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7:7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리리라" 는 말씀 역시도 바른 해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작성자김유미작성시간04.11.21조회수1,058 목록 댓글 0|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마태복음 7:7에 대한 해석과 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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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7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말씀은,
무엇이든지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하면 다 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역사적 경륜 가운데 약속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주님의 것이란 바로 "성령"이라는 것을 놓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가 11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역시 일상 생활에 관련된 형편이나 물건에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좋은 것'이란 곧 '성령'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본문과 병행구절인 누가복음11:13에서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심으로
마태복음의 '좋은 것',"주실 것","찾을 것", " 열릴 것"이란 바로 '성령'을 일컫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를 기복적인 신앙의 근거로서 사용하고 있음을 바라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정성을 다해, 열심을 가지고 바라고 구하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소원을 이끌어 낼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부흥을 이루었다고 하는 이면에는, 아마도 이러한 사람들의 신앙심과 전혀 관계가 없는 종교심을 부추겨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또 다른 우상숭배의 전형을 제공함으로서 교회가 예배의 장소가 아닌, 복을 구하는 장소로 탈바꿈해 버렸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 아닌지 모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7:12)는 말씀도 해석되어져야 바른 해석이 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본문 한구절로 해석할 경우 전혀 엉뚱한 해석을 할 우려가 있는 말씀입니다.
사실 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이 본문에 대해서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윤리적으로 해석을 해서 신앙의 본질에서 멀어지게 됨을 바라 보게 됩니다.
즉 기독교인은 남을 잘 대접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도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가르친다든지, 남을 잘 대접하면서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윤리적인 덕목인양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말씀은 그런 윤리적인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입니다. 만일 그렇게 해석하게 되면 본문이 의도하는 바와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게 됩니다. ------------------------------------------------------ 마태복음 7:12의 한글 번역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그것은 번역기술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용어채택에 관한 문제입니다.
즉 대다수 한글 번역성경들에는 '대접'이라는 용어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역성경, 새번역, 표준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채택되고 있는 '대접'이라는 단어를 분별력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정확한 의미를, "그러므로 누군가 너희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 (Therefore all things whatsoever ye would that men should do to you, do ye even so to them: KJV)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의 내용은 단순히 남에게 대접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성도의 본질적인 삶의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한글 번역성경의 위 본문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접"이라는 용어가 다분히 윤리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의 여지를 주는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앞부분과 어떻게 연결되길래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가 붙어있느냐는 점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12은, 앞의 7:7-11까지 하나의 문단을 이루고 있는 내용에 대한 결론적 언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7:12을 해석하기에 앞서 7-11까지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7-11까지의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사도-교회)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 도움이란 일상 생활의 필요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와 구원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근거로 하여 마태복음 7:12의 "너희도 남을 잘 대접하라"는 말씀은 결코 윤리적 교훈이 아님을 바로 인식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가운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식의 대접을 잘했다거나, 그렇게 함으로써 남으로부터 더 나은 대접을 받았다는 성경의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도리어 성경에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핍박을 받고, 진리를 거스리는 자들을 질책하다가 고난을 당한 성도들에 관련된 기록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7:12의 맨 앞 부분에 '그러므로' 라고 하는 접속사가 쓰인 것은 앞 절에 기록된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직접 연관된 것입니다.
즉, 누군가 자기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대로 그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은, 성령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과 성도의 삶에 관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의 맨 마지막 부분에, '이것이 곧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하신 말씀은 '그 약속으로 인해 순종하며 사는 성도의 삶이 곧 구약성경의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7:12에서, 성령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어떤 삶을 요구하시는가 하는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허락하심으로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으니 교회 역시 그 은혜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예수님께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신 것은, 단순한 윤리 제시가 아니라 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은 교회에게 순종의 삶을 요구하고 있음을 잘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