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음주의 - 김효성 목사(합정동 교회)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의 좌경화
미국 복음주의자 협회(NAE)는 최근 회원 교단들이 자유주의적 기독교회 협의회(NCC)에 이중 회원권을 갖지 못하게 금하는 규정을 취소하였다(Calvary Contender, 2000년 4월 15일). 이제 기독교회 협의회(NCC)에 소속한 미국 개혁 교회(Reformed Church of America)는 복음주의자 협회(NAE)에 회원권을 신청하였다(Review, 2000년 6월호). 복음주의자 협회의 가장 최근의 회원교단은 은사주의적인 빈야드 교회 협회(Associa- tion of Vineyard Churches). 복음주의자 협회의 현 회장인 케빈 매노이아(Kevin Mannoia)는 복음주의자 협회의 존재 이유가 자유주의를 대체하는 단체를 제공하는 것으로부터 공동체들을 변혁시키도록 교회를 일깨우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Baptist Bulletin, 2000년 6월호). 크리스챤 뉴스(Christian News) 편집자 헤르만 오턴(Herman Otten)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복음주의자 협회 안에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복음주의자 협회가 기독교회 협의회 교회들을 용납하는 것을 힘있게 항의해야 한다. 만일 그 단체가 그 방침을 변경하기를 거절한다면, 그들은 그 단체를 떠나야 한다." 무디 성경학교(Moody Bible Institute) 교장 죠셉 스토웰(Joseph Stowell)은 몇 년 전 복음주의자 협회에 가입했었다. (Calvary Contend- er, 2000년 7월 1일.)
테레사 수녀와 복음주의자들
교황이 테레사 수녀를 성자로 추앙할 때, 그 여자는 여전히 복음주의자들의 존경을 받을 것인가? 그가 마리아를 그리스도인들의 협력 구속자요 협력 중보자요 보혜사(Advocate)로 높이며 '캘커타의 성 테레사'를 칭송할 때, 잭 반 임페와 척 콜슨과 제임스 답슨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들은 다 테레사 수녀를 참된 신자라고 믿었다고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C.E.C. Journal, 2000년 5월호; Calvary Contender, 2000년 6월 15일.)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
한국장로교 총연합회는 9월 18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2000년 장로교대회 선언문"을 발표하고 "한국 장로교회는 만국 교회 앞에 하나"이라고 천명했다(기독신문, 2000년 9월 20일, 1쪽; 크리스챤신문, 2000년 9월 25일, 1쪽).
그러나 그 선언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위에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나 세속 이념을 두어 온 죄와 교권을 가지고 그것을 구실로 분열해 온 죄를 뉘우치자"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애매모호한 점이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약성경이 원시 시대의 신화적 사상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보며 사도신경이나 니케야 신조가 당시의 언어와 사상과 표현 형식을 가지고 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17세기의 교리적 진술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위의 선언문의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라는 말이 이런 자유주의적 생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표현된 것이라면, 그것은 극히 불건전하고 악한 말이다. 사실, 포용주의적 진술은 진리에 대한 무관심에서는 허용될 지 몰라도 진리를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특정 시대의 인간의 교리'라는 표현이 역사적 신조들이나 보수주의적 신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분명하게 표현되기 전까지는 이런 류의 선언문에 대해 동의를 표현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 결성
한국 장로교단들에 속한 총회신학대학원, 장로회신학대학원, 한국신학대학원, 고려신학대학원, 합동신학대학원, 기독신학대학원, 국제신학대학원, 대한신학대학원, 중앙신학대학원, 합동중앙신학대학원, 개혁신학대학원 등 11개 신학대학원 학생들은 9월 20일 기독신학대학원에 모여 '한국 장로교 신대원생 협의회'를 결성하였다. 그들은 다양한 신학적 색채를 반영하기 위해 1인 대표체제를 지양하고 총회신학대학원 이재윤, 장로회신학대학원 고창준, 기독신학대학원 김상민 등 3명을 공동대표로 하는 복수지도체제를 출범시켰다. 이 단체는 한국 장로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한 공동사업에 힘쓸 것이라고 한다. (기독신문, 2000년 9월 20일, 2쪽.)
오늘날 교회들에서 보수적 입장과 자유적 입장을 구별하는 선이 점점 없어지는 것은 심히 슬픈 일이다. 이것은 바른 진리의 증거를 점점 더 혼란시키는 일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 참된 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격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적 교회들은 결코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주의적 교회들과 분별력 없이 연합적 활동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미국 IVF의 '어바나 2000'
미국과 카나다의 IVF[기독학생회]가 후원하는 3년마다 모이는 2000년 12월 27일-31일의 집회를 위해 거의 2만명의 대학생들과 젊은 성인들이 어바나-샴페인의 일리노이 대학교에 모였다. 거기 참여한 거의 90개 교단들은 자유주의, 에큐메니칼, 신복음주의 및 은사주의 등 뒤섞인 단체들의 일부이었다. 학생들은 풀러, 베델, 애즈베리, 고든-콘웰, 덴버, 비올라, 그레이스, 그랜드 래피즈, 무디, 위튼, 웨스트민스터, 아메리칸 뱁티스트, 그리고 어셈블리즈 어브 갓 등 타협적 단체들의 많은 학교들을 대표하였다. 기관들은 감독교회, 복음주의 루터교회, 미합중국 장로교회, 미국장로교회, 침례교회 등을 대표하였다. 대학생선교회(CCC), 어린이 전도협회, 새 종족들(New Tribes), 티임(TEAM) 등의 종교 단체들은 청년들을 자기들의 기관들로 모집하려고 애썼다. . . . 어떤 부분들에서는 복음이 성경적으로 정의되었지만, 다른 부분들에서는 그 핵심으로 사회적 행동 계획들과 인종 화해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토니 에반스는 한 비디오에서 말하기를, "백성들이 먹을 것을 공급받지 못하는 곳에서 부정(不正)의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라고 했다. 새개정표준역(NRSV) 성경이 모든 참석자에게 주어졌다. 예배 팀 밴드는 큰 소리의 CCM/록음악을 제공하였다. (Calvary Contender, 2001년 1월 15일.)
신복음주의: 거대한 오염자
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서 신자들에 대한 교회 밖으로부터의 공격에 대해 경고했으나 30절에는 안으로부터의 더 음흉한 위험을 지적하기를, "또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하였다. 죤 애쉬브룩 목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OBF Visitor, 2000년 11-12월): "오늘날 근본주의를 공격하는 거대한 오염 세력은 신복음주의 즉 안으로부터의 공격이다. . . . 신자와 불신자를 연합하는 에큐메니칼 전도가 있다. 은사주의와 비은사주의의 혼합이 있다. 개신교인과 천주교인의 연합에 대한 제안이 있다. 대교회 및 구도자 운동이 있다. 복음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 있다. 현대 기독교 음악 운동이 있다. 천국과 지옥의 문자적 이해에 대한 공격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개방적 견해가 있다. 이 모든 슬픈 광경이 근본주의 안에서 '제자들을 끌어 . . .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남으로 생겼다. 우리는 우리가 신복음주의와 친구가 되고 그 책들을 읽고 그 대회들에 참석하고 그 연사들의 말을 들으나 그 어그러짐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치명적 잘못을 범한다." (Calvary Contender, 2001년 2월 1일.)
