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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5/31 명당보다는 영원한 본향 창세기 (49:29-33) - 정만영목사님

작성자김미정|작성시간26.06.05|조회수107 목록 댓글 0

명당보다는 영원한 본향(창세기 49:29-33)

 

   사람은 죽을 때 가장 정직해집니다. 평생 무엇을 붙들고,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았는지, 마지막 숨 앞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의 신앙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파묘’는 “산 사람의 복과 화가 죽은 조상의 묏자리에 묶여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이 영화가 그토록 많은 사람을 끌어모은 것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죽음과 조상과 땅의 기운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야곱은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이, 마지막으로 명당이 아닌 어두운 동굴 하나, ‘막벨라 굴’을 택합니다. 야곱의 이 선택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에 매여 살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

 

1. 야곱은‘명당’이 아니라‘ 약속’을 택했습니다

   야곱은 애굽 고센 땅에서 십칠 년을 평안히 살았습니다. 풍요가 거기 있었습니다. 권력이 거기 있었습니다. 안정이 거기 있었습니다. 풍수의 눈으로 보면 고센이야말로 명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마지막 명령은 이것이었습니다. “나를 가나안 막벨라 굴에 묻어다오.” 그 굴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은 사백 세겔을 치르고 산, 족장들이 가나안에서 소유한 유일한 한 뙈기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온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이 손에 쥔 것은 작은 굴 하나뿐이었습니다. 약속은 거대한데, 손에 쥔 것은 동굴 하나. 야곱은 이 굴을 약속의 ‘계약금’, 약속의 ‘보증금’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온 땅에 박은 단 하나의 ‘말뚝’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 죽음을 그 약속의 말뚝에 묶었습니다. “나는 애굽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약속에 속한 사람이다.” 세상은 땅의 기운을 보지만, 야곱은 하늘의 언약을 보았습니다. 세상은 보이는 풍요를 택하지만, 야곱은 보이지 않는 약속을 택했습니다.

 

2. 야곱은‘붙들지’ 않고‘ 맡겼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좋은 터에 묻히면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죽은 자를 보내지 못하고,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매입니다. 이것은 ‘붙들기’의 종교입니다. 붙들면 붙들수록 더 매입니다. 보내지 못하니 쉬지 못합니다. 영화 ‘파묘’가 보여 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복을 찾아 들어갔는데, 거기엔 저주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땅의 기운에 운명을 맡긴 자에게 돌아온 것은, 안식이 아니라 불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붙들지 않고 맡겼습니다. “침상에 똑바로 누워 숨을 거두고, 조상에게로 돌아갔다”(33절). ‘조상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은 단순히 핏줄로 돌아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으로 묶인, 언약의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붙들면 매이고, 맡기면 자유합니다. 붙들면 불안에 떨고, 맡기면 쉽니다. 같은 무덤인데, 한쪽은 산 자를 옭아매는 공포의 자리이고, 다른 한쪽은 약속 안으로 들어가는 안식의 자리입니다. 야곱은 자기 죽음을 영원하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3. 우리는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이 믿음은 다음 세대로 흘러갑니다. 아들 요셉도 죽을 때 자기 뼈를 약속의 땅에 묻어 달라 했습니다. 사백 년이 흘러, 출애굽의 그 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의 뼈를 메고 나왔고, 광야 사십 년을 함께 건너, 마침내 가나안 세겜 땅에 묻었습니다. 한 사람의 마지막 시선이 다음 세대의 정체성을 붙들어 준 것입니다.

   야곱이 남긴 유산은 “나를 잘 모셔서 복 받아라”가 아니라 “너희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잊지 말라”였습니다. 신앙의 유산은 땅이나 기운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약속에 속한 정체성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입니다. 이 세상의 풍요는 잠시 머무는 애굽일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더 좋은 본향이 있습니다(히11:16).

 

맺는 말 -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잠든 것처럼 살자

   야곱은 명당을 버리고 약속을 택했습니다. 붙들지 않고 맡겼습니다. 흙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약속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고, 오직 안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 약속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막벨라 굴보다 더 큰 부활의 약속과 영원한 본향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기운에 매이지 마십시오. 풍요에 매이지 마십시오. 죽음의 두려움에 매이지 마십시오. 영원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십시오. 본향을 사모하며 나그네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오늘도 우리는 약속 안에서 살고, 마침내 약속 안에서 잠들 것입니다.

 

적용 나눔) 지금 내 삶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꽉‘붙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자녀, 재정, 건강, 미래, 어떤 관계 등) 그것을 영원하신 하나님께 ‘맡긴다’면, 내 마음과 삶에서 무엇이 구체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까요? 함께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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