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 [Henri Louis Bergson, 1859 ~ 1941]
프랑스 철학자.
프랑스 철학자. 파리 출생.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으며 지방학교 교수를 지낸 뒤 파리로 돌아와 1888년 《의식의 직접적 여건에 관한 시론(試論)》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등사범학교 강사를 거쳐 1900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했으며 22년 이 학교의 명예교수가 되었다. 교직 이외의 공적 활동도 활발했는데, 특파사절로 미국에 가서 T.W. 윌슨대통령이 제 1 차세계대전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2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30년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 유심론(唯心論)의 집성자이며 I. 칸트·신칸트파 관념론에 대립하는 실재론으로 20세기 사상을 준비한 독창적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철학적 관심은 독일철학에서 볼 수 있는 <제개념의 유희> <내용이 공허한 단어의 집합>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또한 실재의 분절에 따라 사유한다고 본 H. 스펜서의 진화론도 시간관념에서 실재의 인위적 왜곡을 면할 수 없다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그는 철학은 이러한 구성적 의식과 그 소산인 기성의 언어·개념에 의해 실재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기호>의 저편에 있는 실재를 인식하고, 그것과 <합체>하는 것에 있다는 독자적인 방향을 제시하였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칸트가 말하는 <인식의 상대성>은 좁은 시간관념에서 나온 잘못된 견해이다. 우리가 시계와 달력에 의하여 이해하고 있는 시간, 수로 환원되어 양적·등질적인 길이·크기로 귀착되는 시간은 실생활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이며 진실한 시간은 절단될 수 없으며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상호침투하는 되돌릴 수 없고 약분할 수 없는 질적 변화를 전개하는 하나의 생동체이다.
이러한 시간을 우리는 내적 체험으로 전인격적으로 파악하는데, 이때 맛보는 자유·충족감은 <절대자와의 접촉>이고 이런 의미에서 실재, <적어도 그 일부>는 인식가능하다. 더구나 나의 내적 세계와 실재와의 관계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이기 때문에 나는 단순한 내관(內觀)을 뛰어넘어 한편으로는 우주의 모든 존재자와의 공감에 이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물을 실재화하는 형이상학적 실재의 직관으로 향한다.
이러한 현전(現前)하는 실재계(實在界)는 R. 데카르트와 칸트가 전제하는 등질평면적이고 무기력한 성질의 확장이 아니라 무한히 다양한 뉘앙스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속의 편재로서의 <생성의 대양(大洋)>이다.
여기에서 생겨난 여러 존재자는 모든 실재의 시원에서 약동하는 <창조적 진화력>에 대하여 진화 또는 퇴화의 여러 방향을 나타내고, 높이와 깊이로 실재계를 계층화한다. 인간이 만든 여러 학문은 이러한 여러 층을 각층에 어울리는 방법과 기호·이미지를 창안하면서 인식하려는 시도이다.
이때 지성과 과학은 물질계의 해명에 유효하며 직관과 철학은 정신계의 탐구에 전렴하는 것으로 양자는 가치의 우열 없이 상호보조적이다. 단순한 지속을 넘어서 순수창조 자체인 형이상학적 실재는 동물의 본능은 물론 인간의 지성, <보통사람>의 직관으로 파악될 수 없고 <특권적 개인>의 <초지성적 직관>을 요한다.
이 인식은 플라톤적인 <죽은 영원>의 관조에 그치지 않고 과거·현재·미래의 완벽한 상호침투에 의한 지고의 <시간적 종합>으로서의 <살아 있는 영원>과의 합체이다. 실재인식의 불가능성 때문에 윤리를 정립한 칸트에 대하여, 베르그송은 실재인식 그 자체가 가치론적 행위를 직접적으로 성립시킨다고 보았는데, 존재·인식·행동의 이러한 삼위일체화는 베르그송철학의 완성인 동시에 고대존재론과 근대인식론에 대한 초극(超克)을 시도한 것이다.
베르그송철학은 그 뒤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대두로 청년층의 인기를 잃었지만, 그의 철학이 드러내는 세계상의 생생함과 다채로움은 오늘날에도 철학자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물질과 기억 (1896)》 《웃음(1900)》 《창조적 진화(1907)》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 등이 있다.
***
베르그송 전기 (Bergson)
SOULEZ Philippe 와 WORMS Frederic, Flammarion, 1997, P. 381.
* 베르그송 조상의 가계
Sonnenberg(Ber)조부 --- Tamerl 조모
Gabriel 맏, Jakob두째, Michael 세째, Leopold 네째
(1790-1844) (1818-1898)
Ludwig Joseph Henri Bergson
(1808-1857) (1859-1941)
Michal Jeanne
(폴란드) (베를린) (프랑스)
* 베르그송의 가족
Michael 부 --- 모 Kaete(영국출신 유태인)
(1818-1898)
Julliette, Henri, Moira, Renee, Joseph, Philip, John(ou Jack)
(1858-?) (1859-1941) (남아공확국)
Jeanne Philip, Peggy,
* 베르그송은 두 번째의 자식이며 남자로서는 맏이다. 가끔 그를 맏이로 태어났다고 표현하는 연구가들이 있는데, 이때는 남자로서는 맏이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르그송의 가계가 프랑스로 오게 된 것은 무슨 연유일까? 우선 간략하게 가계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폴란드에서 오래 살았고 그런 대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태인의 사회적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해 준 프랑스와 홀란드에서 조금 나았다고는 하나, 이 두 나라를 제외하고 유럽 어느 곳에서도 유태인의 지위는 낮았다.
프랑스 대혁명을 본뜬 자유의 혁명이 동유럽에도 여러 나라에 있었다. 폴란드의 1830년 바르샤바에서의 혁명의 봉기에 가족 중에 최소한 한 사람은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이 혁명의 실패 때문에 베르그송의 아버지(Michael)은 어린 나이(12세)였으나 형 야곱(Jacob)의 손에 이끌리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다. 형인 야콥은 독일에 정착한 것과 달리 동생 미카엘은 프랑스에로까지 흘러 들어 왔다.
베르그송의 이름은 어디서 온 이름인가. [우선 표기법에 대해 한마디 언급하자. 프랑스인명 사전에는 일반적으로 글자 그대로 발음하기 때문에 발음기호 표시가 없는데, 몇몇 외국인 출신에 발음기호표가 있듯이 프랑스 태생인 베르그송에는 발음기호[bεRkson]가 있다. 이에 따르면 ‘벨크손’으로 발음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프랑스학문 학문 도입 시기에 일찍이 베르그송으로 표기했고, 그리고 고(故) 김 진성 선생님은 그가 남긴 번역본에 저자명을 베르그손으로 했으며, 요즈음에는 베르크손으로 표기하자고들 한다.]
베르그송이란 성은 전설적인 조상으로 저항하는 인물(Ber)에서 나왔다고 한다. 베르는 곰이란 뜻이다. 이 혈통의 자식이란 뜻으로 썼던 할아버지 Ber Sonnenberg에서 Ber의 아들이란 이름으로 아들 미카엘(Michael Bergson)은 Bergson이란 성을 택했다고 한다.
[프랑스 한 소설에는 소련에서 이민 온 자가 시민 등록하러 갔을 때 등록청의 관리가 복잡한 철자법을 간단히 기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다른 예로서, 유명한 여류작가 유르세나르(Yourcenar)같은 사람은 자신의 성을 철자 바꾸기(anagramme)해서 사용한 것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베르그송의 성도 Sonnenberg에서 Bergson으로 철자 바꾸기를 한 것과 닮았다.]
가족은 스위스 제네바에 있고,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위하여 파리에서 혼자서 지낸다. 명석한 앙리(Henri)는 가족들로부터는 철학자라는 별명을 들었다고 한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학업 성취는 뛰어 났으며, 특히 고등학교 수학에 재능을 보여 파스칼이 제시했던 한 기하학의 문제를 풀었던 해법은 수학 연보에 실릴 정도였다.
이미 일찍이 앙리는 진리와 행위 사이의 이중성(dedoublement)을 느꼈으며,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시절에는 철학과 종교의 내밀한 연관을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진리와 행위의 속과 겉을 의미하는 이중성(dedoubleement)이 카발라의 해석과 닮은 점에서 나왔으리라고 추측해 본다.
이것을 확장하면 철학적 논증의 이중성을 제논의 귀류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고, 종교의 이중성까지도 확대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한 존재를 부동이라고 증명한 것도 귀류법이지만, 한 존재를 운동이라고 하는 것도 귀류법에 의해서 제시될 수있다.
귀류법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 논증을 격파하면서 자신의 증명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하나의 존재에도 이중성의 의미가 있다. 제논의 역설이 사물에서 더 이상 분할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하나일 때, 베르그송의 철학은 생명에서 일 부분이라도 분할한다면 변질된다는 의미에서 변질할 수 없는 하나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앙제(Anger)에서 1년, 그리고 파스칼의 영향을 두루 깊이 간직한 끌레르몽-페랑에서 5년의 고등학교의 철학 강의를 하던 시절을 보냈다. 클레르몽-페랑에서 그는 수하적 논의를 좀더 깊이 가질 수 있는 교수들의 모임을 가졌으며, 다른 한편 최면에 관련된 실험적 모임에도 참여했다는 것을 말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드(Henri Hude)는 베르그송의 고교 강의록들과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저술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대해 저자 술레즈는 강의노트와 저서는 별개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위드의 베르그송 다시 읽기(relire)를 주장하는 의도에서 위드의 저서(“베르그송 I, II”)와 위드가 주석을 단 “베르그송의 강의록(3권)”의 해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왜냐햐면 전자의 저서는 베르그송 사상의 전체에 대한 재조명이고, 후자의 ‘강의록’의 주석 출판은 베르그송의 초기 작품과의 연고나을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견해는 베르그송이 이미 첫 작품(DI, 1888발표, 1889출판)을 내기 전에 세계와 인간 본성에 관한 종교적 관점을 가졌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베르그송의 첫 작품은 합리론과 경험론의 양대 축이 사물을 해명하는 이중성을 가진다고 보고 이들의 방식으로는 인간의 본성(자아형성)을 잘 해명하지 못한다고 본다. 새로운 철학은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 사이의 대비적 관계로 다시 보아야 함을 알려주는 이 첫 작품은 어쩌면 신의 본성에 대한 재 해명을 담고 있다고 본 위드의 견해는 그래도 아직 유효하다고 본다.
그리고 술레즈의 견해로에서는 베르그송이 그의 제자들에게 강의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지 말라고 충고한 것, 그들 자신의 학문연구에 더 많이 몰두할 것, 등을 권한 이야기를 상기하게 한다. 그런데 베르그송의 강의 노트가 그의 작품의 전반에 기초적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단순한 전달로서 강의가 아니라 그의 철학적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당시에 (그리고 전후 60년대 말까지도) 철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문교정책의 ‘심리학 강의’를 베르그송은 단순히 반복적 강의를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심리학적 시각을 제시하기 위한 시도도 해보면서, 쉽게 설명할 기회로서 이용한 것 같다. 한가지 덧붙이면 베르그송의 ‘심리학 강의’와 스피노자의 “신 인간 그리고 인간의 행복에 관한 소론”의 제 3장 부분과 비교해보면 어떤 유사점을 발견할 것이다.]
박사학위논문을 내고 두 번째 작품이 나오는 이 시기를 저자는 베르그송의 삶의 전환기라고 한다. 입학할 때 죠레스(Jean Jaures) 다음으로 3등이며 졸업 시에는 죠레스를 앞질러서 2등한 베르그송이 다른 사람들보다 한 두 해 늦게 학위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대한 평가에서 심사위원들이 지속의 개념에 대해 주의하지 못한 것에 심사를 마친 뒤에 불만을 표시했다.
베르그송이 그리고 파리에서 지내면서 앙리 4세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 모교에서도 강사를 지낸다. 이 시기에 첫 작품에서 제시한 심층의식의 사례들을 막 개화기에 있던 실험심리학 쪽에서도, 인간의 특수한 경험 즉 실증적 경험에서도 찾으려고 노력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이론의 밑받침이 될 사례가 실험심리학에서 보다 병리심리학의 환자의 사례를 세밀하게 검토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최면술의 시술 모임에도 참여한다. [우리는 그가 단순히 최면술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생산물 또는 정신 동력적 정신력 등에도 상당히 깊숙히 관계했던 시기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는 나중에(1913년) 영국에서 테레파시를 연구하는 학회의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그리고 그 회장직을 수락하면서 강연한 것을 논문(‘생생한 환영과 심리탐구’)으로 발표했다.]
필자는 새로운 철학의 탄생으로써, 들뢰즈 처럼 DI보다 MM을 더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은 이 두 번째 작품이 전통적인 철학에서 난 문제로 되어 있는 심신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고[이마쥬 이론], 두뇌 생리학과 정신병리학의 사례 특히 기억 상실증을 이용하여 형상 우선 정신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영혼의 자기생성의 의미를 강조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소르본느를 중심으로 베르그송에 대한 ‘사상검열’이 시작 될 때, (엉뚱하게도) 수학계에서 르르와(Le Roy)가 베르그송의 옹호자로 등장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덧붙이자 베르그송은 33세에 19세 처녀와 결혼한다. 이 결혼식에 화동으로 참석한 꼬마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Proust)였다. 프루스트의 어머니는 신부(Louise Neuberger)의 어머니와 친 사촌간이다.
이미 일반인에게 그리고 학계에서 명성을 얻었으나, 소르본느 대학에 두 번이나 지원했으나 실패했다. [우리가 보기에 소르본느의 보수성은 베르그송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 같다.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카톨릭을 옹호할 수 있는 칸트 철학의 방식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소르본느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뒤르껭이 소르본느에 들어간 것도 칸트 철학적 견해를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장점 중에 하나인 꼴레쥬 드 프랑스는 베르그송의 새로운 학문의 시도를 수용한다. 그런데 일반인에게 공개강좌 형식으로 강의하는 이 대학은 직계 제자를 갖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프랑스에 많은 철학자들이,독일의 강단 철학이 철학적 계보를 갖는 방식과 달리, 그들 자신의 직계 계보를 갖지 않는 것도 이 제도가 한 몫을 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학은 세계적 석학을 많이 배출했다. 현재 브로디외도 이 대학의 교수이다.] 이렇게 강단철학과 같은 학적 제도 바깥에 있었으나 샤를 페기와 소렐같은 유명인들로부터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논쟁자들 - 폴리쳐(Politzer), 럿셀(Russell), 보렐(Borel), 꾸뛰라(Couturat), 르 당떽(Le Dantec)등으로부터 정치 사회학, 심리학, 수학 생물학 등에 관하여 직-간접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이쯤에서 저자는 베르그송 철학이 프랑스이외의 나라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 어떻게 접근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영국에서, 캠브리지(Cambridge)대학을 중심으로 (특히) 럿셀을 중심으로 하는 수리-논리 철학자들은 베르그송의 철학을 하찮게 여겼으나, 프랑스의 소르본느와 성격이 유사하다할 수 있는 옥스퍼드(Oxford)대학의 도덕 정치 사상 관련자들은 베르그송을 호의적으로 수용했다. [프랑스의 소르본느와 영국의 오스포드는 카톨릭과 성공회의 차이에서 오는 지정학적 차이인가?] 미국에서는 제임스(W. James 1842-1910)덕분에(?) 베르그송은 미국 지식인 사회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아마도 베르그송의 철학사적 관심에 대한 것이기 보다, 철학에서 문제 제기하는 방식 때문일 것이고, 제임스도 심리학적이고 종교적인 면에서 베르그송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해서는 베르그송과 제임스 사이의 편지교환에서 다시 설명해야 할 것이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제임스의 <의식의 흐름>이 분트(W. Wundt)류의 실험심리학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면, 베르그송의 지속은 지성중심의 서양 철학사의 비판에서 나왔다.