제리 팔웰 경내에서의 스티브 윙필드 전도대회
미국의 보수적인 인물로 알려진 제리 팔웰은 최근에 그의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에서 스티브 윙필드(Steve Wingfield)의 전도대회 천막이 오는 가을 리버티 대학교 건너편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의 새 부지(敷地)에 처질 것이라고 광고하였다(National Liberty Journal, 2001년 2월호). 윙필드는 이전의 리버티 대학교 학생으로서 "메노나이트 교회에 출석하는 웨슬리파 감리교회 목사"이다(Calvary Contender, 1991년 11월 1일). 1991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렌즈데일에서의 전도대회에 관하여, 윙필드는 에큐메니칼 사고방식으로 말하기를, "나는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들을 제쳐놓기로 작정하였다"고 하였다. 여러 교단들로부터의 약 75개 교회들이 그 전도대회에 참여하였고 그 대회에 랩 그룹과 록 그룹이 특별 출현하였다. (Calvary Contender, 2001년 2월 15일.) 배교와 혼돈의 시대에 보수적 지도자들의 분별력 있는 말과 행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빌 하이벨즈가 로버트 슐러의 집회에 선다
대교회 운동의 선생이며 윌로 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목사인 빌 하이벨즈는 '가능성의 사고'의 선생인 로버트 슐러의 1월 29일부터 2월 1일까지 열리는 '성공적 교회 지도자 학교'에서 자유주의적인 토니 캠폴로와 나란히 또 다시 연사로 명단에 올랐다. 노만 빈센트 피일의 제자인 슐러는 최근에 그의 수정(水晶) 대성전에 '무신론자' 고르바초프를 세웠다(Cal- vary Contender, 2000년 11월 15일). 수정 대성전은 교회가 아니고 관광객의 호기심을 끄는 곳이며 하나의 종교적 기관일 뿐이다(Christian News, 2001년 1월 22일). 로버트 슐러는 '이단자'이며 그의 신학은 성경의 신학이 아니다. (Calvary Contender, 2001년 2월 15일.) 그런데 어떻게 빌 하이벨즈 같은 사람이 그런 곳에 설 수 있는가?
빌리 그레이엄과 천주교회의 친분 관계
빌리 그레이엄은 요한 바오로 2세: 바치는 글(John Paul II, A Tribute)이라는 책의 서문을 썼고 가끔 교황을 찬양하였다. 데이브 헌트(Dave Hunt)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Berean Call, 2001년 5월 1일): "천주교인이나 개신교인이나 간에 누구든지, 빌리 그레이엄은 교황과 로마 천주교회를 참 신앙이라고 칭찬함으로써 개신교 종교개혁을 암시적으로 부정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의 천주교회 용납은 천주교회 주교들이 실제로 그들의 희생자들과 성경적으로 일치하였고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이 전파하는 것과 동일한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은 개신교인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였고 그들을 불태웠고 로마 교황청은 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명예를 주었다. . . . 만일 빌리 그레이엄이 로마 천주교회가 영혼들을 구원하는 참된 복음을 전파한다고 생각함에 있어서 옳다면,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잘못이었다. . . . 선택하라, 빌리 그레이엄이 옳은지, 아니면 종교개혁자들이 옳았는지, 그러나 그들 둘 다가 옳은 것은 아니다. 더욱이, 만일 천주교회가 참된 복음이라면, 로마 천주교인들 가운데 지난 5백년 이상 로마의 복음이 거짓되다고 확신하였고 참 복음을 믿었고 로마 천주교회를 떠났던 수천만명의 사람들에 대해 무어라고 말해야 하겠는가? 만일 빌리 그레이엄이 옳다면, 그들은 완전히 바보들이다. 그들은 천주교회에 머물러 있었어야 했다--과연 빌리 그레이엄은 전도대회들에서 믿겠다고 앞으로 나온 모든 천주교인들을 바로 그 교회로 돌려보낸다. (Calvary Contender, 2001년 6월 1일.)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가 C. S. 루이스를 칭송함
신복음주의의 주된 잡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 4월 23일자는 "신화 문제들"(Myth Matters)이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C. S. 루이스(Lewis)를 칭송하였다. 그 글은 그가 현대 및 후(後)현대 세계와 복음을 함께 나눌 방법과 언어를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었다고 말했다. 그 글은 루이스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라고 불렀고 그의 신화적 저작들을 칭송하였다. 그의 '나니아의 연대기'는 기독교와 이방 전통들에서 온 이야기들을 결합하며 비유들과 상징들을 섞는다(예를 들어, 애슬란은 '그리스도의 상징'이지만 또한 진짜 사자이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지는 "애슬란에서 그리스도는 만질 수 있고 알 수 있고 실제적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 잡지는, "루이스는 이방종교의 뿌리들을 파고 들고 그 뿌리들이 기독교의 것들과 양립할 수 있는 곳을 적당히 할당하는데 능숙하였다"라고 말했다. 이런 것이 신복음주의와 그 대표적 한 인물의 혼란스러운 묵상들의 일부이다! 루이스는 성경의 무오성을 부정하였고 진화론과 연옥설을 받아들였고 자기를 "매우 카톨릭적이다"라고 표현하였다.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천주교인들이었고 그는 몰몬교인들에게도 즐거이 환영을 받았다(Calvary Contender, 1998년 9월 15일). 마틴 로이드-죤스(Martyn Lloyd-Jones)는 C. S. 루이스가 심지어 기독교인인지도 의심하였다. (Calvary Contender, 2001년 5월 1일.)
빌 브라이트가 상을 받음
국제 대학생 선교회 총재 빌 브라이트는 그의 심각한 질병--폐 및 전립선 암--과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사역을 확장하는 방법을 계획하고 있다. 50년 된 그 사역의 공동창설자인 그는 책들을 편집하고 비디오들을 준비하고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위치한 한 대학교를 통하여 미래의 기독교 지도자들의 훈련을 촉진할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그의 태도는 매우 논리일관하고 신선하여서 그의 곁에서는 슬픈 태도를 갖기가 어렵다"고 미국 대학생 선교회의 부지도자인 크로포드 로리츠(Crawford Loritts)는 말했다(Religion Today, 4월 10일). 1996년 종교를 증진시킴에 대한 유명한 템플톤 상의 수상자인 브라이트는 동료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명예를 얻고 있다.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출판사 협회는 7월에 그에게 '평생 업적 금메달상'을 수여할 계획이다.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NAE)는 3월 7일 최초로 '평생 목회상'을 그에게 수여하였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학생 선교회는 최근 수십년 동안 점점 더 친(親)은사주의적/카톨릭적이고 에큐메니칼적이게 되었다. (Calvary Contender, 2001년 5월 1일.)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는 자유주의적인 교회협의회와의 싸움을 포기한다
대략적으로 말해, 이전에 미국의 자유주의적인 교회협의회(NCC)에 반응하여 조직되었던 미국 복음주의 협의회(NAE)는 실상 그 시작 때에 중립주의적 단체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그 단체는 명백히 정책을 변경했고 한 교단이 복음주의 협의회와 교회협의회 둘다의 회원이 되는 것을 허용한다. 복음주의 협의회의 회장인 케빈 매노이아(Kevin Mannoia)는 새 시대가 이제 왔다고 말하며 복음주의 협의회를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있는가라는 말로 정의하기를 요청한다(Christianity Today, 5월 21일). 그는 말하기를, "계속 우리 자신을 자유주의적 단체들과 반대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중요성을 합법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없어져가는 한 이유에 묶는 것이다"라고 한다. 또 "지금은 쇠해가는 대적(예를 들어, NCC)과의 부차적 싸움들을 싸울 때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만일 자유주의자들과 싸우는 것이 단지 '부차적' 싸움이라면, 우리의 일차적 싸움은 무엇인가? 혹은 오늘날 교회들 가운데서 자유주의자들과 싸울 "더 이상의 이유가 없는가?" (Calvary Contender, 2001년 6월 1일.)
