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밭/유종인-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터 가는 길
길 한 번 잘못 들었더니
시골길은
슬그머니 언덕 위로 부르더니
민틋하니 기울어진
만판 양배추밭을 뵈준다
얼마 전 입양 보내듯 비운 채
허공을 산후조리하는 언덕바지 양배추밭이
저마다 양배추만 한 허공을 품고 있는
텅 빈 양배추밭이,
나는 기갈나게 좋아라
뭔가 그럴듯하게 있는 거
여기선
뭔가 그럴듯하게 없는 거
이미 한 시절 한 건달 당겨쓰고
고생과 탄식과 보람도
다 댕강 머리 쳐 보낸
뿌리와 겉잎만 남은 텅 빈 양배추밭이
한 재산 얻은 듯 좋아라
이제 건달하기 좋다는 듯
허허로운 웃음들
허허로움이
몸살나게 좋아 죽겠어서
자 봐라
언덕배기 양배추밭 몸져 누워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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