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16:1-8 - 시바와 시므이

작성자지미박|작성시간26.06.13|조회수45 목록 댓글 0

시바와 시므이
삼하16:1-8

(삼하 16:1, 개역)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과 건포도 일백 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삼하 16:2, 개역)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뇨 시바가 가로되 나귀는 왕의 권속들로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소년들로 먹게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곤비한 자들로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삼하 16:3, 개역)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삼하 16:4, 개역) 『왕이 시바더러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시바가 가로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삼하 16:5, 개역)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삼하 16:6, 개역)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삼하 16:7, 개역)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삼하 16:8, 개역)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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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이방나라에 비해서
매우 위험한 나라입니다.

다른 이방나라들은
이래나 저래나 상관없다는 나라입니다.
개같은 나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다버린 나라요
방치한 나라요
천국과 상관없는 나라요
민족이라고 성경에 나옵니다.

그래서 그런 나라에서
정권이 어떻게 바뀌고
권력을 누가 차지했던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권력을 잡아도
이 인간이나 저 인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사정이 그렇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나라이기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는
아주 위험한 나라입니다.

걸핏하면 매 맞고 징계 받는 나라입니다.
조금이라도 이방나라처럼 굴었다가는
선지자를 통해서
인정 사정 봐 주지 않고 쳐버리십니다.

그것은 그 이스라엘 땅이
하나님에게 소유된 땅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왕으로 계신 나라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 위험한 경우를 하나 들면,

열왕기하 1장에
엘리야라는 선지자와
아하시야라는 북쪽 이스라엘 왕이 나옵니다.

아하시야 왕이 난간에 떨어져
병이 듭니다.

이 때 아하시야왕은
자신이 죽을지 살지를 몰라서
바알세불이라는 우상신에게 붙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야가
단호하게 나옵니다.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묻지 않고
왕은 이방신에게 물었기 때문에
반드시 죽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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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 나라의 왕의 종교란
백성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수 없습니다.

백성이 다들 좋아하는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만 이방종교를 믿으면
사소한 일이 빌미가되어
권력을 잃어 버릴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조용해지고
자신의 권세가 오래 지속되려면
백성들의 감정을 안 건드리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지만 엘리야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 나라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요
백성이 주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오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따라서 왕의 뜻에 위배되는 자들은
이스라엘을 떠나든지 죽든지 간에
당연하다는 겁니다.

비록 그가 왕이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죽는다고 말한 겁니다.

아하시야왕은 자신이 권력에 도전하는
엘리야를 그냥 보고 둘 수가 없어
군대 50명을 보내어 체포하도록 합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하늘에게 불이 내려
너희들을 죽인다”는 겁니다.

과연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고
그들은 몰살당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권력에 도전한 것으로 생각한 아하시야왕은
여기서 멈출 양반이 아닙니다.

또다시 군사 50명을 보내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하늘에게 불이 내려
그들 50명 군사를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위험한 곳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겁니까.

왕은 끝까지 자기 권력 집착에 의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하여
세 번째로 50명을 보냅니다.

이번에서는 엘리야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사정합니다.

하늘에게 불이 내려오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엘리야에게 협조해서
자신들에게 체포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방나라로 변한 이스라엘과
하나님께서 직접 살아계신
이스라엘의 차이입니다.

인간의 주체란
권력으로 형성된
그 교차점에 나타납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이란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권력과
새롭게 주어진 권력과의 마주치는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강한 권력이 주어지면
일단 양보한채 하다가도,
자신의 과거 권력을 접다가도,

그 권력이 약했지만
숨겨져 있는 과거 권력이
활개를 칩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사람,
즉 시바와 시므이는
각기 다른 권력의 교차점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우선 시바라는 사람은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의 사환입니다.

므비보셋의 사환이 많은 음식을 준비해서
다윗을 맞이합니다.

