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 Depression-Its Causes and Cure)
출처: jonathan edward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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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우리는 영적침체, 상한감정의 치유, 그리고 영성에 대한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점에도 수많은 관련된 서적들이 유통되고 있고, 치유학교등과 같은 세미나 과정도 진행되고 있다. 과연 무엇인 참된 영성인가? 영적 침체란 어떠한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러한 주제들은 결코 오늘의 한두시간의 강의로 충분히 다루어질 소박하고 단순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수많은 시간의 묵상과 학습과 그리고 실제가 필요한 주제이다. 어쩌면 성도의 삶자체가 영적침체나 참된 영성과 단 한 순간도 무관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적어도 새로이 거듭난 초신자들에게도 영적 침체가 나타나지만, 성숙한 신자라고 하더라도 임종의 순간까지 때때로 영적인 침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간에 이 대주제에 관련하여서 역사상 유례가 더물 정도로 깊이 탐구했었고, 또한 침체된 영혼들을 돌아보는 실전에 강했던 청교도들의 입장을 요약적으로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비록 옛사람들이어서 그들의 글을 읽는다는 것이 결코 쉽거나 재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권면하셨던 “옛적 길 곧 선한 길. . .우리의 심령으로 평강을 얻게 하는 길”(렘6:17)이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두에서 하나의 의문을 제기해보자. 그렇다면 청교도란 무엇인가? 우리의 막연한 의식속에는 안식일을 고집스럽게 문자적으로 지키고, 술 담배안하고, 춤 안추고, 최근의 영화『세익스피어 인 러브』에 나오는 목사 처럼 연극관람은 죄악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그러한 율법주의자정도로 알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나 청교도들은 비록 삶에 있어서 엄격주의자(Precisionist)이기는 했지만, 학문이나 예술 그리고 문화등에 대해서 무관심한 문외한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청교도 목사들은 소위 영국의 명문대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출신의 지성적인 인사들이었다(예외가 있다면 존 번연과 리챠드 백스터는 정규 신학교를 졸업한적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살았고 사역했었던 16세기-17세기의 영국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온갖 역경과 환란을 견인불굴의 인내심으로 통과했던 참 신앙인이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왕명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일신의 안녕은 조금도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인물들이었다. 일례로 올리버 크롬웰 부자의 공화정 정치가 붕괴되고, 다시금 왕정복고가 이루어졌을때에, 영국 국교(성공회)에 귀의함으로써 안정된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이에 불응함으로 면직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을 때에(1662년), 왕명에 반대하는 2천명의 청교도 목사들이 자신의 목회지에서 쫒겨나는 것을 선택했었고, 그들의 대부분 오갈데 없는 노숙자의 신세가 되었다.
존 번연은 이 때에 투옥되어 12년간이나 옥고를 치루었었는데, 옥중에서 그는 불후의 기독교 고전 『천로역정(The Pilgrimer's Progress)』을 저술하였다. 리챠드 백스터는 말하기를(자신의 유명한 저서 『참된 목자(The Reformed Pastor)』에서) ‘영국이 한 국가로 형성된 이래로 오늘날 만큼 그렇게 유능하고 신실한 목회가 이제까지 없었는 것 같다’ 자신의 시대를 평하였다. 그러나 또한 청교도들은 명문대학에서 공부한 지성인들이었음에도 대부분이 신학교수가 아니고 설교자로서 목회자로서 일생을 다한 실천적인 목사들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의 저작들의 대부분은 신학논문이 아니고, 성도들을 위한 설교나 강연문들의 성격을 띠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청교도 르네상스의 붐을 타고 우리 나라에도 몇몇 작품들이 번역소개되고 있다. 이미 소개된 신학자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존 번연(1628-88), 그리고 존 오웬(1616-83), 토마스 맨튼(1620-77), 존 플라벨(1627-91), 윌리암 거어널(1616-79), 리차드 백스터(1615-91), 죠셉 얼라인(1634-68), 토마스 왓슨등이 있다. 『실낙원』의 작가 존 밀턴은 비록 목회자는 아니었지만, 청교도로 불리운다.
본 강의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청교도들의 입장을 정리하고자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상 개별적인 저자들의 글들을 참조하지 못하고, 영국의 피터 루이스 목사가 쓴 다음의 책을 요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글 번역본을 구입해서 독서하시기를 바란다.
Peter Lewis, The Genius of Puritanism(Haywards Heath,Sussex:Carey
Publications,1975/rep.ed.Morgan,PA.::Soli Deo Gloria,1996)
(서창원 역,『청교도 목회와 설교』,서울:청교도신앙사,1991,pp.12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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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영적 침체’(혹은 버려둠)이란 무엇인가?(Definition)
영적 침체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대개는 신자들에게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임재 의식의 결여에 기인된다. 이 영적 침체의 시간은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영혼의 어두운 밤(The Night of Soul)’, ‘영혼의 겨울(The Winter of Soul)’, 또는 대개 ‘잠시 버려둠(desertion)이라고 표현된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선택받은 영혼들을 버리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의 경험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현존하심과 우호적인 나눔, 혹은 그 속에 있는 유익에 대한 생생한 의식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인되고 거두어지는 경험을 의미한다.
