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使徒行傳(사도행전)

행4:23-26 -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상...

작성자지미팍|작성시간25.05.19|조회수12 목록 댓글 0

행4:23-26 -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상

4: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4:24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4: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4: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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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건성으로 읽으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세상 권세자들의 법적인 조치로
복음 전도자들이 감방에 갇혔는데,
교회가 걱정을 했는데,
마침내 풀려나왔다.

교회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옛날 다윗이 미리 예언한대로
자기 시대에 일어난 것에 대해서
너무나도 놀라워하면서
더욱더 주님을 확고히 믿게 되었다."
라는 식이 될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
그런데 여기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좀 더 추궁해 보아야 본문에 대한 보다 명확한 상황설명이 될수 있습니다.

왜 세상 권세자들이,
주와 그리스도를
의도적으로 공격해야만 하느냐
하는 점을 말입니다.

국가 경영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해야할 일이 많은 자들입니다.

범죄자들도 잡아넣어야 하고
외국과 전쟁도 벌려야 하고,
경제 발전도 도모해야 하고,
과학 문명도 증진해야 하고,
등등의 많은 일이 있는데

왜 그들은 하필이면,
예수 믿는 자들에게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 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저 평범한 종교 문화생활이려니 하고
무심코 넘어 갈수도 있는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가를
생각 해 봐야 합니다.

물론 교회가 각처에 들어서도
교회가 열심히 전도하는 것에 대해서
그들이 별반 반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번창해 봤자,
국가 활동에 협조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교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상스럽게도 권세자들은
기독교라는 종교에는 관대해도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일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오늘본문의 배경이된 다윗의 예언부터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라는 말씀은

시편 2편에 들어있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다윗 시대에 다윗을 대적한 자는
이방 군왕들이 아니라
바로 선대 왕이었던 사울과 그 후원자들입니다.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대부분의 예언들이 사울왕으로부터
철저히 미움과 박해를 당한 가운데 나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울와 다윗의 관계가
참 이상스럽습니다.
ㅡㅡㅡㅡㅡ
개인적으로 결코 미워하지 않는데,
돌발적으로 사울 왕은 자신도 모르게
다윗을 꼭 미워하는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것을 '악신이 들려서'라는 표현으로
성경에 나옵니다만,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에 격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확하게 다윗을 반드시 살해해야만 하는
배후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사울왕은 행동에 나선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창을 던질 때,
그냥 위협용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꼭 죽이겠다는 집착으로 던집니다.

다윗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생각합니다.
왜 좋은 사이에서
이런 황당한 관계로 변모하는가 말입니다.

시편 110편에서 비로소 다윗은
그 내막을 우리들에게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1절은 이렇게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기에 보면,
여호와 외에 주님이 또 한분 계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하셔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원수를
필히 무릎을 꿇게 하는 일이 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왕이 된 것도
다윗 개인이 요구해서 된것이 아니라
그냥 일방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으로 간택되어서
사울왕의 세력으로부터 쫓기며
이유없이 미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지만
이스라엘 정권까지 장악한 악마의 위세가
다윗의 존재를 통해서 폭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다윗은 악마의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시는 역할로 선택된 것입니다.

마치 강물 안 어두운 곳에서 잠행하고 있는
실배후자를 수면 위에 정체를 노출시키는
기능을 위해 주께서는 다윗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로서 인간 역사 속의 각가지 사건이란
그냥 우발적인 우연성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갈등과 충돌을 줄기차게 불러온
두 세력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증거들이 되는 것입니다.

한 쪽은 '주님에게 붙잡힌 바된 자들의 노선'이요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원수로서 활동해야 하는
악에 속한 자들의 노선'입니다.

다윗과 사울은
각자의 배후를 노출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선이
과연 초대교회까지 이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모호했었는데

방금 사도들이
'주 예수의 이름'을 전파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 권세자로부터 핍박받았다는 것을 통해서 볼 때, 인류 역사의 배경은
확실하게 다윗과 사울이라는
두 개의 노선의 충돌로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
그냥 일시적인 정치적 판단 실수에 의한
인간적 과오의 결과가 아니라
처음부터 세상을 지배해 온 악이 저질러 놓은
증거물로 확실히 굳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사건이
초대교회에 와서 종결되고
오늘날 우리시대 와서는
과연 상관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서 벌리시는 작업이
반드시 원수 체포에 관한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 눈치를 채고 있는 악마가
세상 끝날까지 다윗의 예언대로
반드시 주님에 대해서 발악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전체로 꿰어서 보여주는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때까지
각가지 사건들이
산발적으로 터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모두 동일한 원리 안에서 벌어진
사태인 것을 요한계시록이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전까지 있었던 각가지 사건과 그 배경들을
그대로 가지고와 조합하는듯 보이지만
이는 그 어떤 사건을 한데 모아도
마땅히 동일한 원칙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항상 일치된 해석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2: 13-17에 보면,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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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권력을 쥐고 있는 악마는
예수님 등장하기 전까지
마치 폐쇄된 공간에 숨어서
컴퓨터로 세상을 조종하는
식으로 활동해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의 등장으로
자기 관리하에 있는 인간 세상에
이질적인 요소가 뿌려졌다는 것에 대해서
도저히 참지 못하고
직접 밖으로 나와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점을 하나님이 노린 겁니다.
이 인간 세상에서
악마가 자신의 정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를
아기 예수님으로 통해 유도해 낸 것입니다.

악마는 자기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이질적인 요소가
활동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총동원하게 되는데
이에 대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남은 자를 보호하는 조치는
마치 옛날 출애굽때와같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옛날 사건이나 지금 사건이 시공간이 다르다할지라도 같은 영적 전쟁에 속한 한 단면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악마는,
인간 위주의 메시야 종교까지
자기 주도하에 만들어 놓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치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라든지 교회 운영에 대해서는
악마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가장 신경이 쓰여지는 무리들은
바로 아직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직접 외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시편 110편에서 예언된
그 주님이심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이 주님이 하시는 일이 명확합니다.
악마의 정체를 폭로해서 붙잡는 일입니다.

따라서 악마 쪽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처럼 세상이란
다윗의 예언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정체를 드러내는 도구로
지금도 주님께서 사용하십니다.

만약 성도가 복음을 말하지 않고,
교회 성장이나 부흥을 목표로 하여
세상에 대해서 좋은 말로 회유책을 제시한다면 좋아하는 쪽은 악마입니다.

왜냐하면 악마의 종교정책이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거절하고,
"우리의 시민권은 오직 하늘에 있다"는 식으로
외치는 자들이 있으면
이 사람들은 이 인간 세상사람들이 볼 때
너무나도 이질적인 존재들입니다.

악마가 그냥 방치하지 않고
공격할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설사 이들에 의해
잡아 먹힌다 할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주되심의 의미가
확실해 졌다면
이런 일련의 모든 사태에 대해,
대 주재이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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