뉴튼과 라이프니츠가 서로 교류 없이 미적분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왔듯이 제임스와 베르그송도 마찬가지로 서로의 영향 없이 의식의 흐름-지속의 견해를 표명했다]. 세계적인 명성을 이미 얻은 베르그송은 베른슈타인(Bernstein)과의 대담에서(1912년 5월)에서, 그는 다음 작품들은 대화체로 쓸 것이라고 했다.
또 그 대담에서 이것 또는 저것 다방면으로 섭렵하는 것을 아나키스트(anarchist, 자유적 또는 무작위적)이라 표현했다. [우리는 이 시기에 베르그송이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창조적 진화(1907)이후 그의 그 다음 주저 “도덕과 종교의 두원천(1932)”이 나오기까지는 25년이 지나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자.]
유럽대전(유럽인들은 처음에 이렇게 불렀으나 세계대전이후에 세계 제일차 대전이라고 부른다)은 베르그송을 강의와 연구에 몰두하지 못하게 했다. 베르그송은 1901년이래 도덕-정치 아카데미 회원으로서 5번에 걸쳐서 이 아카데미에서 연설을 했다. 그 연설에서 주제를 저자 술레즈는 주로 베르그송의 전쟁관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이 교회를 능가할 것이다(Ceci tuera cela; 마실의 해석)’는 의미심장한 표현이 나온 시기이다.
[이미 베르그송은 독일 철학 또는 프로테스탄트 철학이 지닌 폭력과 강압에 의한 전파방식을 잘 읽어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전쟁의 발발로 베르그송은 외교 사절단의 일원으로 다른 나라들을 방문하였다. 저자는 베르그송의 세 번의 ‘임무여행’이 있었다고 했다. 그 첫 번째는 스페인에로 갔으며, 그곳에서 3번의 강연을 하였다. 그 중에 세 번째는 ‘세계통일관’에 대한 견해를 발표했다. 꼬제브(Kojev)에 의해 해석된 ‘동질적 세계국가’에 대해 베르그송이 알았다면 베르그송은 자신의 선견의 확증을 보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부연설명을 달아 놓았다.
[꼬제브는 1930년부터 헤겔 강의를 열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에 독일 철학 특히 헤겔 철학이 늦게 들어온 것은 두 번의 불행한 사태 때문이라고 한다. 한번은 1870년 프러시아 군대의 파리 점령 과 소위 ‘빠리꼬뮌(1871)’ 때문이었고, 그리고 20세기 초에 다시 독일 철학을 연구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는 독일 철학을 이해하고 유럽대전을 막으려고 노력했던 장 죠레스가 암살 당하고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서, 프랑스학계는 또 다시 독일 철학에 대한 반감을 지닌다고 한다.]
그리고 베르그송은 유럽대전에 미국의 도움을 얻기 위한 프랑스 사절단의 일원으로 두 번이나 미국을 방문하였다. 이것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임무 여행이다. 이 방문에서 미국의 대통령이자 하버드대학에서 철학교수였던 윌슨을 개인적으로 만났었다. 유럽대전이 끝나고 윌슨에 의해 주창된 국제연맹의 성립시기에 베르그송은 국제 지식인 협력위원회(이 기구는 1945년 이후 국제연합의 유네스코로 될 것이다)의 회장으로서 활동한다.
그리고 베르그송은 1924년부터 류마티즘의 발병으로 거의 은퇴하게 된다. [저자 술레즈는 이 전기를 여기가지 쓰다가 중단되었다. 필립 술레즈 교수는 1943년에 태어나 ‘베르그송과 정치학’으로 국가박사학위를 받고 파리 8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1994년 갑자기 몰했다.]
이 전기는 이 다음부터 릴 대학의 보름스(Worms)교수의 해서 보충되어 완성되었다.
전쟁이 끝난 시기에 베르그송은 이미 60세였다. 1914년 프랑스 아카데미(학술원)에 선출되었으나, 1919년 전쟁이 끝나고 정식으로 회원 입회 연설을 했다. 베르그송은 한편으로는 국제 지식인 협력위원회(CICI)의 회장으로서 활동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술원 회원으로서 철학 과학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그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기이다.
그가 여러 분야의 저술들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시기이기도 하다. [베르그송의 철학(형이상학)이 질료(자연)를 바탕으로 두기 때문에, 이 시기에 다양하게 확산될(베른슈타인과 대담에서처럼 아나키스트적이다)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주제로 보면 자아의 본성의 세 번째인 확장적 자아에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디까지 확장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져갈 시기에 베르그송의 마지막 주저가 나온다. 1932년(73살)에 출판된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의 철학적 방법론이 들어있는 “사유와 움직임”이란 논문집도 2년 후 1934년에 출판된다. 저자 보름이 보기에 베르그송의 철학적 의도와 상관없는 과학, 정치, 종교의 논쟁들이 매우 다양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 보름은 이제 베르그송에 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한 때이라고 한다. 우리는 베르그송의 철학에 대한 이전까지의 논쟁들이 베르그송 철학의 전반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견해로는 프랑스의 철학계가 베르그송의 진의를, 스피노자를 250년 동안 곡해한 만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베르그송이 카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지 않는 이유로서 동족이 박해받고 있다고 쓴 유언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며, 그의 삶과 그의 작품의 통일적 시각은 옳게 평가되었는지를 다시 물어보아야 한다. [이 “베르그송 전기”를 보름스 교수는 술레즈 교수가 제8장까지 써둔 그 뒷부분(제9장에서 제11장)을 완성하였다.
나의 글의 단락구분도 8번째까지는 술레즈를 9-11번째 단락은 보름의 것에서 따온 것이다. 이 마지막 3 부분은 새로운 관심거리가 거의 없고 정리의 차원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보름은 술레즈의 입장을 그대로 따라가기 위하여 술레즈가 정리하지 못한 자료를 그대로 옮겨 놓았을 것으로 본다.]
베르그송에서의 인간 본성의 세측면
- 심리적 측면, 진화적 측면, 인류적 측면 -
인류는 언제까지 어린아이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이제 어린 시절의 감성적 영혼의 시절을 보낸 인간 종이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초월의 3신(원) 철학은 동족(민족국가)의 단결을 위하여 개인(인격)을 어린애로 취급하기를 넘어서 심지어는 인간을 비천하고 나약하고 나태하고 결함 있는 존재로 취급한다. 그래서 하늘의 명령인 것으로 가장한 국가의 권력 또는 권력의 집행자들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서 백성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교육받는다.
말하자면, 권력자 자신은 이 명령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심지어 그 명령이 백성으로서는 잘 지키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으면서도, 백성이 명령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권력은 강한 제재를 가한다. 이런 방식이 수용될 수 있는 것도 초월의 3신의 신앙이 그 바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바탕을 뚫고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것이 곧 개혁과 혁명일 것이다.
이 3신은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애정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영혼의 발전과 확장에 따른 사회와 공동체의 필연적 변화를 바라지 않는 자들의 자기 기만과 오만이다. 이러한 오만과 독선이 자신들의 존재적 위상과 인식적 방식을 결합하여 고정불변의 진리가 저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허상을 만들고 이것에 대한 확신을 넘어서 타인에게 강요하는 미신(la superstition)을 만든다.
이 글을 쓰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들이 있다. 자본 그리고 이자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의미체로서 의미연관에서 힘을 갖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 자본주의는 형상 형이상학과 결탁하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허상(l'illusion)과 미신을 미끼로 백성을 지배하는가? 이 형상을 대체물로서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고 만족하는 철학이 왜 강력한 원리의 힘을 발휘하는가? 이 형상의 원리는 3신(la trinite)의 형상화(l'idealisation)에 있을 것이고, 이 3 형상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가치론적 일치는 유일신앙의 교리에 극단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3신의 극한으로서 존재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것으로 있으면서 세상에 그 권력을 행사한다. 이런 존재의 완전성과 충만성 자체가 인간이 만든 원리와 규정일 것이다. 인간이 이런 고정되고 초월적이고 영향력 있는 존재를 인간 밖에 상정한 것은 인간이 자연과 투쟁하면서 인간 종(류적 존재)의 보존을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인간 종의 강조는 자연과 싸움에서 또는 다른 생명 있는 존재와 투쟁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인간의 유한성으로부터 오는 자기 방어적 전략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대의 신화로부터 중세의 종교시대에 이르기까지 개체의식을 무시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원시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 전까지 몇 몇 현자들이나 구도자들이 개체의식의 자유를 체험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은 곧 사회를 해체할 위험에 처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나아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산력의 부족 때문에 어렵고 고생스런 백성의 삶을 보고서, 그들은 여전히 회의 또는 비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도 인간을 위한 구원으로 공동체의 유지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종교는 천당과 극락의 삶을 기대하며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게 한다.
이렇게 종교적 신앙에서 유일 존재는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을 고정불변으로 규정하면서 신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의 충만과 완전을 바라는 인간 욕망의 산물일 것이다. 이런 존재에 대한 기대(소원, 욕망)에서 인간은 그 존재를 원리로 또는 공리로 삼는다.
그래서 충만하고 완전한 존재가 먼저 있으며(존재하며) 그리고 난 뒤에 변화하는 존재가 생성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변화 생성하는 존재 또한 충만된 것으로 여기는 발상은 인간의 무지(또는 회의)의 산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자신을 존재의 전체에 포함하여 생각하면 인간의 유한성과 다른 어떤 것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한성의 일반적 속성(성격)은 무한성의 보편적 속성(성질)과 다른 것이다. 이런 사유가 또한 이원론적 인식의 난문제를 낳는다. 유한한 일반은 자기 정립적 체계를 갖추기 위하여, 무한의 보편을 항상 선행 조건(토대)으로서 전제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체계가 자기 정립적이기 위하여, 이미 거부한 원리를 다시 끌어들여 보증으로 삼지 않으면 안되는 순환 논증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 존재의 두 속성으로서 두 실체(법칙 연관)는 존재의 연역적 체계에서 존재의 자기 모습의 드러내는 방식일 것이다. 존재가 자기를 드러내는 것 또한 생성의 한 방식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식하는 방식에서 이 드러남을 두 극단으로 정리하면, 원리의 전개방식과 사태의 전개방식이 있다. 이들 둘은 서로 대칭이 되지 않는다.
단지 대칭으로 여기는 것은 둘 사이를 대칭으로 만들고자하는, 체계 정립적으로 만들고자하는, 인간 이성이 자기 기대의 충족을 위한 하나의 놀이일 뿐이다. 이런 놀이가 아닌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존재의 자기 변화는 원리와 사태를 생산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게다가 지금까지도 발전했듯이 미래에도 발전할 것이다. 원리와 사태의 비대칭은 생산적 과정에서 생겨난 사실들의 모습의 다양성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말하자면, 원리에 맞는 사태란 인간의 기호에 맞는 것일 뿐이며, 그 예외는 수없이 많다. 이런 다양성들이 이런 저런 사태들 사이에 함축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기보다, 생성적 존재의 자기 생산의 활동과 필연적으로 또는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이 다양성의 각각을 지닌 현실적 존재들은 서로 사이에 함축적 연관이 없다는 점에서 특수자들이다.
인격은 이처럼 특수자이다. 그러면 이 특수자는 유아독존인가? 이 특수자들이 서로의 연관을 확인하는 것은 충만한 생성적 존재의 필연적 생산 능력이 자신의 내부에 존속하는 것을 지각하기 때문이며, 존재의 속성들을 지니면서 - 각자가 자신의 인격을 발휘하듯이 - 속성을 동등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능력을 깨달으면서이다. 말하자면 생성적 존재의 자기 표시, 표출, 의미는 특수자들에 의해서 실현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인격)의 본성은 생성, 발전, 확장의 세 가지 본성(양상)을 지닌다.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3측면은 단지 인간성 3 측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고대철학처럼 천상의 원리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 것도 아니고, 갈릴레오 이후로 데카르트에 의해 인간의 자의식의 발현을 묘사하면서 천상의 원리가 지상에도 똑 같이 적용되듯이 정신과 물체가 이원적으로 각각의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런 원리와 법칙이 우리의 삶에 대해 지배적이고 소중한 역할을 해왔음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생성의 자기 발전의 근원과 이유에 대한 인간의 무지가 존재의 규정의 불완전, 인식의 한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이제 인간이 또는 생명있는 존재가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사실을 그대로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누구로부터 삶을 얻었거나 또는 어떤 삶을 살도록 명령받은 바 없다는 것을 주목하자. 이 인류가 자신들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는 것은 곧 자연의 본성을 파악하는 것일 것이다.
자연과의 투쟁에서 인간은 신을 외재화하고 즉 초월적 존재로 간주하고 그에게 자신을 소망(욕망)을 기원하는 오랜 세월을 거쳤다. 그 세월만큼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소외였다. 인간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초월적 힘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것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에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이 명령하는 것을 따르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으리라. 이 이름이 의미체 이니까 단순한 허상이라고 말하지는 말자. 단지 이름이 명령과 말씀으로 전하는 것은 인간의 질긴 구원에 대한 욕망이리라. 이런 이름이 아닌 구체적 대상으로서 자연에 대해 인간은 인식의 발달로 자연의 주인이나 되는 듯이 행사했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대상을 다루는 방식을, 초월적 존재가 인간을 다루듯이, 인간이 외적 대상을 다루듯이 다루고 있다는 것을 늦게서야 깨닫게 된다. 인간이 초월적 대상에 자신을 비추듯이, 이번에는 자연이라는 대상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으리라. 자연 자체의 본성에 접근하지 못한 인간은 늦게서야 자연의 본래모습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초월적 존재에서도 외적 세계에서도 아니고, 자연의 내면에서부터 자신의 모습을 탐색하는 것이리라.
존재의 탐구에서 존재의 완전과 규정에서 시작하는 철학도 있지만, 이질적이고 변화하는 움직임에서 시작하는 철학도 있다. 자연을 타성적 물질로부터 외적 대상으로 탐구하는 물리적 방법이 있는가 하면, 생성 변화하는 생명물질로부터 물체와 다른 유기적 현상을 탐구하는 생물적 방법도 있고, 자기 생존과 생활을 위한 의식 있는 존재들의 활동을 탐구하는 심리적 방법도 있다.