먼저 우리가 확립해야 하는 인식은 타락하거나 비밀스러운 죄를 지었거나, 믿음이 거의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이와같은 방치됨이나 침체를 경험한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도 역시 어두움의 상태에 처할수 있으며, 전혀 빛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수년동안을 그와 같은 상태에서 걷게 될 수도 있다”(T.Goodwin). "빛의 자녀도 잠시동안 어둠속에서 걸을수 있으며, 비록 그가 성령의 은혜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심령속에서 은혜가 날로 자란다고 하더라도, 귀중한 은혜의 기름부음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는 즐거움의 기름이 부족할지도 모릅니다“(C.Love). ”그것은 성도들의 경험한 바였습니다. . . 다윗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당신은 그의 한숨쉬며, 흐느끼며, 울부짖으며, 탄식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말합니까? 무엇이 그를 고통스럽게 합니까? 그는 시편22:1에서 말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나 다윗은 여기에서 예수님의 모형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슬픔의 그림자입니다. 다윗은 그리스도께서 나중에 훨씬 깊이 들이마신 고통의 잔을 맛보았을 뿐입니다. . . 그리고 이 잔은 그 이후 널리 퍼져 몇몇 사람만이 생수를 맛보았고, 마라의 물을 또한 마셨습니다. 적은 무리가 전에 하나님을 발견하였다고 말할 수 있으나 그들 역시 종종 하나님을 잃어버렸다고 말한 것입니다. . . 나는 이러한 아픔을 보는 시온의 애통하는 자 들도 아픔과 은혜가 양립해 있음을 말하였습니다. 당신의 고통의 수렁은 지나가 버리고 당신의 경우는 치료될 수 있음을 아는 것이 위로입니다. 다른 이들도 이 무거운 길을 걸어서 지금은 천국에 있으며, 이러한 폭풍속에서 지낸 자들도 지금은 약속에 땅에 무사히 도달하였습니다”(J.Simonds). 이러한 경험은 “악한 자나 세속적인 사람들 보다 신실한자에게 빈번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혀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전혀 이 고통을 겪지 않는다”(T.Manton). 이러한 경험에 의해서 나타나는 네가지 형태들은 아래와 같다.
1)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인식의 결핍.
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현존하거나 느껴질수 있는 모든 증거들이 부족하며, 그들에게 느낄 수 있고 현존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증거들을 줄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또 하나님의 은혜가 현재 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빛도 보지 못한다. 그는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이다”(T.Goodwin). 만약 신자들이 하나님의 임재 의식이 사라지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떠나 가신 것으로 느껴진다면, “모든 그의 즐거움은 쓰레기와 찌꺼기와 폐물에 불과한 것 외에 무엇이겠는가?”(J.Wells). 찬송가 500장 3절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즐겁고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라고 우리는 비슷한 진리를 노래하지 않는가!
2) 현존하는 은총의 능력에 대한 결핍.
이 침체가 취하는 두 번째 유형은 영적 은총과 능력들을 발휘하는데 있어서의 유약성이다. 이러한 침체에 빠진 사람들은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닫혀져 있음을 발견하며, 이전에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차 있을 때 처럼 기도하지 못한다. . . 그리고 그들은 성령충만했을 때와 같은 인내심으로 아픔들을 참아 낼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일은 우리가 성령충만했을 때와 같은 즐거움과 유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 때 가장 먼저 발생한다. 그들은 성찬식에서 하나님께 자기가 가까이 나왔음을 발견하지 못할 때, 그리고 그들이 이전에 경험한 바와 같은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달콤한 맛과 의욕을 느끼지 못할 때 확실히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숨기셨다고 결론짓는다”(R.Sibbes).
3) 현재와 과거의 은총을 기억하는 것 조차 낙담한 영혼에게는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한다.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은 모든 면에서 흔들리기 쉽다. 사59:10에는 어두움의 한 성향이 언급되는 데, 그것은 ‘낮에도 넘어지게’한다고 표현되고 있다. 어두움속에 버려진 한 영혼을 예로 들어보자. 그 영혼은 집회나 설교에서 들려오는 말씀 때문에 흔들릴 것이며, 그가 읽는 모든 것들, 그가 만나는 모든 약속들에 의해서 그는 더욱 의기소침해 질 것이다. 그들은 그 영광스런 약속들이 있어야 하지만 자기들에게 속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T.Goodwin). 침체된 영혼에게는 그것들의 진실성이 의심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별이 빛나는 것은 태양빛 으로부터 빌어온 것에 의한 것 처럼 우리 안에 비추이는 은총들도 빌려온 빛에 의하여 빛난다.
