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1월3일 제1공작대,제2공작대,제3공작대에서 각 대별 11명씩 대원을 차출하여 그 당시 제1공작대를 합숙 훈련장소 로 정하고 제1공작대잔류인원은 제2공작대와 제3공작대로 분산 배치 시켜으며 훈련 과정에서는 5-6명 한 개조 편성하여
1983년 11월 5일부터 강원도 고성군 소재 ㅇㅇ지역 해안가에서 매일 야간에만 바다가 에 은거지를 구축하여 매복을 하였다가 적을 가장한 대항군 이 침투를 하여 접근을 하면 숨소리도 죽이고 최대한 단거리 약 2~3미터 정도 접근을 하면 순간적으로 덮쳐 생포하는 훈련을 반복하였으며 훈련 시에는 비누와 치약도 일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 이유는 냄새나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함이고. 또한 훈련이 끝날 무렵 대장은 각각대원 을 일명씩 불러 개인적으로 면담을 하면서 이번 임무에서 죽어도 좋다는 각서를 작성하고 지장도 찍었습니다.
5.이동경로
1983년 12월2일 오전 9시경 설악개발단 에서 이동 전에 간단한 지시 사항
(1,목적지는 부산.
2,이동간에는 창문에 있커텐을 절대 열지 말 것이며.
3,식사도 차 안에서 할 것이며.
4,소변도 휴게소가 아닌 갓 길에 주차하여 소변을 볼 것)을 전달 받고 관광버스 2대에 나누어 탑승하여 출발 후 약9시간 후에 부산 송도에 있는 부일공사에 도착
1983년12월2일 정부기관 관계자로부터 임무수행 내용을 정확히 전달 받았다. 5,6명이 탑승한 간첩선 이 다대포 해안으로 접근해서 그중 2-3명이 다대포 해안으로 침투 기간 산업파괴 및 고정간첩을 대동하고 귀환 하라는 정보가 입수되었다는 것이였다. 그런 목적으로 침투하는 무장 간첩을 반드시 생포하라는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던 것 이였다.
6.생포과정
1983년12월3일 토요일 점심 시간이 지날 무렵 다시 전달 사항이 왔는데 간첩선 이 울릉도 근해를 지나고 있다는 통지를 받았다.오후5시경 저녁식사를 마치고 모든 준비를 완료한 후 부일공사 에서 7시경 출발을 하여 오후 8시부터 각자 위치에서 은거지 를 구축하여 매복 하여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12월의 차가운 바다 바람이 뼈 속을 파고들며 초 긴장의 시간이 흘러 적(북한 무장 간첩선)이 나타난 것을 확인하고 신호줄 을 이용하여 대원간 연락을 취하고 숨을 죽이고 있는 순간 시케먼 물체(전충남,이상규)가 순식간에 접선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완전무장을 한 전충남(조장),이상규(조원)가 백사장을 지나 생포할 수 있는 거리에 도착하여 당시 화장실 안으로 벨기에제 무성권총을 들고 인기척을 확인 하려는 전충남을 몽둥이로 손을 내리쳐 제압을 하자 목에 걸고 있는 체코기관권총을 8발정도 발사하고 조원인 이상규에게 “상규야 수류탄 까”..라고 소리를 치자 인근 대기조들이 온몸을 던져 이상규를 제압하고 수갑을 채우고 자살을 시도하는 전충남과 이상규를 입 자갈로 자살을 방지하고 배낭과 무기를 해체했다.
이 상황은 불과 몇초 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7.생포 후 조치
생포는 불과 1~2분 안에 종결하였으나 당시 지휘부에서는 20분이 지난 후에 전충남 이상규를 생포한 현장에 나타났음.
이러한 과정에는 처음에는 소리없이 생포를 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생포 과정에서 전충남이 가 기관권총을 발사하고 바로 다대포 앞바다 2~3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자선에서 빗발치던 기관총과 방사포등이 발사 되었으며 연이어 우리공군 과 해군의 가세로 자선이 도망을 치고 난 뒤 지휘부가 나타나 전충남,이상규를 인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