김경원 목사의 교회 일치관(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서현교회 김경원 목사는 기독교연합신문 2001년 7월 22일자(4쪽)에서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그 글에서 첫째로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기를, "한국 교회가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야 함은 우선 대 정부적인 대표성을 가진 단체가 없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에 기독교의 소리를 하나로 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며 사회 선교나 특히 앞으로 북한 선교를 앞둔 시점에서 '하나의 한국 교회'를 절대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둘째로, 그는 한국 교회의 분열 원인에 대하여 인간 우상화와 신학을 원인으로 보는 견해에 공감을 표했다. 셋째로, 교회 연합을 위한 바람직한 방향에 대하여 그는 말하기를, "교단장들이나 교계 지도급 인사들이 교제를 나누며 연합을 위해 뜻을 모으고 특히 가까운 교단끼리는 상호 인정하고 교류 협력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현 KNCC와 한기총이 통폐합하여 모든 한국 교회를 총괄하는 하나의 연합체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다음의 말로 그의 글을 맺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적하신 것과 같이 하나가 되라는 이 명제를 한국 교회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 교회들의 일치와 연합에 대한 그의 열망은 순수하여 보이며 그러한 순수한 소원 자체는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 동안 자유와 보수의 대립적인 견해가 있어 왔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일치와 연합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고 성경적으로 바른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국 교회들이 대 정부적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교회 일치를 위해 그렇게 절대 필수적 이유가 되는가? 물론, 모든 교회들이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다면 그런 일치된 목소리가 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교회들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그런 바램은 사실상 허상에 불과하다.
구약의 역사나 교회사를 볼 때, 진리의 증거는 오히려 다수의 교회들이나 교인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바른 길은 때때로 소수의 오해받고 따돌림 당하고 핍박받는 자들에 의해 선포되고 증거되었다. 대 정부적 목소리나 북한 선교를 위한다면, 차라리 자유와 보수의 선을 분명히 나누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남한 교회나 북한 교회의 건전한 장래를 위해서 더 필요하고 유익할 것이다.
둘째로, 교회 분열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의 글에 의하면, 그가 인간 우상화를 교회 분열의 원인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고신 총회가 한상동 목사의 우상화 때문에 생겼고 합동측 총회가 박형룡 박사의 우상화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물론 그는 그의 글에서 단지 '한모 목사, 박모 목사'라고만 표현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의 글이 위의 인물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의 신앙 사상과 입장에 대해 심한 의혹을 느낀다. 그가 인간 우상화를 교회 분열의 원인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결국 진리를 위해 싸우고 간 신앙의 용사들과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따랐던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을 단지 인간 우상숭배자들로 몰아버린 셈이 아닌가? 세상에 바른 보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런 입장을 취할 수 없다.
한국의 보수적 교회들이 교회 일치 운동을 경계해 온 것은 자유주의 신학 때문이었다. 현대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초창기부터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포용적 입장에 반대하는 운동들이 일어났었다. 근본주의 운동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 안에서 교파를 초월한 교제를 추구하여 왔다. 기독교인들의 교제는 진리 안에서의 교제이어야 한다. 보수적, 근본주의적 교회들이 주장해온 것은 바로 이것뿐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근본적 교리들을 부정하는 무서운 이단 사상이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런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근본 교리들의 고백을 강조함이 없이 교회의 일치만을 부르짖을 수 있겠는가?
셋째로, 교회 연합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는 "궁극적으로 현 KNCC와 한기총이 통폐합하여 모든 한국 교회를 총괄하는 하나의 연합체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 속에는 현대 교회들 안에 널리 들어와 있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심각한 문제 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말은 예전에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하던 말과 같다.
이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회들 안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적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지는 법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한 교단에서도 물러섬이 없었거든, 하물며 그것이 교단들에 비해 제재 기능이 거의 없는 연합체들에서 물러서겠는가? KNCC[한국기독교회협의회]가 과거 여러 해 동안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활동해왔던 것은 우리 모두가 주지하는 바가 아닌가? 그런 KNCC가 자유주의를 버리고 성경적 입장으로 돌아올 리는 없다.
그러므로 KNCC와 한기총의 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진리 안에서의 일치인 성경적 일치가 아니고 진리와 오류, 정통적 보수 신앙과 이단적 자유 신앙을 섞어놓는 일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류의 일치 운동은 성경을 진실히 믿는 모든 신자들이 가장 반대해야 할 바로 그런 혼합주의적 입장인 것이다. 이런 교회 일치 사상은 오히려 참된 교회의 일치 운동을 혼란시키고 가로막으며 진실한 종들과 교회들을 교계의 주류적 대세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스탠리 목사의 잘못된 말
인기 있는 남침례교 목사요 저작자인 촬스 스탠리(Charles Stanley) 목사는, 최근의 라디오 방송에서, 만일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옥에 보내지 않으실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그에 관하여 들어본 적이 없고 알 특권을 가진 적이 없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지옥에 보내실 것인가? 나의 대답은 '아니다, 그 분이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Touch Ministries, 2001년 7월 31일,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공의를 조화시키기"). 그러나 이러한 말은 큰 잘못이다. 에베소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의 상태를 묘사하였다. 그들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고(1절),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며(3절),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다(12절). 이것은 복음을 들었든지 못들었든지 간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상태이다. 그는 이미 정죄를 받았고, 그것이 왜 그리스도의 마지막 부탁이 순종되고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것이 그렇게 필수적인가 하는 바로 그 이유이다. (David Cloud, Church News Notes, 2001년 8월 3일; Calvary Contender, 2001년 8월 15일.)
고신 교단신문의 잘못된 연합정신
예장 고신 총회의 교단신문인 기독교보 2002년 1월 12일자 사설에서 "연합운동에서 고신의 위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이는 작년 12월 28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대표회장 선거에서 고신의 후보가 패배한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하여 고신이 연합운동에서 해야 할 일과 한계를 분명 자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 . . 고신은 신학적으로 다른 보수교회처럼 교회의 연합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것은, 신학적으로 우리의 교회관은 교부들의 신학적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다. 교부들의 신앙고백은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사도적 공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 속에 교회관의 핵심이 담겨있다. 교단은 많으나 영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이다. 우리는 '분열주의자'도 '분열주의적'도 아니라는 것을 말로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고신 목사 중에 연합에 인색한 자들이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개선해야 한다. . . . 우리는 연합운동에 내놓을 만한 리더십[지도력]도 돈도 없다는데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3쪽).