따라서 하나님이 은밀하게 비추어 주시지 않는한, 그리고 당신의 은총위에 빛을 주시며, 그것들을 빛나게 하시지 않는 한 하나님의 은총도 역시 여러분에게 위로를 주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증거 역시 여러분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은 우리의 은혜들을 결단코 혼자 증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영이 그것과 함께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침묵일 것이다. 로마서 8:16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과 더불어 증거하신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의 증거를 철회하실 때 우리 심령과 우리 은혜의 증거는 그 안에 전혀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T.Goodwin).
4) 구원의 확신에 대한 결핍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어두움에 걷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못한다”(요12:35,요일2:11). 따라서 하나님을 의심하는 자의 영혼은 과연 하나님이 자기에게 자비로우실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찰 것이고, 또한 하나님이 그에게 품고 계신 뜻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며, 그가 지옥에 갈 것인지 혹은 천국에 갈 것인지도 알지못한다(시77:7-9/88:5,6,11,12). 이와같은 침체가 깊어지면 경건한 자라고 할 지라도 심지어 자신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게 될수 도 있으며, 예레미야나 욥과 같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갈망하게 되기도 한다. “오 성도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절망의 늪이 찾아오도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경건하며 자애스러운 사람들이었다”(W.Bridge).
II. ‘영적 침체’(혹은 버려둠)의 원인(Causes)
청교도들은 영적 침체의 원인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하였다: 성령, 우리의 심령, 그리고 사탄.
1. 성령(Holy Spirit)
모든 영적 버려둠은 성령의 허용적인 활동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어떤 것들은 영혼에 임하는 하나님의 더욱 더 직접적인 역사의 결과로 일어난다. 또 잠시 버려둠과 침체는 죄로 말미암기 보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부터 발생되며,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영적인 교육과 진보의 은혜스러운 목적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주의해야한다. 즉 “하나님께서 당연히 또는 종종 실제로 그러한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는 원인이 되시지만, 하나님이 의혹들과 절망적인 공포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수반하는 결과들의 조성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자녀들에게 닥치는 이러한 어두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역사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다루시는 모든 것은, 고난의 때도 포함해서 은혜의 방법으로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그같은 아픔을 겪도록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 보편적으로 그것은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그들의 유익을 위해 그들은 평강과 안위가 필요하며, 그들의 유익을 위해 평강과 안위가 결핍되기도 한다”(W.Bridge).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그처럼 다루시는데는 최소한 아래와 같은 7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청교도들은 설명한다.
1) 하나님의 절대주권(Sovereignty of God)으로 말미암는다. 우리는 욥의 경우를 통하여서 때때로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련들이 우리에게 닥친다는 것을 안다. 이로 인해서 욥은 심히 고통을 느꼈고 그의 세 친구들과 더불어서 동문서답에 가까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셨을 때에 조차 욥이 당한 고난의 원인을 설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만을 따라서 자신의 기쁘신 뜻 대로 행하시는 자 이심을 선언하심으로서 욥을 침묵케 만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 말미암는 영적 버려둠의 전형적인 예인 것이다. 이와같은 경우에 하나님은 결코 원인을 원치 않으며, 또한 그렇게 하시는 원인들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는 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욥의 경우에 조차도 인간은 무죄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의인은 없다는 것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경우에도 하나님의 지고한 목적이 그 속에 역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버트 아스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인치시고 확신케 하며 안위하시는데 있어서 주권자로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때때로 그는 사람들의 첫 회심의 때에 그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영혼안에 오래도록 간직될 희락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어떤 때는 신자가 예배때마다 하나님을 기다리게 될 것이며,오랫동안 어두움속에서 주를 쫒게 되고 또 주님의 사랑을 발견치 못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영혼에게 죽을 때 까지도 어떤 아무런 유익이나 감흥도 또 그것에 관련된 어떤 증거도 주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신앙인은 전 생애동안에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는 어두움속에서 죽어갑니다. 그러한 유형에 대한 감각(특별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부분에 대한 직관적인 깨달음)을 누가 받게 될 것인지 그리고 시기 또는 방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절대주권의 섭리와 통치하에 있는 것입니다”.
2) 모든 위안의 근원지를 우리에게 보이시기 위함이며, 또 그것을 위해 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음을 보이시기 위함이다. “사람들이 다른 어떤 무엇으로부터 용기를 얻게 되면 그는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는 어떤 격려도 받지못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주님의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신 계획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누리는 모든 평안을 낙담과 좌절로 인하여 사라지도록 허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평강이 침해되며 심령이 요동되고 인간의 영혼은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인간들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 . 하나님은 자상한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자기의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나님은 자기보다 그들의 유모를 더 사랑하는 자녀들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들은 기쁨과 평화와 위로와 축복들을 유모들로부터 받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자신보다도 그러한 유모들을 더 사랑하고 있음을 하나님께서 목도하시게 되면 그러한 유모들을 제거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평강이 깨어지고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W.Bridge).