이런 방법상의 차이가 철학 이론의 차이를 생산하기 보다, 본성 속에서 인간의 지위를 보는 관점에서 의미체의 차이가 학설의 차이를 낳는다고 본다. 인간은 완전한 충만의 단일 존재와 다르고, 무한한 성질 나타내는 존재 성격을 지닌 것도 아니고, 무한정한 존재자를 생산하는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인간은 생성하는 존재의 의미를 지각하고, 일정한 성질을 지니며, 자연(생성)의 필연적 생산을 실현하는 힘을 지니고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1. 베르그송 사유의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의 철학은 ?인간 개인의 행복한 삶과 인류애로 가득한 공동체 삶에 대한 추구를 위한 철학?이다.
이런 의미를 베르그송 사상 속에서 살펴보기 위하여 세 가지 방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존속하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서로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탐구하면서 경험적으로 근거 지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베르그송은 우주의 원리와 그 발전 법칙을 외적 대상에 대한 설명과 이해 방식으로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베르그송의 철학적 문제제기는 세계 내에서 인간 의식의 여러 상태의 변화, 그 의식의 발전, 인간들 사이에 공감하는 의식의 확장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개인과 인간세상 그리고 자연 전체와 관련 지울 수 있다.
그래서 이 논문의 제목에서 '인간의 본성'(la nature de l'homme)이란 개념은 단지 인간에 제한된 본성의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자연 내에서 인간이 갖는 지위는 자연의 생성과 발전의 상보적 영향하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인간의 본성'이란 개념에서 본성은 자연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자연 즉 본성에는 철학사와 철학의 문제틀에서 여러 방식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
우선 철학의 문제틀로 보아서 사물의 본성을 다루는 사유 방식도 여럿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사물이 즉자적으로 그리고 현재적으로 존재하는 모습을 다루거나, 그 사물이 스스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을 다루거나, 사물이 사물과의 관계를 맺거나 맺지 않거나 간에 그 사물이 갖는 관계상의 의미를 다루기도 한다. 이렇게 사물에 대해 지시적으로, 표현적으로, 의미적으로, 세 가지 방식으로 구분하는 사유의 유형들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개성이 성립하는 계기, 인간이 성장하면서 자기의 모습을 표현하는 계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공동체를 형성하는 계기를 보면서, 심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사회인류학적으로 세 가지 문제틀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인간 대상을 학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경우에는 한 개인을 자세히 보고자 들여다보고자 한다. 개인 의식의 독특성(심층 자아)이 어떻게 자기 고유성을 가지며, 심층자아가 현실적 삶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간직하면서도 자신을 발전시키고 성장하게 하는가, 그리고 이 자아가 자기와 다른 자아와 공감을 갖고서 공동의 의식을 형성하는가를 문제틀로 삼는다. 이 경우는 인격체의 자아를 세 가지 측면으로 다루는 경우이다.
철학사적으로 보면, 철학에서 형이상학적 문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일자와 다자(다수성)간의 동등성과 대비의 문제이다. 여기서 일자(단일성)에 관하여 문제삼는 방식을 보자. 고대철학에서 일자의 존재는 즉자적 존재로서 완전하고, 다자는 존재 방식에서 일자의 한 분유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자는 존재의 원리이다.
그리고 근세철학에서 인식론과 관련지어 나타나는 존재의 문제는 일자와 타자(대립자)의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서 일자와 다른 일자의 대등한 관계는 사물들 서로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법칙에 관련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철학의 일자는 고대철학에서 일자와 다른 측면으로서 인식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리고 생물학과 심리학의 발생과 발전에 따른 현대철학에서 일자(자아)와 그 내재자(심층자아, 물자체)와의 불가공통성과 비대칭적 대응의 문제가 있다. 여기서 존재는 내재적 내용과 변화에 따른 외적 표상간의 관계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이 일자는 변화하면서 지속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에 대한 문제틀에도 세 측면을 예상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본성의 세 가지 측면을 주목하는 것은 베르그송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이기도 하고, 베르그송 사유의 흐름을 따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또한 제반 철학적 사유를 해명할 수 있는 준거틀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심리적 측면, 인식적 측면, 인류적 측면이란 용어를 썼지만, 다른 용어로 바꿀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세 측면을 밝혀주는 학문의 배경으로 보아서, 심리학적 측면, 생물학적 측면, 사회학-종교학적 측면으로 부를 수 있다. 인류 자신의 존속, 인류의 발전, 인류가 미래를 확장하는 길을 간다는 의미에서 보면, 존재론적 측면, 발전론적 측면, 실천론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정립하며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인간 자신의 모습을 실현하고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세 가지 측면을 말할 수 있다. 즉 심(영혼)적 자아, 진화적(발전적)자아, 확장적(인류애)자아라 부를 수 있다.
이 세 가지 측면은 따로 따로 대상 또는 표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세 측면을 드러내는 그 무엇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누구나 느끼는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은 때로는 인간 자신의 심층 속에, 때로는 자신의 겉모습으로, 때로는 자신 밖에서 공동적으로 형성하려는 어떤 것으로 실재하는 그 무엇이다.
인간이 자신의 모습, 즉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그 무엇(그 누구)을 누구든지 어렴풋이 느낀다. 이 무엇(누구)에 대하여 - 베르그송의 표현한 그대로 - 이름을 부를 수 있다면 "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무엇 속에서 본성의 변화, 발전, 확장에 대한 베르그송의 사유를 다루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의도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의 이해는 그 무엇에 대한 진정한 자치를 실현하고 그 무엇의 성장 방향과 합일하고 그 무엇과 동화(공감)를 형성하는 것일 것이다.
2. 베르그송 사유에서 문제제기 방식, 철학사적 의미, 철학적 문제틀, 그리고 철학의 고유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베르그송의 철학적 관점을 탐색하기 위하여 인식론적 문제제기의 방식을 우선 철학사적 측면에서 볼 수 있다. 고대철학에서 보면,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듯이 사물이 주체의 주위를 돌기 때문에 사물의 전체를 이해한다고 보았다.
이런 지구중심주의 사유는 자족적 원리가 초월적으로 있음을 인정하는 사유이다. 근세철학에서는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 듯이, 주체가 사물 주변으로 돌면서 사물의 전체를 구성하듯이 사물을 이해한다고 보았다. 이런 (인간)주체 중심주의 사유는 인식의 주체가 세계를 해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유이다.
베르그송은 이렇게 설명하는 두 방식은 사물의 외적 현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거울을 두고 마주보는 한 쌍의 인식 방식 정도로 여겼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이제부터는 사물의 겉모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내적 성질을 이해하기 위하여 ?사물의 내부에서(내부로 들어가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철학사적 의미를 다른 시각에서 보자. 고대철학이 이해한 세계는 형이상학적 자족의 원리를 천상의 원리로 삼고 그 원리로부터 지상의 세계를 유사하게 다루려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철학에서 우주에 대한 설명은 천문학과 물리학의 발달로 인하여, 이 원리가 천상의 원리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도 성립하고 또한 모든 사물에도 법칙으로 성립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생물학과 심리학의 형성 발전에 주목하면서 베르그송은 원리와 법칙의 성립은 외적표상임을 깨닫고서 사물의 근원에 대한 탐구로 나아간다. 그래서 사물(실체)의 내부에서 문제틀을 찾으려 시도한다. 내부의 "무매개적인 자료"로부터 라는 의미는 인간 자신에서부터라는 의미이다. 내적 근원을 탐구하는 철학은 인간 본성 다룬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철학적 문제 제기의 중요한 방식 중에서 사유 논리와 그 일자의 설정에 관련하여 보면 위에서 다루는 방식과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 고대 철학에서는 순수논리를 바탕으로 두고서 최초의 일자 또는 세계의 단일성(자기정체성, 자기 동일성)을 설명하려고 한다. 이 설명을 위하여 보편(논리적) 수학적 사유에서 철학의 단초로서 단일성의 원리를 끌어냈다.
이 원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산술적 단일성이 기초라기보다 기하적 단일성을 중심원리로 삼았다. 후자의 단일성은 위치도 크기도 없으나 실재적 존재이다. 그런데 근세의 철학은 물체들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는 법칙을 중요시하면서, 물리학의 토대로서 산술적인 개별적 단일성을 기초로 삼고 있다.
이 산술관계의 법칙은 개체로서 서로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이 관계들에서 무한과 극한의 문제에 해명에 이르러, 법칙은 보편화의 길을 가면서 결국 고대철학의 순수(논리)원리에로 되돌아가는 운명에 이른다. 근세철학의 이원론에서 소박한 관념론의 보편적 원리와 통속적 유물론의 일반적 법칙의 관계가 상호보완적 대응관계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의미 때문이다.
의식적 표상과 물체적 대상으로 구분하는 이원성을 기초로 하는 이런 대응방식은 인간처럼 의식(영혼)있고 생명 있는 존재에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생명체의 단일성은 이런 수학적 물리적 취급과는 다른 유형의 경험자료를 가지며,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베르그송의 철학은 불가분의 생명체를 단위로 하며, 의식 있고 지속하는 단일성을 다룬다. 단일성 내부에서 즉 "사물 속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은 생명 현상과 의식 현상이다. 그래서 생명체의 구체적 자료와 인간의 실증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생물학과 심리학의 도래로부터 '철학의 확장'으로서 '새로운 형이상학'이 가능하다.
이런 베르그송 사상의 문제제기 방식에서 철학적 논의 기본이 되는 철학적 기본 단위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하학적으로 보아 정의(definition)에 의한 도형도 아니고, 경험적으로 불가 침투성을 지닌 산술적 점도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를 단위로 삼는다.
이 단위도 기하학적 원리와 마찬가지로 자기 ?동일성?을 가지는가? 또는 산술적 법칙처럼 서로가 관계맺음에도 위치와 크기의 변화에도 자기의 고유한 성질은 그대로 남는가? 그런데 이 단위는 더 이상 분할하거나 쪼갤 수 없다는 점에서 산술적 단위와 닮았으며, 또 단위 자체의 자기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기하적 단위와 비유되지만, 이질적이고 변화하고 지속하는 단위라는 점에서 두 경우와 전혀 다른 단독적이고 특수적(인격적) 단위이다.
그래서 이 단위를 외연적으로 또는 내포적으로 다루는 방식도, 점들의 관계에 의한 법칙적 설명으로도 다룰 수 없는 내용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베르그송의 견해를 따라서 인격체를 다루기 위하여 시간-지속의 관점의 입장에서야 할 것이다.
이 시간-지속은 생명체 단위가 지닌 의식 내부에서 찾을 수 있으며, 기억 현상과 진화 현상이 그 실례가 된다. 그래서 기억 현상을 다루는 심리학과 생명의 배태와 성장을 다루는 진화론이 베르그송의 새로운 형이상학 - 우리가 '질료 형이상학'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 의 구체적 경험자료를 제공한다.
이런 문제 제기 방식을 베르그송 철학 전반에서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을까하는 문제가 우선적 과제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구해냈을 경우에 베르그송 저술의 전반적 흐름과 어떤 관련이 있으며 얼마나 상응할 것인가는 또 다른 과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접근 방식이 다른 철학자들 또는 다른 철학적 태도에도 응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해 볼 수 있다.
3. 우리는 위에서 개략적으로 본 세 가지 측면의 도식과 경향을 미리 갖고서 베르그송의 사상을 정리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베르그송 사상의 흐름과 베르그송의 저술의 작업 순서를 따라가면서 그리고 그의 철학적 문제틀이나 철학사적 문제제기가 주는 의미를 탐구하면서 어렴풋이 떠오른 이 도식을 그려보고 맞추어 보려고 노력하였다.
우리는 철학적 문제제기의 차원에서 위상적 도식을 구해 내고자 한다. 우리가 막연하게 도식화하려는 존재, 인식, 실천의 세 측면을 구별하여 서술한 부분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한 존재'와 '세 운동'에 관해서는 창조적 진화(EC)의 제4장을 중심으로 찾을 수 있었고, 두 질서에 관해서는 EC 제 3장을 중심으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위상적 도식을 설명하면, '한 존재'에 관한 것은 무의 개념의 허상에서, '두 질서'는 무질서 개념의 혼동에서, '세 운동'은 정지 개념의 환상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베르그송은 EC 제 4장에서 환상의 두 가지, 즉 무의 환상과 부동(정지)의 환상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무질서에 관해서는 무의 환상에다 포함시키면서 슬쩍 넘어갔다.
그러나 우리는 무의 환상과 무질서의 환상을 구분하고서 세 개의 환상 즉 무, 무질서, 부동의 환상으로 읽었다. 제 1의 환상에서, 무의 관념을 반박하는 외적 대상의 제거로서 무, 부재 존재에 대한 심리적 무, 관심의 부재 때문에 생긴 대체물에 대한 부정으로서 무, 부정 판단에서 무 등을 반박한 뒤, 무는 없으며, 충만하고 전체인 '한 존재'를 존재 근원이라 해명한다.
제 2의 환상에서, 우리는 무질서의 개념을 존재론적 무로 보지 않고 인식적 방식으로 따로 떼어내어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무질서는 없고 어떤 질서든지 질서란 것이 있다는 관점에 이른다. 사람들은 이 질서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내재적 힘(권능)으로 보든지 외부로 드러난 표상으로 보든지 '두 개의 질서' 즉 기하의 질서와 생명의 질서가 있다.
그래서 무질서란 한 질서가 다른 질서에 대해 부정하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본다. 제 3의 환상에서, 변화하는 실재를 변하지 않는 것에 의해 재해석하려는 잘못을 지적하고자 한다. 사물은 항상 변화 즉 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사물의 자기 발전의 세 가지 생성(양태)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지를 통한 운동을 설명하려는 잘못은 언어의 관점에서도 드러난다.
실체(주어), 움직임(동사), 부가적인 것(술어)을 관념화하면서 실체, 성질, 운동을 고착화시켜 파악하는 잘못은 사물을 공간화하여 파악하는 데 있다. 그러나 실체의 성장, 사물의 운동, 성질의 변화 즉 '세 가지 운동'을 해명하기 위해, 이 운동을 시간-지속에서 보아야 한다.
