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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광 순 - 리얼리즘 너머의 리얼리즘 장석원(미술평론)
1998 / 최광순의 2회 개인전 팜플릿
"그녀의 소조 작품이 갖는 장점은 상투화된 조형미나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내부에서 작품성을 도출해낸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회화건 조각이건 장식적 조형미나 상업주의에 만연된 것이 오늘의 풍조건만, 굳게 자신의 조각성을 추구해 간다는 점이 호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아마 민중미술 10여년의 경력 속에서 그러한 저력이 생겼나보다."
청년의 꿈 / FRP,알루미늄판, 쇠줄
"지난 오월 광주시립미술관 기획의 [새로운 천년 앞에서] 전을 돌아보던 중, 나는 비상하는 듯한 인체를 공중에 매달아 놓은 작품 한 점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밑에는 사실적 묘사 방식으로 바닥에 누워 잠자는 인체가 만들어져 있었고, 알미늄 철판을 뚫고 날개 달린 인체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카페트 위에 누워 잠든 인체와 공중에 날아오르고 있는 인체 사이에는 현실과 이상, 삶과 꿈 사이의 묘한 상관관계를 빚어내고 있었다."
귀가 1 / 테라코타
여로 1 / 브론즈
"그것을 그녀는 집체적 미술운동으로부터 벗어나 모처럼 집에 돌아왔을 때의 편안함, 허망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자기자신의 관점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작품의 문제를 굳이 역사적 관점으로 고정시켰던 과거로부터 탈피해 당당하면서도 자유롭고 넉넉한 자아를 회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로 1> 같은 작품에서 여실히 그러한 전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고보면 <청년의 꿈>에서 보았던 그녀의 새로운 면모란 그러한 변화 속에서 그녀가 힘있게 구사해낼 수 있었던 창의력이었다 할 만 하다."
버거운 삶 2 / FRP, 널판지
아름다운 권위 / FRP,철분, 부식액
"그녀는 <버거운 삶>, <아름다운 권위> 등의 작품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 불교적 초탈에 반비례하여 찌그러진 인생 같은 것을 보이고 있으되 아직 조각적이라기보다는 소재적인 요소로 들어와 보인다. 나는 그녀가 끝까지 조각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그 가운데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기를 원한다."
거울 속의 나 / FRP
폐허와 사유 / FRP, 철분, 부식액
"다른 사람이 그녀의 조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데에 문제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본능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변화를 통해서 그녀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바꿔놓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현상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팔 없는 반가사유상> 그 부처님 발에 눌려서 괴로워하는 노파..."
관리인 K씨 / 테라코타
"나에게 리얼리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왔다. ...나의 관심은 현실 자체에 있지 않다. 현실 너머의 진실, 이상, 꿈, 생각 또는 감각 등이 나의 관심을 끈다. 현실 자체보다는 현실과 나 사이의 거리, 현실에 대한 나의 반응, 그에 대한 고정된 생각을 넘어서 창의력을 일으키는 예술성 등이 관심사이다."
미소 / 브론즈
미소 / 브론즈
"예술이 정체되기 쉬운 삶에 자극적이거나 활력소가 되어주지 못한다면 예술은 별 쓸모가 없는 장식물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예술은 불모지와도 같은 삶에 풍요한 생동감을 불어넣어주는 묘약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최광순 2회 개인전 발문 - 장석원(미술평론)
최광순 Choi, Kwang - Soon
63년 영암생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남도조각회전, 오월전, 일과 삶전, 전국 청년미술제, 민중미술 15년전, 지역청년미술의 동향과 전망전, 젊은 작가- 그들의 현실과 전망전, 한국여류조각회전, '97 한국미술 동향전, 예술사회회원전, 새로운 천년 앞에서전...
epilogue
"모든 미술은 그것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기념도 되고 역사가 되며 장식이나 실용이 되기도 한다. 꽃을 앞에 두고 드로잉을 하는 것에서 공공의 장소에 조형물을 세우기까지 미술은 본질적으로 크고작은 소통의 도구로서 호환수단을 갖게되는 '매력 있는 상품'인 것. 이점 설치나 극, 이벤트와 같은 다분한 '행위'들도 이 '물적 토대'를 벗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훨씬 더 다양한 조건과 다른 배경에 '작가의 역량'을 견주게 된다. 이것이 문학과는 꽤 다르고 음악과는 일면 통하기도 하는 미술의 생리일 터. 오늘날은 통합, 해체, 공공, 혼성, 전자, 디자인 등으로 전화하여 저간의 작가 개별의 의미망과 '활약'의 입지들을 통째로 빼앗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 운명적 형국에서 역사는 무어고 자유는 무언가! 둘은 한 몸에서 난 뼈와 살인 걸... 작가의 탈역사를 주문하는 평자의 글은 '철 지난 바닷가'처럼 을시년스럽다. 최광순이 내었던 한 시절, 조금은 회의하고 조금은 들뜨며 조금은 쓸쓸했던 예비작가적 열정이 손가락 모델링 사이에서 지금도 전해 오는데, 동병상련이랄까, 내일은 항상 어제를 입었음에도 곧 벗어버리는 이치를 오늘에 몰랐거나 너무 믿었던 병. 미술로 한 시대를 놀다 가는 일이 재밌으면 계속할 터이지만, 아까운 재주라고 버리질 못하여 앓는다면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최광순은 지금 어디쯤 살고 있을까..." 2008. 2. 29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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