3) 성도로서 누리게 될 여러 가지 은혜를 개발하시기 위함이다. 이러한 영적인 어려움이나 버려둠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개발되지 않는 은혜의 특질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다음의 것들은 중요하다:
❶ 믿음. 무엇보다도 이러한 잠시 버려둠은 하나님에 의하여 은혜의 가장 근본이 되는 믿음이 강건해지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라”(T.Manton). "그의 신성을 거두심으로 인해서, 영혼은 숨김없으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님,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에 목매달게 된다(사50:10). 이러한 믿음의 단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신뢰하는 것이지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인하여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지 그가 하시는 일을 경험하는 것 때문에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서야 믿음은 그 본질에 따라서 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직 그 자체에 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는 없으나, 분명 하나님 안에 있는 자비와 무한한 구속의 역사 그대로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믿음은 기적 들 중에 기적이다. . . 그리고 이러한 믿음만이 모든 위로가 상실때었을 때도 우리가 잃지 않고 살아가야만 하는 믿음이다”(T.Brooks).
❷ 겸손.“하나님께서 잠시 버려둠은 사람들의 연약함과 공허함을 발견케 하며,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불충분하고 얼마나 은혜를 소유치 못하였는가를 깨닫게 한다. . .성도는 그 자신을 하나님의 집의 기둥으로 여길지 모르나, 그는 한낱 연약하기 그지없는 갈대에 불과한 것임을 보게 하신다”(Simonds).
더욱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더욱더 겸손해져야만 한다(벧전5:6). 성도들은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면 더 겸손해져야 한다.
❸ 구원의 확신. “하나님이 멀리 날아가 버리신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을 따르는 것 보다 더 숭고한 마음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가 우리를 경멸하고 멸시하신다고 느낄 때에도 그를 사랑하게 하고 그가 죽음의 무기로 무장하고 계실지라도 사랑안에서 그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그들에게 물과 유황을 내뿜는 것 같은 때에도 영혼은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Simonds). 이와같이 “하나님이 우리 속에 부재하실 때,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욕망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증거들을 갖게 됩니다”(Bridge)
❹ 기도. 하나님과의 교제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기도생활에 있어서 정체되고 나태해진다. 그러나 일단 그들의 사랑하는 분이 떠나갔다든지, 혹은 그들이 사랑하는 자를 잃어버릴 위기에 있음을 알게 되면, 그들은 그 사랑을 찾을 때 까지 세계 곳곳을 뒤지며 그를 구하게 될 것이다(아5:6-8). 그들은 그를 소리쳐 찾을 것이며, 헤만 처럼 “주야로 주앞에 부르짖게” 될 것이다(시88:1). “그러한 기도는 열정적이고, 심령을 다한 기도이며, 말할 수 없는 갈망으로 쏟아지는 힘으로 한 순간 우리에게서 멀어지신 하나님의 모습을 찾기 위하여 쏟아 붓는 간절한 몸부림인 것이다”(R.Bolton).
❺ 하나님을 두려워함. “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에게 다가감에 있어서와 대화함에 있어서 확신과 거룩한 담대함을 허락하신다고 하더라도, 그분은 자기의 자녀들에게서 당신의 위엄과 위대하심에 대한 당연한 자세를 기대하신다:‘이로말미암아 경건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12:28,29). 그분은 비록 우리의 아버지 되시나, 그분은 두렵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 .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경건하고 경외심에서 나오는 두려움을 알게하기 위해서 영적인 침체를 종종 허락하신다 . .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배우게 될 때 까지 .”(Simonds)
4) 죄를 약하게 하고 죄짓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아주 빈번하게 하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그것도 죄를 하찮게 여기거나 또는 죄와 적당히 타협해 버릴 때 잠시 연단을 위한 버려둠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방법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으로부터 그의 사랑과 은총을 거두어 가심으로 말미암아 이전에는 죄를 짓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죄의 실제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그의 백성들이 보고 생각하게끔 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평안이 다시 가리워지지 않기 위하여 그를 대항하는 죄에 대하여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더욱 두려워 하게끔 하십니다”(C.Love). “연단을 위한 잠시 버려둠은 믿음의 훈련과 하나님의 은총들을 발견하게 하는 것 처럼 동시에 부패하는 것을 침식시키고, 썩어질 육체를 멸망시키는 수단인 것이다”(T.Goodwin)
5) 사악한 죄에 대한 응징. 모든 원인중에서도 가장 현저한 침체를 가져오는 것은 상스럽고 추한 그리고 분명히 드러난 추악한 죄들의 경우이다. ‘하나님은 조그마한 나의 죄로 인하여 나를 떠나시지 아니하신다. 계속적인 관찰을 통해, 당신은 이러한 흐름을 있게 하는 원인과 빠지는 수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Simonds).