다윗은
이 시바라는 므비보셋의 사환에 주목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다윗의 처지나 형편이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의외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므비보셋은
비록 선친 요나단의 일로 인하여
다윗으로부터
특별 사랑을 받고 있으나
그 뿌리는 어디까지나
사울의 집단에 튼튼히 내려놓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은 자기 집안의 무너뜨린 원수가
언제 망하는지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사환이
많은 음식을 가지고 마중에 나왔을 때,
이러한 사환의 태도는
이미 므비보셋의 뜻과는
상반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다윗은 시바에게 말합니다.
‘너의 결정은 옳았다“는 겁니다.

므비보셋에 있는 모든 재산이
다 너의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사환인 시바가 주인의 재산을 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서
세상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사실을
이미 시바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사울의 집단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다윗을 보는 태도는
시바와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이 대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혈육적 결속이
얼마나 단단한가를
그대로 다윗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그리고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결코 사적인 혈육을 옹호하는 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신의 혈육적 바탕을
확고히 하는 쪽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다윗왕이 별 문제 없이 지낼 때에는
모든 것이 수면 아래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몰랐습니다.
자기 위상을 놓고서
얼마나 많은 숱한 관계성들이
각기 다리들을 걸쳐 놓은는지를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다윗이
자신의 자리를 떠난 것처럼 보이자
그동안 걸쳐놓았던 관계들도
하나 둘씩 삐걱거립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사울의 집과의 관계입니다.

사울의 집안 사람들은
아무리 다윗이 은혜를 베풀어주어도
자신들의 적, 자신들의 원수처럼 여겼습니다.

즉 아무리 복음을 가지고
복음 중심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여도
복음이 기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신의 주체의 기반을
따로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다윗왕을 하나님께서 잡고 흔드시니
그 주변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전부 체험되어야 될 내용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왜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는가를
체험을 통해서 가르치는 기회를
허락하시는 겁니다.

압살롬 반란의 원인은
압살롬의 울분에
다윗이 동조되지 못한 데서부터
비롯됩니다.

그런데 다윗의 입장에서는
그 압살롬의 기분을 동조할 수가 없는 이유는,
압살롬 자체가
엉뚱한 데 마음에 두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는
나름대로 일을 하심에도 불구하고
소위 예수 믿는다고 나서는 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자기 사정을 안 알아준다고
떼를 쓰는 이치와 같습니다.

다윗의 권력이란
현재 누가 봐서도
처량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판국에서
다윗을 그동안 어떤 측면에서 보았는지가
드러납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들이
예수님의 어떤 면을 고려해서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어도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 권력 구축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하는 존재임이
확연하게 드러났을 때,
비로소 그 본연의 태도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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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강-삼하16장1-8(시바와시므이)-2sa100620
2010-11-27 23:26:18 녹취 : 이한례


하나님의 말씀 사무엘하 16장 1절에서 8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488페이지입니다.

사무엘하 16:1-8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과 건포도 일백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뇨 시바가 가로되 나귀는 왕의 권속들로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소년들로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곤비한 자들로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왕이 시바더러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시바가 가로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두 사람 나옵니다. 시바란 사람 나오고 시므이란 사람 나오는데, 사무엘하 구약 이스라엘 역사를 하다보면, 제가 부담이 돼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을 또 해야 되니까, 우리나라 역사도 신경 쓰지 않는 판에 남의 나라 역사까지 신경을 써서 설명을 해야 하니까, 그 많은 역사 이야기를 드라마 식으로 다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나 이거 하나 아셔야 돼요.

이스라엘 역사와 다른 우리나라 역사하고 차이점은 뭐냐 하면, 우리나라 역사는 이성계가 어떻게 하고 연개소문이 어떻게 하고, 장희빈이 어떻게 하고 동이가 어떻게 하고, ..., 이렇게 하더라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방치해 놓은 역사예요. 위험하지 않은 역사입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저렇게 정권이 바뀌고 어떻게 해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을 보여줄 수 없는 역사입니다.

