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과 벌칙
처음으로 온 가족이 베트남에 모였다. 오랜만에 사위들과 골프를 하였다. 지난 해에는 시드니에서 모여서 골프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호찌민에서 모였다. 일요일은 투덕 골프장에서 골프를 한 후에 월요일에는 호찌민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판티엣 무이네 Sea Link Beach Hotel의 골프 코스에서 라운드를 즐겼다. 판티엣의 Ocean Dune 골프장은 필자가 멤버여서 자주 갔었는데 Sea Link 골프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호텔과 골프코스가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서 큰 딸의 머리를 얹어주었다. 작은 딸은 아직 연습 중이어서 필드로 나갈 실력이 되지 않아서 사위 둘과 큰 딸을 데리고 골프를 즐겼다.
머리를 올린다는 말은 원래 처녀가 시집을 간다. 기생이 첫 남자를 맞는다 혹은 외과의사가 첫 집도를 할 때 쓰는 말이며 그간 갈고 닦은 솜씨를 실지로 행할 때 쓰는 말로서 골프에서는 그간 연습장에서 연습한 후에 처음으로 필드로 나갈 때 쓰는 말인데 연습을 게을리 한 골퍼들은 필드에서 상당히 헤매게 된다. 직장생활을 하느라고 연습할 시간이 없었는지 큰 딸의 공은 종횡무진 겉 잡을 수 없었다. 필자도 옆에서 격려하며 따라서 진땀을 뺏는데 그래도 한번씩 딸애의 공이 제대로 맞아 포물선을 그리며 원하는 곳에 안착할 때에는 동반자 모두가 NICE SHOT 을 외치며 기뻐해 주었다.
그런데 사위 하나는 SLOW PLAYER고 하나는 QUICK PLAYER 다. SLOW PLAY를 하는 사위는 룰을 잘 지키지 않고 QUICK PLAY를 하는 사위는 룰을 잘 지킨다. SLOW PLAYER는 머리 올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다. 느릴 뿐만 아니라 룰을 예사로 어긴다. 룰을 어겨서 벌타를 주었더니 그런 장인이 괘씸한 모양이다. 명랑골프를 하면서 웬 벌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골프는 또래끼리 즐기다 보면 룰을 무시하게 되고 필자같이 룰에 엄격한 골퍼를 만나면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규칙에 어긋나면 가차없이 벌타를 매겨야만 룰을 지키게 되는데 룰을 무시하는 비슷한 성향의 골퍼들끼리 공을 치면 벌타를 매기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이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많은 한국 사람들이 룰을 지키지 않고 또한 벌타를 정확히 매기지 않고 골프를 하는 경향이 있어서 외국인 특히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서양인들과 골프를 하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서양인들은 대체로 아무리 골프를 못치는 백돌이라고 할지라도 룰 하나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미터 거리라도 대강 OK 라고 부르는 한국인들을 보고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요즘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헬멧을 쓰고 다닌다. 정부에서 그간 몇 번이나 헬멧을 써야 하는 규칙을 홍보했지만 벌금을 부과하지 않을 때는 헬멧을 써야 하는 규칙은 항상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벌금을 철저히 부과하고 나서부터 맨머리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규칙에서는 필수적으로 벌칙이 뒤따라야 그 규칙이 지켜지는 것이며 그것은 골프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사에 모두 적용된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체벌을 주지 못하는 법이 제정된 후에는 학교생활이 혼돈스러워지고 교권이 무너져 스승 알기를 장기판의 졸로 아는 학생이 많아졌다.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다. 물론 그런 체벌을 못하도록 규정한 이면에는 이성을 잃고 학생을 두들겨 패는 교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도 가르쳐야 하지만 교사들도 방학기간에 그런 면에 관한 교육을 자주 시켜야 할 것이다.