❶ 의무와 은총의 활용에 대한 태만의 죄. ‘경건의 임무는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부채이자 우리에게 임하는 상급이다. 그러므로 경건생활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불경건과 감사치 않음을 나타내는 일이다. 이로서 하나님의 위엄과 자비는 경멸되어진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 . 그러므로 하나님은 추방과 내쫒음을 가지고 오셔서 당신들을 그분의 시야에서 내어쫓을 것이며, 그러면 당신은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을 알게 될 것이다’.(Simonds),
❷ 빛을 대항하는 추악한 죄들. '다윗은 그의 마음에 죄를 숨기고, 죄를 즐기며,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오랫동안 계속 숨겨왔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모습의 광채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할 만큼 그의 영혼에 비취는 하나님의 얼굴빛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윗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잃어버린 것은 결코 아니지만, 구원의 기쁨과 그가 전에 만끽하였던 평강과 위로의 기쁨은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시51편,32편)‘. ’죄를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지옥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겠지만, 잠시동안은 그의 양심에 지옥의 고통을 불러들이는 것이다‘(C.Love). ❸ 과거에 지은 죄들. 신자들은 과거에 지은 죄가 되살아나서 양심상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회개한 죄가 용서받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스스로가 잠시동안 또는 우리의 훈련을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게 하기도 하며 과거에 용서받은 사실을 의혹하게끔 하신다‘. ’그는 그의 슬픔을 새롭게 하시고 참된 회개속에서 그들이 죄에 대해 더욱 슬퍼하고, 그를 죄에 빠뜨리려는 사탄의 은근한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게 하셔서 그의 삶의 모습을 깜짝 놀랄 정도로 새롭고 온전케 하시고 육체의 정욕으로 얼룩진 옷과 죄악의 모습들을 영원히 소멸하십니다‘.(R.Bolton)
❹ 거짓된 자신감과 교만. 이러한 유형의 죄는 하나님의 가장 귀한 자녀들이 범하기 쉬운 죄요, 무척 위험한 죄이며, 참으로 선택받은 자들이 앓는 병이다. ‘거짓된 자신감과 버려둠의 상태는 받은 바 은혜의 표지들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받은 표지들을 지나치게 확신하고 우리의 안락함과, 전에 발견한 영적 비밀들을 너무 많이 신뢰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영의 증거들과,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들 속에서 은혜로서 내려주신 은사들을 너무 많이 신뢰할 때 파생되는 것이다’(T.Goodwin). 그러므로 우리의 버팀목을 그러한 피조된 것들에 매달리게 내버려 두면, 하나님께서 종종 우리로 하여금 ‘어떤 육체라도 그의 목전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
❺ 성령을 근심케 함. ‘비록 슬픔의 감정이 성령안에는 없지만, 그의 거룩한 속성 안에는, 그것이 범죄한 자를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예리한 교정을 위하여 의도한 것이지만, 죄에 대한 순수한 불쾌감과 미움이 혐오의 정도에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순수한 불쾌감과 미움이 혐오의 정도에 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은 하나님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그의 분노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R.Sibbes). 그리스도인이 갑작스러운 유혹의 힘에 의하여 버티지 못하는 곳에는 죄성이 자라고, 그리하여 선을 무시하거나 악한 자의 명령에 따르게 된다. 그 다음에 '우리는 성령을 슬프게 하여 적대감과 슬픈 결과를 초래하며, 하나님이 우리로부터 멀어져, 이제 우리는 시들고 쇠약한 영혼의 불행한 상태에 내 버려지게 된다‘(Simonds).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영을 근심케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당신의 영을 근심케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을 슬프게 한 채로 천국에 결코 보낼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서 당신의 영혼을 슬프게 만드실 것입니다’(C.Love).
6) 신자들을 하나님께 가까이 두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로부터 자신을 철수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을 막으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주심으로 범죄하는 것을 저지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나의 고난이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나의 죄악입니다(히10:38,39).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천번이라도 멀어지는 것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단 한 번 멀어지는 것 보다 나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지 않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 가시는 것입니다’(T.Brooks/M.Lawrence). '최상의 것들에 대한 결핍은 그것들에 대한 보다 높은 평가를 하도록 우리의 상상력을 높여주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얻게되면 훨씬 더 강한 열망과 고귀한 이해력과 포용력을 가지고서 그 모든 것들을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R.Bolton).
7) 신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바울은 자신의 인간적인 결점때문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다른 이들을 위로할 수 위하여서 극한 고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후1:4,5). ‘영적 침체와 위로에 관한 그러한 확실한 경험들은 힘을 상실한 성도들을 놀랍게 회복시킬 것이며, 그의 비천해진 심령을 기쁨이 넘치게 할 것입니다. 내가 체험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었습니다. 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바르게 하고 위로하시는 방법은 동일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겪는 시련과 승리 또한 비슷한 것입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얼굴에게 말하듯이 한 성도의 경험은 다른 성도의 처지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② 그러한 경험들은 우리에게 많은 권위를 안겨다 줍니다(요일1:3). ③ 하나님은 시련과 승리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더 큰 영광의 표시를 주시고, 그들의 눈이 도움의 손길을 보며, 머리가 발의 필요함을 알아차릴때(고전12:22), 그들 서로 서로가 더욱 깊은 애정을 가지고 사랑하도록 만드시기 때문에 성도는 서로 의지하며 서로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N.Whiting). 이와같은 위로의 사역은 책을 통한 간접적인 지식이 많다고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다.
