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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문집

덕봉집발(德峯集跋)

작성자야촌|작성시간26.06.06|조회수22 목록 댓글 0

덕봉집 발

 

덕봉(德峯) 이공(李公)은 익재(益齋) 선생의 영명한 후예이시다. 추로지향에서 태어나 자라며 가정의 가르침을 익혔다. 육경을 깊이 연구하고 백가의 학문을 널리 섭렵하였으며, 현묘한 이치를 탐구하여 고금의 학문을 꿰뚫으셨다. 거경(居敬)의 요체를 뜻으로 세우고, 임금을 충성스럽게 섬기며 어버이를 사랑하는 정성을 다하여, 쉬지 않고 노력하며 실지(實地)를 구하는 데 힘쓰셨으니, 당시의 선비와 벗들이 그를 원대한 그릇이라 추앙하였다.

 

벼슬길에 올라 대각의 관직을 두루 거치며, 역적을 토벌함에 엄격하였고 폐단을 논함에 치밀하였으니, 그 탁월하고 기이한 절개는 온 세상을 감동시켰다. 생각건대 나의 증조고(曾祖考)이신 문헌공(徐有榘)과 본생(本生) 증조고이신 효간공(徐榮輔)께서 정조대왕의 성대한 시대를 당하여, 훈지와 같이 화합하며 잇따라 높고 현달한 자리에 올라 나라의 기둥이 되셨고, 임금의 은우 또한 융숭하였다.

 

어느 해 의리 사건을 당하여 혈성을 다함이 세상에 비할 바 없었다. 배신을 일삼는 무리들이 감히 간교한 꾀를 내어, 안묵과 박장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투서하였고, 없는 일을 꾸며 충신 서(徐) 아무개를 모함하였다. 박장설이 공(公)에게 그 일을 꾸며내어 고발하도록 요청하였으나, 상께서 이를 엄히 다스려 죄를 정하셨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공께서 평소 문헌공과 효간공 두 분의 진충보국(盡忠報國)하는 마음과 의리를 받듦이 엄정함에 감복하였기 때문이다.

 

효간공은 향년 60세를 채우지 못하셨고, 문헌공은 경신년 이후 충성을 다해 변함이 없었으나 흉당의 미움을 받아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으니, 아! 통곡할 노릇이다. 공께서 두 분을 애도하여 지은 만사(輓辭)는 글자마다 눈물이 배어 있다. 우리 두 집안은 같은 의리로 세대를 이어가며 교분을 맺었으니, 그 우의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두터워졌다. 어찌 이를 잊을 수 있겠는가.

 

아! 강세륜의 흉악한 상소가 나오자 온갖 비난이 쏟아졌고, 공 또한 귀양을 갔으나 곧 사면을 받았으니 참으로 성은이었다. 공께서는 정학(正學)을 깊이 연구하고 대의를 굳게 지켰으나, 세상일이 많아 뜻을 다 펼치지 못하였으니, 하늘이 재능을 주면서도 성취를 아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구나. 애석하도다.

 

다행히 하늘의 도는 밝게 빛나, 광무 4년 기해년 가을, 비궁을 추숭하여 장종(莊宗)이라 하고, 이어서 정종의 휘호를 올렸으며, 곧이어 장종 익황제(翼皇帝)의 위호를 올렸다. 이에 성스러운 효도가 천하 만세에 크게 빛나게 되었고, 동토(東土)의 신민들이 품었던 통곡할 원통함이 펴지게 되었다. 당시 절개를 지켰던 여러 신하들에게 모두 은전이 내려졌고, 공 또한 증직을 받았으니 세상에서 영광스럽게 여겼다.

 

공의 유적은 한때 화재를 겪어 타버려 증거가 부족하였으나, 여러 자료를 모아 겨우 가장(家狀) 한 권을 이루었다. 공의 현손(玄孫)인 전 참봉 규승(圭升)이 나에게 보여주며 한마디 글을 청하였다. 내가 비록 문장이 짧으나, 옛일을 생각하면 감회가 지극하여 의리상 감히 사양할 수 없어, 공의 덕행과 사업의 만분의 일이나마 간략히 적는다.

 

광무 6년 임인년 맹춘(孟春)

후학 숭정대부 전 장례원경 동지성균관사 규장각 원임직각 달성 서상조(徐相祖) 삼가 기록함.

 

[부주]

본 글의 저자 서상조(徐相祖, 1830~1905)는 대구서씨(大丘徐氏)의 명문가 출신으로, 고종~대한제국기 정계의 요직을 두루 거친 관료이자 학자이다. 그는 이 글에서 덕봉 이진택 선생이 자신의 증조부인 문헌공·효간공과 맺었던 의리적 유대 관계를 강조하며, 두 가문이 공유했던 진충보국(盡忠報國)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특히 이 발문은 대한제국기 장종(사도세자) 추존이라는 역사적 격변 속에서, 과거의 억울한 의리 사건들이 비로소 해소되었음을 확인하는 시대적 증언을 담고 있다. 서상조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당시 사대부들이 견지했던 충의(忠義)의 서사가 묵직하게 배어 있어, 덕봉 선생의 생애를 복원하는 데 더없이 귀중한 자료이다.

 

국역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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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德峯集跋.

 

德峯李公, 益齋先生之靈裔也. 生長鄒魯之鄕, 服習家庭之訓. 硏究六經, 汎濫百家, 鉤玄探賾, 貫穿古今. 立志居敬之要, 忠君愛親之誠, 矻矻靡懈, 務求實地. 士友推詡以遠大器矣. 迨其策名立朝, 翺翔於臺閣之上, 討逆嚴峻, 說弊綜密, 卓犖奇節, 聳動一世. 惟我曾祖考文獻公與本生曾祖考孝簡公, 當正廟盛際, 塤篪相和, 聯登崇顯, 爲國柱石, 恩遇隆盛. 至於某年義理, 斷斷血衷, 世無與儔. 一種背馳之徒, 敢售嘗試之計, 安黙·長卨, 後先投匭, 誣衊叵測. 公啓請構捏忠臣徐某之朴長卨, 拿問定罪, 上優批許之. 此無他, 公嘗感服於文獻·孝簡兩公盡忠報國, 秉義嚴正故也. 孝簡公享壽未滿六旬, 文獻公當庚申後, 以秉忠不變, 見忤於兇黨, 竟賦鵩不返, 嗚呼慟矣. 公於兩公輓辭, 可以一字一涕也. 吾兩家同義理講世好, 愈久愈篤, 俾也可忘. 噫! 姜世綸凶疏出, 衆鏑交集, 公乃被譴謫尋蒙宥, 寔聖恩也. 公以邃正學秉大義, 世故多端, 未盡展抱, 不能無豐齎嗇售之疑乎天者, 惜哉. 何幸天道孔昭, 光武四年己亥秋, 追崇閟宮爲莊宗, 繼上正宗徽號, 旋上莊宗翼皇帝位號. 於是乎聖孝大有光於天下萬世, 而環東土臣民慟寃獲伸也. 當時盡節諸臣, 咸酬恩典, 公亦蒙貤贈, 世以爲榮焉. 公之遺蹟, 間經回祿, 燒殘無徵, 裒輯若干, 廑成家狀一卷. 公之玄孫前參奉圭升甫, 袖示余而要一言. 余雖不文, 念舊感極, 義不敢辭, 略述公德行事業之萬一云爾. 光武六年壬寅孟春, 後學 崇政大夫前任掌禮院卿同知成均館事奎章閣原任直閣 達城 徐相祖 謹識.

 

德峯集跋

▲필자 소장본(1902년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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