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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과역사

미웠던 당신이 너무 그립다 .김춘삼의 일생

작성자장막을헤치고(11)|작성시간10.01.21|조회수4,043 목록 댓글 0

거지왕 김춘삼이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이제 서울역 광장을 지나 옛 염천교 길에 들어설 때는, 이제는 고인이 된 한국의 거지왕, 왕초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사람들은 탤런트 차인표씨가 연기했던 드라마 속의 김춘삼을 기억한다. 군부독재 시기 정치깡패들이 등장하는 드라마, 소설 등이 유행하던 시절인 1999년, 문화방송은 거지왕 김춘삼의 삶을 소재로 한 드라마 ‘왕초’를 32부작으로 방영했다. 당시 드라마를 제작했던 삼화 프로덕션의 신현택 회장은 “김춘삼씨의 일대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고 말했다. 결국 ‘왕초’라는 드라마를 통해, 그의 일생은 정말 드라마가, 소설이 됐다.

 

‘왕초’가 제작되기 훨씬 전에, 김춘삼은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자서전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출간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책이 발간됐었다는 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왕초’의 시나리오는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이야기를 토대로 구성됐다. 삼화 프로덕션이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판권을 확보하고 만든 드라마가 ‘왕초’다. 즉 드라마 ‘왕초’도 실제 김춘삼의 자기 삶에 대한 독백의 서술이었던 셈이다.

김춘삼의 부고 소식을 접하며 떠올린 건, 드라마 속의 김춘삼이 아니라 자서전 속의 김춘삼이다. 염천교 거지들에 대한 의리, 빈민에 대한 애착으로 표현되는 각색된 김춘삼에 대해서는, 드라마가 방영될 때부터 호감이 가지 않았다. 기억하건데, 자서전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포장마차에서 누군가에게 칼로 배를 찔리고도 ‘가오’를 지키고자 아픔을 참고 술을 마시는 정치깡패 김춘삼의 ‘한창 시절’ 이야기로 시작됐었다.

소설 속의 김춘삼은 ‘건달’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정치깡패였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이승만 정권 시절 김두환, 이정재에 뒤지지 않는 ‘주먹’이었음을 강조했으며, 그 당시 알아주는 주먹들이 그랬듯이 사회활동으로 정권에 봉사했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김춘삼에게는 그럴만한 배경도 있었다. 거지왕이라는 호칭에서 드러나듯, 그에게는 ‘거지들’이라는 거느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거지왕 시절 막바지에 이르면, 염천교뿐만 아니라 한국의 거지란 거지는 모두 김춘삼을 왕으로 모셔야 한다고, 김춘삼 스스로 생각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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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삼이 염천교를 벗어나 세상에 자신을 알리면서 자신의 세력을 부풀리는 계기가 됐던 것은, 1950년대 전쟁고아를 수용하는 ‘합심원’이라는 수용시설을 전국 곳곳에 만들면서였다. 거지로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를 의심하게 하는 일이었다. 확실히 김춘삼은 거지였지만, 적잖은 돈을 운용했고, 그 재력과 명성으로 거지 세계를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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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왕이 된 김춘삼은 1950년대 후반에는 거지들을 모아 자활개척단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60년대까지 이들을 데리고 국토 개발 사업을 벌인다. 단순하다. 돈도 없고 자재도 없지만, 김춘삼이 강조한 거지들만의 정신으로 삽 한 자루 들고 바다를 매우는 일을 했던 것이다. 1959년에는 미국, 필리핀의 거지왕과 일본의 거지왕 ‘가네시루 쯔봉’을 만나, 그들만의 협의를 통해 최초의 ‘국제거지연합회’의 회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국토 개발 사업과 같은 형태의 일종의 ‘통치 사업’ 뿐만 아니라, 김춘삼은 자신을 따르는 거지 대오들과 함께 거리에서 주먹패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당시 숱하게 벌어졌던 좌익단체 테러에 스스럼없이 앞서기도 했다. 정치깡패이면서도 ‘4.19의 단죄’를 면했던 그는, 숨지기 전까지 망원동 12평 전세 연립주택에서 수입도 딱히 없이 옛 부하들의 도움으로 살았다. 70세의 노령에 ‘공해추방국민운동’ 중앙본부 총재로 활동하면서 시민운동가라는 이름도 얻었다.

‘거지의 정신’으로 말 그대로 왕으로서 한국의 거지를 통치하려 했던 김춘삼의 인생사는 드라마 ‘왕초’를 경과하면서 아름답게 각색됐다. 드라마에서도 김춘삼의 정치깡패로서의 활동이 나왔지만, 어린 시절 ‘기차놀이’(철로 위에서 오래 버티는 게임)를 통해 ‘발가락’을 몰아내고 두목이 됐다는 배짱 이야기를 통해, 권력의 실세들과 어울리면서 막대한 규모의 사업을 벌이면서도 거지들과 어울렸다는 의리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삶은 아름답게 재조명됐다.

 

하지만 법보다 주먹이 앞서던 1950년대, 스스로 거지왕이 되기 위해 때로는 주먹에 의존하며, 때로는 정치권과의 밀월에 의존하며 결국 꿈을 이룬 김춘삼의 삶이 그의 자서전과 같은, 소설 같은 것이었을까. 고인이 된 김춘삼이 직접 쓴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는 그의 삶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것이겠지만, 결국 김춘삼도 1950년대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정치깡패로서 통치행위에 일조했던 사람이다. 그가 강조한 거지의 정신으로 국토 개발 사업이라는 대업은 이루어졌겠지만, 맨손으로 바다를 매워야 했던, 그 이름 없는 수많은 도시 빈민들의 애환과 슬픔이 1950년대의 우울함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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