나는 위의 글을 읽고 연합에 대한 고신 교단신문의 정신이 잘못되었음을 느끼며 심히 통탄한 마음을 가진다. 우리 나라의 진실한 많은 목사들은 총신이 넓은 길로 갈지라도 고신만은 성경 교훈에 바로 선 좁은 길을 걷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종종 고신의 목사들이 잘못된 연합 운동에 관련된 것을 볼 때에 실망적이었으며 이제 이런 교단신문의 사설을 읽게 되니 더욱 실망이 크다.
고신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연합적 인식 혹은 연합 정신의 부족이 아니고 잘못된 연합 정신을 버리고 바른 연합 정신을 가지는 것이다. 사설을 쓴 이는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 되는 것이 바른 교회관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교회관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천주교회의 배교적 사상보다 더 배교적이다. 자유주의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성경의 신적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대속(代贖), 육체적 부활, 승천, 재림, 마지막 심판과 지옥, 죽은 자들의 부활 등을 믿지 않는 명백한 이단이다. 천주교회로부터의 분리가 단순히 '분열주의'가 아니듯이,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배교적 교단들로부터의 분리는 이 시대적 요청이다. 바른 연합은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한 연합이다.
예장 통합측은 자유주의 신학을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교단이다. 그 교단은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그런데 고신은 어찌하여 그런 교단과의 교제를 문제 있는 교제로 보지 않고 오히려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것인가? 고신은 어찌하여 '분열주의'라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자유주의 교단들과의 교제의 단절을 오히려 악으로 간주하는 것인가? 고신의 초기 선교사들은 소위 메이천파 선교사들이라고 불리웠다. 메이천은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분리는 시대적 요청이라고 확신하였었다.
오늘날 고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잘못된 교제를 청산하고 한국 교계 안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한 교단들 간의 교제를 주도하는 것이다. 한기총은 한국의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아니다. 그것이 한국의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되려면 예장 통합측을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도자들은 그것을 배제할 생각이 전혀 없어보이며 오히려 오래 전부터 기장과 기감 같은 자유주의 교단들까지 받아들이려는 생각을 보여왔다. 이런 한기총이 어찌 보수교단들의 연합체가 되겠는가? 고신은 한기총을 갱신하든지 참신한 보수교단들의 협의체를 만드는 일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
김상복 목사의 신복음주의관(觀)
기독교보 2002년 1월 19일자(11쪽)에 의하면,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의 월례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EFA 회장)는 "복음주의 운동의 활성화"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신정통주의가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한 최근의 표현이라면, 신복음주의는 정통주의에 대한 최신의 옷이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기피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겠다는 의도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다르다. 개인적 복음과 사회적 복음 사이에 이원론의 필요가 없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초자연적 개인의 구원 경험과 사회적 철학이다. 교리와 사회 윤리는 둘 다 기독교 학문이다. 근본주의가 리더십과 사회라는 영역에서의 책임을 포기하고 사회를 변혁하거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무능해졌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믿는 모든 전통적 교리를 신봉하거나[신봉하나?] 사회적 철학을 포함시켰다"고 주장했다.
만일 그 신문에 보도된 것이 김 목사의 발표 내용이라면, 그는 신복음주의를 정통 기독교 교리의 신봉과 적극적 사회적 철학을 가진 최신의 정통주의로 정의한 셈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그의 사상이라면, 그는 신복음주의나 근본주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또 사회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책임과 교회의 단체적 책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신복음주의는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될 그런 입장이 아니다. 신복음주의의 보다 본질적 내용은 자유주의를 포용하거나 자유주의화된 교단들로부터의 분리를 거절하고 그 안에 머물고 자유주의자들과 교제하고 그들과 협력하는 입장이다. 그것은 성경에 교훈된 이단과의 분리의 명령을 어기는 타협적 죄악이다.
또한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에 관하여, 전통적 개혁교회나 근본주의가 공통적으로 주장하고 확신했던 바는 교회가 공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표준적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1:4에는 "[교회의] 대회들과 협의회들은 교회적 문제 외에는 아무 것도 다루거나 결정해서는 안되며; 비상한 경우들에 겸비한 청원의 방식으로나; 국가의 위정자들로부터 요구된 경우에 양심의 만족을 위해 충고의 방식으로 외에는, 국가와 관계되는 세속적 사건들에 간섭할 것이 아니다"라고 진술되어 있다.
개혁교회는 전통적으로 지교회적으로나 교단적으로나 간에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교회가 직접 학교나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운영하지 않았다. 물론 교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주신 은사를 따라 정치가나 교육가나 자선사업가 등이 있을 수 있고 또 교회가 정신적으로 그들을 측면에서 후원할 수 있을 것이지만, 교회가 직접 그런 일을 경영하거나 관여하는 것은 교회의 본연의 임무와 사명을 저버린 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고(막 1:38) 또 그가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특별한 임무이었다(마 28:19; 막 16:15; 행 1:8).
물론 교회는 교회에 속한 교인들 가운데 가난한 자나 병든 자를 돌아보았고 그것은 사랑의 당연한 표현이었다(행 2:45; 갈 2:10). 또 교회 밖의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아보는 것은 언제나 선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교회의 제한된 시간과 힘과 물질을 가지고 교회는 힘써야 할 사명을 주께로부터 받았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이다. 주께서는 그의 전능을 가지시고도 병고치는 일을 주로 하신 것이 아니었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일을 주로 하셨다(마 9:13).
근본주의가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은 바른 말이 아니다. 근본주의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교회들이 자유주의 이단 신학을 포용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오히려 현재 세계적인 근본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북아일랜드의 이안 페이슬리는 목사로서 유럽 의회의 국회의원이며 북아일랜드 내에서 카톨릭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개신교 지도자로서 그 누구보다도 전도와 사회 문제에 적극적이다. 우리는 그의 활동을 북아일랜드의 특수 상황이라고 이해하려 하지만, 여하튼 그것은 근본주의자가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잘못된 비난에 대한 충분한 반박의 예가 될 것이다. 단지 근본주의나 전통적 개혁교회가 확신하는 바는 하나의 단체로서의 교회가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뿐이다.
한국의 소위 교회지도자들은 신복음주의와 근본주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고 활동해야 할 것이며 그것들이 관심을 두는 문제들을 바르게 직시하고 성경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신복음주의의 타협적 죄악을 어떤 말이나 글로든지 가리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이단 사상들이 없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신학들을 포용하거나 자유주의적 혹은 포용적 교단들과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신실 혹은 배신이다. 적은 누룩은 온 덩이에 퍼진다. 교제의 작은 오류는 마침내 온 기독교계를 부패시키고 말 것이다. 유다왕 여호사밧 자신은 경건하였을지라도 이스라엘왕 아합과의 그의 잘못된 교제는 마침내 유다 왕국을 우상숭배의 나라로 부패시키고 말았다는 성경 역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빌 브라잇은 은사주의자들과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역함
카리스마지 2001년 10월호는 빌 브라잇[CCC의 창설자]이 신유 전도자 베니 힌(Benny Hinn)을 '사랑하는 친구'로 간주하는 중재자라고 말한다. 그 잡지는, 그러나 은사들에 대한 논쟁이 브라잇의 사역과 가정에 심각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 운동이 대학들에 영향을 주었던 1970년대에, 대학생 선교회(CCC)는 간사들이 방언을 말하거나 그런 행위를 옹호하는 것을 금하는 방침을 도입하였다. 브라잇의 아들 잭이 성령의 세례를 체험하였을 때, 견해의 충돌 때문에 아들은 그 사역과 가정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오래 되지 않아서 화해하였고 대학생 선교회는 '그 강경' 입장을 폐지하였으나 아직도 공적 집회시에 방언하는 것을 금한다. 브라잇은 "나는 은사주의자나 천주교인이나, 헬라 정교인이나 주류파 교인이나 간에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누구든지 함께 일한다"라고 말한다. (Calvary Contender, October 15, 2001.)
