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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산팔경단소

. [방호산 장군의 사진을 보고]

작성자박희용|작성시간26.06.17|조회수4 목록 댓글 0

. [방호산 장군의 사진을 보고]

 

호남을 빙 돌고 남해안을 질주하여 마산까지 진격했으나 미군의 막강한 화력과 인천상륙작전 때문에 퇴각한 인민군 6사단장. 그 멀고 먼 퇴각길 마산에서 원산까지 사단 편제를 유지한채 후퇴한 유일한 사단장 방호산. 우리 한국으로서는 방호산 그가 매우 대적하기 어려운 장수였고, 마산전투에서 미군과 국군이 패했다면 부산이 함락될 뻔 했습니다. 오늘날 윤석열 반란까지 진압하여 민주주의가 활짝 꽃피고 세계 15위의 GDP를 이룩한 대한민국으로서는 천만다행입니다. 그런 방호산의 필로군 출신 6사단이 만약 중앙 전선에 배치됐다면 대구와 부산이 직통으로 뚫릴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최정예 6사단을 전선 축의 변방인 호남으로 돌린 것은 실책일 것입니다. 또한 견제 심리 때문에 김무정 장군을 전쟁의 변방으로 돌린 것도 실책일 것입니다. 청년 때의 얼굴이 참 개끗합니다. 생각과 이념이 달라서 6.25 동족상잔의 남침전쟁의 인민군 사단장으로 일생을 소모했지만, 만약 그가 임진왜란 때 장수였다면 이순신 장군 못지 않은 명장이 됐을 것입니다. 아무리 지략과 용맹이 뛰어난 장수라 하더라도 여떤 명분과 이유이든 간에 동족을 죽이는 전쟁에는 참여해선 안 될 것입니다. 승리한다 해도 후세 사가들은 동족상잔 전쟁에 종군한 인물이었다고 평할 것입니다. 식민지 시대에 항일전선에 헌신한 장수들과 병사들은 해방과 동시에 총칼을 놓는 게 좋았습니다. 남과 북이 분단됐는 데도 한쪽 군대에 들어간 것은 결국 군인으로서의 출세를 위한 아심때문이었습니다. 박정희가 국민학교 훈도를 치우고 민주군관학교에 입학한 것은 친일이나 반일 차원보다는 군인으로서의 출세욕 때문이었습니다. 6.25 전쟁기 동안에 우리 민족사 전체적으로 볼 적에 아까운 인물들이 참 많이 작은 명분과 출세욕 때문에 희생되었습니다. 방호산 장군을 전철로 삼아 이 땅 금수강산의 청춘들은 장래를 잘 기획해야 할 것입니다. 2026. 6. 17

 

 [댓글에 대한 답변] 

 

"그건 그들이 전쟁 전부터 세워놓은 부산교두보(Pusan Perimeter), 인천상륙작전 전략을 숨기기 위해서이다."란 말씀을 보면, 그럼 미국이 6.25 전쟁 발발 이전에 북한의 남침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한국군에 무기를 주고, 병력 증강을 시킬 것이지, 왜 미군을 철수하고 에치슨 라인을 그어 남한을 제외했습니까?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한국군 무장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3일 만에 참전했는데, 일본 주둔 미군 사단을 급파한 것을 보면 부산교두보 작전 준비가 미흡하지 않습니까? 부산교두보 작전을 위해서 우리 국군과 국민들이 그렇게 많이 희생되도록 이용했다는 말입니까? 부산교두보 작전과 인천상륙작전의 연계성이 부족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진보주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미국의 6.25 전쟁 유인설에 이어집니다. 북한은 그 덫에 걸렸고요. 그러나 소련 해체 후 공개된 기밀서류에는 북한 지도부가 스탈린과 모택동을 만나 남침을 애걸한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미군 정보 당국이 남침 전략을 훤히 알았겠지요. 선생님의 말씀대로 미국이 북한의 남침 계획을 알면서도 부산교두보 작전을 설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리하면, 선생님의 말씀대로 미국이 이미 작전 계획까지 세워놓고 남침을 기다렸으니, 남한과 북한은 강대국들의 체스 판 위에 쓰인 졸이 아닙니까? 남이든 북이든 다시는 강대국들이 노는 체스판의 졸이 되어서 안 되겠지요? 졸은 아니고 차나 포 정도 되면 한판 해볼만 하겠지만요. 저는 전쟁사학자가 아니라서 전문 지식이 미흡하지만 공개된 정보와 자료 등을 읽고서 생각할 따름입니다. 방호산이가 비록 우리 한국의 적장이고, 호남과 남해안을 진군하면서 많은 학살을 자행한 죄과가 있지만, 사단장으로서의 역량을 대단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인물이 임진왜란 때 있었으면 왜적을 더 빨리 불리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026.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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