이렇게 세 측면을 철학적 문제중심으로 정리하고 나면, 베르그송의 철학적 의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여기서 베르그송의 사유 도식을 스피노자의 생명의 '작용하는 권능'의 도식과 대비해 볼 수 있다. 즉 일 존재, 두 질서, 세 운동에 대한 베르그송의 사유유형은 자연(신), 두 속성, 제 양태에 이르는 방식과 대비해 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제 위의 세 위상적 관점을 베르그송이 보는 철학사의 관점에서 접근하자. 우리가 ?한 존재?를 변화하는 존재로 보는 견해는 고대 철학의 존재의 즉자적 원리에 대한 반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되고, 더 나아가 목적론적 관점에서 완전한 원리로서 즉자적 존재를 합목적적으로 미래에 매달아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베르그송은 고대 철학에서 존재를 파악하는 원리가 지성의 산물이며 기하적 원리(정의에 의해 결정된)의 산물임을 보았다. 그리고 그 존재는 사실상 단일한 성질로 되어있다고 하지만 내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은 헛된 환상임을 폭로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상에 있어야할 즉자의 원리가 지배적 힘을 갖는 것은 수학적 황금비와 원의 완전성 같은 '미학적 힘'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 인식의 발전에 따라 이런 천상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연관 지우려는 의도로서, ?천상에서 - 갈릴레오의 낙하 법칙에 의해 -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 근세 철학이라고 베르그송은 보았다. 그런데 근세의 주체(자의식)가 충분히 제 위상을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개의 실체 관념을 갖는 이원론적 사유가 나온다.
왜냐하면 주체는 태어나면서 천상의 원리를 지니고 있고, 사물은 본성상 원리에 당연히 부합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근대적 사유에서, 권위와 억압으로 인간(주체)을 제압하고 있던 카톨릭 지배의 지정학적 상황은 두 실체를 지지해 주는 또 다른 상위의 조건(토대)으로서 - 초월적이든 선험적이든 - 절대자 같은 것을 미리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절대적 조건은 논리적 정의에 의해 성립하는 관념이다. 하지만 관념이 아닌 구체적 터전에서 사는 인간의 삶은 아직도 물질의 -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체 혹은 인간에 필요한 생산물 즉 상품 - 생산에 지배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공리에 의한 체계와 법칙을 지배하는 원리는 인간 삶에 지배력을 마음껏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리-화학적 매카니즘을 거부하는 생명과학의 새로운 시각은 수학과 물리학을 통한 인간 신체 또는 사물(질료)자체에 대한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열역학 제2법칙에서 엔트로피 법칙과 생명의 지연이라는 실례가 질료현상과 생명현상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그래서 물질계에서 장(場)이론이 나오듯이, 생명체에도 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관점이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고대 철학에서 근세철학으로 이행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이행이라면, 근세철학에서 현대 철학으로 이행은 "지상에서 내부로"와 같다. 칸트가 말하는 "물 자체(Ding an sich)"에 대한 인식 부정과 달리, 베르그송은 "[사]물(chose) 속에서[부터]" 즉 "실체 속에서" 인식가능의 철학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 '사물 속'에는 의식이 관류하고 있으며, 개인에서 내부는 자아의 심층 심리인 셈이다. 이 내적 의식(『의식의 무매개적으로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DI)을 다루면서, 관점에 따라 내적인 원천 자료를 "기억"(『물질과 기억』MM), "생명"(『창조적 진화』EC), "공감"(『도덕과 종교의 두원천』MR)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이 셋을 "공연적(coextensif)"이라 한다.
이 공연성이란 개념은 기하학적 동연성과 같은 단어이지만 내용면에서 전혀 다르다. 전자는 이질적 동일성이며 후자는 등질적 동일성이다. 이 전자를 외화시켜 대상화한 것이 후자의 형상이라고 우리는 본다. 서양 철학사는 2500년 동안에 양도된(aliene: 루소의 개념이지만 마르크스로 보면 소외이다) 세계에 대한 철학을 해 왔으나, 이제는 양도할 수 없는 자연(본성세계, 심층)으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자아형성체의 ?내부로부터?라는 표현을 내적 성찰로부터(멘느 드 비랑), 하부로부터(마르크스), 비굴하지 않는 또는 광기 있는 자의식으로부터(니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심층 의식으로부터(베르그송), 욕망하는 무의식으로부터(프로이트)라고 표현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는 상부를 기준으로 두고 반성하는 철학이 밑으로 계층을 내려가듯이 파고드는 지식의 고고학과 다른 의미에서 (본성)발생론적(cosmogonie) 철학이다.
4. 철학적 문제제기 방식과 철학사를 통하여 베르그송의 새로운 철학의 문제제기 방식을 도식화하고 재구성한 후에, 우리는 베르그송의 철학 정립의 의도를 나름대로 구축해 보고자 한다.
우선, 세 가지 운동의 첫 번째로서 존재의 운동으로서 존재의 자기 현전에 대해 말하자. 존재를 원리 또는 제일 원인으로 보는 시각에서 즉자적이고 자존적 존재는 정지상태이다. 그러면서 존재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존재를 변하게 하고 또는 다른 존재를 움직이게 하는 원리로서 작용한다. 이런 존재는 지성의 산물이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존재는 변화하며 연속적이고 비가역적 존재이다. 자기 현전의 측면에서 보면, 이 존재는 순수지속이며, 변화를 지속하고 현재 속에 과거를 보존하면서 성립하는 존재이다. 이 존재는 곧 의식이며, 그 의식을 ?대양(l'ocean)?에 비유한다. 의식이 존재론의 근원임을 암시한다.
이 존재는 플로티누스처럼 은유적으로 태양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스피노자처럼 자연 즉 신이라 말할 수도 있다. 베르그송은 물체의 총체인 우주도 비가역적이고 지속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주의 생성 변전도 되돌릴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체들의 상호관계에서 가역적으로 보는 것은 모든 물체들의 운동을 일렬로 병치시켜서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고, 그 단선적 구조에서 결과를 원인에 위치시킬 수 있다고 보는 지성의 역할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존재의 현존은 우주에서이든 의식 있는 존재에서든지 이질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변화하고 운동하며 존속한다. 우리는 우주 전체의 변화를 단번에 알 수 없지만, 의식 있는 존재를 파악하면서 유추할 수 있다. 의식 있는 자아(인격)가 변화하고 운동하고 있음을 우리는 "무매개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선 존재의 자기 현전은 개인의 인격(자아)의 실현의 장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존재의 현전의 문제를 심리(영혼)적으로 보고, 실재 존재는 철학적 전통에서 말하는 즉자적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 의식 존재이다. 이것이 '한 존재'의 존재론적 의미이다. 이 한 존재 즉 인격성이 스스로 지속하며 변화한다는 점에서 "근원적 자유"라 본다(DI).
그리고 변화의 지나간 흔적(운동의 궤적)이 아니라 "불가분의 과정"인 자아(인격)는 과정을 함축하는 기억과 더불어 자기를 구현하려고 한다(MM). 베르그송은 현재 이전의 "심층의식의 현전(무의식의 의식화)"을 "꿈의 도식(원뿔의 비유)"으로 설명한다*.
심층 자아의 자기 현전으로서 자유와 창조(꿈, 무의식)의 구현은 단적으로 예술적 감성에서 드러난다. 베르그송 사상이 새로운 예술론에서 주목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그런데, 이 의식의 표출이 불쑥불쑥 솟아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특히 미의식에서는 의식의 발전적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현전이 마술(magie)적 또는 신비적 색채가 있다는 것을 1901년에 르르와(Le Roy)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둘째로 존재의 현전이 시간 지속에서 생성 즉 형성과정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을 해명해보자. 베르그송은 위의 존재론적 해명의 불충분함을 해소하기 위해 기억과 생명을 공연적(coextensif)으로 간주하고, "큰의식(la Conscience)"에서 출발한다. 그 큰의식(大意識)은 자신을 위한 자기 생산의 과정을 걷는다고 보는 진화적 입장을 취한다.
우주 발생론과 맞먹을 진화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두 가지의 인간의 인식의 두 방식 즉 직관과 지성이 나온다. 그러나 생명현상의 긴 과정을 더듬어보면 인식의 두 방식은 본능과 지성이다. 이런 두 인식에서 인간의 직관은 어디서 오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본능을 식욕과 성욕이라고 시각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생명체의 발전과정에서 보건데, 모든 생명체의 본능은 신체 자체의 무매개적(무의식적) 인식이며, 지성은 사물을 대상화하여 신체를 도구로 재는 인식이다. 무매개적이고 직접적인 인식(본능)은 삶의 행동에 편리한 지성의 도구적 인식 때문에 뒤로 밀려나 있다. 그래서 지성이 중심으로 보이고 본능은 지성을 둘러싼 너울처럼 지성의 인식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지성이 사물에 대해 실험에서 자신(개체적 자아)의 이익을 벗어나서 전체를 조망하면서 실천한다면, 지성과 다른 방식이 지성을 "관통"하고 있음을 안다. 이 지성을 관류하고 있는 인식이 직관이다,
이 직관은 본능의 무의식적 인식과 마찬가지로 지성과 상보적이기도 하고, 지성의 자기한계를 넘어서 지성의 반성을 거친 직관은 두(무의식적, 의식적) 인식의 총체적 성격을 갖는다. 무의식과 기억이 심리(영혼)론에서 존재론과 같듯이 본능과 직관은 인식론에서 발전을 이루는 내적인 힘(능력)이다.
인식의 발전론에서 본능과 지성은 의식의 존재론적 지위와 다른 의미를 밝혀야 한다. 예를 들어 생명의 진화의 한 극단에 있는 막시류 곤충(개미와 벌)의 인식이 본능의 인식에 해당한다. 몸 전체 즉 영혼(생명)의 인식이 본능이고, 그 인식의 확장이 직관이라 부를 수 있고, 공동체의 인식도 본능의 확장으로서 공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진화의 다른 한 끝에 있는 인간의 지성은 표상화의 방식을 극대화하는 능력이고, 외적대상을 다루는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표상의 연합에 의해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능력도 지성의 것이다. 따라서 본능은 생명의 인식 기능으로서 신체와 연관하여 역동적으로 확장하는 '사유의 한 질서'이고, 지성은 대상에 대한 도구적 인식기능으로서 물체를 분절화하여 기계적으로 조작하는 '사유의 다른 한 질서'이다. 전자를 사유의 본성적 유형, 후자를 사유의 공간적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유형은 생명 현상의 진화가 있는 곳에는 생명체의 진화만큼이나 발전하고 진보한다. 이 두 유형으로부터 앞에서 말한 생명질서와 기하질서 사이의 상보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수학(논리)의 발전도 생명(심리)과학의 진보도 인식론의 관점에서 다룰 수 있다.
우리는 지성과 직관 모두 발전한다는 견해 즉 기하적 논리도 생명의 실재처럼 진화한다는 견해를「철학적 직관(1911)」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두 인식의 능력은 생명의 차원에서 지속적이고 개체의 차원에서 단속적으로 발전 진화, 즉 창조적 진화를 한다. 이 두 능력이 함께 내재함을 깨달은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명 진화의 여러 방향 중의 한 끝에 이른 인간은 만인이 자유롭고 행복한 공동체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본성의 자기 실현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을 실증 사회학을 통하여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진화의 한쪽 극한에 있는 인간이 왜 인류공동체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자연에 대한 자기 생존을 위하여 사회형성에서 "금지(금기)"를 만들었으며, 그리고 사회에서 생명의 보존과 관습의 유지를 위하여 공동체의 이념으로 닫힌 "신앙(미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인간의 의식이 발전하면서 두 개의 방해 요인을 뚫으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본다. 특별한 인격체는 두 방해 중에서 한가지 저항을 뚫고 나오고 나서도, 그 다음 저항에서 부딪혀 주저앉았다. 첫 번째 저항을 극복한 자들은 도덕적 영웅이며, 두 번째 저항까지 뚫고 나간 자를 종교적 신비가이다.
이 후자는 극히 소수였지만 그래도 도덕 영웅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감동의 힘이 있다. 그러면 왜 이런 금지 조항과 미신을 일반인은 타파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인간이 기나긴 역사동안 자연적 대상으로부터 자기 생존에 필요한 만큼 필수품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노동은 항상 생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성의 발달로 인간은 "원동기(moteur)를 발명"하면서 생산력이 증가하였고,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노동과 무관하게 자아 형성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노예경제 위에 있었던 고대의 거짓 민주주의와 달리, 농노의 수탈 위에 있었던 중세의 신앙적(미신적)평등에서도 벗어나,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시험하려고 한다. 그것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은 상반된 모순을 지닌 두 자매와 같다. 이 상반된 두 성질을 함께 어우를 수 있는 것은 인류애라는 인간본성을 실현하려는 미래 지향적 확장 운동이다. 그래서 이런 운동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베르그송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상식(sens commun)과 데카르트가 말한 양식(bon sens)을 지닐 뿐만 아니라, "고등양식(bon sens superieur)"도 지닌다고 말한다.
이 능력 때문에 인류는 대립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즉 "다음(개연적)측정(recoupememt)"방식을 활용할 줄 알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새로이 발전된(창조된) 공동체는 공감과 사랑으로 상호 삼투되어 사치와 허영 없이 소박하게(simple) 살아가는 사회라고 베르그송은 보았다. 여기서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인류미래의 공동체에 부합하는 인간성의 실현을 희망하며 열정과 정서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인류는 '심리적 자아'의 현전과 '발전적 자아'의 전개와 더불어, 인류애의 실천에서 '확장적 자아'의 실현에로 나아간다. 이렇게 자아의 자기 형성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 신비주의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베르그송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본능(직관)과 지성(지능) 사이의 상호보완처럼, 평등과 자유사이의 상보관계를 아는 것도 이성(큰 의식)을 통하여 자각하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생의 충만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반대편에 선 형상형이상학의 경우는 이미 주어진 목적과 규정된 완전을 미리 상정하기 때문에 인간에게 강제와 지배를 행사한다. 이런 이론은 항상 인간을 비천하게 여기면서, 인간을 지배하고 조종하려한다.
그래서 무력과 권력을 사용하면서도 금지와 환상으로 자율적 인간 의식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의미에서 형상형이상학에도 신비주의가 있다. 이 신비주의를 강요하는 곳에서는 항상 총과 대포를 배경으로 전쟁이 있다. 이 조종의 신비주의를 공감의 신비주의와 구분하기 위하여 전자의 사유 배경을 형상형이상학으로 후자의 사유 배경을 '질료형이상학'이라 부르고자 한다.
5. 결국 인류공동체에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의 구체적 실현을 위한 베르그송의 철학적 작업은 창조적 진화의 개연적 발전에 대한 기대에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기대에서 우리는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큰의식(大意識)을 바탕으로 삼고 인간본성의 의미를 세 측면으로 다룰 수 있다고 본다.
이 세 측면들이 각각으로 인간들에게 작용하는 기능이나 권능이 아니라 함께 내재하는 어떤 것이다. 또한 인간 본성의 세측면은 특별한 인격에게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누구에게나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종 전체에 관통하여 내재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유의 표상도 아니며, 외적 대상도 아니다. 이것을 인격성이라 부르든, 본성의 권능으로 부르든, 생성 원리라 부르든 간에 인간 본성이 스스로 자기를 실현하려는 노력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생명 있는 존재에 내재하며 변화하고 지속하며 발전하며 확장하는 어떤 권능이다.
