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의미...장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골1:16...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 '장자' 라고 한 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아들의 의미 - 아들은 이미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들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어디에 관련이 되어 있는가? 또 아들이란 말속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가?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바로 '골 1:16' 의 내용이 합류되어야만 아들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 '장자' 라고 한 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들의 나라의 희미하게나마 보여주니까, 아들의 나라라고 해도 되는데 내 아들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내 장자라 한 것이다(출4:22).
(출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 예를 들어, 우리가 태풍을 이야기할 때에, 태풍의 눈은 사실 비어 있지만 태풍을 구름으로 꽉 차있는 것으로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은 아들이다' 라고 말을 할 때에는, 진짜 핵심은 이스라엘이 아니고, 그 속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 이 상태를 아들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태초부터 성부와 성자 사이에 생각하는 그 나라 이외에는 일체 다른 나라를 일체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 나라는 태풍의 눈처럼 모든 피조물을, 천사와 심지어 악마까지도 아들을 겨냥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 그러니 구원론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중심이 아니니까 말이다. 우리가 제대로 성경을 알게 되면, 구원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아들의 세계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마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여기서 선지자의 이름과 의인의 이름과 제자의 이름은 있지만, 우리의 이름은 없다는 것이다. 상이란, 우리 이름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름이란 자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를 선지자의 능력으로 하는 그 상에 참여시켜 주시겠다는 말이다.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 여기서도, 자기 이름을 위해서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우리 이름을 삭제했는데 우리 나름대로의 구원론이 성립이 되겠는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인도하시는 목자가 우리의 이름을 제거시켜버렸는데 무슨 할 말이 있느냐는 것이다.
* 상(常)을 줄 때에 주님의 이름으로 주기에 우리는 공짜로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상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거기에 내 노력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내 이름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노력을 받는 상이라면 영화롭지만, 그냥 받는 것이기에 시큰둥하게 여기는 것이다.
* 내 이름을 삭제해 버리고 공짜로 상을 준다고 하니, 상을 주면 좋기는 하지만 그것에 목숨을 걸고서 매달릴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마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서 경품권을 毬?주면 긁어는 보지만 별로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안 되며,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잃는 자는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름 싸움인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항상 자기의 이름과 자기 존재에 애착을 가진다는 것이다.
* 그래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전부 다 '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철학은 바로 나에 대한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자는 것도 바로 나를 제대로 발견하기 위해서 이웃을 사랑하자는 것이다.
◈ 데카르트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 이정우라는 철학자는 [ 시뮬라크르의 시대 ] 라는 저서에서 '자기 부인은 없다' 라고 하였는데, 인간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없으니 하지 말라는 것이다. 끝까지 자기 긍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비의 법칙' 이라는 것이 있는데, 스티브 코비가 지은 [ 성공을 위한 일곱 가지 습관 ] 이라는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데, 그러나 지옥에 있는데 성공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진짜 성공이라는 것은 날마다 자기 이름이 무너지는 경험을 할 때인 것이다. 내 이름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날이면 날마다 더 파악할 때, 그것이 성공인 것이다. 왜냐하면 목자께서 나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자기 이름이 뭉개지는 통해서 말이다. 내 이름이, 나에 대한 생각이 뭉개질 때에 그 때에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이다.
* 두려움의 이유 - 인간이 왜 자기의 앞날에 대해서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진짜 두려운 분을 만나지를 못했기 때문에 자기의 미래상에 대하여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두려운 그 분을 만나면, 그 분으로 인해서 내 앞길 같은 것은 아무런 두려움의 대상도 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이 되면, 속된(?) 표현으로, '간이 배밖에 나왔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선택, 230 페이지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아들 - 이 아들의 표준과 기준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하여 이미 정하였으니' 라는 말속에는, 구원이란 우리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있는 것이지, 우리가 잘 되기 위해서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 요즘, 급발진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설교자로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자. 내가 만약에 그런 입장이라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이런 벌을 주십니까' 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이 심정을 그대로 설교 단에서 터트리면 되는 것이다.
* 사실 누구에게도 그런 일은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앞으로 너 생각하지 말라'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앞으로 너 때문에 여러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때에도 너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세리와 창기가 천당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하지 않을 때라는 것이다. 신창원이 천당에 갈 수 있는 것은, 자기 생각을 하지 않을 때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기 생각을 하고 있기에 피해 다니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나 신창원이다' 라고 자수할 것이다.
* 정말 그 어떠한 악한 살인강도라고 할지라도 천당에 갈 수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경우에라도 공통점은 하나인데, 천국에는 '우리가 아들이 아니고, 물론 우리의 이름도 없다' 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서 산다는 것이다. 미리 그 법칙을 체크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