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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과역사

한 시대를 뒤 흔들었던 정치깡패 유지광

작성자장막을헤치고(11)|작성시간09.11.14|조회수1,566 목록 댓글 0

 

1927년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하였고, 단국대학교, 군 장교 출신이다.

 

 

이정재, 곽영주과 더불어

이천 3인방이기도 한 유지광은 1955년 이정재의 권유로 '삼우회'라는 별도 단체를 조직하여

주먹세계에 뛰어들었고, 행동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이 조직은 '화랑동지회'로 개편하였다.

 

 

공공연하게 야당정치인이승만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테러 등으로 활약하였고, 대표적으로

야당인사들의 대규모 집회이던 1957년 '장충단 야당 집회 방해사건'의 주동자로 활약하였다.

(이 사건으로 '깡패'라는 명칭을 언론들이 처음 사용하였다.)

 

이후 4.19으로 이승만정권의 몰락으로 허정과도 정부에 의해 '정치깡패'로 체포 된 후 징역 5년으로 선고 받았다.

그러자 4.19 관련 단체들은 형량이 지나치게 너무 낮다라는 이유로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후 치안이라는 명분으로 '깡패 소탕'으로 재조사를 받았다.

 

 

 가담 죄는 물론이고 자신이 행한 행위까지 타인에게 덮어 씌우면서 진술하는

임화수와는 반대로 유지광은 모든 행위는 자신이 한 행위라고 진술하였다.

 

 

등급을 나누어 B급은 국토건설 노무원에 , A급은 재판으로 회부하였다.

 

이정재 , 임화수 , 곽영주 , 신정식,

 최인규사형을, 유지광은 처음엔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이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후 대통령 특사로 석방 된 후 고향인 이천으로 간 후 1988년에 사망했다. 그의 자서전으로 '대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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