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 씨의 죽음 J 씨는 키가 훤칠하다. 180cm쯤이다. 맘마가 살짝 스친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잡티는 없다. 어쩌다 웃으면 가지런한 앞니에 보철한 안쪽 이가 살짝 보이며 순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 된다. 다른 사람 앞서 먼저 말하는 적이 없고 무엇이라고 또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는 적도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 안 하겠다는 것도 없고 못한다는 것도 없다. 종이접기든 그리기든 색칠하기든 받으면 받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말없이 한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순순히 응한다. 이런 J 씨가 수업 중에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응, 그래….” 나와는 거리가 있어 상대의 말소리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럼, 약 먹었지. 응, 그래….” 알아들을 수 없는 “……!” 상대의 말 소리지만 응대로 봐서 너무나 상냥하고 정감 넘치는 말과 목소리인 것을 짐작한다. “응, 그래 알았다. 그라구마.” ‘그래, 그래.’ 하는 응대로 통화가 한참 이어졌다. 평소 수업 시간엔 잘 없던 모습이다. 이날이 금요일이었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며 늘 하던 대로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만나요.♬”하며 인사하고 나왔다. 이렇게 헤어져 나오며 수업 파트너인 K 선생님에게 물었다. “K 선생님, 수업 중에 J 씨 옆이었는데 전화한 사람이 누구예요? 딸인가요?” “아니에요. 며느리가 전화 한 거예요.” “네? 며느리가 그렇게 상냥하고 다정하게 전화해요?” “그렇게 자주자주 전화를 하나 봐요. 저가 듣기에도 요즘 며느리치고 참 드문, 귀한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딸이 아닌 며느리가 그렇게 다정하단 말이에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요.” 이러곤 헤어졌다. 월요일 수업에 갔는데 J 씨가 보이지 않는다. “J 씨 오늘 안 오시나요?” “갔어요.” “어디를요?” “하늘나라요.” “네? 무슨 그런 말씀을…?” “글쎄 말이요. 우리도 몰랐다오. 선생님들 오시기 전에 전해 들었다오.” 다른 어른들도 너무나 무덤덤하게 말하는 것이 J 씨의 별세를 사실로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죽음을 말하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런 경우도 있을까?’ 싶을 정도다. “아니, 금요일 여기서 전화하고 했는데 그럴리가요?” “그날 저녁 집에서 숨진 모양인데 다음날 초상치고 했다네요. 우리는 이런 줄도 몰랐어요.” 노인회장 K 씨가 하는 말을 받아 연장 P 씨가 “아이들이 주변에 폐를 안끼친다고 저들끼리 일을 치루었다는데 뭔 이런 일이 있나 싶다. 쯧쯧 …”하고 혀를 길게 찬다. J 씨가 앉던 자리가 비어 있지만 실제 J 씨가 없다는 생각은 전혀 안든다. 그런데 죽었단다. 사람의 생명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을까? 우리가 평소 가지고 있던 지인의 죽음에 대한 것은 최소한 며칠을 애도하며 그 주변 남은 자를 위로하고 생전에 가졌던 그의 존재감을 털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산 자와 죽은 자의 구별을 분명히 하므로 산자는 자연스런 망각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또 이것이 먼저 가는 자에 대한 예이기도 하다. 헌데 J 씨의 죽음은 이런 내 인식을 순간에 허물어 버렸다. 가장 가슴을 시리게 만든 것은 그가 떠난 뒤 남겨진 우리들의 풍경이다. 한 인간의 우주가 소멸했음에도 현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무덤덤하게 굴러가고 있다. 마치 이것이 평소 J 씨가 살아온 방식인 것처럼 사라지고 잊어짐 조차도 아무 의식의 없다니 이럴수가 있을까? 사람이 떠나면 발자취도 함께 지워진다는 인거적멸(人去跡滅)의 쓸쓸함이 텅 빈 의자 위로 허허로이 내려앉았다. 타인의 기억 속에서 이토록 쉽게, 그리고 무감하게 잊히는 인간 존재라니... 낙엽 한 장보다 더 가볍게 느껴진다. J 씨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텅 빈 자리는 우리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붙잡을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기를, 그저 지금 눈앞에 주어진 이 찰나의 순간을 아낌없이 다정하게 살아가기를, 인생의 덧없음을 아는 자만이 지금 곁에 있는 이들의 온기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으리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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