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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다데비

난다데비 - 힌두교 지복의 여신

작성자야크지기|작성시간20.01.25|조회수101 목록 댓글 0

 

 

난다데비(Nanda Devi), 이름을 풀자면 기쁨의 여신이며 한자로 구태여 말하자면 지복(至福)의 여신이다. 현재 가르왈 히말라야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르왈 히말라야 전체에서 가장 높은 제 1봉으로 해발 7816미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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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고대로부터 인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신성하게 대접을 받아왔으나 인도가 시킴왕국을 합병함으로서 캉첸중가에 밀려 2위봉으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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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는 북쪽으로 해발 7756미터의 카메트(Kamet)를 비롯해서 동쪽으로는 그 유명한 6864미터의 창가방(Changabang)과 7066미터의 두나기리(Dunagiri)가 있다. 이 모든 봉우리들은 조시마트에서 진행하는 경우 대부분 선명하게 만날 수 있으나 동쪽에서 접근하는 경우 쉽게 만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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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부가 1982년 11월 난다 데비 봉을 중심으로 800평방 km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후, 조시마트 쪽의 길을 닫아버렸다. 이제 뒤 세대는 특별한 허가를 얻지 않고는 이 길을 끝까지 들어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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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데비는 험준하다. 8천이 넘지 않는 산이되 계곡은 그 어느 산보다 깊고 험하다. 날씨 또한 예측불허다. 가스, 비, 눈, 바람 등이 다가온다. 난다 데비는 바로 죽음을 담보로 길을 걷는 지옥의 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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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東) 가르왈 히말라야의 산봉우리에 주어진 난다데비라는 이름은 바로 히말라야 산신의 딸이자, 쉬바의 아내인 파르바티를 일컫는다. 가르왈과 쿠마온 지역의 원주민들은 파르바티를 오랫동안 난다데비라고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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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바신과 파르바티, 즉 난다데비는 결혼 후에 가르왈 히말라야에서 주로 살았다. 가르왈 히말라야에는 그들의 발자취가 여기저기 남아있기에 많은 사원, 강물, 호수에 난다라는 이름이 꼬리표처럼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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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결혼식을 올린 곳은 시크교도들의 성지 햄꾼드(Hemkund)와 이름이 유사한 해발 4061미터의 홈꾼드(Homkund)로 조시마트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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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왈의 판와르 왕조와 쿠마온의 챤드 왕조는 난다 데비를 왕실의 수호신으로 모셨다. 양측 왕조 모두 공주, 왕의 여자 동생, 그리고 왕가의 여자들은 ‘드이아니’라고 부르며, 난다 데비의 신상처럼 숭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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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바라보는 가르왈 최고봉인 이 산이 왜 지복과 기쁨이었을까. 역시 칩코와 같은 맥락이리라. 무조건 제공하는 어머니. 산으로부터 강물을 흘러와 비옥한 옥토를 일구도록 도와주고 풍부한 나무열매와 땔감 등을 조건 없이 선물하는 어머니. 난다데비로 향하는 사람들은 그 기쁨의 현장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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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데비의 샥티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져 온다. 우디오트 라자(1678-1698)는 알모라(Alomora)에 난다데비에게 헌정되는 아름다운 신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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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이 지역을 관할하는 무지한 영국인 통치자에 의해 신전은 파괴되었다. 그리고 이 지역을 탐험정찰을 나섰다가 그는 눈이 아주 멀어버렸다. 현지 인도인들은 샥티 개념을 이야기하고 사원을 다시 건립해야 한다고 충고했고, 사원이 재건되던 날, 그는 잃었던 시력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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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데비는 샥티[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을 무례한 정복자 이국인과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에게 슬쩍 내비친 것으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목숨을 빼앗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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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가 당한 일이 설맹(雪盲)이었다 해도 암흑 속을 한동안 헤매야했던 영국인은 두려웠으리라. 그가 아직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다시 건립된 사원으로 들어가 더듬거리며 향을 들고 뿌자에 참여하는 모습은 상상 만해도 그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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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에게 문득 되찾아온 광명. 사람들은 오늘까지도 이 난다데비 일대에는 마하샥티, 위대하고 커다란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 샥티를 느끼기 위해서, 샥티에 세례를 받기 위해 사람들은 순례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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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담 - 히말라야 기행(가르왈 히말라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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