달라스 신학교 교수의 잘못된 사상
지난 달, 미국 복음주의 신학회(ETS)의 회장인 달라스 신학교 교수 대럴 보크(Darrell Bock)는 "복음주의 운동을 위해 날카로운 경계선들이 그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 대신, 보크는 "복음주의는 경계선들에 의해서보다 중심에 의해서 더 정의되는 '푸른 마을'에 비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열린 유신론'(open theism)의 교리를 거부해야 할지에 대한 토론 동안에 행한 한 연설에서 복음주의 신학회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열린 유신론'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다 아시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이단 사상이다. 비록 복음주의 신학회가 열린 유신론을 정죄하는 구속력 없는 결의문을 채택했지만, 보크는 그것을 반대하여 주장했다. . . . 어떤 근본주의 신학교들은 선생들이 달라스 신학교로부터 대학원 과정의 학위들을 취득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 . . 그들은 달라스 신학교의 타협에 관해 경고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David W. Cloud; Calvary Contender, January 1, 2002.)
잘못된 협력선교 개념
기독신문 '교단 활성화 기획--(4) 올바른 미래 선교 대비'라는 글에서, 노충헌 기자는 21세기의 선교 방향을 (1) 미전도종족 선교, (2)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 양육, (3) 협력선교라고 요약한다. 특히 그는 협력선교에 관하여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협력사역에는 인색하다. 한 예로 선교사 자녀수련회가 있다. 최근 예장통합 선교부에서 예장총회측과 선교사 자녀 수련회를 합동으로 열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했다. 선교사 자녀수련회를 교단의 특색에 맞취 따로 할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 자녀수련회를 독자적으로 열 수 있는 단체가 국내에 거의 없다는 실정을 감안할 때 수련회 대상을 좀더 개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기독신문, 2002년 6월 26일, 9쪽).
그러나 우선, 예장합동측 교단신문에서, 그것도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논설의 지면에서, 교단의 책임 있는 직책을 가진 인물이 아닌 일개의 기자가 교단의 방향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논하였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협력선교에는 분명한 원리가 있어야 한다. 그 원리는 무엇보다 선교를 포함하여 교회의 모든 활동이 신학적 건전성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장통합측과의 교류 문제는 그 교단이 신학적으로 건전한가라는 문제에 달려 있다. 통합측은 1959년 합동측과 분리된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적 장로교단인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와 계속 교류를 가져왔고, 성경유오설, 모세 오경의 문서설,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등의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용납해왔다. 그러므로 예장통합측은 신학적으로 건전한 교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장통합측과의 교제나 연합 활동 전반에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그 교단과의 협력선교는 물론, 선교사 자녀수련회 등도 옳지 않다. 교단신문의 역할과 영향은 참으로 중대하다. 교단신문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바른 방향을 지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죄가 된다.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예장합동측 교단신문인 기독신문 2002년 1월 23일자(1쪽)는 미국의 개신교 9개 교단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는 교회'(CUIC)라는 명칭의 단체를 형성한 일을 보도하면서 '아름다운 연합'이라는 큰 글자의 제목을 붙여 보도하였다. 그 9개 교단 속에는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미국 성공회(ECUSA)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40년 전에 조직된 '연합하는 교회 협의회'(COCU)라는 단체가 좀더 발전적 형태를 취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연합이 '아름다운 연합'인가? 물론 이 글을 쓴 김지연 기자는 신학적 분별력이 없는 평신도 기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단 신문의 편집국이 그것이 아름다운 연합인지, 배교자들의 연합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신문이라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매체를 취급하는가? 이것이 개혁신앙의 보수라는 사시(社是)에 맞는 일인가? 기독교 신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차라리 없는 것보다 못한 큰 악을 행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9개 교단의 연합은 아름다운 연합이 아니다. 거기에는 보수적 교단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인정하지 않으실 배교자들의 연합에 불과하다. 그것은 오늘날 자유주의적 에큐메니칼 운동의 일환에 불과하다.
건전한 화합인가?
1950년대 말 에큐메니칼운동에 따른 예장 교단의 분열의 여파로 1961년 분열의 아픔을 맛보게 되었던 서문교회와 제이교회는 40년만에 설립 90주년 첫 강단교류를 하였다고 한다. 서문교회의 이성헌 목사와 이상민 목사, 그리고 제이교회의 강홍준 목사는 성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부둥켜안고 함께 찬양을 드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서문교회와 제이교회는 더 이상 남남의 교회가 아니라 형제교회가 되기를 약속했고, 이들 교회는 올해 연합체육대회와 성가대교류 등을 실시하기로 했으며, 현재 교육관을 건축하고 있는 제이교회를 위해 서문교회는 헌금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였다("40년 분열의 담 허물다," 기독신문, 2002년 6월 26일, 10쪽).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예장합동측 교회들의 잘못된 강단 교류의 또하나의 예가 되었다. 예장합동측과 통합측의 분열은 이유가 있는 분열이었고 그 이유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예장합동측은 적어도 보수신학과 신앙을 지켜오기 위해 애써왔다. 그것은 고 박형룡 박사와 박윤선 박사의 수고의 결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장통합측은 그 노선이 달랐다. 그들은 자유주의적인 신정통주의 신학을 용납했고 성경 유오설과 모세 오경의 문서설 등을 용납하였다. 그들은 미국의 자유주의적 장로교단인 미합중국 장로교단과의 교류를 계속해왔다. 우리는 예장통합측 교단이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교단은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불건전한 교단이라는 것을 말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분열의 이유가 있었고 우리의 교제나 강단 교류가 불가능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이유가 여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교제하고 강단교류를 시행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교단의 지도적 교회, 지도적 인사가 그런 일을 앞서 행하는 것이 바른가? 이런 중대한 일을 잘못 행함으로써 파급되는 교단의 급격한 해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예장합동측의 깨어 있는 목사들은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이런 문제를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장로교 신학회의 잘못된 출발
예장통합, 예장합동, 기장 등 21개 교단 신학자들로 구성된 장로교 신학회가 6월 20일 창립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초대회장에 선출된 이종윤 목사는 취임소감에서 "장로교가 수많은 교파로 분열된 것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현실적인 자화상이다"며 "이번 장로교 신학회의 창립을 통해 장로교가 분열을 극복하고 선교초기처럼 하나가 되어 새시대에 복음전파에 주역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크리스챤 신문, 2002년 7월 1일, 14쪽).