이 무엇을 베르그송이 표현하는 대로 그 이름 부를 수 있다면 '신'이라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이질적이고 충만한 전체이며 지속하는 존재이다.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완전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inconnaissable)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 속에 내재함을 "무매개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직관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며' 노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을 철학적으로 문제삼는 다는 점에서 베르그송 사유는 서양 철학사에서 새로운 철학적 한 시도로 보인다. 우리가 보기에 그 무엇은 어떤 지지점도 없는 것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내재적으로 의식하는 어떤 '힘(권능)'이다. 이 힘은 인류의 공감 즉 인류애를 실현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한 노력은 '그 무엇'에 대해 감지하고 '그 무엇'의 경향에 합일하고 '그 무엇'과 동화(공감)하면서 형성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런 충만한 그 무엇을 찾는 것을 연구의 의도로 삼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세 가지 측면과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본질과 세계의 근원에 대한 문제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우리의 연구는 베르그송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철학의 정확성을 위한 새로운 문제 제기틀로서 '세 가지 측면'의 도식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 가지 측면의 올바른 규명으로 '진솔한 인격성의 형성', '인간의 행복한 삶', '인류애의 실현'을 추구하고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베르그송의 사상을 통하여 깨닫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개념의 정립을 위하여 일반적 도식화와 다른 베르그송의 도식을 만들자.
정신Esprit + (Ciel, Paradis) : Idealite
희박화 le neant l'espace : ideal
(l'homogeneite) le vide : idee
perception l'extensif 표상 물체 l'etendu : concept
se souvenir l'intensif l'inetendu :(sans concept)
(l'inextensif)
la memoire (la vie) le flux(l'etoffe) : mouvant
(l'ame) 영혼 + 물질 (la matiere)
충만화 의식(la Conscience: l'ocean)
le temps : Realite
*2 베르그송의 학의 분류에 관한 재해석 DI, 105: MM 20-21, 74: EC 191: PM.Ch,VII:
*과거 ------------> 현재 -------------> 미래
사변적 표상들
이질성 등질성(일회적 추억)
(소위)독단론-관념적 실재론
주관적 관념론
(영혼) (보편성)
내포성의 차이
소박한 관념론
(표상)
유심론
(지속 기억) (단독성) 지성성- 도구지성
(역동론) 기억 (자아) (목적론)
(pulsion) 의식의 대양(질적 다양성)--(비결정론)--EC 191-------> tout fait
(개연론) 지각 (신체) (기계론)
(순수지각) (특수성) 물질성-대상화된 물체
유물론
(모습)
통속적 유물론
복잡성의 차이
(신체) (일반성)
객관적 실재론
(소위)실재론-경험적 실재론
차이성 개체성(단면적 지각)
감각적 자료들
(단절)
비대칭
본성의 차이 * 정도의 차이
내적 운동 * 외재화 ------> 운동의 편린, 즉 사태
현재는 전체의 부분 * 현재는 현실화의 총합
(총체)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 * 전체는 부분의 합이다.
인성론(본성론) * (현상론)과학론
MM 21
근원(원인) 연구 * 미래예측 연구
introspection retropection
자연(본성) 형상(이상)
자연내재주의 en-tase * ex-tase 초월주의
베르그송 철학에서 심리자아: 존재론
0. 실마리
존재에 대해 지각하는 것을 도식화(체계화가 아니다.)하는 작업은 일반적으로 알려진귀납. 연역. 유추. 귀류법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보다 이마쥬(image)의 견고한 작업 즉 이마쥬 생산(상상작업, imagimation)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이마쥬 생산은 존재의 발생적 근원과 심리(생명, 상징)의 발생적 기원과 동일한 근거 즉 자연(본성)에 근거를 두고있다.
그 진행과정은 생산적 과정, 생명현상의 확장적 과정, 상징의 극대화(amplification)과정에 동일한 방향(상향성)을 취한다. 이러한 방향성은 심리의 기본적(일차적)경향성이며, 생명의 진화 경향성이며, 인간 운명에 대한 조심스러운 개척일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목적성에 근거한 원리나 결과물에 대한 예측을 하는 법칙들이 이미 주어진구성된 혹은 구조화된 체계에서 출발하는 유일 신앙적 사유에서가 아니라, 어떤 질료성에 의해서 어떤 원인성에 의해서 당연하게 혹은 필연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귀납도 연역도 일반화의 오류나 선결문제를 전제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고 유추의 논리는 증명되지 않는 혹은 증명될 수 없는 사태를 연쇄고리의 하나로 혹은 새로운 연결고리로서 자의적으로 인정하고 싶어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귀류법에도 모순과 불합리 로 귀결된다고 해서 그 사태 자체를 반박한 것이 아니라 반박된 자료가 자기 한계 내에서 성립하나 다른 한계에로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며, 반박자료도 자기 완결성의 체계를 갖기보다는 혹은 증명되기보다는 경계선을 확장할 필요를 제시하거나 다른 차원의 새로운 개념형성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하여 이마쥬 생산은 흩어져있는 듯이 보이지만 서로 연관되어 있는 사태들, 어둠 속에 있는 듯하며 혹은 흐릿하게 느껴지는 사태들 속에 제 모습을 뚜렷하게 내보이게 하는 과정 속에 형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상상 작용은 요소적 자료들을 임의적으로 구성하는 공상작용 혹은 칸트가 말하는 이미 주어진인식범주 속에 그 범주작용에 맞는 요소들을 조립 연합하는 정신의 화학작용과는 다르다.
생명현상이 원시생명체에서 현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제 모습을 끊임없이 변형시키고 발전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 여기서 어떤 생명체의 보편적 개념은 우리가 현시점에서 표면적으로 받은 인상들을 일반적 모습 (보통명사)으로 구조화한 것 일 뿐인데 - 이 상상적 작용인, 심리현상 즉 의식현상도, 원본적 의식으로부터 현재의식에로 이행과정에서 자기 본래모습을 실현시키려는 의도에서, 현재의 모습으로도 인위적 구조물으로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현상이 원초적 심리로부터 현재까지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은 그 심리현상 자체의 복잡성이나 체계의 점진적 완전성에로 향하는 도정 때문이라기보다, 심리현상이 알 수 없는 혹은 무정형적 모습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없다고 하는 것, 그것은 전혀 알 수 없다거나 혹은 인간능력으로 알 수 있기에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보다,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인류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인간적 노력으로는 저 거대하고 광활한 자연현상에서 인간의 경험(실증적 자료)은 이직 미흡하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고, 무정형적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가 지적체계로서 구성하거나 구조화한 것도 정형의 틀이 있어 보이는 듯하지만 끊임없이 발전하는 인식능력의 확장 속에서 확실성보다 개연성이 더 많이 있다는 측면에서이다.
누구에게나 인간의 모습은 이미 정형화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현상의 진화과정에서 보면 이모습도 또한 일련의 과정의 한 단면일 뿐이다. 다른 한편 인간은 인간자신 혹은 주체에 대해 알고있다고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아는 것은 `알고 있는 것` 만큼만 알고있을 뿐이지 다른 부분은 항상 어둠과 그림자로 저멀리 던져버렸던것을 정신사적 문명사적 담론에서 언제 어디서든지 찾아볼 수 있다.
왜 우리는 존재론에서부터 출발하는가? 이 존재론이, 감성: 감각 감정 정서 감동의 차원도 아니고, 오성: 관념 추리 판단 체계에서도 아니고, 의지: 습관 본성 자유 욕망에서도 아니라, 대부분 비유나 상징(우화 Allegorie)에 의한 진술로 표현 설명 해석 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선적으로 존재론을 다룰 수밖에 없는가에 대하여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존재론이라고 하는 존재의 근원을 다룰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심리적 어떤 경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모든 생명체에도 이 심리적(영혼적) 경향성이 있고, 이 경향성은 외적 대상과 더불어 존재방식을 드러낸다. 어쩌면 무기물 속에서도 이 경향성은 잠재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존재론이란 인간의 인식방식(감성 오성 이성)에서 혹은 실천적 방식(습관 의욕 의지)에서 의미연관을 갖기 이전에 - 기표(signifiant)의 대상이전에 -, 존재 그 자체가 무한한 다질적 내용으로 - 기의(signifie)의 실재성으로서 -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을 뿐인 것을 음미하는 것이 존재론일 것이다. 존재에 관한 이론(학설)이란 존재자에 관해서가 아니라, 존재에 관해서 이다. 전자가 개별과학의 성립을 기초 지운다면, 후자는 개별과학 성립의 근거 조건 근원을 탐구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이를 메타학문이라 부른다. 메타학문에 양의성이 있다는 것은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우선, 메타학문이 지도적 형이상학(즉 형상형이상학)이 있을 수 있고, 생성적 형이상학(즉 질료 형이상학)이 있을 수 있다고 만 언급하자.
그리고 이 두 상학은 사유의 양 극단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사실상으로 보다 권리상으로 담론의 대상일 뿐이다. 왜냐하면, 어느 인간도 이 양 극한에 위치해 살아가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 대부분의 학문들은, 이 양자 논리 사이에 긴 계열 선상 위의 어느 한 점에 즉 타협점(modus vivendi)에 서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존재자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형이상학(메타학문)이라 부른 것은 이 학문의 단초 혹은 기본단위의 설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학문들에는 학적 체계가 있고 그 체계에는 그에 맞는 정합성이 있다고들 한다. 그 정합성은 학문 각각이 먼저 설정한 원리 위에서 성립하며 그 원리 자체에 의문을 달지않고 자명한 것으로 본다.
이 자명성이 그 학문을 유지해 주고 있다. 그리고 자명한 체계는 그가 미리 설정한 단위로부터 시작한다. 이 단위 설정 양식에는 일반적으로 3가지 차원이 있다: 성질, 형상, 작용, 다른 말로 하면, 존재, 인식, 실천의 의미에서이다.
존재가 3가지 양태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현상적이며, 언어적 습관의 구조에 닮았다. 그런데, 존재가 3가지 양태로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운동과 변화의 측면이다. 말하자면, 내재적으로 스스로 자기변화를 질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면서, 또 타자를 포섭하면서 제 모습을 끊임없이 드러내려 하고 있고, 그리고 자신과 더불어 타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위상도 변전(transformer)시키고 있다. 이러한 3가지의 운동측면이 존재 자체에서 나온다고 보면, 현상적인 모습에서 보다 본체적인(본질적인)내용의 탐구에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 본질적 내용 즉 실재성에 관한 물음이 자연의 본질 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와 동일 근원상(공연성 coextensif)에 있음을 간파한 것이 베르그송의 첫 작품 DI이다. 그 작품이 영역으로 번역되면서 시간과 자유의지라 했는데, 이 의미는 존재 그 자체가 시간이며 자유라는 것이지, 개체인 인간의 자유 혹은 정신(신적 영혼)의 자유 의지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이덱거의 존재와 시간도 존재자의 성격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곧 시간임을 알리는 작업의 일환일 것이다.
존재가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존재자의 측면이 아닐 때, 존재자 속에 내재하는 어떤 것 즉 스피노자의 자연 즉 신의 생산적 능력과 같고, 게다가 두 속성의 생산적 능력에도 그대로 전수되어 표출된다. 라이프니츠에서 단자가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는 스피노자의 두번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내재적인 어떤 것이 스스로 만들어 나아가는 과정으로 간주될 때, 그 자체가 힘(에너지)을 갖고있다고 본다. 이 힘을, 초기 스토아학파의 (혼)불에, 플로티누스의 태양에, 스피노자의 생명에 관련 지울 수 있듯이, 이름 지울 수 있다면, 심리(psyche)라고 할 때, 베르그송 철학의 첫번째 자아와 연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심리적 자아가 베르그송 철학의 단초 혹은 기본단위인가? 그리고 이 자아의 성격 특성은 무엇인가?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심리라는 개념이 대상적 성격이 아니라, 주체적 특질을 갖는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넘어가자. 그리고 이 심리가, 유명론자들이 말하는 이름뿐인 것처럼, 빈 대상으로 생각 될 수도 있었다.
이름 뿐 이라고 하는 혹은 무의미하다고들 하는 심리 혹은 심리적(심층적) 자아가 2500년 서양 철학사에서 어떻게 배제되었으며, 무화 되었으며, 부정(혼돈 혹은 어둠)이 되었는가를 우리는 이미 철학적 문제제기에서 보았다.
다른 한편 고대철학의 류적(보편 혹은 일반 )개념 속에 혹은 근세 철학의 법칙 속에서, 비하되고 결핍되고 결함있는 것으로 혹은 경험적 자료의 대열에 끼이지 못하고 이성(좁은 의미)의 경계 밖으로 밀려나서, 철학적 사유의 주변에 맴돌거나 혹은 비이성 비합리라는 이름으로 소외(alienation)되었고, 비정상 혹은 저주받은 심지어는 사탄이나 마녀적 사유로 (유일 신앙의 반대로서 무신론으로)변방으로 쫓겨나게 되었는가를 간접적으로 보았다. Bergson은, 이 심리의 소외현상이나 존재근원의 배재현상을 Idee(관념)의 협의성 때문에 혹은 철학적 작업의 정확성이 미비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I. 1. 심리적 자아 의 길 - 존재론 - 질적 운동.
넓은 의미에서 심리 혹은 심리적 자아도 관념(Idee)이다. 이런 의미에서 관념 그 자체는 존재자라기 보다 존재이다. 이 존재는 어떤 윤곽을 형성하고자 한다. 단순히 인간 혹은 생명체에서도 윤곽의 형성양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적 사물에도 그리고 무기물에도 그 양식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윤곽형성체는 자기에 의해 자신을 위해 스스로 존재한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이 양식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 자체로서 보면 자족적 존재이다.
이 자족적 존재가 왜 타 존재와 연관에 의해서, 혹은 타자를 위하여 혹은 타존재가 자신을 위하여 존속한다고 보는가? 이 물음을 존재 문제라기보다 존재의 생존방식 존속방식의 물음이기에 다음 차원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단지 존재 자체에 대해 즉 존재의 질적 운동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는 것으로만 한정하자. 무기물의 존재, 타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의미에 들어가기 보다, 우리는 우선 스스로를 무매개적으로 느끼고 지각하는 자신, 인간으로서 느끼는 인간, 즉 실체적 자아에만 한정해 보고자 한다.
심리는 우선 심리적 사실에 의해 드러난다. 심리적 사실은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대상의 차원에서 의식이 느끼고 지각하는 것에 대한 측면과 표상의 차원에서 의식이 개념 혹은 관념의 형성에 대한 측면이 있다. 이 두 측면은 경험론적 측면에서 경험적 사실과 합리론적 측면에서 의식적 사실로서 구분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두 측면이 데카르트의 연장 실체나 사유 실체의 이분법에 해당하는 것이라기보다, 혹은 스피노자의 두 속성 측면이라기보다, 인간(심리적 자아)에게 무매개적으로 주어진것을 피상적으로 외면화시키는 대상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방식으로 보면, 생명속성의 여러 상태에 가깝다. 이런 심리적 사실들은 항상 자기 생성의 방식이 있고 자기 현상화 방식이 있다.