이래서도 개고 저래서도 개고, 세종대왕이 한글 만들어도 개고, 이순신 장군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해도 똑같은 개고, 별 의미 없고 지옥 가는 역사인 반면에, 이스라엘 역사는 안에 여호와께서 만들어 내시는 역사, 움직이는 역사, 여호와께서 살아서 함께 일하기 때문에, 파생되어 나오는 역사예요. 그래서 감히 개 같은 단군의 역사를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이스라엘 역사하고 족히 비교하면 안 됩니다. 비교 돼서도 안 되죠.

이 세상 역사는 인간들이 욕망에 의해서 움직이지만,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있는 인간들의 욕망이기 때문에,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은 위험한 곳에 있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위험한 거예요. 조금만 뭔가 틀어지면 대번에 저주오고, 벌이 내려집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백성들의 특징 이예요.

성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의 술안주밖에 생각하지 않아요. 우습게 여기지 않습니까? 그만큼 덜 위험한 곳에 있는 거예요.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세피하게 볼 입장이 안 된다. 주님이 살아계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한 것을 시시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성령이 온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죽으셨다. 예수님이라는 어떤 남자가, 나사렛 예수라는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월드컵 16강보다 더 중요한 거예요. 아~~ 내가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이것을 내가 증거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잘났다 하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사실, 그것과 동행케 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얼마나 이게 위험한 것인지를 이 본문 가지고는 모르고, 열왕기하 1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잠시 하면서 이스라엘 나라가 얼마나 위험한 분과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열왕기하 1장에 보면, 여기 두 사람이 나와요. 아합 왕이 죽고 난 후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에 아하시야 왕이 있는데, 또 한 사람 누가 나오느냐 하면, 엘리야 선지자가 나옵니다.

이 아하시야 왕이 까불다가 그런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난간에 내려오다가 난간에서 떨어져서 다쳤어요. 다쳐서 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 왕이 병이 드니까, 지가 죽을지 살지 잘 모르겠단 말이죠. 그래서 누구한테 물어봤냐 하면, 그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 우상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묻게 된 이유는, 그 당시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 돼요. 왕이라 하는 것은 백성들의 호응을 받아야 왕이 돼요. 백성들과 다른 종교를 갖는다든지, 백성들과 다른 곳에 신경을 쓰면, 왕이 인기가 없어서 왕이 인기가 없으면 왕의 권력의 지반이 약해집니다. 조그만 핑계, 대수롭지 않은 핑계를 가지고 와락 달려들어서 왕을 험담하고 왕을 잃게 돼요. 만약에 이 명박 대통령 처남이 뭘 했다 하면, 그것 가지고 ‘ 대통령은 물러가라.’ 한다 말이죠.

백성들한테 인기를 얻어야 정권이 원활하게 되고 수월하게 통치할 수 있습니다. 왕의 종교라 하는 것도 백성들의 눈치를 봐야 되는 거예요. 국민들이 불교를 좋아 한다 그러면, 조계종 차 트렁크를 열면 안 돼요. 중들도 종교 공무로 등극시켜야 되는 입장이라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처럼 그런 식으로 나라가 운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해주는 겁니다. 그럼 누가 무서운가? 백성들이 무섭지, 누가 안 무서우냐 하면, 여호와는 전혀 안 무서워요. 불신앙의 시대로 접어든 거예요.

그럴 때 바알세붑에게 물었을 때, 그때 엘리야가 뭐라 하냐 하면, ‘니는 죽는다. 어데 물을 신이 없어 우상한테 묻나?’ 라고 한 거예요. 엘리야가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한 게 아닙니다. 이방나라 같으면 그런 소리 할 필요 없죠. 지금 여호와의 주신 땅에서 여호와의 백성으로 아브라함의 축복으로서 이만큼 인구가 많아진 땅에서 살고 있다면, 그 주도권과 주인은 누구냐? 여호와가 왕입니다. 여호와가 왕 같으면 백성들의 눈치코치 보지 말고, 왕이 여호와의 뜻을 따라야 될 일이 왕이 될 때, 그 나라는 여호와께서 지켜주는 겁니다. 그런데 아하시야 왕은 백성들이 지키지 여호와가 지킨다는 생각을 안 한 거죠. 사실 그 생각이 정상적인 생각처럼 느낍니다. 요즘 와서는 정상적인 느낌이 들죠.

