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인 대회 제4회 런던 올림픽경기대회
올림픽이 국제대회로서 면모를 갖춘 대회
대회기간
1908년 4월 27일∼1908년 10월 31일
개최도시
영국 런던
대회규모
22개국, 선수 2,008명
메달순위
1위 영국, 2위 미국, 3위 스웨덴 (금·은·동 합계)
개최종목
다이빙, 럭비, 레슬링, 복싱, 사격, 사이클링, 수구, 수영, 양궁, 요트, 육상, 조정경기, 체조, 축구,
테니스, 펜싱, 피겨스케이팅, 하키 등 110개 세부종목
이전과는 달리 국가대항전의 성격을 띤 올림픽 대회로,
6개월에 걸쳐 가장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경기운영이 이루어졌다.
제1회 올림픽경기대회 이후 제2·3회 올림픽 경기대회가
만국박람회의 한 행사로 변칙으로 치러지자
개최국 영국은 올림픽 대회의 규칙을 점검하고 연구하여 대회규정을 제정했다.
대회 참가신청은 국내올림픽위원회(National Olympic Committee:NOC)로
단일화했으며, 올림픽 대회 참가선수는 아마추어에 한한다는 규정을 명문화했다.
금, 은, 동제도가 채택된 것은 바로 이 런던올림픽부터이다
<승리보다 참가에 더 의의가 있다>는 말이
바로 런던 올림픽 때 처음으로 나왔다.
성공적인 올림픽을 기원하면서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에서 거행된 미사에서
펜실베이니아 주교가 강론 중에 이 말을 했다.
한 연회장 연설에서 이 구절을 인용했다.
이때부터 이 말은 올림픽의 모토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사상최대의 관중이 동원되었다.
올림픽의 여성경기가 크게 발전한 대회로서,
여성선수는 1896년 제1회 올림픽 경기대회보다 크게 늘어난 37명이었고,
양궁·체조 시범경기에도 새로 참여했다.
여자선수 가운데는 1908년 런던올림픽 양궁에서 우승한
시빌 퀴니 뉴웰(영국)이 역대 최고령금메달리스트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53세 277일이었다.
또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동계 스포츠가 등장하여 피겨 스케이팅 경기가 열렸다.
경기종목은 20개로 확대되었고, 금메달이 100개나 수여되었다.
육상경기는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국제대회 답게
체계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심판판정에 대한 갈등이 끊이지 않아
다음대회부터 주최국 출신 심판의 경기담당이 금지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의 학생 워커는 100m경기에서
10초 8로 올림픽 경기대회 신기록을 세웠으며,
특히 큰 관심을 끈 마라톤의 경우
당시 마라톤 거리는 40km 정도였는데
영국 왕비가 선수들의 출발 모습을 보고 싶어해
출발선이 윈저궁으로 바뀌면서 거리가 42.195km로 늘어났다.
제일 먼저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후 5번이나 쓰러져
임원들의 부축으로 결승 테이프를 끊고 실격 당했는데,
그의 영웅적인 투지를 높이 평가한 알렉산드리아 왕비가
개인상으로 금 트로피를 수여했다.
영국의 H.테일러는 400m·1,500m자유형 수영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우승은 금메달 56개의 영국이 차지했고
미국(금메달 23개)·스웨덴(8개)·프랑스(5개)·독일(3개)이 그 뒤를 이었다.
1900년 제2회 올림픽 경기대회와
1904년 제3회 올림픽 경기대회에서 부진했던 소련은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다.
국가를 대표해서 국기를 앞세우고 참가했다.
국가간 경쟁이 이루어지면서
올림픽 경기대회의 급속한 양적 성장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회경비 관계로 만국박람회와 함께 열었으나
종전처럼 박람회의 영향은 받지 않았다.
또한 1906년에 올림픽 대회의 영구개최권을 주장한 그리스가
아테네에서 900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특별대회를 개최했는데,
공식 올림픽 대회로 인정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