우리는 이 방식들로부터 나타난 현상들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심리 내적 운동은 일반적으로 그 결과에 의해 알려지기 때문이며, 그 결과들을 분석함으로써 원인을 알게 되든지 혹은 그 성질을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I. 2. 1. 심리 자아의 단초 설정을 위하여 - 존재적 자아
심리적 사실들의 상태는 감각 감정 등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진다고 한다. 감관에 의해 알려진상태들은 서로 구별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촉각. 청각. 시각 등에 의해 외적 대상들로부터 받은 인상들이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철학은 사물들이 성질을 가지고 있고 그 성질들은 제 1 성질과 제 2 성질로 나눈다.
길이, 견고성, 저항성 등은 제 1 성질에, 색깔, 맛, 소리 등은 제 2 성질로 분류한다. 제 1 성질에서 사물들을 외연적으로 구분을 하는 기준을 얻고, 제 2 성질에서 감관을 통하여 대상과 감각적 사실과의 연관을 본다.
그런데 사물들과 관계하는 우리의 감정은 위와 같은 분류의 제 2 성질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제 1성질은 사물 제체에 속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익숙해 있다. 이런 구분이 물리학적 견해와 생리학적 견해의 구분에서 이루어진것은 아닌지 그리고 심리학적 구분은 다른 차원에 둔 것은 아닌지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물리학적(신체적) 견해와 상관 있는 촉각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우리들 내부에 영향을 가장 적게 미치는 촉각의 길이는 순수한 표상적 감각으로 받아들여진다. 물체(혹은 생명체)에 너비(l'etendu)가 있다는 것은 구체적 자료이다.
이 자료는 외적 대상으로부터 즉 외적 원인에 의해 측정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촉각에 부드러움 혹은 거침에 대한 것을 느끼면서, 사람들의 대상에 대한 감정을 달리한다. 여기서 표상적 감각인 너비와 너비를 가지는 물체에 대한 느낌은 양적 차이와 질적 차이에 해당된다. 사물에 대한 감각은 어쩌면 결과의 질적 차이에 원인의 양적 차이를 연합하면서, 우리의 감각을 수적으로 양으로 측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촉각뿐만 아니라 청각, 시각, 미각, 후각에서도 위와 같은 차이가 있는데, 이 또한 계산 가능한 측정 방식을 통하여 우리의 감각을 요소별로 구별하여 그 수를 헤아림으로써 수치를 측정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정도 또한 감각의 내용이나 질적인 의미보다 물리적 현상을 크기나 너비로서 표시하며, 어떤 감각은 다른 감각보다 더 크다 혹은 더 많다라고 말하면서, 질적인 비교가 아니라 양적인 비교로 감정의 차이를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구분하는 이 차이가 분명하게 감각적 현상에 있다 하더라도, 이 차이는 감각된 대상의 표면을 구분하는 것이지 감각들 자체를 구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감각들 사이에 내포적(intensif)차이가 있다. 여기서 물리학적 견해는 감각 속에 이미 표상 (외연적 양)을 투여했고, 혹은 결과의 질 속에 원인의 양을 [측정과 예측을 위하여] 미리 넣어 둔 것이다. 이러한 논의 방식은 제1성질과 제2성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외적 사물과 내적 사물사이에서 구별이 물리적 혹은 생리적 차원과 다른 차원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우선 물리적 생리적 요소에 의한 수적 차이에서는 '보다 크다'를 설명할 수 있으나, 심리적 사실에서는 보다 내포적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르그송이 양의 두 종류를 외연적extensif과 강도적intensif 혹은 너비적etendu과 비너비적inetendu으로 나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별첨1)]
물리학적(신체적)인 것보다 더 깊은 생리학적(애정적)인 것으로 나아가 보자. 촉각에 의해 기분 좋게 부드러움을 느끼며 좋아하기도 하고 찔리는 아픔과 거친 감촉에 의한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유쾌 불유쾌를 넘어서, 기쁨과 슬픔에 이르는 감정이 있다.
이런 감정을 연속적 단계로 말하자면 사소한 기쁨, 작은 기쁨, 보다 큰 기쁨, 대단히 큰 기쁨, 등으로 감정 상태를 단계적으로 양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양적 측정이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에는 이 기쁨의 대상 혹은 기쁨의 원인이 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보거나 그 원인을 받아들이는 주체가 더 많은 힘을 보태었거나, 혹은 근육적 노력의 양(근육표면 넓이의 양)을 점점 더 넓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근육의 노력은 외관상으로 관찰 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쁨 슬픔 등에 내재하는 감정은 단순히 생리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심리적 욕망이 함께 있다. 이 욕망이 서서히 밖으로 드러나면서 이 감정은 생리적으로 표출된다. 이때 욕망은 희망이다. 미래에 대해 소신껏 행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함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감각에 관한 논의에서 보았듯이 원인에 대한 이해보다 결과의 측정에 더 중점을 둔 생리학적 견해를 보는 것과 동시에 현재 의식 상태를 미래의 반작용의 지표로서 가능한 다수의 형식을 상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기쁨이 크다는 것은 미래에 행위 가능한 지표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미래 지표들은 사실상으로 보면 아직 오지 않았기에 알 수 없는 것인데도 수적으로 표상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자극에 의한 심리적 번역물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가능성은 실재성이 가지는 실현 가능적 힘이 아니고, 과거에 발생했던실현된 것들을, 다가올 지도 모를 여러 경향성 중이 하나인 현실성의 한 양식에, 대입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리적 상태들은 애정적 상태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즉 고통과 쾌락같은 애정적 상태는 단순한 생리적 현상들보다 더 복잡하다. 말하자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보는 자는 그와 비슷한 고통을 느낀다. 이 고통은 신체적 아픔과 생리적 아픔과도 다른 고통이다. 이러한 고통에는 외적 대상이나 혹은 신체적 요소들의 상태에서 얻어지는 경험과 다른 경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적으로나 양적으로 나타낼 수도 없다.
즉 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이 두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러한 애정적 감정들은 내포적 차이가 아니라 본성의 차이가 내재해 있다고 하겠다. 베르그송에서 물리학적 생리학적 원인들에 대한 비판은 양의 우열에 의한 계산(측정)이 심리적 사실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Weber에서 Fechner에 이르는 정신 물리학의 비판, Bain의 관념연합 심리학과 Wundt의 실험 심리학의 비판에서도 볼 수 있다.
심리적 사실들 중에 우리의 의지 혹은 내재적 힘의 분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들은 앞의 두 사실들과 다른 차원에 있다. 말하자면 감성적 감정(Les sentiments esthetiques) 이라고 이름 붙인 경우인데, 3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종교적 감정, 미적 감정, 도덕적 감정 등이 있다. 먼저 은총(Grace)의 감정을 보자. 이 감정은 우선 외적 용이함을 지각하고 더 나아가 미래를 예견할 정도로 더 높은 정도의 용이함을 얻는다.
이러한 움직임의 용이함을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 진행의 정지와 현재 속에 미래의 전개를 즐긴다. 게다가 거기에는 '리듬과 박자'라는 세번째 요소도 개입한다. 우리는 이 은총의 감정에서 우리에게 향하는 가능한 운동의 지표 또는 잠재적 혹은 생겨나는 공감 지표를 보게 된다.
이러한 점진적 지표를 크기변화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으나, 베르그송은 이러한 해석은 언어가 행한 잘못이라고 보고 이 정서의 증가는 질적 진보라고 한다. 음악, 시, 조형예술, 건축 등과 같은 예술적 아름다음의 감정에도 '리듬'이 내포되어 있다. (B는 조형예술에서만 리듬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리의 지각능력이 일상생활에서 우리 인격의 의식(심리상태) 쪽으로 이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반복의 효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의 목적이 우리 인격의 활동적이고 오히려 저항하는 이 권능을 잠재우고 또 우리가 예술로서 표현된 감정과 동화하는 완전한 순화상태라고 생각하기 쉽상이다. 여기에는 최면적 상태와 유사한 절차가 있다. 그런데 예술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감정을 우리 속에 각인 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술처럼 자연도 암시에 의해 진행하지만 어쩌면 자연이 - 마치 마술 혹은 마나(mana)처럼 - 오랜 동료의식에 의해 예술을 보충한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이 공감적 의식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이 감동에는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자의 삶을 되살아나게 한다.
이러한 인격성의 심층의 동화는 우리 속에 도래한 심리상태의 변화이다. 이 변화는 양적으로 확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질적인 변화이다. 도덕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불행한 자에 대해 동정을 느끼고 그리고 그 삶에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인간적 고뇌를 겪으며,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두려운, 공포를 느낀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연민의 본질은 스스로 겸손해지려는 욕구이며, 내려가려는 열망(l'aspiration)이라고 보았다. 이 힘든 열망 속에서 자신의 평가를 높이고, 감각적 선보다 높은 것을 느끼게 되면서 사람들은 열망에 대한 매력을 가지게 된다. 결국 동정의 증가하는 강도는 불쾌감에서 두려움으로 두려움에서 공감으로 공감에서 겸손으로 나아가는 질적 변화 과정이다. 이 질적 변이는 양적 차이가 아니라 질적 차이 즉 본성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1. 2. 2. 의식 자아의 단초 설정을 위하여 - 심층적 자아
DI 제2장에서 의식적 상태의 다수성에 대하여 쓰고 있다. 여기서는 의식 상태가 단위로서 설정될 수 있느냐를 먼저 문제 삼는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일자와 다자 사이의 구분이 어떻게 설정되었느냐로 나아간다. 단위설정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규정적(definitive) 단위와 임시적(provisoire) 단위 (DI 60), 이미 형성된 수와 형성과정에 있는 수 (DI 62), 불연속의 수와 환원될 수 없는 단위 (DI 62), 단위를 셀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미 형성된 단위를 이상적 공간 [절대 공간] 위에 병치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별첨2)]
여기서 보태기가 가능하고 총합의 계산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수들이 객관적으로 공간 위에 나열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근거한다. 이러한 수적 다수성은 물질성 자체 보다 물체라는 대상들이 같은 자리에 동시에 있을 수 없다면 불가침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이 말하는 단위란, 수로 환원할 수 없는 것으로, 그 단위(모든 단위)는 하나이다. 즉 그 단위는 정신의 단순하고 불가분적인 직관에 의해서 그 단위의 총체성 속에서 표상된다. 말하자면, 영혼과 같은 심리 상태에서는 심리적 사실들이 공간 속에 기호적으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히 질적인 다양성, 즉 질적 다수성이 있다.
그러면 수적 다수성이 나열하는 공간과 질적 다양성이 성립하는 공간은 같은 것인가? 간단히 말해서 수적 다수성의 공간은 등질적 공간이며 질적 다양성의 공간은 이질적 공간이다. 전자에 대해 생득론자건 경험론자건 공간을 의식의 표상으로 간주하고, 공존적이 되기 위하여 정신의 작용이 필요하다. 그래서 칸트는 공간을 선험적 감성과 형식으로 만든다. 즉 절대 공간으로 추상화한다.
동물이 지각하는 장소나 우리가 감각 감정 등 심리적 경험을 통해 가지는 장소는 빈 공간이 아니라 이질적 공간이다. 즉 삶의 공간이다. 여기에서 연속적 사실들은 상호침투, 연대성, 요소들의 내재적 조직화가 있다. 말하자면 리듬과 박자뿐 만 아니라, '멜로디'도 있다.
그러나, 공간의 사유 속에 또 다른 공간이 있다. 빈 공간과 달리 무한정한(indifini)장소로서 시간이 그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동질성의 이중 형식이 된다. 무한정한 장소에 동시에 병치와 나열이 있다. 이러한 공간(시간)속에서 연속적 질서는 가역적이며, 앞선 사실로부터 차후의 사실을 예견할 수 있으며, 결과로부터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왜냐하면 순서는 이미 동시적으로 나열되어 있기에 앞뒤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생각은 시간 개념을 빈 공간 위에 위치시킨 것이고, 따라서 시간을 공간의 표상으로 대치한 것에 불과하다.
이와 반대로, 베르그송은 삶의 현실(실재), 심리적 사실 그리고 영혼의 상태에서 질적 변화의 과정은 순수 지속으로 보고 있다. 이 질적 변화들은 서로 융합하고 서로 침투하며 정확한 윤곽도 없고 서로 서로 외재화하는 경향도 없고 수와는 어떤 유사성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 순수 지속은 순수 이질성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 심리적 자아에 의해 지각된 순수 지속은 의식적 사실을 서로 겹치면서 혼합되게 하고, 자아를 더욱 더 풍부하게 한다. 그러면 이 지속은 측정 가능한가? 그 답은 불가능하다 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지속을 측정한다고 하는가? 의식의 지속을 시간의 변화로 보고 그 시간을 공간화 하거나 혹은 의식의 흐름을 운동으로 보고 외적 대상이 움직이는 것을 측정하듯이 측정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운동은 측정 가능한가? 시간은 측정 가능한가? 시간의 측정은 바늘의 움직임 진자의 왕복 운동에서 혹은 천문학자가 하늘에서 별의 운행을 측정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본다. 진자의 운동은 동질적 내적 지속의 관념들 각각의 계기는 서로 침투하지 않고 게속적으로 이어진다. 이는 공간 속에 배열되는 것과 같다.
다른 한편 우리 의식이 조직화한 추억 속에 한꺼번에 보존되고 줄지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공간의 4차원이라 부를 수 있는 동질적 시간이다. 여기서 진자의 운동은 무한정으로 병치될 수 있다. 이리하여 운동은 진행과정인 진보가 아니라 사물화 되고,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이행인 정신적 종합 즉 심리적 과정이 아니라, 공간을 점유하는 흔적이 되고 동질적이고 가분할 수 있는 것으로 환원된다. (베르그송이 말하는 종합이란 질적 종합이며, 서로 서로 연속적이 되는 감각들의 점진적 조직화이며 멜로디의 한 국면과 닮은 통일성이다.)
결국 베르그송에 따르면 운동을 보는 두 개의 시각이 있다: 지나간 공간과 공간을 통과하는 작용, 동시적으로 놓인 연속적 위치와 위치들의 종합. 전자의 경우들은 의식밖에 과거를 현재와 공존적으로 놓는 것, 즉 의식 속에 진보(progres)과정을 외적으로 위치화 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오류는 엘레아학파의 제논의 운동 부정: 아킬레스와 거북이 경주에서 나타났고 그리고 근세 과학의 등속 운동과 가속운동에서도 분명하다. 후자의 통속적 유물론이 가지는 메커니즘은 시간을 동시성으로 운동자체를 부동성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운동과 시간의 분석에서 지속에 대한 다른 두 개의 평가가 있듯이, 다수성의 의미에도 다른 두 형식: 질적 다수성과 양적 다수성도 있다. 또한 이질자(l'autre)와 동일자(le meme)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자는 잠재성 (아리스토텔레스 의미에서)으로 이질성이 다수이고, 후자는 공간 속에 외재화하는 동질성의 다수이다.