그러니까 성경에서는 뭐냐? 아하시야 왕이 무려 중대를 보내는데, 50부장과 50명의 부대를 보내서 엘리야를 체포해서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이렇습니다. '엘리야가 감히 권력도 없는 놈이 이 아하시야 왕의 권력을 무시하고 함부로 입바른 소리를 했다. 이 권력의 매서운 맛을 봐야 되겠구나.‘ 하고 50명을 엘리야를 체포하러 보냅니다. 제가 열왕기하 본문을 끄집어낸 취지가 뭐냐 하면, 이스라엘이 얼마나 위험한 분과 함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취지를 잊어버리니까....

50명이 오는데, 엘리야가 하는 말이 ‘ 어디 감히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려고 와?’ 하는 소리와 더불어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50명이 불에 타서 즉사했어요. 사람의 세포는 단백질로 돼 있어서 불에 타면 냄새가 얼마나 지독하겠습니까? 제가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불에 타 죽었어요. 소고기 돼지고기 타도 냄새가 심한데, 사람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아하시야 왕이 또 50명을 보냈습니다. 합이 100명 죽었습니다. 아하시야 왕이 또 보냈습니다. 누가 죽을 지경이냐 하면, 세 번째 가는 50명의 중대장이 죽을 지경입니다. 사정을 합니다. ‘엘리야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이 말이 굉장히 재밌어요.ㅎ 뭐냐 하면, 이 중대장은 오도 가도 못하죠. 왕의 말을 안 들으면 왕에게 목 베어 죽고, 엘리야 참으려면 하늘에서 불 떨어죽고, 세상에 이렇게 위험한 곳이 어딨습니까? 정말 위험하죠? ‘제발 살려주세요.’ 뭔 뜻입니까? ‘제발 저한테 체포되게 해 주십시오.’ 이 말입니다.ㅎ 체포하러 간 쪽이 ‘제발 우리 좀 살려 주옵소서.’ 제발 곱게 체포되셔서 제발 우리 좀 살려달라는 거예요.

이게 바로 세상 권력과 하나님의 함께 있음의 차이입니다. 이 중대장이 엘리야를 얼마나 무서워했겠습니까? 그래서 제발 하늘에서 불 떨어져서 죽지 말게 해주시되, 그래도 우리의 해야 될 임무는 완수하도록 협조 좀 해달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회사에서 사장님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사장님이 신앙적인 결정이 아닌 것을 결정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중에 대리 하나가 예수 잘 믿는다고 봅시다. 대리가 감히 사장님의 하시는 일에, ‘이래 하면 공장에 불납니다.’ 했어요. 했더니 불나버렸어요. 두 번째, 사장이 ‘니 권력을 알지 못하고??’ ‘불납니다.’ 또 시작했는데, 대리가 ‘불납니다.’ 했는데 불나버렸어요. 그러면 세 번째 사장이 어떻게 나오겠어요? ‘그래 안 할게.’ 나옵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제발 불 안 나도록 조치해 줘. 하지만 사장의 명예는 세워줘.’ 이렇게 나오죠.

결국 인간이라 하는 것은, 자기 자신 속에 권력이 둘러싸였다는데 이 권력으로 인하여 자기가 어쨌든 간에 하나님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세상이 중요한 것이 지 몸둥아리 하나 살려고 부대끼는 이것이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들이예요. 거기에 선지자의 말씀이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위험한 곳에 두 사람 나오죠? 한 사람은 시바란 사람과 한 사람은 시므이란 사람, 둘 다 시씨 집안이 아니고, 둘 다 어떤 집안이냐 하면, 사울 집안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울 집안에 있는 사람이 다윗으로 정권이 넘어간 지 오래 됐어요. 다윗이 이미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울 집안사람들이 이 난리를 치고 대드느냐? 이것은 호시탐탐 복수의 칼을 노린 겁니다.