초대회장 이종윤 목사가 예장합동측의 대표적 교회인 충현교회의 담임목사로 있다가 지금은 예장통합측 서울교회의 담임목사로 있는 것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30여명의 신학자들이 참석한 창립대회에서 선출된 임원진 중에 황창기 고신대학교 총장, 오영석 한신대학교 총장, 오덕교 합동신학대학원 교수 김인환 총신대학교 교수 등이 섞여 있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장통합과 합동, 기장 등이 모여 무슨 공통적 장로교 신학을 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자유주의 신학을 알 만한 보수교단의 신학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연합하여 무슨 토론을 하자는 것인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므로 이단자들과 더불어 무엇을 토론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일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교회 일치 운동을 위해 연합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 공통적 신학을 추구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일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4-16).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딛 3:10).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잘못된 교제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행정 부총장인 스탠포드 카슨은 2002년 6월 크리스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는 43개국에서 온, 100여개 교단을 배경으로 한, 700여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으며 여학생도 100여명에 이르고 한국인 2세들을 포함한 한국 학생은 130여명이라고 소개하면서, 특히 프린스톤 신학교와의 관계에 대해 "내년 학기에 우리 교수 한 사람이 프린스톤에서 가르치기로 했다"며 "상호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21세기 웨스트민스터, 목회자 양성--현장 바탕으로 한 실천적 사역에 관심," 크리스챤 신문, 2002년 6월 24일, 7쪽).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그 학교의 행정 부총장이 프린스톤 신학교와의 활발한 상호 교류를 긍정적이고 고무적이게 소개한 것은 매우 슬픈 일이며 그것은 오늘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교수단과 행정 당국의 방향이 어떠함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프린스톤 신학교와 미국 북장로교단(오늘날 미합중국 장로교단) 총회는 1920년대 후반 분명히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방침을 택했었고 그러한 방침에 대항했던 자들이 1929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했었다. 1920년대 후반의 두 신학교의 입장과 방향은 자유주의 혹은 포용주의와 보수주의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 그러하여왔다. 그런데 오늘날 두 신학교의 활발한 상호 교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프린스톤 신학교가 성경적인 입장으로 돌아왔다는 뜻인가? 그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초창기 교수들의 입장을 버린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이것은 그 동안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취하여 온 미온적인 신복음주의적 태도가 가져온 결과이다. 신복음주의는 자유주의와 교제하는 포용적 정책을 취하다가 마침내 자유화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미지근한 타협주의자들의 말로이다. 우리 나라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출신들이 대단히 많다. 그들은 이 타협적 사실에 대해 통탄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들 자신이 바로 이런 타협주의를 좋아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분별력이며 성경적 분리의 교훈에 대한 바른 깨달음과 순종이다.
정말 '사람의 생각'이었나?
2002년 7월 대구 서문교회와 제이교회의 '강단 교류'에 대해 한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제이교회를 방문했던 서문교회 이성헌 원로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만약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지금 온다면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어느 신부의 말을 인용하면서 "43년전 우리가 나누어진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요 사람의 생각이었음을 고백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교회 일치를 향하여 가자"고 역설했다고 한다(기독교 연합신문, 2002년 7월 7일, 18쪽).
정말 1959년의 합동과 통합의 분열이 사람의 생각이었는가?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분열을 원치 않으시고 온전한 일치를 원하시는 줄 안다. 그러나 참된 일치는 신앙 사상과 입장에 있어서의 일치이어야 하고 거기에는 용납할 수 있는 것과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합동과 통합의 분열 당시에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그리고 좀더 깊이 들어가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사상과 입장의 첨예한 차이와 대립이 있었다. 세계 교회는 이미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첨예한 차이와 대립을 경험하고 있었던 터이었다. 이 논쟁은 미국에서는 이미 1930년대에 겪어야 했던 논쟁이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뒤늦게 그런 싸움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 두 상이한 신앙 색깔은 화합할 수 없었고 현재도 이후에도 영원히 화합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역사적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믿는 자들은 그것들을 부정하는 자들을 용납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용납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 분열의 실제적 원인자이었든지 간에, 합동과 통합의 분열은 불필요했던 인간적 싸움이 아니라 불가피했던 진리의 싸움이었고 갈등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단지 인간의 생각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당시의 자유주의적 입장과 보수주의적 입장의 갈등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뉘앙스가 있다. 만일 오늘날 고 박형룡 박사가 살아계셨더라면 그는 참으로 통분하며 이런 발언을 반박하셨을 것이다. 합동측 교단을 세웠던 보수적 선진들의 그 노력과 수고가 과연 인간적 생각을 위한 일들이었단 말인가? 오늘날 합동측 교단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왜 이런 변질된 신앙 입장을 보이고 있는가? 합동측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야 한다. 예장 통합측은 초창기부터 교단 신학교(장로회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용납해왔다. 이미 그 교단의 상당수 목사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이고 있는 줄 안다. 문제는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의 용납할 만한 현대적 표현 양식인가, 아니면 기독교의 지극히 변질되고 악화된 하나의 이단인가에 달려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이라면 자유주의를 용납하는 예장 통합측 교단은 교제와 일치의 대상이 되기에 합당치 않다.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 역사상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이단이다. 그러므로 통합측 교단에 대한 무분별한 용납은 매우 심각한 오류이다.
한국장로교 안에 자리잡은 신학적 포용주의
초대 한국 장로교 선교사들이 철저한 보수주의자들로서 순수 복음을 전하고 교회생활에서 성경공부를 강조한 것은 아주 귀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청교도적 경건생활을 강조하고 보여준 것도 한국교회에 복된 것이었다. 초대 선교사 대부분은 성경을 파괴적으로 비판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용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찍이 미 북장로교 선교본부 총무인 브라운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공존할 수 있었는데, 조선에서는 고등비평주의와 자유주의 신학은 위험한 이단으로 간주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조선의 초대선교사들이 지나치게 완고한 보수주의자들이었다는 불평으로 들려지는 말도 되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잠시였고, 자유주의신학을 가진 선교사들이 들어왔고, 전과 같은 분위기도 바뀌었다. 차츰 자유주의 신학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해 가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 개척시에도 자유주의자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1909년에 한국에서 봉사하고 있던 북장로교 선교사 40명 가운데는 미국 자유주의 신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뉴욕 유니온 신학 출신 3명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 진보적 사상을 가진 분들이 틀림없이 있었겠지만, 강한 보수성을 가진 선배들의 대세 때문에 자기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10년대에 이르러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선교사들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때 두 사람의 선교사가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한국교회에 의해서 고소당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1908년에 한국에 와서 황해도 재령지역에서 일해온 고위량이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김장호 목사는 성경에 나타난 이적을 부인했다. 홍해의 이적을 간조(干潮) 현상으로, 오병이어의 이적을 모든 사람들의 도시락으로 해석했다. 이 때문에 그는 면직당했다. 그 후 그는 '조선기독교회'를 세우고 철저한 친일파가 되어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에서 사역하는 북장로교 선교회에 속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개인적으로는 철저한 보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자유주의자들에 대하여 유연한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저들이 취한 포용적인 정책이 곧 한국교회 생활에도 영향을 그대로 미쳤다. 이는 미 북장로교 선교부가 고위량의 문제를 취급한 데서부터 나타났다. 선교부 전도위원회는 그의 신학이 문제가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령성경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하자고 인사위원회에 제의를 했다.
