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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과역사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으로 몰락한 신상사파

작성자장막을헤치고|작성시간10.05.19|조회수6,477 목록 댓글 0

 

신상사파’는 이화룡이 이끌었던 ‘명동파’ 행동대장 신모씨가 결성했던 조직으로, ‘동대문사단’ 유지광과 사투 끝에 명동 일대를 장악했다.
하지만 ‘신상사파’ 신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 지역 차별과 무분별한 개발 정책으로 소외됐던 호남지역 ‘주먹’들이 상경해 ‘범호남파’를 결성하면서 주먹의 주축이 새롭게 형성된다. 광주, 전주, 목포 등지에서 올라와 무교동 일대에서 세력을 키워오던 ‘범호남파’는 1970년대 초반까지 기존의 ‘신상사파’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결국 사건은 1975년 명동 사보이호텔에서 일어났다.


주류공급권과 정기적인 상납금 등을 둘러싸고 ‘신상사파’와 잦은 충돌을 빚던 ‘범호남파’ 조직원들이 명동 사보이호텔 커피숍에서 생선회칼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채 ‘신상사파’를 기습, 서울의 중심지 명동을 장악한 것이다.

 

 

 

 

이 사건은 정통 ‘주먹세계’의 종말을 예고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 때까지 주먹세계의 불문율이었던 ‘주먹과 주먹의 대결구도’가 깨지고 사시미칼 등의 흉기가 등장한 것이다.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으로 ‘신상사파’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범호남파’가 명동 진출의 쾌거를 올린다. 당시 광주 지역 폭력조직 ‘서방파’에서 조폭 생활을 시작한 김태촌이 부상하면서 전남 광산군 서방면 그의 출신지를 딴 ‘범서방파’가 결성된다.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범호남파’의 신예 조양은은 두목 오종철이 김태촌 측에 당해 불구가 되자 보복을 선언한다. 이후 조양은은 1976년 4월 중구 태평로 아시아호텔에서 ‘범서방파’조직원들을 습격하는 등 수차례 전면전을 진두지휘하면서 ‘범호남파’의 두목으로 자리 잡는다.


[img2]반면 김태촌은 1976년 신민당 각목사건’을 지휘한 사실이 발각돼 구속된다. 김태촌은 1986년 1월 출소하지만 그해 9월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을 습격한 혐의로 다시 수감, 1989년 1월 복역 중 폐암 선고를 받고 형집행정지로 석방됐으나 1990년 2월 폭력을 사주한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뉴송도호텔 사건’과 관련 김태촌은 “지금까지 나는 권력의 희생양이었다”며 “인천 송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피습사건도 모 부장검사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태촌이 구속된 뒤 조양은은 1978년 자신의 부친 제삿날 ‘양은이파’를 출범시킨다.
하지만 조양은은 큰 실수를 범한다. 그는 1980년 2월 방계 조직인 ‘순천시민파’두목으로부터 “부두목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동생들을 데리고 순천으로 내려가 부두목을 급습한다. 조씨는 결국 이 사건으로 수감돼 15년형을 받았다. 조씨는 1995년 대구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지만 서울리조트 회원권 갈취 및 군산 리버사이드 관광호텔 증기탕 임대계약을 둘러싼 편취 혐의로 1996년 2월 재구속됐다.

‘범서방파’김태촌과 ‘양은이파’조양은이 옥신각신할 때 등장한 별(?)이 ‘OB동재파’의 두목 이동재다. 이동재는 조양은과 지하세계 입문 동기가 각별하다. 자유당 시절 광주 시내를 무대로 각각 ‘대호파’와 ‘동아파’가 결성됐는데 양 계파 간 주도권 싸움에서 ‘동아파’가 패하자 ‘동아파’의 부두목 박영장은 부하인 조양은을 데리고 상경한다. 광주에 남은 ‘대호파’에서 이름만 바꾼 것이 ‘OB파’다. 이후 ‘OB파’는 ‘구OB파’와 ‘신OB파’로 분파, 이동재는 ‘신OB파’부두목을 맡는다. 이동재는 1978년 행동대장에게 두목을 살해하도록 지시했으나 실패하자 상경해 서울에서 ‘OB동재파’를 재결성한다. 이때 김태촌은 이미 구속된 상태라 이동재의 상대는 ‘양은이파’였다. 그러던 중 1987년 11월 사건이 일어난다. ‘양은이파’ 행동대원이 ‘OB동재파’조직원을 경찰에 밀고한 것. 이에 격분한 ‘OB동재파’는 보복을 선언, 1987년 11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온천안마시술소 주변에서 ‘양은이파’간부 2명을 칼로 난자해 중상을 입힌다. 이어 ‘양은이파’는 1988년 9월 서울 성동구 행당동 전주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이동재의 다리를 난자해 불구로 만들어 조폭세계에서 은퇴시키기에 이른다. 이동재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고, 부두목과 행동대장, 조직원들은 광주로 낙향해 다시 ‘무등산파’를 결성했다.


‘조폭 3대 패밀리’의 보스들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김태촌은 지난해 출소 이후 신앙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조양은은 지난 2004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차병원사거리 인근에 ‘오시리’라는 향토음식점을 열었지만 현재 폐업상태에 있으며, 이동재는 ‘양은이파’로부터 습격을 받은 뒤 주먹계를 떠나 미국 뉴욕에서 슈퍼마켓을 운영, 국내와 미국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들의 나이나 건강상태, 붕괴된 조직 등을 감안할 때 다시 주먹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심장협심증 수술의 통증 때문에 석방 직후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 김태촌은 “출감하면 젊은이들에게 ‘조폭 보스’의 비참한 말로를 알려주는 등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여생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지난 1995년 출소한 조양은은 “조폭 생활을 완전히 청산했다”고 공언했다. 이동재는 린치를 당한 후유증이 남아있으며 현재 주거조차 불분명하기 때문에 조직 재건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조폭 3대 패밀리’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찰과 검찰에 적발되는 조직폭력 사건에 ‘범서방파’ ‘양은이파’ ‘OB동재파’ 조직원들이 개입된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 더욱이 김태촌은 1989년 형집행 정지로 풀려난 뒤 종교모임을 가장한 폭력조직 ‘신우회’를 결성한 전력도 있는 데다 수감생활 중에도 15년간 꾸준히 조직원들의 면회를 받아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지난 2002년 진주교도소 수감 중 당시 보안과장 이모씨에게 금품을 주고 전화기 사용은 물론 현금, 담배 등의 편의를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정은 조양은과 이동재도 마찬가지. 조양은의 경우 출소 후 몇 차례 추가범죄를 저질렀으며, 이동재도 조직 탈환의 목표를 어느 정도 갖고 있지 않으냐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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