모든 집단에는 이런 권력에 의해서 짜집기 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이 수놓을 때, 두 개의 씨실 날실로 면을 짜잖아요? 면을 짜게 되면 어떻게 면적이 나오느냐 하면, 두 개의 실이 겹치면 면적이 되겠죠? 교차 지점이 있어요. 두 개의 교차 지점은 두 개의 선이 만나서 교차 지점이 되고, 또 만나서 교차되고 이래서 전체적인 섬유가 짜여 지게 되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의 면적을 갖고 있는데, 그 면적은 자기 면적이 아니고, 과거에 있었던 그 권력과 새롭게 주어진다고 마중 나온 권력과 두 개의 권력이 마주쳐서 거기에 ‘주체’라는 자기 면적이 생겨요. 점심 먹고 지금 잠이 오고 계시는데, 괜히 어려운 이야기를 했어요.ㅎ 이 말은 인간이란 없다 이 말이죠. 인간은 없고 인간을 해부해 보면, 과거의 권력이 나를 만들고 새로운 권력이 나를 만들어 두 개가 밀고 당기는 사이에 내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TV 드라마입니다. 출신은 돈도 없는 집안의 아가씨가 똑 소리 난다는 이유 때문에, 그냥 길거리에 가다가 엎어져 있는 할머니를 일으켜줬더니만, 나중에 보니까 뚝배기 해서 우리나라에서 재벌 된 사람이라 이거죠. 그래서 며느리 삼으려 하는데, 할머니 외의 다른 집안은 그렇게 이름 없는 뼈대도 없는 그런 여자는 며느리로 안 된다고 기존 권력이 싸우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천한 여성이 집안에 들어왔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의 과거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서울 강남의 권력이 극구 저항합니다. 며느리는 적어도 유학 갔다 와야 하고, 3개 국어 해야 되고, 집안도 빵빵해야 되고 재벌은 재벌끼리 혼인해야 재벌이 커진다 하는 거예요. 밀고 당기고 하는 가운데서 비로소 나는? 나는? 나는? 정리된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밀고 당기고 하는 가운데서 배제되는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이 다 그래요.

심지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장로 투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투표 떨어지고 난 뒤에는 ‘니 두고 보자.’ 해서 ‘봐라 저러니까 장로 값을 못하지.’ 잠재돼 있던 권력의 목소리를 내잖아요? 모든 단체가 다 그래요. 애들도 마찬가지예요. 중학교 때까지 공부 잘 하다가 고등학교 가서 짝사랑한다고 성적이 내려가면, 부모로서는 공부 잘 했던 권력으로서 들이대죠. ‘ 너 요새 와 이리카노, 너 미쳤나? 와 이리카노?’ 하면 ‘부모님, 난 차라리 학교 다니기 싫습니다. 난 검정고시 치겠습니다.’ 또 자기의 새로운 권력과 다툴 때, 그때 그 고리에서 ‘아하 나라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권력에 휩싸여 있다.’ 이래 보는 겁니다.

시므이나 시바란 사람은 지금 져 버리는 권력, 다윗의 권력은 지고, 압살롬의 권력이 떴을 때, 보란 듯이 ‘그럴 줄 알았어. 그렇게 우리 집안을 핍박하더니만, 꼴좋다.’ 하는 식으로 자기 본색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런데 왜 다윗에게 이런 일이 있느냐? 다윗의 자리가 없어 버리면, 다윗의 자리가 얼마나 은혜의 자리였던가? 다윗이 잠시 물러나는 순간에, 그동안 사라졌던 것처럼 느껴졌던 권력의 날카로운 칼들이 쨍, 쨍 거리며 서로 부딪히게 되는 겁니다.