가족들을 수요일에 한국과 호주로 떠나 보내고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주말에는 호찌민에서 7시간 거리의 달랏에서 열리는 골프대회에 참가하였다. 약 150명의 골퍼들이 모였는데 일부는 비행기로 가고 일부는 차량으로 갔다. 비행기는 전세기라고 하더니 그렇지 않았고 진행상의 불편은 있었지만 달랏의 찹찹하고 기분 좋은 날씨가 모든 불만을 없앨 수 있었다. 필자는 싱글 핸디로 등록되어 있으나 요즘 팔을 다쳐서 보기(18 OVER PAR) 플레이도 하기 힘들어서 핸디를 제출하지 않았더니 첫날 게임에서 산출된 핸디가 21로 나왔다. 다음날 본 게임이 시작되어 게시판에 적힌 필자의 핸디를 보고 B조 우승은 맡아 놓았구나 하면서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필자의 동반자는 봉제업을 하는 김사장, 건설업을 하는 박사장 그리고 달랏에서 어떤 회사의 대리점을 하는 서사장이었다. 김사장은 필자와 비슷한 또래의 나이와 핸디캡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원칙주의자였다. 한번도 상을 탄 적이 없었으며 어떤 경우에서든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골퍼였고 박사장은 뭘 그렇게 까다롭게 골프를 하나 즐기자고 하는 것인데 하면서 OK LINE을 벗어나도 OK를 주지 않는 김사장을 원망하는 골퍼였으며 서사장은 핸디 18은 쉽게 칠 수 있는 홈 그라운드에 핸디 21을 신고하였으니 은근히 우승을 자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필자는 20년 전 베트남에 올 때 벌써 보기 플레이어였으며 아무리 팔이 아플지라도 우승후보로 들어가는 16타를 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로 생각하면서 라운드를 시작하였다.
필자는 파 보기 파 보기 이렇게 시작하면서 4홀을 순조롭게 진행하였다. 그런데 5번 홀에서 필자의 공이 페어웨이 벙커로 들어가고 이어서 서사장의 공도 벙커로 따라 들어왔다. 벙커에 두 개의 공이 나란히 2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반쯤 파묻혀 있었다. 이윽고 서사장이 오더니 벙커샷을 멋지게 날려 그린에 올려 놓았다. 그런데 필자가 벙커에 있는 공을 보니 필자의 공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서사장의 공이었고 서사장은 오구 플레이를 하였으므로 2 벌타를 먹고 다시 공을 주워와서 샷을 해야 한다. 우승의 꿈을 안고 잘 나가고 있는 서사장에게 벌타를 먹이면 분명 서사장은 우승의 꿈이 무너지고 말 것이며 Home Ground에서 우승을 하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될 확률이 무척 높아진다.
마침 다른 두 동반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필자는 원칙대로 하지 않고 오구 플레이를 한 서사장에게 오구 플레이(다른 사람의 공을 치는 것)한 사실만 알려주고 너그럽게 눈감아 주었다. 서사장의 우승에 대한 욕망이 숨길 수 없이 얼굴에 나타난 터에 벌타를 매기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인 것 같았다. 그래서 벙커에 묻혀있는 서사장의 공을 내 공 인양 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이 벙커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다시 벙커로 굴러 들어왔다. 다시 공을 쳤더니 그린 근처에 가고 그 공을 홀에 붙이지 못해서 결국 트리플 보기를 기록하였다. 6번째 홀에서도 트리플 그리고 일곱번째 홀에서도 트리플 이렇게 하여 게임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더니 필자의 스코어는 99를 기록하고 말았다. 공식 핸디 9인 필자가 99타를 기록하였으니 무려 핸디보다 18타나 더 치고 베트남 20년 역사상 최악의 기록을 내고 말았다. 벌타를 매기지 않고 잘 나가던 서사장도 핸디보다 훨씬 많이 치고 다른 동반자들도 예상보다 훨씬 많은 타수를 기록하고 말았다. 서사장은 양심의 가책으로 샷이 잘 되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동반자들도 흐려진 팀 분위기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나쁜 스코어를 기록하게 된 것일 것이다.
골프를 하거나 인생을 살아가며 한번도 속이지 않고 지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속이면 그것이 버릇이 되고 규칙을 잘 지키면 그것도 좋은 습관이 되어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골프를 마친 후에 필자와 친분이 있는 한 베트남 골퍼가 한 말은 타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골퍼는 한국인 세사람과 동반자가 되어 라운드를 하였는데 룰을 지키지 않고 예사로 스코어를 속이고 벌타를 주지 않아서 함께 골프를 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흔히 우리는 베트남 사람들을 잘 속이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곤 한다. 그런데 그런 베트남 사람이 한국인들에게 그런 불평을 하는 것을 보고 몹시 부끄러웠다. 골프도 사회생활도 이제 한국인들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이제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규칙을 준수하고 벌칙을 부과해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