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거리의 암자 / 신달자
어둠 깊어가는 수서역 부근에는
트럭 한 대분의 하루 노동을 벗기 위해
포장마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인과 손님이 함께
출렁출렁 야간여행을 떠납니다
밤에서 밤까지 주황색 마차는
잡다한 번뇌를 싣고 내리고
구슬픈 노래를 잔마다 채우고
빗된 농담도 잔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속풀이 국물이 짜글짜글 냄비에서 긇고 있습니다
거리의 어둠이 짙을수록
진탕으로 울화가 짙은 사내들이
해고된 직장을 마시고 단칸방의 갈증을 마십니다
젓가락으로 집던 산낙지가 꿈틀 상 위에서 떨어져
온몸으로 문자를 쓰지만 아무도 읽어내지 못합니다
답답한 것이 산낙지뿐입니까
어쩌다 생의 절반을 속임수에 팔아버린 산낙지뿐입니까
어쩌다 생의 절반을 속임수에 팔아버린 여자도
서울을 통째로 마시다가 속여 뒤집혀 욕을 게워냅니다
비워진 소주병에 놓인 플라스틱 작은 상이 휘청거립니다
마음도 다리도 휘청거리는 밤거리에서
조금씩 비워지는
잘 익은 감빛 포장마차는 한 해의 묵묵한 암자입니다
새벽이 오면
포장마차 주인은 밤새 지은 암자를 걷어냅니다
손님이나 주인 모두 하룻밤의 수행이 끝났습니다
잠을 설치며 속을 졸이던 대모산의 조바심도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거리의 암자를 가슴으로 옮기는데
속을 쓸어내리는 하룻밤이 걸렸습니다
금강경 한 페이지가 겨우 넘어갑니다
열애 / 신달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 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벤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피 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 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 많아
상처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밤 그 통증과 엎치락뒤치락 뒹굴겠다
연인 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 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나겠다.
신달자 시인 / 1943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 부산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고 숙명여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평택대학교 국문과 교수,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 1964년 '여상' 여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며, 결혼 후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를 게재,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시학상, 2004년 한국시인협회상, 2007년 현대불교문학상을 받았고, 2008년 영랑시문학상, 2009년에는 공초 오상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대산문학상, 석정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봉헌문자', '아버지의 빛',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오래 말하는 사이', '열애', '종이', '북촌',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수필집 '미안해...고마워...사랑해', '백치애인', '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 '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 '고백',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 '나는 마흔에 새의 걸음마를 배웠다'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현재 문화진흥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26년 6월 22일(화요일) 문학기행, 강서구민회관 야외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