8월 말~ 9월 초에 독일을 갈까 라고 집에서 의견이 있었는데, 저는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왜 안 가겠다고 했냐 하면, 성도님들이 저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가게 되면, ‘ 잘 다녀오십시오.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20년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는데 하시면 갈 수 있지만..., 만약에 나중에 불만이 있을 때는 ’그 인간은 복음만 외치지, 얼씨구나 하고 가버렸다. 그런 놈이야.‘라고 할 수가 있는 가능성이 많은 거예요. 그럴 때 제 아내가 뭐라 하느냐 하면, ’당신이 강단을 2주 비워봐야, 아~! 설교가 힘들구나.~~ 알게 아니냐?.‘ㅎ

다윗의 자리가 한 번 빠져 봐야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 은혜 한 것이, 은혜가 아니고 권력의 자리였다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이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상한 비유가 돼 버렸는데,(ㅎ) 그건 그때 문제고, 그때 주체 문제고..ㅎ

이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이 등장하거든요. 시바가 누구 종이냐 하면, 므비보셋의 종입니다. 므비보셋은 사무엘하 9장에 보면, 요나단과 다윗이 친하게 지냈거든요. 친하게 지냈는데, 요나단이 미리 알았던 모양이죠? 우리 집안이 망하고 니 집안 잘된다는 걸 알았던 모양이죠. ‘니 집안 잘 될 때 내 집안에 내 아들이 있는데 걔가 절뚝발인데, 걔 좀 지켜줘.‘ 그래 지켜줄게.’ 해서 므비보셋을 지켜서 마치 다윗이 자기 아들처럼 한 밥상에서 밥 먹게 한 거예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므비보셋이 과연 다윗의 은혜를 좋아했는가? 하는 겁니다. 안 좋아했어요. 이게 인간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어려울 때 돌본다고 해서 뭐 감동, 감화 엎어지고 자빠지고 인간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이 감동, 감화 개과천선이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얻을 건 얻어 챙기면서 밑에서 칼을 갈고 있는 거예요. ‘아무리 당신이 다윗 집안이 우리에게 잘해도 언젠가는 우리 집안이 잘될 때 두고 보자.’ 항상 두고 보자 식으로 한 거예요. 그런데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드디어 다윗이 지 아들한테 권력을 빼앗긴 거예요. 왜 다윗이 지 아들한테 권력을 빼앗겼냐 하면 이겁니다.

인간은 남의 아픔을 체험을 못해요. 아무리 위로할 수 있고 ‘아이고 가슴 아프죠?’ 하지만 말에 불과하고, 직접 아픈 당사자의 심정을 알아챌 수가 없어요. 압살롬이 자기 누이동생 강간당한 것에 대해서,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압살롬이 당한 체험을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그걸 빌미로 정권이 뒤바꿨거든요. 이 말은 뭐냐?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자기가 전부 다를 체험할 수는 없는 거예요. 뭔가 왕창 이빨 빠지듯이 권력을 다 빼앗기고 처참하게 망가지는 경험을 해줘야 자기 자리를 비워줘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다윗뿐만 아니고, 다른 사람도 체험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기회를 준 거예요.

그래서 어쨌든 간에 므비보셋이 ‘꼴좋다.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식으로 했을 때, 여기에 그 종 시바란 사람이 ‘주인님,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 인간적으로 그러면 안 됩니다. 사울 집안 다 몰살 시킬 때, 다윗이 당신 아버지 요나단 보고 당신을 자식처럼 키워줬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몰래 다윗이 비록 했지만 우리는 권력을 탐하는 것이 아니고, 다윗을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받는 것을 알고, 다윗이 어려울 때,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귀까지 데려와서 평안히 가시라고 도와준 겁니다.

그래서 나올 때 다윗이 물었어요. ‘너 주인 므비보셋은 뭐 하노? ’그 사람은 다리 아프다고 나올 생각도 안합디다.‘ 그러니까 시바에게 ’ 므비보셋에게 준 거 다 니 꺼 해라,‘ 하고 다윗이 몽땅 시바에게 넘겨줬습니다.

