 지켜보신다

(백영호·시인, 1955-)

 

  아버지의 등

                   글 / 아동문학가 하청호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하청호·아동문학가)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송설 | 작성시간 15.05.12 어버이닐이 지난 뒤늦은 시간.
    이제사 찬찬히 함께 하며 부모님을 그려봅니다.
    특히 아버지 생각을 하며...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