달리 말하면 후자는 외적 현상의 지각 속에서 쉽게 나타나며, 단위들이 동질적 공간 속에 배열하는 조건에서 고려된다면, 전자는 두 단위 사이에 제3의 단위가 덧보태지면서 본성과 측면을 변모시키고, 현실적 입장과 앞선 입장(우리의 기억)사이에 우리의 의식이 작용한 종합에 의해 이마쥬들이 상호 침투하면서, 서로 서로를 완전화에로 이끌며,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으로부터 우리의 의식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동질적 공간에 전개되는 피상적 심리적 삶과 의식의 깊은 곳에까지 침투하는(기억을 되돌릴 수 있는) 내적 자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상적 자아와 심층적 자아는 하나의 동일한 인격이다.
이들이 겉보기에는 동일한 방식으로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외연적 기호로 표시되는 동질적 자아 밑에, 혹은 매우 잘 규정된 자아 밑에는, 이질적 계기들이 서로 침투하는 지속이 있고, 혼융과 조직화를 함축하는 연속된 자아가 있다.
대부분의 자아는 심층에서는 내재적 혹은 살아있는 심리적 사실들이 있으나, 표면에서 동질적 공간에 고정화되어 나타난다. 이런 양태는 이미 감각, 감정, 정서의 분석에서 보았듯이, 심층에서는 어렴풋(obscure)하고, 무한히 동적이고, 표현할 수 없는 측면이 있는데 비해, 표면에서 이미 정확화되고(간소화되고 고정되고) 비인격적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다.
심층 자아가 표면 자아에 가리어서 잘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를 베르그송은 두 가지로 꼽고 있다. 하나는 고대철학 이후로 관념과 개념이 사태(사실)에서 공통점을 찾아서 언어로 고정시킨 것 혹은 고정된 방식으로 받아들인 것에서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상 감정 정서를 관념연합의 방식으로 결합화하는 잘못에서이다.
이 후자는 칸트의 구성설도 포함시킬 수 있다. 베르그송은 수의 임의적 고정화, 운동의 과정을 운동의 자취로 보는 경우, 시간을 공간화 시키는 경우 등을 비판하면서, 앞선 의식과 다음 의식사이의 관계(원인에 대하여)를 넘어서 과거(기억)가 현재 속에 미치는 의미를 재검토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심층의식과 피상의식의 관계에서 실재성이 가능성보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처럼, 더 근원적임을 암시하며 즉 존재의 권능의 세계에서 한 모습(단면)이 현실적 세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베르그송에 의해 제기된 문제 원인과 결과, 전체와 부분, 실재와 가능, 과거와 현재, 권능과 현실사이의 관계에 관련된 문제가 물체(통속적 유물론의 물질)와 의식(관념론이 말하는 사유)사이의 관계를 혹은 각각의 논의(담론)가 가지는 철학적 배경을 분석함으로써 보다 분명해지리라고 본다.
I. 3.1. 심리적 자아의 단위: 이마쥬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로서 자아(인격성)는 어떻게 다루어 질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는 경험론과 독단론, 개념론과 관념론, 실재론과 현상론이 안고 있는 물질 개념과 영혼 개념에 관련되어 있다. 혹은 양자를 통합할 수 있는 제3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연속적 흐름인 순수 지속에 우리를 두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아의 점진적 흐름을 설명하기 앞서 자아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자.
유물론의 견해로서는 자아의 중심이 물체(corps)이고 유심론은 관념에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신체와 영혼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한 것은 데까르뜨에서 이지만, 실재성(물질 혹은 정신)은 의식에 의해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규정된다.
외적 실재로부터 출발하고자 하는 것은 경험론이다. 선험적 인식에 의해 관념으로부터 출발하는 독단론이 주장하는 철학적 자료들은 직접적 인식에 의한 것일까? 우리는 먼저 신체적(생리학적)규정에 의한 대상에서부터 검토해 보자. 대상을 구분하는 것은 주의에 의한 선택이다. 이 선택이란 사물을 물체로 분절화하는 (노력의)긴장이다.
이 긴장은 한편으로 너비(etendue)로 다른 한편으로는 지속(여기서는 inetendue도 포함한다)으로 나타난다. 노력의 흐름이 실재성 속에서 어떤 윤곽을 형성하는 것 (이마쥬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의 인식이다. 희미한 윤곽에서 형체를 띄게 됨을 알아보는 지각이 곧 최초의 인식이다. 이 형성체를 베르그송은 관념과 물체의 중간쯤 되는 것이라고 하며, 존재의 생산화(조직화)작업의 첫 가설로 등장시킨다.
다시 말하면 존재는 자기 방식으로 자기 생성화(형상화)한다. 이런 이마쥬중의 하나가 우리 신체(corps)이고 생명체도 물체도 이 신체라는 이마쥬와 연관을 맺음으로써 형성체가 된다. (이 형성체 중에 과거의 기억과 더불어 현재를 그리고 미래에 예참하는 신체가 '인격체'인 셈이다.) 이 신체는 모든 다른 신체들의 중심에 있고 자신에 맞게 배열하며, 제2의 인식이며, 그리고 타 대상들에 관여(행위)한다.
이 때, 이 행위는 타자(이질자)를 공명 공감하며, 새로이 조직화하여 제3의 인식이 될 것이다.
º£¸£±×¼U은 두뇌와 신체관계를 논의하면서 두뇌는 신체를 통하여 들어오는 인식들을 그 자신의 배열에 맞게 배치하기 위한 중앙 전화 교환소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라고 한다. 그래서 신체는 이 중앙교환소의 선택의 기제라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신체는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작용기제(mechanisme sensori-moteur)인 셈이다. 이 기제가 자기가 받은 것 이상의 것을 내보내기도 할 뿐 만 아니라, 축소 혹은 상쇄 시켜 해소시키기도 한다. 즉, 순수지각만 가지는 이마쥬인 물체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신체는 작동하기도 한다. 왜? 여기서 통속적 유물론이 가지는 난점이 있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신체라는 기제가 자신에 알맞게(유용하게) 다른 이마쥬들을 배열하는 방식에는 기억이 관여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기억을 분석하면서 두가지로 나눈다. 즉, 신체적 기억과 인격(추억) 기억이 있다(lecon의 기억: 외우기, lecture의 기억: 작용기억). 이 기억의 분석을 통하여 신체와 관련없는 기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두뇌의 손상을(혹은 신체의 손상)을 당했음에도 기억현상을 가지는 경우들이 정신 병리학의 사례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½E¸R 행태상으로, 형상 형이상학이 사유방식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잘못은 영혼의 인식만큼이나 신체의 인식을 숨기기 때문이며, 순수 지각과 추억 사이에 본성의 차이를 보기 보다 정도의 차이를 보고자 하는데 있다. 이런 잘못은 재인식의 현상을 이해하는데 난점이 있으며, 무의식의 매카니즘(추억의 역동적 과정)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낳는다.
다시 말하면, 이 오류는 순수 지각의 근본적이고 원초적 작용을 잘못이해하기 때문이다. 순수 지각의 작용에 의해 단번에 사물 속에 위치할 수 있다고 하는 그 작용에, 그리고 형이상학적으로 정의된 물질에 대한 실재론과 관념론의 개념 작용에, 깊숙히 스며든 잘못 때문에, 심리학적으로 기억의 매카니즘을 설명하는데 근본적으로 무능하다.
실재론과 관념론은 대상에 대한 인식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실재론은 자연의 현상의 불변하는 질서가 우리 지각의 구별된 원인 속에 있다고 보기 대문이고, 관념론은 자연 현상의 불변하는 질서가 우리가 표현하고 있는 기호(표시)일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자는 지각을 진실되지 못한 요소로서 환각처럼 여기고 있다.
이러한 착각으로부터 인식 일반의 오류가 발생한다. 이미 말했듯이 외적 세계는 대상들로 혹은 이마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지각이 구성할 것은 이마쥬들 가운데서 우리가 윤곽을 그리는 막 생겨난 행위일 뿐이다. 그런데 두 이론은 정신에 의해 물질 속에서 구성(단면)혹은 재구성된 것만을 보고 있다.
즉 실재론이 실재의 순간적 시각만 주장하고, 관념론이 시각의 재구성을 주장하고 있기에, 우리 지각이 지속의 두께를 차지하고 있음을 지나친다. 결국 베르그송에서는 관념론과 실재론 사이에 설 수 있는 우리신체(물체)는 곧 짧은 지속(la courte duree)으로 된 지각 작용이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 신체 속에 기억의 두 종류인 신체적 기억과 추억 기억도 함께 들어있다. 물론 물체는 신체와 달리 신체적 기억인 반복만을 일삼고 있기 때문에 물질은 우리 속에 망각을 둔다는 견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순수지각에 관한 논의가 물질을 규정하는 두 학설(관념론과 실재론)의 오류를 지적하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제, 순수 추억에 관한 논의로부터 관념의 허구성을 밝히고 실재적 영혼이 현실의 행동 속에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밝히면서, 영혼과 신체의 내재적 연속성과 외면적 분절화에 따른 윤곽(형상)의 형성을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1.3.2. 심리적 자아의 질료와 근원: 지각에서 기억으로 (그리고 생명존재의 근거로서 기억)
우주의 모든 물체는 이마쥬이다. 그 중에 우리 신체도 이마쥬이다. 우리 신체가 외부 대상에 관계 맺는 방식이 실재적 행위이다, 그 대상이 지각 가능한 범위 속에 있을 때 의식의 대상으로서 가능적 행동이다. 그러면 의식의 대상인 표상이란 무엇인가? 표상은 의식적 사실로서 물질과 다르다.
의식의 대상으로서 신체 혹은 우주는 표상이다. 실재론은 외적 대상으로부터, 관념론은 지각된 대상으로부터 의식의 대상물을 형성한다.
반복하는 물질이 아니고, 현실화하려는(actualiser) 의식을 의식은 이미 어떤 표상으로 갖는다. 여기서 과학의 성립과 의식의 성립이 가능하다. 이러한 표상 이전에 (물체든 관념이든) 인식은 사실상으로는 지각에서부터이다.
지각을 받아들이고 행동화하는 신경체계는 표상을 준비하고 제작하는 장치가 아니라 실행하는 장치이다. 그래서 의식은 신경체계를 통하여 표상을 선택한다. 순수 지각은 물 자체 즉 현재인데, 물질적 대상이라 부르는 이마쥬는 의식적 지각 즉 표상이다. 그래서 존재와 지각 사이가 구분되며, 이 양자는 표상에서 보면 사유의 차이인데, 질료에서 보면(물질과 대상에서 보면) 질적 차이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지각에는 권리상으로 존재하는 순간적이고 직접적으로 얻어지는 순수 지각과 더불어, 과거 추억이 결합한 구체적이고 복잡한 의식도 포함하고 있다. 이 후자의 경우에, 현재보다 표상에, 즉 본질 자체 보다 우리가 물질로부터 이미 얻어진 의식적 지각(추억 이미쥬)에, 관여한다. 일반적으로 순수 지각과 의식적 지각 사이를 정도의 차이로 보지만, 이 차이는 본성상 다른 것이다.
순수지각은 무의식적 질료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자신의 지각(의식적 지각)보다 훨씬 넓고 훨씬 충만하다. 의식적 지각은 두뇌와 척수 행동과 서로 상응한다. 다시 말하면 순수 지각은 물질 자체이며 사물의 현재 표면인데, 의식적 지각은 물질적 대상이라 부르는 이마쥬 즉 표상이다. 즉 존재(l'etre)와 지각된것(l'etre percue)과의 차이이다.
문제는 이마쥬 전체인 지각이 왜 우리에게 관심있는(즉 선택된) 표상으로 축소되는가? 선택된 이마쥬의 문제에서 행동의 문제에로 넘어간다. 신체가 가진신경 체계란 단지 인도자의 역할을 한 뿐인데, 즉 감각-운동 기제인데, 이 운동 기제가 외적과 내적이란 개념을 가진다.
우리 신체 (나의 신체 이미쥬)가 지각의 중심에 놓이면서, 그 신체가 우리의 표상이 되고 우리의 표상으로부터 행동 문제를 보는 것은 인지발달심리학과 실험심리학의 경우이다. 그런데 의식의 행위와 관련하는 존재는 나의 인격이다. 베르그송은 의식적 자아(인격)로부터 신체로, 그리고 그 신체기제로부터 다른 물체들에게로 나아가는 길도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 지각과 기억의 혼합된 문제의 혼동이 있다. 말하자면 지각에서 신체를 통한 의식에로 구심적 운동과 의식에서 지각에로의 원심적 운동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척추동물 특히 인간 신체의 이중적 기능(faculte) 때문일 것이다.
왜 두 개의 방향이 있는가? 이 문제는 물질과 의식 그리고 양자 결합의 문제를 보아야 할 것이다. 불가분의 비너비와 동질적 공간에서 너비 사이의 형이상학적 혼동과 순수 지각(신체)과 순수 추억(기억)사이에 심리학적 혼동이 있다. 형이상학적 혼동은 DI에서 심리적 사실의 내포적 차이와 의식적 사실의 수적 다수성 차이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본성적 차이가 존재론의 근원이라는 것을 밝혔었다. 그러나 존재가 드러나는 방식에서 왜 물질을 우선적으로 보느냐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었다.
경험론이든 관념론 (독단론)이든 간에 양 학설이 주장하는 것은 물질과 정신 사이를 구분하고, 그 간격을 메우자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던것으로 철학사에서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러면 베르그송의 새로운 방법적 시도는 무엇인가? 그는 의식적 감각이 비연장(inextensif)으로 물체의 성질이 비너비(inetendu)로 바뀐다고 보았다.
감각이 심리적 내포성으로 또는 수적 다수성으로 보이는 것은 지각의 과정에서 의식의 내재적 상태가 외재화하고 너비가 감각에 보태지기 때문이다. 감각의 질적 다양성과 이질성은 신체 밖에서(신체와 관련없는) 이마쥬들이 우리에게 감지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의식에 내에 내재해 있는 내감(affection 감화)들이다. 이러한 내감의 본질(본성)을 깊이 파고들기 위하여, 표상적 상태(표상적 관념)가 아니라 내감적 상태(L'etat affectif)를 다루어야 한다. 내감적 상태는 의식적 자아 즉 나의 인격에 연관되어 있다. 그 예로서 고통(douleur)을 다룰 수 있다. 고통의 지각과 고통의 내감 차이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본성의 차이라고 지각은 신체의 반사능력인데 비해 내감은 신체의 흡수능력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나의 지각은 나의 신체밖에 있는데 나의 내감은 나의 신체 안에 있다. 그래서 내감은 지각이 만든 제1차적 질료가 아니다. 결국 애정과 떨어져 있는 이마쥬는 논리상으로 내감없는 신체(사실상 내감을 포함하지 않는 나의 신체는 없다) 즉 물체이며 이 물체가 관념상 (개념상)물질이 된다. 순수 상태에서 나의 지각은 기억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했듯이 나의 신체가 최소한의 지속을 가지고 있고, 이 두께있는 이마쥬의 확장으로 과거와 연결되고 그리고 주변의 다른 이마쥬와 연결이 되어 이마쥬의 자연적 화장(extension)이 가능하다. 이 이마쥬의 확장을 통해, 나의 우주의 중심이라 나의 인격이 물리적 기초로서 채택된 나의 이마쥬가, 단면으로서 표상에서 그 기원과 방향을 보지 못한 것과 달리, 내감의 자리차지와 행위의 근원을 그 내부 깊숙히에서 자각하게 된다. 결국 나의 신체는 최소한의 두께가 지닌 지각이며 그리고 내감을 포함하고 선택을 통해 행동으로 옮기는 장치이다 (여기서 심신관계 문제는 접어두자).
