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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명(墓誌銘)

오천 이종성 묘지(梧川李宗城墓誌)

작성자야촌|작성시간26.06.08|조회수6 목록 댓글 0

오천부군묘지

 

아들 이경륜 찬

 

선고(先考)는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이요, 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의 여러 직책을 겸한 세자사(世子師)이며, 성은 이씨로 이름은 종성(宗城), 자는 자고(子固), 호는 오천(梧川)이다. 경주 이씨는 신라 개국공신 알평의 후예이며, 오대조는 영의정 문충공 백사 선생 이항복이다. 증조는 이시술, 조부는 이세필, 부친은 좌의정 이태좌이며, 모친은 남양 홍씨로 관찰사 홍득우의 딸이다.

 

부군은 숙종 임신년(壬申年,1692) 11월 13일 유시에 출생하였다. 신묘년(1711,숙종 37)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영조 정미년(1727년, 영조 3)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통정대부, 가선대부, 자헌대부, 정헌대부를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관직 경력은 시강원 설서에서 시작하여 홍문관·사헌부·사간원·승정원·성균관·한성부 및 육조를 두루 거쳤으며, 끝내 좌의정과 영의정에 올랐다.

 

외직으로는 북평사, 경기도사, 안성군수, 광주부윤, 각 도의 감사 및 개성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개성유수는 부임하지 않았다. 관찰사로서 여러 지역을 순시하였다. 기묘년 정월 12일, 자택 정침에서 별세하였다. 풍덕 치동 작곡 경좌 원에 장사지냈다.

배우자는 파평 윤씨, 달성 서씨, 청송 심씨이다. 아들 이경윤이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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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先考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府君諱李氏。諱宗城。字子固。號梧川。慶州人。新羅佐命元臣謁平後也。五世祖領議政文忠公白沙先生諱恒福。曾祖吏曹參判諱時術。祖刑曹參判文敬公龜川先生諱世弼。考左議政忠定公諱台佐。妣貞敬夫人南陽洪氏。觀察使諱得禹女也。府君以肅宗壬申十一月十三日酉時生。辛卯中進士。今上丁未擢文科。壬子陞通政。丙辰嘉善。癸亥資憲。甲子正憲。壬申拜相。歷官侍講院說書,弘文館修撰、校理、應敎、副提學,司諫院獻納,大司諫,司憲府大司憲,承政院承旨,都承旨,成均館大司成,漢城府左右尹,六曹諸職,議政府左議政、領議政,中樞府判事等。外職則北評事,京畿都事,安城郡守,廣州府尹,諸道監司,開城留守等。惟開城不赴。奉命按廉七路,道試關西。

己卯正月十二日,考終于正寢。葬于豊德治東鵲谷庚坐原。元配坡平尹氏,判官諱寀女。繼配達城徐氏,判書諱文裕女。三娶靑松沈氏。男敬倫識。

梧川先生集附錄卷之五

 

[부주]

이 묘지명은 조선 후기 영조·숙종 대를 거치며 정승에 오른 오천(梧川) 이종성(李宗城, 1692~1759)의 생애와 관력을 정리한 금석문이다. 이종성은 경주 이씨 백사 이항복 계열의 명문 가문 출신으로, 조선 후기 정치·학술 양면에서 핵심적 위치를 점한 인물이다.

 

그는 문과 급제 이후 홍문관·사헌부·사간원 등 언론 기관과 육조의 실무 관직을 두루 거치며 관료 경력을 축적하였고, 이후 좌의정과 영의정에 올라 조정의 최고 정책 결정자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경연·춘추관 등 학문 및 역사 편찬 기관을 겸직한 점은 그의 정치적 역할이 단순 행정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방관으로서도 경기도·경상도·호서 등 여러 지역을 순시하며 행정 감찰 기능을 수행하였고, 개성유수 등 전략적 요충지 관직에도 임명되었다. 이는 중앙정치와 지방통치를 동시에 경험한 전형적인 영조대 정승형 관료의 구조를 보여준다.

 

이 묘지명은 단순한 개인 전기가 아니라, 경주 이씨 가문의 계보 의식과 조선 후기 관료제의 전형적 경력 구조를 동시에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백사 이항복 → 이종성”으로 이어지는 정치적·학문적 계보 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며, 이는 가문 중심 관료 엘리트 체제의 특징을 반영한다.

 

출처>전통의명문경주이씨종친회카페 ㅣ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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