2. 우리 자신의 심령
‘따라서 성령이 우리를 다루실 때 우리의 심령이 그러한 고통과 어둠의 원인이요 조성자라는 사실에 놀랄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는 많은 약점들과 결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T.Goodwin). 그러한 것은 대개 말씀과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통제되지 않는 인간적인 판단과 감정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다.
1) 정신적인 침체상태(우울증 malancholy). 청교도들은 우울증을 자연적이고 심리적이며 또는 신체적인 결함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영적인 침체와는 분명히 구분하였다. '우울증은 영혼과 신체를 동요시키는 어둡고 침울한 심리현상이며, 이에 대한 치료책은 하나님에게서보다 의사에게 속한 것이다. 우울증은 영혼의 영원한 상태에 관심을 기울이느 활동을 전혀 할 수가 없게 만든다‘(T.Brooks). 우울증의 현상들로는 ‘이해력이 감소되며, 혼란한 공상을 하게 되고, 이성은 흐려지며, 영혼은 슬퍼진다’(C.Love). 이와같은 현상에 대해서 적지 않은 관심을 가졌던 R. 백스터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슬픔과 고통의 감정들은 종종 맑고 건전한 이성의 사용을 뒤집어 놓습니다. 따라서 이로 말미암는 인간의 판단은 방해받으며, 왜곡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의 판단은 신뢰받을 수가 없습니다. 맹렬한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처럼, 마음 속에 공포와 커다란 고통속에 있는 사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그의 격정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하여, 그 자신의 영혼과 행동들에 대하여, 그의 친구들과 원수들에 대한 그의 판단은 왜곡될 것이며, 대개는 잘못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백스터는 그와 같은 정신적인 침체에 빠진 자들에게 몇가지의 처방을 내린다. ‘현재의 자신의 이해력에 문제가 있으므로 자신의 판단을 믿지 말고, 목회자나 현명한 친구의 도움을 받으라/추억에 잠기는 것을 피하고, 홀로있는 시간을 피하라/만일 생각할 힘이 있다면 다음 네가지 것들을 많이 생각하라-ꊝ빛으로 가득찬 태양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하심. ꊞ인간의 구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 ꊟ그분의 온전한 희생과 공로들과 자유케하시는 약속과 은혜부어주심. ꊠ그리스도와 더불어 복받은 성도들이 가지는 상상할수 없는 영광과 기쁨을 생각하라...’
2) 성경에 의하여 정립되지 않은 거짓된 이성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정립되고 규제받지 못한 이성은 회심이전과 마찬가지로 회심이후에도 영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부적절하고 위험한 안내자이다. 또한 말씀에 앞서가는 육적인 이성은 신자의 신앙에 가장 강력한 적대자가 되기도 하며, 종종 영적 침체와 영적 버림상태를 유발시킨다.
3) 성경에 의해 규제되지 않은 인간의 감정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화되지 않은 감정들은 전에는 그를 밑도 끝도 없는 상상과 추측으로 팔아 넘기더니 이제는 종종 알지 못하는 공포심을 자아낸다.
→이상과 같은 우리의 이성과 감정들은 다음의 항목에서 다루게 될 사탄의 공작에 중요한 도구역할을 하곤 하므로 아래의 항목에서 자세히 살펴보자.