신체가 우리 지각(장래적 행위)을 준비하고 신경을 통해 실행한다. 신체에 이 실행을 위하여 과거의 행동을 측정하고 있다고 보는 심리학 일반의 견해에 대해, 베르그송은 기억의 두 종류를 들어서 반박한다. 생리학적인 견해에서 과거라는 기억은 신체 운동 기제를 통하여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추억-이마쥬 이지만, 이와는 달리 정신의 작업에 의해 독립적으로 과거 속에 남아있는 순수 추억(기억)도 있다.
이 추억 현상은 구체적으로 신체를 통하여 공동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재인식 과정에서 어떤 다른 어떤 것이 첨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인식 과정에서도 자동 재인식(신체적)은 대상으로 바로 나아가는데, 연합적 재인식(상상적)은 주체에서 솟아 나오는 어떤 것(내감적, 의지적)이 보태어 진다.
그래서 재인식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자동적 재인식은 추억이 신체에 국부화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고, 주의 깊은 재인식은 주관적인 것에 근거한다. 주관적 재인식에도 심리학적 두 절차가 있다. 하나는 뇌수의 지각내용(추억)의 보존에 따르며, 단선적 현재 지각에 관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추억보존도 현재 지각과 관련도 아닌, 순수 추억이 있다. 이는 임상의 결과(실어증, 정신분열증)에서 얻어질 수 있다고 하면서, 신경체계와 기억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후, 지각하는 신체와 연관없는 기억과 영혼(정신)의 문제로 넘어간다.
생리학적 가설에서 추억은 신체(두뇌)에 축적되어 있다고 하는 가설을 물리치고, 이것과는 달리 존재하는 (순수)추억은 어떤 방식으로 존속하며 어떻게 행위로 실현화되는가? 추억은 현실적 지각과 달리 잠재적이고 또한 과거이다.
그리고 이 추억이 행위에 무능하게 보이는 것은 현실(actuel)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즉 나의 현재는 의식이 나의 신체에서 가지고 있는 의식 속에 있다. 단지 신체는 그에 유용한 과거를 선택한다고 했다. 그 현재는 최소한의 과거와 더불어 미래를 잠식하는 구체적 지속을 지닌 질적 단위(이마쥬)이지, 숫자적인 점과 같은 시간의 순간이 아니다.
이 최소한의 과거보다 더 과거인 것이 무의식이다. 즉 현재는 최소한의 과거와 그에 이어서 전 과거를 달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원뿔의 예를 보게 된다. 이 현재 즉 꼭지점은 원뿔의 통과 같은 과거 추억을 달고있다. 원뿔 각각의 단면인 크기가 다른 원은 추억들인 셈이다. 현재 뒤에 달고 있는 이 무의식의 총체는 기억이며, 인격성을 형성하고, 이 기억이 현재의 지속에 연속적 도약으로 행동(신체)에 관련하여 드러난다. 이 표출 방식이 지속 자체이다.
이러한 지속 자체는 - DI에서 심층 자아의 파악처럼 - 직관에 의해 파악된다. 원뿔의 각각의 단면들인 크기가 다른 원들은 개념의 형성이라 할 수 있고, 관념론 혹은 개념론에서 일반 개념은 일반적 공통성을 모은 것이며, 관념 연합론자에서 닮는 것들의 조합에 의한 개념형성도 이와 같다.
이러한 추억들의 형성물 구성물은 순수 추억이 아니다. 이 추억의 위치화에 대한 연구가 실험 심리학(인지 심리학 발달 심리학)의 과제이라면, 순수 추억 혹 추억이 실현화하는 과정을 개별 인격에서 보는 개별 심리학(신경증 심리학 정신 병리학)에서 사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격체 혹은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은 전자에서 보다 후자에서 더 밝혀질 것이다.
전자의 심리학은 하부가 넓은 깔때기와 닮은 꿈의 도식과 상부(현재)의 꼭지점에 닮는 행위도식과 사이에 정도의 차이 혹은 강도의 차이로 보지만 후자의 심리학은 깔때기 자체가 커나가고 꼭지점은 현실의 타 부분을 잠식해 들어가는 역동적 과정으로 보면서 앞 단계 깔때기와 다른 깔대기 사이에 본성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기억은 현재에도 과거가 밀고 있듯이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존속하리라 믿으면서, 은연중에, 영혼(인격성)이 잔존하리라 믿는다. 이런 설명에서 순수 추억은 언뜻 보아 물질의 양태인 순수 지각과 전혀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물질이 순수 기억이 활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순수 지각이라면, 물체 특히 생명 있는 신체는 순수 기억과 더불어 과거를 포함하는 의식적 지각으로서 다른 신체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여기서 지속은 기억과 더불어 이며 생명과 더불어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관계맺음에서 생명 있는 이 신체는 행위를 위한 생의 주의의 기관이며 우리 의식을 고정시키고(꼭지점) 그리고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추와 같다.
이러한 발상에서 보면, 지각의 확장과 추억의 확장은 물질과 정신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게 된다. 왜냐하면 이 확장이 서로 침투하고 공감하는 장면이 곧 심리적 자아의 위상이다. 이 자아 속에는 이미 서로 질적으로 다른 두 현상이 함께 있다. 이 현상이 생명 현상과 공연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점으로부터 우리는 MM에서 전체가 부분보다 더 크고 과거가 현실적 행위보다 먼저라는 것을 밝힐 수 있다. 이마쥬의 총체가 한 이마쥬인 신체보다 더 크며, 이 양자는 질적으로 다르다. 순수 기억을 담고 있는 현재 즉 실재성은 신체의 가능적 행위인 물체와의 관계 (지각)보다 먼저이며, 실재성은 가능성과 본성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르그송에서 존재란 질적 차이성를 내포하고, 신체와 물체와 본성상 차이를 가진다. 이 존재의 발현되는 과정에서, 심리적 사태들의 표면과 심층, 지각과 기억, 신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등으로 구분해 설명하는 경우는 - 스피노자가 속성이라 부를 수 있는 - 양태들에 따라서 존재자의 양식일 뿐이다. 우리가 존재론이라고 말할 때는 존재가 가지는 실체성에 대해서 이다.
그 실체성은 원래 이질적이며, 이 실체성으로부터 사물들과 사태들 드러나기 때문에 존재는 원인이며 근원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실체는 질적이기에 변화하고 있고 운동하고 있다. 우리가 이 운동하는 것의 일부로서 즉 존재자로서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일부만을 지니고 있지만, 그의 원인 자체가 신체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그 원인이 기억과 더불어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를 무매개적으로 직관 할 수 있다고 본다. 심리적 사실들로부터 존재의 근원과 원인에 대해 직접적 경험(직관)을 가진다고 보는 사실로부터 심리적 자아는 존재론의 단초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의식의 지속적 진보 혹은 진화 (transformation ou evolution)는 실체인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우선 이 자아는 일반인이 말하듯 물질과 정신의 타협안으로서 생명인 것이라고 만 말하자. 즉 물질과 정신의 타협안이 생명체일 것이다 이제 생명체의 진화를 통하여 물질성과 지성성은 나란히 형성되어 왔다는 것을 밝히려 할 것이다: 인식적 자아의 사유 두 행태를 보게될 것이다.
======================================================================
| 무엇이 베르그송으로 하여금 과학을 비판하게 하는가? | |||||||||
| 생각 둘, 근대 과학적 사유에 대하여 | |||||||||
|
| |||||||||
|
이명곤 / 대구카톨릭대 철학박사 master@dambee.net | |||||||||
|
| |||||||||
|
근대를 이성과 과학의 시대라고 한다면, 현대는 (자연)과학이 세계와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좌우하고 있는 시대이다. 꽁트(Comte)는 자연과학의 핵심을 ‘제일원인이나 목적인 같은 형이상학적 원리들을 신화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현상들의 분명한 발견과 가능한 한 가장 최소한의 법칙에로 환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칸트식으로 설명하자면 “실재자체(물자체, Ding an Sich)“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경험적 현상들을 분석·조합하여 법칙을 형성하고, 이러한 법칙들을 통해서 ‘체계’를 형성(파악)하는 것이 과학의 사명이다. 결국 자연과학의 문제는 어떤 것의 존재이유 즉 “왜?"라는 질문과 그것의 지향점, 즉 “목적”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다만 “어떻게"라는 과정만을 문제 삼는 데에 있다.
따라서 철학이 왜?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면 과학이 철학과 멀어지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의 문제점은 과학은 인간의 심오한 질문에 대한 앎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성으로서의 앎만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상에 대한 고찰과 수량적 분석을 통해 현상의 법칙화를 지향하는 과학은 결국 기술문명을 지향하게 되고, 이는 결국 ‘techno-science’에 도달하게 된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모든 학문이 본질적으로 인간을 위한 학문이라면, 이러한 근대과학의 정신은 학문의 근본적인 목적인 인간성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론이 많은 만큼, 가치의 문제나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못하며, 인간성에 대한 미래의 방향에 대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사유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한 자연철학자들의 노력은 일견 해답을 주는 듯하다. 가령 쉘링은 자연과학이 거부하였던 사물들의 근거 혹은 근원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였고, 헤겔은 그의 정반합의 원리를 통해 세계의 궁극적 도착점에 대해 체계적으로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근대과학이 신봉한 체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그것이다. 그런데 체계란 무엇인가? 어떤 것의 체계를 어떤 것의 실재로 환원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물의 실재를 ‘H2O'라는 체계를 통해 제시하겠지만, ‘H2O'가 물의 실재(res, reality)를 대변할 수 있을까?
시인들에게 물의 실재란 틀림없이 ‘H2O' 이상일 것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요, 정화의 상징이며, 순수함의 근원이다. 꽁트의 경우 인간의 영혼도 ‘두뇌의 체계적인 도표’로 대치되고 있지만, 베르그송은 이러한 체계는 교향곡(음악-실재)에 대한 악보의 음표들(기호-체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현대로 올수록 첨단과학의 발달은 ‘실재’를 규명하는데 있어서 보다 ‘분석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실재를 점점 더 미세하게 쪼개고 또 쪼개고 있다. 베르그송은 “분석이란 한 대상을 이미 알려진 제 요소들에로 데려가는 작용이며, 따라서 분석이란 하나의 현상을 다른 현상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분석적 방법이 ‘대상’의 ‘실재’ 혹은 ‘참 모습’을 알려줄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분석적 방법은 대상의 실재를 가급적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합리적으로’ 그리고 ‘다른 것을 통하여’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베르그송은 자연과학이든, 자연철학이든 동일하게 범하는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실재자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지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가장 심오하고 인간적인 질문은 ‘quod' 즉 ‘그것의 본질’이라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바 있다.
자연과학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앎의 욕구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성으로서의 앎을 제공할 뿐이다. 체계를 실재로 대신할 때, 인간은 자유를 상실하고 그 본래적인 능력인 창조적 힘을 상실하고 만다.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특성을 망각한 근대자연과학적 사유에 대한 베르그송의 비판은 특히 과학이 포기하고 있는 이 ‘실재’에 대한 추구를 위해서 이며, 또한 과학이 방치하고 있는 인간의 자유와 창조의 능력을 되찾기 위해서이다.
그의 ‘휘어진 곡선에 대한 비유’는 이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데, 휘어진 곡선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은 거의 직선에 가깝고, 보다 작은 부분을 취할수록 보다 직선에 근접해 보이겠지만, 그러나 곡선은 결코 작은 직선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생명은 물리-화학적 요소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베르그송은 실재를 파악하기 위해 분석적 방법론 대신 ‘직관’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생명의 실재를 알기위해서 생명현상을 ‘비-질료성(정신성)으로부터 질료화하기’로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직관(intuition)'은 실재와의 모호한 소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 나름의 엄밀한 규칙성을 가진 ‘철학적 인식'의 한 방법이며, 이는 ‘지속’의 특성을 가진 실재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속(dure)’이란, 하나의 개체는 전체적으로 분할할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이지 않고 ‘연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그는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학자들이 ‘사회적 자아’, ‘역사적 자아’, ‘윤리적 자아’, ‘종교적 자아’ 등이라고 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분할될 수 없고 복수적일 수 없는 유일한 우리들의 ‘자아’를 학문적 편리성에 의해 구분하는 것인데도, 현대의 학문은 이러한 학문적 대상들을 마치 서로 독립된 실재처럼 고려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에서 우리는 지속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가 있다.
이처럼 그는 근대과학에서부터 출발하여 점점 가속화하고 있는 분석과 체계화의 학문적 방법론을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주지 못하는 학문적 방법론으로 이해하고, ‘교감’과 ‘직관’을 통한 실재와의 직접적인 소통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실재와 정신이 직접 소통하는 행위자체를 곧 ‘형이상학’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따라서 베르그송의 형이상학은 끊임없이 형성되고 있는 ‘인간의 자아’에 대한 체험을 말하며, 체계를 거부하는 철학이다.
그는 직관을 통한 인간성에 대한 체험을 곧 세계전체에 대한 체험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주에 존재하는 동일한 생명력과 힘이 인간에게도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인간성에 대한 ‘직관적’ 체험은 분석과 개념을 통한 앎보다도 더 보편적인 앎을 형성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베르그송의 정신을 인간성 회복을 위한 학자의 예언자적인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명곤 대구카톨릭대 철학박사 | |||||||||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bloomy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11.01 내용 소개) 베르그송 소개--->베르그송에서의 인간 본성의 세측면(심리,진화,인류적 측면)---> 베르그송 철학에서 심리자아: 존재론 ---> 심리적 자아 의 길 - 존재론 - 질적 운동.---> 심리 자아의 단초 설정을 위하여 - 존재적 자아--->의식 자아의 단초 설정을 위하여 - 심층적 자아--->심리적 자아의 단위: 이마쥬---->심리적 자아의 질료와 근원: 지각에서 기억으로 (그리고 생명존재의 근거로서 기억)--->무엇이 베르그송으로 하여금 과학을 비판하게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