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조희성.
이사람은 처음엔 신앙촌 박태선의 단체에서 전도사로 일했다고 한다.
능숙한 임기웅변과 기막힌 말쏨씨에 신도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고
그것을 빌미로 기도해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기도 하고 결국엔 다른 교회를 세워 박태선쪽을 배신한 거다.
이미 같이 생활해왔던 안 씨는 조희성을 못마땅 하게 여겨 자주 찾아가 꾸짖었다고 한다 .
자신에 관해 알고있는 모든것들을 신도들에게 알릴것을 두려워하였던 조희성은 살인 청부를 하여 안씨를 지금의 시흥시 대야동
에서 차량에 탑승한 안씨와 함께 동승했던 또다른"김씨" 를 함께 납치 살해 하였다.
김씨는 "여" 박태선교의 사람이었고 내가 아는 지인의 부인이었다.
목적지가 같아 동승했다가 . 처참하게 안씨와 함께 살해 된것이다
실종된 안씨와 김씨 가족들이 조희성을 의심하여 찾아갔을때 피해자 가족들에게 말한 조희성의 녹음된 음성을 들은적이 있다.
매우 음흉하고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난다 ..
내가 죽였지... 증거 있으면 찾아봐....~흐흐흐 ..
조희성의 설교 대부분 박태선의 설교를 그대로 방영한 부분이 꽤많았다.
말투..목소리 톤..하며 ... 흉내도 잘내지 ...ㅠㅠ
살해되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정보가 있었지만 안씨와 김씨의 가족들은 7년이란 시간을 애만 태우다 결국 시신도 못찾고
포기한 상태에서 다른 희생자의 살해 전모가 밝혀지면서 안씨와 김씨의 유골도 수사 제일 끝부분에 발굴되었다.
영생교 교주 조희성의 정체
조희성 교주는 1931. 8. 21.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감정리 497번지에서 출생함.
박태선 전도관 전도사로 지내다가 탈퇴하여 1980년 초에 교단을 창설함.
현재 승리신문(1990. 3. 3 등록번호 다1184 發行 조희성)을 발행하고 있고 저술로는 '영생학', '정도령', '인간 몸이 영원히 사는 학설', '사람 몸이 죽지 않는 비결', '영생학 입문', '사람의 몸이 죽지 않고 영생하게 하는 구세주가 나타났다.', '단 자손의 발자취', '완성자' '말세의 정도', '감로의 법무', '불법의 비밀', '살아 있다는 것', '한국 예언 문학의 해의', '정도령 시대(해인 출판사)'등이 있다.
| 소재지 | 경기도 부천시 역곡3동 175-2 |
| 조 직 | 1) 교당(교회)수 :전국 18개의 지교회가 있다. 2) 교직자 및 교인수: 700여 명 |
| 내 용 |
연혁과 변천
그 이유는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했으나 믿어 영생을 얻은 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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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 |
| 현대종교 관련기사 |
월간현대종교(게재년월 및 제목)
[이부분 ..이미수사요청은 노태우씨가 총재로 있을때부터 안씨와 김씨가족이 끝없이 수사를 요구 해왔던 거다..수년간 묵살 되어 왔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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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교가 내세우는 슬로우건(놀라운 희소식)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 행복의 비결이 있다. 만병통치의 비결이 있다. 젊어지는 비결이 있다. 사람을 죽지 않게 하는 고도의 학문이 있다. 삼신산의 불로초가 있다. 늙지 않는 비결이 있다. 하나님을 보여 준다. 죽은 사람의 영혼도 보여 준다. 선악과도 보여준다. 생명과도 보여주고 먹여준다." 이상이 저들이 내세우는 놀라운 희소식이다.
조희성 교주(영생교 승리제단, 74)가 6월19일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지 3주. 승리제단이 위치한 경기도 역곡역 인근에서 기자가
만난 영생교의 한 승사(영생교가 주장하는 ‘이긴자’ 반열에 오를 사람, 이하 신도)는 조 씨의 죽음을 ‘일반적 죽음과는 차원이 다른 것’
이라고 평가하며 조 씨가 다시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도는 “교주님이 가신 후 한 두명 동요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전체적으로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단언했다.
영생교측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사람 몸이 죽지 않는 법(영생학)을 가르친다’고 하는 등 죽음이 피해가는 종교인 양 설파해 왔다.
영생교의 집회 장소에 “사람이 죽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는 현수막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생을 주장하던 교주가 죽자 신도들은 조 교주의 죽음 자체를 부인하고 재림한다는 식으로 무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직 영생교의 구체적인 후계구도는 보이지 않고 있다. 조 교주가 갑작스럽게 비명횡사한데다가 후계자를 지목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주님이 ‘2008년에 이긴자들이 다수 배출돼 승리제단이 빛의 근원지가 될 것이다’고 발언했다”는 영생교의 한 관계자의 말에
비춰 보면 다수의 ‘이긴자’들이 자신이 진짜 ‘이긴자’라고 주장하는 등 각축을 벌일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한 상황이다.
현재 승리제단내의 재산관리 등은 조희성 교주의 부인으로서 50대 초반이라고 알려진 이영자 씨가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승리제단은 1981년 경기도 부천에서 영생교 승리제단이란 명칭으로 설립했고 진리연구회, 영생학회 등의 조직을 갖고 있다.
현재 150억원대의 본부 건물과 부속건물을 비롯 전국에 45개의 지부가 있다.