3. 사탄(Satan)
영적침체의 원인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과 성도들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오는 영적침체 다음으로 주된 요인은 사탄의 활동에서 찾아진다. 현대과학문명에 의해서 계몽된 우리들은 사탄의 실제와 활동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사탄은 우리가 그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심이 많게 하거나 또는 전적으로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을 전략으로 삼는다. 그리고 사탄의 활동을 너무나 원시적인 형태(달걀귀신이나 뿔달리고 방망이 든 도깨비)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속임수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가까이에 있다가 타락한 고등한 피조물이며, 광명한 천사로 가장할 수 있는 영특하고 매력적인 존재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후11:14). 사탄은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인간들 보다도 더 지성적이며, 더 고상한 도덕군자이며, 또한 handsome guy이다. {이와같은 주제와 관련하여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C.S.루이스,『스크루테이프 편지』,성바오로출판사/마틴 로이드죤즈,『영적 투쟁(에베소서강해 제7권)』,CLC/윌리암 거어널,『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 I-IV』,예찬사등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
1) 침체를 일으키는 사탄. 청교도들은 영적 침체에 있어서 사탄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주시하였다. 그러나 능력을 지닌 피조물로서 성도들을 침체시키고 낙담케 하는 사탄의 권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 속에 있는 죄와 어두움을 발판으로 삼아서 활동을 하는 교활한 자요, 영적 침체와 버려둠의 아픔을 증폭시키는 자이다. '우리의 불안한 마음속에 둥지치기를 애쓰는 것이 사탄의 끊임없는 일이요 행동지침이다. 또 사탄은 이같은 일을 하는데 잘 훈련된 조교요 유혹자이다 ’(R.Sibbes). 사탄은 최초의 인류가 누리는 지복상태를 질투하여 그들을 유혹하여 낙원으로부터 쫒겨나게 만들었듯이, 오늘날도 신자들이 하나님과 더불어서 누리는 평화와 여기에서 기원하는 여러 가지 영적인 복들을 질투하여서 어떻게 하든지 신자들을 이러한 낙원에서 또 다시금 몰아내고자 애를 쓴다. '사탄은 더 큰 일을 행할 수 없을 때 그 이하의 것을 행합니다. 만일 그가 당신의 영혼을 저주할 수 없다면, 그는 당신의 마음을 산란케 하기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힘써 행할 것입니다. 사탄은 대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 가운데 행하도록 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으나 여의치 않으면 우리를 불안속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 .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가 내세에서 누릴 참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주인의 기쁨이 이 세상에 있는 성도에게로 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 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방해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 입성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볼 때 그는 천국이 그들 안으로 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사는 것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에 사탄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들이 은총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할 것입니다‘(C.Love).
2) 사탄은 왜 영적침체를 일으키는가? 사탄에 의해서 증폭되는 침체는 ‘의무들을 분산시킴으로서 마음의 모든 민첩성과 열심을 부분적으로 앗아가게 된다. 슬픔이 우세할 때 마음을 현재의 아픔에 머물도록 유도함으로 마음이 슬픔이외에는 다른 어느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이하에서는 R.Gilpin,『마귀론 Demonologia Sacra』으로부터의 인용이 많다). 고통가운데 있는 마음은 슬픔을 극복하는 길을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전적으로 비참한 모습에만 집착하게 되어서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없는 무기력한 사람이 되게 만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탄은 이에 더 나아가서 성도로 하여금 전적으로 신앙을 포기하게끔 설득하려 한다. 또한 이와같이 침체되어 무기력하게 허물허물하는 자들을 이용하여 이제 막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신앙에 입문한 자들 앞에 좌절케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너무 지나치게 종교적이 되면 안되겠구나. 적당하게 믿어야 되겠구나. 믿는다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세상 재미는 내가 알아서 챙겨야 되겠구나 등등의 생각을 갖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기독교를 수용해야 할 상황이라고 하면 사탄은 그들로 하여금 기꺼이 죄와 세상 향락의 달콤한 맛을 저버리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여 살게 하며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하게 함으로서 쓸모없는 신앙인의 삶을 살게 한다’
3) 침체에 빠지도록 사탄이 사용하는 방법(또는 사탄이 주로 공격하는 네가지 영역들).
❶ 육적인 논리들을 이용하여 공격한다. 사탄은 그릇된 논리들을 가지고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다. ‘사탄은 5천년간 한 순간도 빠짐없이 동일한 위치에 서 있는 끈질긴 학생이며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는 자로 알려져 있다(계12:10). 그 자리에서 밤낮으로 공부하는 것이 비록 그의 공부의 전부는 아니라고 할 지라도 성도들을 유혹하고 소송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잘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의 주된 학습이다’(T.
Goodwin). 침체속에 빠진 자들에게 그릇된 논리를 주입시키거나 선동하는 탁월한 사탄의 음모는 성도로 하여금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였고 더 나아가 버림받은 자임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사탄은 영민하여서 이와같은 거짓된 진단들을 진짜인 것 처럼 설득시키기 위하여 다음의 여러 가지 도구들을 사용하곤 한다: ꊧ 사탄은 성경의 내용에 관한 잘못된 해석이나 적용을 통하여서 공격한다. 사탄은 본문에서 만이 아니라(예컨데 요일3:9이나 ‘용서받지못하는 죄=성령훼방죄’등의 본문) 어느 곳에서든지 성도로 하여금 절망에 빠지도록 성경을 잘못 사용한다. 그러한 의도가 전혀 없는 성경의 말씀을 잘못되게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사탄의 역사인 것이다. 이와같은 전술전략이 효과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근거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신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심 때문이다. 왜냐하면 미혹되는 영혼들은 하나님의 말씀위에 가미시킨 거짓 의미들을 결코 의심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ꊨ 사탄이 사용하는 또 다른 도구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론들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 두가지 양면성(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진노)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 두가지 모습이 참된 하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종종 논쟁할 것이며, 악한 자들의 자만과 거만한 모습을 깍아내리기 위해서 의도된 하나님의 모습들을 오히려 대적하는 것으로 전환시킴으로서 그들의 소망을 붕괴시키고자 노력합니다. . .따라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겸허하심과 무한한 사랑, 그리고 상한 심령을 기꺼이 용납하시고 위로하시는 모습에 대해서 증거하는 성경의 부분들을 감추어 버립니다’(Gilpin).
