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5:1-14절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를 보내 자신의 뜻을 전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고 귀기울이지 않았기에 북방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 자기 백성들을 진멸할 것이며 그 땅은 70년 동안 황무지처럼 버려질 것이라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들을 애굽의 비참한 종살이에서 건져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다. 이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해 주셨고, 그곳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도록 은총을 내리셨다. 이런 권능의 신을 모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 민족들도 부러워했고, 또 자기백성을 억압한 애굽을 진멸해버리는 신 여호와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사실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살아온 당사자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배척하고 외면하며 싫어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너무도 은혜를 모르는 몰상식한 짓이며 배은망덕이 아닌가?
그럼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인도하고 사랑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는가? 한 두 번도 아니고 오랜 세월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하신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고 듣지 않는 이유를 따져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분명히 과거에 자신들을 종에서 건져주신 여호와는 감사한 신이었다. 애굽의 병거를 피해 홍해를 건너온 기적은 영원히 잊지 못할 놀라운 은총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높고 강력한 성 여리고를 한 순간에 힘없이 무너뜨리는 여호와는 참으로 놀라운 능력의 신이었다. 그런 하나님은 백성들이 당연히 찬양하고 경배할 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여호와가 전혀 다른 분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역경에서 피할 길을 마련하시고, 대적들의 무기를 무력화시키는 그런 하나님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방인들을 강하게 해서 이스라엘을 파멸시키는 이상한 신으로 돌변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라고 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이 망한다’는 불쾌한 소식만 전할 뿐이요, 입만 열면 저주와 죽음의 메시지였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라고 해도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겠는가?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신다 해도 따르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해야 한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건지셨다가 다시 죽음의 자리로 그들을 몰아 가시는가? 하는 점을 분명히 따져보고 그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변덕쟁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있다. 그들을 선택하고 불러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경배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만 섬기는 삶이 아니라, 더 나은 쾌락, 더 많은 자유, 더 큰 만족을 좇아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추구했고, 여호와를 경배하는 대신 스스로를 신격화시키며 살았다. 바로 이것이 자기 백성들을 이방인의 손에서 건지셨다가 다시 이방인의 손에 넘기신 이유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들 스스로의 계획과 욕심을 가질 수 없는 자들이다. 만약 그런 욕망을 원한다면 그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 나라이다. 이방의 속박에서 건져내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가나안으로 이끄셨는데 다시 이방의 습성을 본받는다면 그런 자들은 이스라엘이 아니며 가나안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러니 다시 이방의 속박 아래로 그들을 원 위치 시키신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 된 것이 끝은 아니다. 그곳에서 고생하면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과거의 우리 조상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건지셨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이것을 깨닫고 회개한다면 그들은 다시 자유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이다.
성도의 삶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새로운 삶이 있음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만약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서 구별됨이 없다면 그는 성도가 아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나라를 흉내내며 살다가 이방의 속박 아래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신 자기 백성들을 다시 바벨론의 속박 아래로 되돌리시는 여호와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며 살아가자.
http://www.saesoonchurch.net/새순교회/서경수 목사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를 보내 자신의 뜻을 전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았고 귀기울이지 않았기에 북방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 자기 백성들을 진멸할 것이며 그 땅은 70년 동안 황무지처럼 버려질 것이라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들을 애굽의 비참한 종살이에서 건져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다. 이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해 주셨고, 그곳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도록 은총을 내리셨다. 이런 권능의 신을 모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 민족들도 부러워했고, 또 자기백성을 억압한 애굽을 진멸해버리는 신 여호와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사실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살아온 당사자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배척하고 외면하며 싫어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너무도 은혜를 모르는 몰상식한 짓이며 배은망덕이 아닌가?
그럼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인도하고 사랑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있는가? 한 두 번도 아니고 오랜 세월동안 여러 번 반복해서 하신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고 듣지 않는 이유를 따져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분명히 과거에 자신들을 종에서 건져주신 여호와는 감사한 신이었다. 애굽의 병거를 피해 홍해를 건너온 기적은 영원히 잊지 못할 놀라운 은총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높고 강력한 성 여리고를 한 순간에 힘없이 무너뜨리는 여호와는 참으로 놀라운 능력의 신이었다. 그런 하나님은 백성들이 당연히 찬양하고 경배할 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여호와가 전혀 다른 분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역경에서 피할 길을 마련하시고, 대적들의 무기를 무력화시키는 그런 하나님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이방인들을 강하게 해서 이스라엘을 파멸시키는 이상한 신으로 돌변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라고 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이 망한다’는 불쾌한 소식만 전할 뿐이요, 입만 열면 저주와 죽음의 메시지였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라고 해도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겠는가?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신다 해도 따르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해야 한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건지셨다가 다시 죽음의 자리로 그들을 몰아 가시는가? 하는 점을 분명히 따져보고 그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변덕쟁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상황을 연출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있다. 그들을 선택하고 불러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고 경배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만 섬기는 삶이 아니라, 더 나은 쾌락, 더 많은 자유, 더 큰 만족을 좇아 살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추구했고, 여호와를 경배하는 대신 스스로를 신격화시키며 살았다. 바로 이것이 자기 백성들을 이방인의 손에서 건지셨다가 다시 이방인의 손에 넘기신 이유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들 스스로의 계획과 욕심을 가질 수 없는 자들이다. 만약 그런 욕망을 원한다면 그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 나라이다. 이방의 속박에서 건져내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가나안으로 이끄셨는데 다시 이방의 습성을 본받는다면 그런 자들은 이스라엘이 아니며 가나안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러니 다시 이방의 속박 아래로 그들을 원 위치 시키신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 된 것이 끝은 아니다. 그곳에서 고생하면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 과거의 우리 조상들을 애굽의 속박에서 건지셨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기회가 될 것이며 이것을 깨닫고 회개한다면 그들은 다시 자유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이다.
성도의 삶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새로운 삶이 있음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만약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서 구별됨이 없다면 그는 성도가 아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나라를 흉내내며 살다가 이방의 속박 아래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애굽의 속박에서 건져내신 자기 백성들을 다시 바벨론의 속박 아래로 되돌리시는 여호와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며 살아가자.
http://www.saesoonchurch.net/새순교회/서경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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