인사위원회는 이 제의[미 북장로교 선교부 전도위원회가 자유주의 선교사 공위량을 재령성경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하자는 제의]를 수용하지 않고 서울로 이동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선교사를 사면하고 일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공위량은 곧 한국에 있는 일본인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받아 돌아와서 한국에서 일했다. 이것은 미 북장로교 선교부가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변모되고 있던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국 미 북장로교 선교부는 이런 정책을 그대로 따랐다. 공위량은 1923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이름난 자유주의 신학 선언인 '오번 선언'에 서명한 장로교 1200명 자유주의 목사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한국에는 더 이상 보수주의 신학이 지배하는 세계는 아니었다.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분위기가 차츰 형성되어 갔다. 1926년에 카나다 연합교회 선교사인 서고도가 함흥의 성경학교에서 성경에는 역사적,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1920년대에 일본, 미국 등에 유학하여 자유주의자가 되어 돌아온 김재준 송창근 채필근 등이 용기를 얻어 기회를 보아가며 그들의 자유주의 사상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4년에는 김춘배 김영주 등이 공개적으로 진보적 신학 입장을 발표했다. 이미 언급한 대로 1935년 총회가 이들의 사상을 정죄하여 취소하게 했지만, 그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사상을 취소하게 할 수는 없었다. 서고도는 그의 자유주의 신학을 유포하고 가르치는 일에 별 제재를 받지 않았다. 결국 1938년 제27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아 보수 신학자들이 흩어지자 완전히 자유주의자들의 세계가 되어 버렸다. 위 역사는 오늘의 교회에 심각한 경고와 교훈을 던져준다. 자유주의 신학의 포용정책은 결국 교회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20세기에 들어서자 미 북장로교회는 급속하게 신학적 포용주의로 흐르게 된다. 선교사들의 강한 영향 아래 살아온 한국장로교회도 이를 뒤따랐다.
한국장로교회의 포용주의는 카나다 연합교회를 품에 안게 됨으로 더욱 가속화 되었다. 카나다 장로교가 감리교회, 회중교회와 하나가 되어 카나다 연합교회를 조직했을 때(1925년), 한국장로교회는이 교회로부터 오는 선교사들을 개인적으로 심사하여 수용하기롤 결의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해인 1926년 그 선교회에 속한 서고도 선교사가 성경에 역사적 과학적 오류가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를 제재하지 못하고 포용했다. 그는 후에 조선신학교의 후원자로, 교수로 거의 평생 한국에 자유주의의 신학을 뿌리는데 어떤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 그는 자유주의 '한국기독교장로회'측을 위해서는 은인이요 공로자가 되었다. 한국 장로교 역사는 일찍이 자리잡은 신학적, 교리적 포용주의가 한국교회의 배교, 분열, 붕괴의 한 큰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일제시대의 배교와 순정 일본적 기독교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한 분들의 대부분이 자유주의 신학의 추종자들이었음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1951년 제36총회에서 고신을 축출하는데 앞장 섬으로 한국장로교회 첫 분열을 야기한 주체세력도 이들이었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교회 역사는 신학과 교리 면에서 협상이나 양보나 포용은 교회를 건설하기보다 결국 무너뜨린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종교적 다원주의(多元主義), 교회적 상대주의, 신학적 포용주의가 지배할 21세기에 50주년을 맞는 고신 교회는 우리 세대뿐 아니라, 오고 오는 다음 세대들이 복을 누릴 수 있는 미래의 참된 교회건설을 위해 신학과 교리(신조)면에 있어서 순수성을 지키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허순길, "한국 장로교 안에 자리잡은 신학적 포용주의," 기독교보, 2002년 6월 15일, 2쪽.)
고신 교단 총무의 사상
고신 총무 전호진 목사는 기독교보의 교단 설립 50주년 기획 특집의 "외국 교회와 고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의 신앙 사상과 입장을 나타내었다. 첫째로, 그는 현대교회의 연합운동과 오순절 운동의 문제점에 대한 비평적 인식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는 20세기 기독교회의 주요한 특징과 현상을 선교운동과, 연합운동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오순절 운동 등 세 가지로 요약하면서, "그런데 복음적 개혁주의 기독교는 선교운동은 나름대로 발전시키지만 신학적 정통성을 강조한 나머지 연합운동에 인색하였고 오순절 운동을 멀리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20세기의 특징으로서의 연합운동 혹은 에큐메니칼 운동은 자유주의자들을 포용하는 넓은 운동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그것은 건전한 성경적 연합운동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수적 교회들이 그런 류의 연합운동에 대해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었다. 또한 오순절 운동도 성령의 역사에 대한 건전한 이해에 기초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개혁교회의 바른 입장이다. 그런데 보수적 교회의 바른 입장을 '연합운동에 인색하였고 오순절 운동을 멀리하였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둘째로, 그는 국제기독교협의회(ICCC)를 신학적으로 편협하다고 평가한다. 그는 "ICCC는 너무 지나친 신학적 편협성으로 인하여 대중적 지지를 얻는데 문제가 많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도대체 국제기독교협의회의 신조나 강령을 알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국제기독교협의회의 신조와 강령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정통적이다. 거기에 어떤 '너무 지나친 신학적 편협성'이 있다는 것은 자유주의자나 신복음주의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표현이다. 그것이 그의 말대로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엘리야나 미가야가 그러했듯이 대중의 사상이 넓고 해이해져 있었기 때문이고, 부분적으로는 그 지도자 칼 매킨타이어 개인의 부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기독교협의회의 입장을 '너무 지나친 신학적 편협성'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적 기독교회는 성경적 근본교리들을 보수하고 자유주의자들로부터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해야 한다.
셋째로, 그는 진리 운동의 규모에 대해 인간적 위축감을 보인다. 그는 고신 총회가 국제개혁파 교회대회(ICRC)에 가입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보이기보다는 "그런데 ICRC는 너무나 적은 개혁파교회의 대회인지라 세계적 연합기구라 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세계의 기독교계의 현실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세계 기독교회는 지금 배교와 혼란의 와중에 있다. 많은 교회들이 이미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저버렸다. 자유주의 이단 사상은 역사적 신학교들에 침입해 들어와 있고 그 신학교들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은 연합기구라 할지라도 바른 정신, 바른 입장에 서 있는 기구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히 귀한 것이다. 성경 역사나 교회 역사에 있어서 진리 운동은 수와 규모의 크고 많음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작은 것을 귀히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때 악을 포용하고 악과 타협하는 인본주의적 태도가 나오는 것이다.
넷째로, 그는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를 교회 활동의 한 모범으로 제시한다. 그는 말하기를, "50년대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 교장을 30여년간 봉사한 존 매카이 박사는 명예박사를 무려 25개나 받았는데, 그는 세계적 신학자로, 선교학자로 나아가서는 WCC를 조직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앞으로는 고신 교단도 세계적 안목을 가진 지도자가 절대 필요하다"고 하였다. 50년대의 프린스톤 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교이며 존 매카이는 자유주의 신학자이다. 또 WCC는 자유주의를 포용하는 불건전한 단체이다. 어떻게 한국의 대표적 보수 교단의 총무가 자유주의 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자를 모범으로 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보수적 교회들에 인재가 없으면 없는 대로 가야 한다. 자유주의 교회들에게서 모범을 찾을 필요가 없고 찾아서도 안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세계적 활동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바르고 신실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고신 교단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교단 지도자들과 특히 교단 총무는 고신의 보수적 신앙 입장을 바르게 이해하고 지킬 만한 자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고신의 순교자적 뿌리는 무의미해지고 말 것이다. 고신은 본래 그런 교단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고신은 실망적인 일이 많다. 아직도 허순길 박사 같은 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주장과 입장이 고신 교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고신은 본래의 정신과 분별력과 입장을 회복해야 한다.