ꊩ 사탄은 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도구로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거짓되고 정교한 재주를 지닌 사탄은 죄와 죄 사이, 지배적인 죄와 아닌 죄, 극복될 수 있는 죄와 그렇지 못한 죄, 중생한 자의 죄와 중생치 못한 자의 죄사이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할 것이다. 사탄은 이러한 가정 위에서 성도들을 공격할 것이다. 당신이 지은 죄들은 회심한 자들의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당신을 지배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당신은 아직 중생한자가 아니다고 설득할 것이다’
ꊪ 은혜에 대한 그릇된 인식 역시 사탄에게 성도들을 공격하게 하는 강력한 무기를 제공한다. ‘사탄의 간계는 될 수 있는 한 은혜를 추상적 또는 관념적으로 올려 놓고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면에서는 그 진가를 축소시키려고 한다’. ‘사탄은 은혜에 대해서 말할 때 은혜의 가장 고귀한 탁월성과 영광스러운 체험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면서 은혜의 그 같은 면을 체험하지 못한 성도들에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는자라고 말한다’. ‘사탄은 그가 다루는 사람의 현재 영적 상태를 은총의 고상한 성취와 우수성과 비교시켜 그 차이를 해결할 수 있어야 참된 은총이지 그렇지 않으면 은혜를 전혀 입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은총은 가장 높은 곳에 있고 가장 낮은 곳에는 털끝만큼도 없다고 말합니다’.
❷ 양심(良心 conscience)의 가책을 이용하여 공격한다. 양심은 인체조직의 그 어떤 다른 부분 못지 않게 타락의 영향권 안에 있다. 따라서 거듭난 사람에게서 조차도 양심에 오류나 과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릇된 양심은 때때로 마땅히 해야할 것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실수하게 된다. 또 부채가 다 청산되지 못하였는데도 관용을 베풀어 면제해주는 실수를 범한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양심도 부여받은 양심의 권한을 뛰어넘거나 약점 이상의 것을 강요함으로서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 . 타락된 인간의 영혼은 좀처럼 주어진 테두리안에서 머물러 있지 못하는 물과 같이 쉽게 실수를 저지른다’. 사탄은 최소한의 것을 가지고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산산조각 내는 ‘틈새’를 노리는데에 명수이다.
❸ 인간의 감정(feelings, emotions, affections)을 이용하여 공격한다. ‘사탄은 감정들을 요동시키고 그 위에 역사할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들을 사용하여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두려움과 분노를 불어넣는다’ 이러한 방법으로 사탄은 성도들의 슬픔과 공포심을 유발시키며 불안과 괴로움을 조장하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만이 아시고. . . 하나님만이 즉각적으로 성도들의 양심에 상처를 주실수 도 있으나, 사탄 역시 주님으로부터 받은 공포 때문에 자신들의 죄의 덫에 걸려있는 연약한 양심들에게 공포심을 줄 수 있으며,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우리 속에 율법에 대한 공포를 제시함으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4) 사탄은 언제 공격하는가?
길핀(R.Gilpin)목사는 사탄이 성도들을 절망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영적침체를 증폭시키기를 추구하는 6시기를 구분한다(그의 『마귀론』,pp.355-9).
❶ 회심의 시기-사탄이 초신자의 죄책감을 이용하여 침체의 늪속에 빠뜨리는 것은 식은죽 먹기다.
❷ 회심한 이후에 범죄한 커다란 죄 때문에 진지하게 회개할 때. 이와같은 때에는 두려움과 부끄러움 및 자기 분개와 쓰라린 눈물, 깊은 굴욕감이 수반되며 그때에 사탄이 침투해 오는 것이다. 성도의 쓰라린 상처에 침투해온 사탄은 치료하는 기름을 발라 주는 것이 아니라, 이와같은 죄는 결코 성도가 지을수 있는 성질의 죄가 아니라고 믿게 만든다. 이렇게하여 성도의 마음속에 두려움과 슬픔이 극도로 몰려오게 한다.
❸ 하나님의 자녀들의 심령이 어떤 가혹한 고통이나 괴로움 아래에서 매우 불안해 할 때.
❹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심령을 무신론이나 불경스러운 생각들로 가득차게 준비할 때는 신자가 받은 은총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한 유익들을 부인하게 만든다.
❺ 사탄이 시험할 때 ‘심각한 경우’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는 경우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심리적인 동요를 겪는 사람은 거의 사탄의 손아귀를 벋어나지를 못한다. 그리고 우울증이 머리와 가슴에 영향을 주듯이 마음은 떨리며, 머리는 어두워진다. 그리고 모든 대상물이 잘못 보여지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Gilpin)
❻ 병상과 임종의 경험의 때. 대개 죽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장 날카로운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사탄은 사태를 바로 잡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강하게 설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