그 다음에 또 가는데,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죠. 다윗 왕이 바후림 고개를 넘어가는데, ‘그때 사울의 집안 족속 하나가 나오는데, 시므이라. 이 사람 신이 났어요. 정권 바뀌니까 신이 난 거예요. 거기다가 뭐를 뿌리면서 하는 말이, 이 사울 집안, 왕의 왕족을 뒤엎은 나쁜 놈아, 니가 저주 받아도 니가 억울한 자의 피를 흘렸으니까, 니가 이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저주 받는 것도 합당하다. 사울의 모든 족속의 흘린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다 돌려버렸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 요거 시므이가 상당히 중요한 신화를 이야기 하죠? 하나님의 저주가 누구의 죄를 용서하게 되면, 용서한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 저주는 가만히 떠돌다가 용서가 안 된 사람에게 몽땅 다 얹어 버리죠.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엘리사 만나서 고침 받았거든요. 고침 받으니까 엘리사는 만나보지도 않고 ‘요단강 7번 들어가라’ 하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낫습니다. 그런데 갖고 온 재물이 있었거든요. 그 재물을 그냥 가져가려 하니까, 그 게하시라는 종이 ‘장군님, 이왕 가져 온 거 가져가지 말고, 우리 주인님이 나한테 넘기라 했습니다. 그러니 나한테 넘겨 주이소’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그 말이 맞는 줄 알고, 그 재물을 넘겨주는데, 뭐도 넘겨주었냐 하면, 나아만 장군에게 전에 있었던 문둥병이 고대로 게하시 한테 들어가 버리고, 그 다음에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이 돼 버렸어요. 문둥병자가 되었어요.

그래 여러분들이 천국 간다는 말은, 반드시 지옥 가는 사람들 때문에 천국 가는 거예요. 말이 이상하지만.ㅎ 여러분의 죄가 지옥 가는 사람에게 죄와 저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여러분 빠진 거예요. 여러분의 죄는 없는 겁니다. 저쪽에 지옥가라고 재촉하기 때문에 저쪽에 덮어씌우기 때문에 이쪽 죄는 없는 겁니다. 하나님 일은 빈틈이 없어요. 그런 식으로 시므이가 저주를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오늘 본문 말씀은 뭐냐? 결국 인간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 예수님, 다윗, 다윗’ 해도 막상 자기 처지가 자기 속에 잠재돼 있는 ‘누가 나를 건드려? 나를 건드리면 저주 받아.’라는 자기 위주의 본성이라는 것은, 이것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를 건드리는 자는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그게 아리랑 아닙니까? 나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나라, 나라, 하고 용을 써요. 그런 것이 인간의 속에 권력이 그대로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잠시 권력이 없어지니까 그게 들통이 나는 겁니다.

교회가 숫자가 많아지고 교회가 부흥될 때는, 예수님 고맙다고 다 예수님께 감사하다고 영광 돌립니다. 그런데 교회에 불란 생기고 이러면 그다음부터는, 예수님의 복음이 어떠니 저떠니 관심이 없어요. ‘우리 집안 왜 그렇노? 그 교회 사람들 희한한 사람이네, 왜 우리 집안사람들 왜 이렇게 변했노? 입에서 복음이 안 나와요. 전에는 그렇게 툭 쑤시면 복음이 나오고, 툭 쑤시면 복음이 나왔더니만...ㅎ 진짜 같이 있다가 화장실 한 번 가 보세요. 우루루 몰려가서 욕을 하다가, 돌아와서는 안 그런 척, 음, 하고 권사님 한 번 화장실 가보세요. 그래서 우루루 몰려갔다가 와서는 안 그런 척 음, 집사님 한 번 화장실 가면, 또 그러고...

언제 우리가 예수님을 아느냐 하면, 예수님과 나의 권력을 결부시키지 않을 때, 평소에 ‘나 같은 인간은 권력도 없어도 되고, 죽어도 괜찮아.‘ 라는 입장에서 진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비록 세상이 내 맘대로 안 되더라도 예수님의 복음과 은혜는 그대로 남아야 되는 겁니다. 주님은 바로 진짜 우리가 믿는 사람이면, 진짜 우리가 예수님 사랑하는 사람인줄 항상 검증하는 입장에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권력을 쏙쏙 빼는 그런 일을 하십니다. 내 것,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 여기지 말고, 빠지더라도 주님의 사랑이 있고 주님의 용서가 있다면, 내 것이 빠지더라도 그거 신경을 안 쓰는 진짜 시바같은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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