한편 조 씨는 1990년부터 1992년 사이 신도 등 6명에 대한 살해를 지시한 혐의(살인교사) 등으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5월 24일 열린 2심에서는 범인도피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과연 진실일까? 승리제단 사람중엔 빽도많고 돈도많고 ... 어찌 형량이 갑자기 2년으로? ...]
조 씨는 서울구치소 수감 중 “가슴이 아프고 호흡이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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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교 신도 살해.암매장 사건을 수사중인 수원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이경재.李慶在)는 "지금까지 수사 결과 모두 10명이 교주 지시에 의해 살해.암매장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2일 밝혔다.
검찰은 이에 따라 교주 조모씨(72)를 살인 교사 혐의로, 전 신도 김모씨(66) 및 정모씨(44) 등 3명을 살인, 공갈미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는 한편 신도 황모씨(65)를 범인도피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달아난 주범 라모(61), 정모씨(48.여) 등 2명을 지명수배하고 이들의 도피를 도와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 신도들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희생자와 살해 이유
검찰은 지난 1984년 1월께부터 1992년 2월께까지 10명이 희생됐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1984년 1월 살해된 김모씨(당시 35세)는 영생교에서 분리된 S교 전도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신도들에게 접근하자 3개월 이상 감금됐다가 살해돼 경기 부천시 범박동 야산에 묻혔다.
1987년 살해된 안모씨(당시 36세)는 밀실생활 당시 교주 조씨와 함께 기거하다가 독립, 영생교를 비판한데다 영생교 창설 이전의 사생활을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는 인물인만큼 교주 신격화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돼 살해됐다.
특히 김모씨(당시 36세)는 안씨 납치과정에서 함께 납치돼 범행은폐를 위해 역시 살해됐다.
1990년 살해된 지모씨(당시 35세)는 당초 교주의 경호역할을 하면서 수차례 살인을 주도했으나 이후 각종 경비 명목으로 자주 돈을 요구한데다 많은 범죄에 연루돼 폭로 가능성 때문에 살해됐다.
또 1990년 11월 살해된 이모씨(당시 53세)는 영생교 회계 업무를 맡아 일하면서 내부 비리에 회의를 느껴 가족들과 함께 탈퇴하고 교주를 비난하자 살해됐고 1992년 2월 살해된 전모씨(당시 50세)는 영생교에서 판매하던 게르마늄도자기 대리점을 개설했다가 큰 손해를 본 뒤 교주 반대활동중 살해됐다.
▲범행 방법
교주 조씨는 철저하게 자신의 심복에게 지시, 범행을 총지휘토록 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초기에는 지씨가, 이후에는 도피중인 라씨가 역할을 담당했고 범행 가담자 역시 극히 제한적으로 활용, 10차례에 이르는 살인사건 가운데 구속된 김씨 및 조모씨(54), 도피중인 정씨 등 외에는 거의 없어 범행 은폐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범행을 교사할 경우에는 주저하는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위해 "XX는 대마귀"라는 등 극도의 증오심을 갖게 했고 주로 밀폐된 지하방이나 야산 주차 차량 안 등을 이용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범행은 준비한 노끈으로 목을 조르거나 흉기로 머리를 구타하는 등 수법을 사용했으며 그래도 숨지지 않을 경우 다시 목을 졸라 살해했고 범행 뒤에는 반드시 사체를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암매장 장소는 경기 부천시 범박동, 용인시 기흥읍 야산, 안성시 금광면 야산, 시흥시 금이동 야산, 전북 정읍시 산내면 야산, 완주군 소양면 야산, 경남 함안군 남해고속도로 부근 공터 등 전국에 걸쳐 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범행 가담자 은닉
살해에 가담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전국적인 영생교 조직을 총동원, 교주 조씨의 지시 아래 조직적으로 숨겨줬다고 검찰은 밝혔다.
구속된 김씨의 경우 1989년께부터 도피생활을 시작해 부산, 대구 등지로 옮겨다니면서 그곳 영생교 조직을 통해 매달 생활비를 지급받았으며 도피중인 라, 정씨 등 역시 마찬가지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월 20만~30만원 정도의, 최저생활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았고 결국 이 문제가 발단이 돼 구속된 김, 정씨가 교주 조씨를 협박하는 내용의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하게 됐다.
▲아직도 불안에 떠는 유족.살해가담자들
유족들은 가족 실종 이후부터 영생교에 납치, 살해됐다는 강한 의혹을 갖고 있었지만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이의제기조차 못했다고 한다.
지난 1995년 서울지검에 의해 신도 소모씨 살해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뒤 적극 민원을 제기했으나 사체 매장, 살해 가담자 조직적인 은폐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들이 지금도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며 영생교 관련 불리한 진술을 한 일부 유족에 대해서는 경찰을 통해 신변 보호조치를 해뒀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살해가담자들도 영생교측의 보복을 우려해 교주 조씨를 상대로 한 공갈미수 혐의로 구속된 정씨의 경우 검거 당시 자신을 찾은 사람이 영생교 행동대원이 아니라 검찰청 수사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안도했다고 검찰은 덧붙였다.
▲검찰 수사 성과 및 향후 계획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10년 이상 제기됐던 영생교 교주의 신도 살해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동안 사체와 실행범인들이 확인되지 않아 영원히 실종사건으로만 묻힐 뻔한 사건을 발굴, 수사하는 성과를 거뒀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가족들의 진실 규명과 함께 일부 사체 발굴 등으로 오랜 세월 쌓인 유족들 원한 해소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