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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문집

재사당선생 일집 발(再思堂先生逸集跋)

작성자야촌|작성시간26.06.08|조회수21 목록 댓글 0

再思堂先生逸集跋

 

再思堂李先生遺文散佚。只有詩賦十餘篇載《東文選》。世傳誦之。《遊金剛錄》一卷藏于家,子孫世守之。其後稍稍得收拾,歷四百有餘年,裒然成文集,將公諸世。李君鍾泂,跋涉三百里,訪泰鎭于寂寞之濱,道其事。旣又申之以書曰:「吾祖之遺集方刊矣,吾丈師門之胄也,盍置一言于後。」竊惟先生之傳,不待是。然丹山零羽,不以等閒視,而必愛惜珍藏,使人知其爲稀世寶,固慈孫之心也。藐慈晩生,蔑學,何敢容喙於其間哉。然李君之請,重以世分,不以文也,豈敢終辭。先生非聖賢書不讀,則當時授受旨訣,必有同門諸子所不得聞者。而惜其微言奧論,不大傳於世,使後人徒知先生文章風節之爲可尙,而不能知其造道之極致,可勝歎哉。

嗚呼,秦火之慘,尙忍言哉。兩家子孫,俱以禍家之餘,保有今日者,先祖之澤也。當飭躬以謙恭,勉子孫以孝友,无忝爾所生,是吾輩責也,而亦是非先祖所期望於子孫者乎。欲講求其道,舍是文奚以哉。宜諸君子之汲汲乎斯役也。曩者泰鎭,亦重刊先子集,於及門諸賢,未嘗不再三致意焉,而史多闕文,亦未嘗不掩卷太息也。今衰老病廢,末由躬相盛役,竊不勝高景之思,幷書所感以復之。

戊寅大寒節,後學一善金泰鎭謹跋。

再思堂先生逸集跋

 

[역주]

◇再思堂 : 조선 전기 문신 이원(李黿, 1464~1504)의 당호. 본문에서는 곧 재사당 이원을 지칭한다. 김종직 문하에 출입한 사림 계열 인물

                 로, 무오사화·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절의를 지킨 인물로 평가된다.

◇《東文選》: 조선 전기 대표적 시문 선집으로, 고려 및 조선 초기 문학을 포괄적으로 수록한 총집.

◇《遊金剛錄》: 금강산 유람 경험을 기록한 기행문 또는 유람기.

◇부연(裒然) : 여러 문헌을 모아 정리하여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갖추어진 모양.

丹山零羽 : 붉은 산 위에 흩어진 깃털이라는 뜻으로, 산일되거나 흩어진 귀중한 문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진화(秦火) :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을 가리키며, 고전 문헌의 소실과 단절을 상징하는 역사적 비유.

◇급문(及門) : 스승의 문하에 출입한 사람, 즉 제자 또는 문인.

 

[국역]

 

재사당선생일집 발.

 

재사당 이선생의 유문은 흩어져 없어졌으나, 다만 시와 부 십여 편이《동문선》에 실려 세상에 전해져 사람들이 이를 외우고 있다. 또한「유금강록」한 권이 집에 소장되어 자손이 대대로 이를 지켜왔다. 그 뒤 조금씩 수습한 끝에 4백여 년이 지나 마침내 문집의 형상을 이루어 세상에 간행하려 하였다.

 

이씨 종형(鍾泂)이 삼백 리 길을 걸어 고요한 곳에 있는 나를 찾아와 그 사정을 말하고, 또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우리 선조의 유집이 지금 간행됩니다. 선생께서는 사문의 후예이니 한 말씀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선생의 전적은 본래 이런 글 한두 마디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흩어진 귀중한 깃털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여 세상에 드문 보물임을 알게 하는 것은 자손의 도리이다. 나는 학식이 부족한 후학이니 어찌 감히 그 사이에 말을 보태겠는가. 그러나 간곡한 청이 있고 또한 세대의 인연이 있으므로 끝내 사양하기 어렵다.

 

선생은 성현의 책이 아니면 읽지 않았으니, 당시에 전해진 학문의 핵심은 같은 문하 사람들조차 다 알지 못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깊은 언설이 널리 전해지지 못하여, 후인들은 다만 문장과 풍격만을 알 뿐 도의 깊은 경지를 알지 못하니, 어찌 한스럽지 않겠는가.

 

아, 진나라의 분서와 같은 참혹함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두 집안의 자손이 모두 화란을 겪은 뒤 오늘에 이른 것은 선조의 은덕이다. 

마땅히 몸을 삼가 겸손히 하고 자손을 효우로 힘써 가르쳐 조상의 뜻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책임이며 또한 선조가 바라던 바가 아니겠는가.

 

도를 강구하고자 한다면 이 문헌을 떠나 어디서 구하겠는가. 여러 군자가 이 일을 급히 힘써야 할 것이다. 지난날 나 또한 선친의 문집을 중간하면서 제자들에게 거듭 뜻을 밝혔으나, 사료가 결락된 것이 많아 책을 덮고 탄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는 늙고 병들어 직접 참여할 수 없으니 아쉬움이 크다. 이로써 느낀 바를 기록하여 답한다.

무인년 대한절, 후학 일선 김태진 삼가 발문을 쓰다.

 

[부주]

김태진(金泰鎭)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 추정되는 인물로, 본관은 일선(一善=선산)이다.

본 글은 재사당 이선생의 산일된 유문을 수습하여 문집으로 간행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발문이다. 

 

저자는 문헌의 소실과 전승의 단절을 역사적 비극으로 인식하면서, 후손들의 간행 사업을 유학적 계승 행위로 정당화한다. \

동시에 단순한 문장 보존이 아니라 학문의 ‘도(道)’ 자체가 전해지지 못하는 점을 깊이 탄식한다.

 

발문 전체는 문헌 보존 의식과 유교적 종족 윤리, 그리고 학문 전승의 책임론이 결합된 구조를 보인다.

특히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인용하여 문헌 단절의 보편적 상징으로 삼고 있다.

 

이 글은 조선 후기 문집 편찬 문화와 사족 문학 의식을 보여주는 전형적 발문이라 할 수 있다. 

<끝>

 

출처>전통의명문 경주이씨종친회카페 ㅣ 국역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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