이성구 교수의 연합주의
고신 기관지인 기독교보의 교단 설립 50주년 기획 특집에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인 이성구 목사는 "한국교회 연합운동과 고신"이라는 글에서 연합운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노출하였다(기독교보, 2002년 9월 7일, 6쪽). 그러나 그의 견해는 비성경적이다.
우선, 그는 한국의 초대 선교사들의 교파적 확신을 무시하고 매우 불필요한 것들이 한국에 이식된 것처럼 생각한다. 그는 한국교회가 여러 교파로 나뉘인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면서 "서방의 교회전통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옮겨졌을 따름이다. 얼마든지 하나의 '한국기독교회'가 탄생할 수 있었으나 이미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 . .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등의 달라져 있던 전통의 교회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마치 우리가 교파적 차이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교파적 차이는 역사상 불가피하였다. 교파적 차이점들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계속 필요하지만, 그것들을 무시하고 한 교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천진난만한 생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교리적 통일성이 없이 하나되는 것은 겉보기의 하나에 불과하고 내면적 갈등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파가 나뉘거나 새 교파가 형성되는 것은 단순히 인간적 연약 때문이 아니었다. 적어도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 등의 교파는 분명한 교리적 확신의 차이 때문에 생겼다. 신학 교수가 그런 교파적 확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어떻게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지 매우 의아스럽기만 하다.
또 그는 예장 합동측과 통합측의 분열을 교회 정치 혹은 교권 장악을 위한 싸움의 결과라고 본다. 그는 말하기를, "고신과 기장이 떼밀려 나가고 남은 장로교가 다시 승동측과 연동측으로 분열된 것을 두고 흔히 교회 정치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한다. WCC에의 가담여부가 분열의 원인이라는 것이 밖으로 알려진 분열의 이유이다. 그러나 '총신 90년사'를 쓴 김요나는 승동측(합동)과 연동측(통합)의 분열의 이유를 네 가지로 들고 있고, 그 중에 WCC와의 관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적인 계략을 동원하여 교권을 장악하기 위한 싸움의 결과 일어난 분열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주의적 안목을 가졌거나 흐려진 보수주의적 안목을 가진 자의 발언과 같다. 자유주의 자들은 WCC문제가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문제삼은 보수주의적 합동측 인사들의 주장에 결정적 중요성과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 오늘날 분별력 없는 보수주의자들도 WCC 에큐메니칼 운동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WCC가 분열의 정당한 명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고신의 입장이었는가? 보수주의의 본질은 교리의 순수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것이다. 고신의 보수적 입장은 어디로 갔는가? 어찌하여 보수주의적 교단의 신학교수가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선진들의 투쟁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가?
그 다음, 더욱 본격적으로, 이 교수는 자신의 연합의 생각을 피력한다. 그는 최근 고신의 인사들이 연합운동에 적극 참여함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최근 들어 우리 고신은 한기총, 한장연(한국장로연합회) 등에서 상당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 . 최해일 목사가 사상 처음으로 한기총 대표회장에 출마하고, 여러 교회들이 회장에 당선되면 활동을 후원하기로 합의하면서 연합운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려 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고신이 연합운동의 주류에서 멀리 있는 것을 안타갑게 생각한다. 그는 말하기를, "대한성서공회가 '개역개정판 성경'과 '표준새번역'을 발간할 당시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오병세 박사를 위원장으로 세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KNCC 비가맹 교단인 고신은 소위 한국교회의 주류적 흐름과 상관이 없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100주년 기념사업회의 사무총장을 맡았던 김경래 장로, 한국 시민운동의 대부격인 손봉호 교수, '한국기독교회사를 정리하고 민족통일에 대한 건전한 기독교적인 이론을 집성해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만열 교수 등 연합운동에 기여한 개별적인 고신인들의 활동을 칭찬한다. 또 나아가, 2001년 11월 한목협을 통해 창설된 22개 교단장 연합기구와, 그 기구를 통해 시작된 '한국교회 대표기구 단일화' 운동에 고신의 젊은 목회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 또 각 지역에서 고신의 목회자들이 지역교회 연합운동, 연합사업에 활발하게 동참하고 있는 것을 매우 고무적인 일로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 교수의 사상이 오늘날 고신의 사상이라면, 그것은 성경적으로 비평받아야 마땅하다. 연합 운동에는 원리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는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이다. 자유주의는 교회 역사상 전무한 가장 파괴적인 이단사상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세계적으로 역사적 대교단들 속에 심각히 침입해 들어와 있다.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비성경적이라고 강력히 비평하였던 것이 성경적인 보수교회들의 입장이었고 고신의 입장도 그러하였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이 죽었는가? 교회들이 자유주의 이단을 제거하고 새로워졌는가? 어떻게 보수교단의 인사들과 신학교수가 정신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가?
교회 단일 연합체를 향해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교단장 협의회가 각 교단에게 제안했던 '한국교회의 통일된 연합체 구성 추진' 헌의안이 23개 회원교단 중 15개 교단의 총회에서 통과되었다. 통과 시킨 총회는 예장 합동, 예장 통합, 기장, 예장 고신, 예장 개혁(광주), 예장 개혁(국제), 예장 대신, 예장 합신, 예장 합동정통, 기성, 예성, 기침, 기하성, 그리스도의 교회 한국교역자회, 하나님의 교회 등이다. 나머지 8개 교단 중, 구세군, 예수교 복음교회,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협의회, 나세렛 성결교회는 임원회 등에서 결의되어 총회 인준만 남겨두고 있고, 기감, 기독교 대한복음교회, 기독교 한국루터회, 예장 순장은 불명확하나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라고 한다. ("'단일 연합체' 구성--각 교단 총회 통과," 기독신문, 2002년 10월 2일, 1쪽; "15개 교단 통과 '한걸음 성큼,' 기독교연합신문, 2002년 10월 6일, 9쪽.)
드디어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얼굴을 드는 것 같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으로 나뉘어 있던 교회연합체가 이제 한 연합체가 되는 힘을 얻은 것 같다. 이 일은 예장 합동과 예장 통합의 총회장들이 앞장서서 행하고 있다. 이 일에 예장 고신, 개혁, 대신, 합신 등의 소위 한국의 보수적 교단들이 다 긍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진전된 모습이다.
그러나 이 진전은 칭찬할 만한 진전이 아니다. 이것은 결코 성경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연합 정신은 성경이 가르치는 연합의 원리를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참된 교회가 이단을 포용치 말라고 분명히 가르쳤고, 또 한걸음 더 나아가 성경의 명백한 교훈을 무시하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도 포용치 말라고 엄히 경계하였다.
예를 들어, 성경이 참된 교회가 이단을 포용치 말라고 가르친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거절하라]." 로마서 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고린도후서 6:14-17,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요한이서 9- 11,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유다서 3, 4,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또 성경이 참된 교회가 성경의 명백한 교훈을 무시하고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을 포용치 말라고 엄히 경계한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데살로니가후서 3: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데살로니가후서 3: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오늘날 가장 파괴적인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본적 사실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다. 이런 신학이 바로 기장, 기감, 예장 통합 등에서 가르쳐지고 포용되는 신학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을 배제하지 않는 연합 운동은 명백히 하나님의 뜻에 반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